문화. 생활

Home>월간중앙>문화. 생활

[정덕현의 K컬처 톺아보기(15)] OTT가 연 ‘19금 K콘텐트’ 어떻게 볼 것인가 

표현의 지평 넓혔지만… 납득할 수 있는 ‘선정성’은 지켜져야 

[그것이 알고 싶다]보다 [나는 신이다]가 파장 컸던 건 폭로의 적나라함 때문
해외 성문화 소개한 [성+인물] 예능은 너무 자극에만 초점 맞췄다는 비판도


▎넷플릭스 오리지널 다큐멘터리 [나는 신이다: 신이 배신한 사람들] 공식 포스터. / 사진:넷플릭스
19금(청소년 관람 불가) K콘텐트의 세계가 열렸다. 그 진원지는 바로 ‘온라인 동영상서비스(OTT)’다. 그간 지상파에서는 일천할 수밖에 없었던 성인 콘텐트가 OTT라는 새로운 플랫폼을 만나 본격적으로 고개를 들기 시작한 것. 과연 그 성과와 숙제는 뭘까.

올해 상반기 넷플릭스를 통해 공개된 [나는 신이다: 신이 배신한 사람들]은 엄청난 파장을 불러왔다. 한국의 사이비 종교를 추적한 이 다큐멘터리는 총 8부작으로, 기독교복음선교회(JMS)의 정명석, 오대양 집단 변사 사건의 박순자, 아가동산 사건의 김기순, 만민중앙교회 이재록의 실체를 파헤쳤다. 특히 첫 번째로 소개된 JMS 사건은 일파만파로 퍼졌다. 교주인 정명석이 성범죄로 기소돼 10년형을 복역하고 출소했지만, JMS는 오히려 사세를 키워왔고 정명석은 여전히 그들에게 ‘메시아’였다는 것이다. 결국 그는 또다시 성범죄로 기소돼 재판부의 판결을 앞두고 있다.

시사 프로그램보다 ‘폭로 강도’ 더 높아져


▎넷플릭스 오리지널 예능 [성+인물] 공식 포스터. / 사진:넷플릭스
JMS 정명석에 대한 폭로는 [나는 신이다]가 처음이 아니다. 이미 [그것이 알고 싶다] 같은 시사 프로그램에서 수차례 다뤄진 바 있다. 최근 [그것이 알고 싶다]는 ‘JMS, 달박골 청년은 어떻게 교주가 되었나?’라는 부제로 이 사건을 또다시 다루기도 했다. 물론 시사 프로그램의 폭로는 그 자체로 충격적인지라 시청자들의 관심을 받았지만, [나는 신이다]에 쏠린 대중들의 시선은 특히 뜨거웠다. 그 이유는 뭘까. 그 폭로의 강도가 그 어떤 시사 프로그램보다 셌기 때문이라는 점을 부인할 수 없을 것 같다.

“나 껴안아 줘. 꽉 껴안아 줘. 주님 영원히 사랑할거라 해. 아유, 히프 크다. 좋아 미치겠어? × 나왔어? 나는 한 50번은 ×거 같아.” [나는 신이다]는 첫 회시작과 함께 정명석의 실체를 녹음 파일 공개를 통해 드러냈다. 이후 충격을 넘어서 엽기적이라고 여겨질 정도의 폭로가 이어졌고, 이들을 막기 위해 ‘엑소더스’라는 민간단체를 이끈 김도형 교수가 홍콩까지 찾아가 정명석을 체포하던 그 순간을 찍은 영상까지 공개했다. 심지어 전라의 신도들이 정명석의 신부가 되기 위해 노출한 장면들은 그 어떤 다큐멘터리보다 선정성 수위가 높았다. 정명석이 어떤 성폭력을 행사했는가에 대한 재연까지 연출했다. 그 선정적이고 자극적인 연출이 만들어내는 파장은 클 수밖에 없었다. 시청자 중에는 너무나 불쾌해 곧바로 채널을 돌렸다는 이들도 적지 않았다.

하지만 결과적으로 이러한 선정성과 자극은 이 사안에 대한 대중들의 관심을 그 어느 때보다 높게 불러온 게 사실이다. 게다가 이 다큐멘터리를 연출한 조성현 PD에 의하면, 그 선정성을 의도적(?)으로 선택한 것에 대한 이유도 분명했다. 시사 프로그램에서 변조된 음성, 모자이크 처리된 영상이 나오면 신도들 사이에서는 그것이 조작됐다는 식의 자기방어적 거짓말들이 나오곤 했다는 게 그 이유였다. 즉, 녹음된 목소리는 인공지능(AI)으로 조작한 것이고, 모자이크 처리된 나체 영상은 사실 비키니를 입었다거나, 몸 파는 여성들이 돈을 받고 조작한 거라는 식으로 신도들이 거짓말을 한다는 것이다. 현재도 피해자가 나오고 있는 심각한 상황에서, 적나라한 실체를 드러낼 수밖에 없을 만큼 절박했다는 조성현 PD의 강변이 설득력을 얻는 이유다.

15세에 머물렀던 K콘텐트의 소재와 표현 확장


▎학교폭력을 적나라한 수위로 묘사하는 K드라마들이 늘어나고 있다. 왼쪽부터 [약한 영웅](웨이브), [더 글로리](넷플릭스), [돼지의 왕](티빙). / 사진:각 OTT
[나는 신이다]의 사례가 보여주는 것처럼, 19금 콘텐트는 선정성 논란으로 비판 받기도 하지만, 나름의 성과 또한 갖고 있다. 지상파에서 그간 일천하게 다뤄졌던 성인 콘텐트가 OTT라는 새로운 플랫폼을 통해 열림으로써 소재나 표현의 지평이 넓어졌다는 점이다.

넷플릭스 드라마 [더 글로리]만 봐도 ‘OTT가 아니었다면 이처럼 치열하게 학교폭력에 대한 문제들을 파고들 수 있었을까’라는 생각이 든다. 고데기로 문동은(송혜교)의 온몸에 새겨진 화상 자국들은 학폭이 얼마나 끔찍한가를 직관적으로 보여줬다(게다가 이건 실제 벌어졌었던 사건을 모티브로 하고 있다). 문동은이 마치 바둑을 두듯 오랜 세월 복수를 준비하고, 이를 하나하나 어렵게 실행해가는 과정은 기득권인 가해자들에게 정의를 실현하는 일이 얼마나 요원한가를 보여준다.

최근 학폭 이슈가 그 어느 때보다 커진 이면에는 19금 콘텐트로서 이 소재를 다루는 작품들이 많아진 것과 무관치 않다. 작년 웨이브 오리지널로 방영된 [약한 영웅]이나, 연상호 감독의 애니메이션 원작을 드라마화한 티빙 오리지널 [돼지의 왕] 같은 작품들이 대표적인 사례다. 그간 지상파 청소년물 대부분이 진학 문제나 멜로 등의 다소 연성화된 소재들로만 다뤄져 학폭 같은 심각한 사안들이 외면되곤 했다. 하지만 OTT가 등장하면서 청소년물이 그간 하지 못했던 소재나 수위의 이야기들을 자유롭게 다루기 시작했다. 넷플릭스 오리지널 드라마 [인간수업]이 청소년 성매매 문제를 끄집어냈고, 시즌 오리지널 드라마 [소년비행]은 청소년 마약 문제를 다뤘다. 학폭 소재도 고개를 들었다. 좀비 장르인 [지금 우리 학교는]이 학폭을 소재로 밑그림을 그린 작품이었고, 그 성공은 [약한 영웅]부터 [돼지의 왕], [3인칭 복수] 같은 작품들로 이어졌다.

OTT는 폭력 수위가 높아 지상파에서는 다룰 수 없던 장르가 제작될 수 있게 했다. [스위트홈], [방과 후 전쟁활동] 같은 크리처물이나 [킹덤] 같은 좀비 장르가 대표적이다. 이들 작품은 장르적 특성상 신체 절단 같은, 폭력 수위가 높아 기존 플랫폼에서는 시도 자체가 불가능했다. 하지만 OTT가 그 세계를 열어준 결과, 이들 작품은 해외에서 ‘K좀비’라는 차별화된 장르로 호평받았다. OTT는 그간 15세에 주로 머물렀던 K콘텐트가 보다 넓은 세계로 나가는 걸 가능하게 해줬다.


▎JTBC [부부의 세계]는 19금 드라마로 무려 28.3%(닐슨 코리아)의 최고 시청률을 기록함으로써, 19금 드라마는 안 된다는 그간의 ‘지상파적 편견’을 깨버렸다. / 사진:JTBC
OTT가 열어놓은 19금 콘텐트의 세계는 지상파나 케이블, 그리고 종편 채널에도 변화를 일으켰다. JTBC [부부의 세계]는 19금 드라마로 무려 28.3%(닐슨 코리아)의 최고 시청률을 기록함으로써, 19금 드라마는 안 된다는 그간의 ‘지상파적 편견’을 깨버렸다. 물론 JTBC가 지상파는 아니지만, 지상파적 관점이 여전했던 시기에 만들어낸 하나의 사건이다. 19금 등급이라도 작품만 좋다면 오히려 타기팅된 성인 시청자가 알아서 찾아본다는 걸 [부부의 세계] 성공이 보여줬다. 그 후 지상파에서도 19금 드라마는 더는 금기가 아니게 됐다. 상업방송으로서 보다 공격적인 시도를 해온 SBS는 [펜트하우스], [모범택시] 같은 19금 드라마로 큰 성공을 거두기도 했다.

‘성 착취적 요소’ 무비판적 수용 우려도


▎해외의 성문화를 종사자 인터뷰를 통해 소개하는 [성+인물]은 지나치게 선정성에만 머물렀다는 비판을 받았다. / 사진:넷플릭스 [성+인물] 예고편 캡처.
하지만 19금 콘텐트는 늘 ‘선정성 논란’에서 자유로울 수 없다. 대중들이 느끼는 이러한 충격은 한번은 겪어야 할 과정이라 여겨지기도 하지만, 불편함을 불편하다고 말하는 건 콘텐트 소비자들의 권리라는 점에서 간과할 수 없는 부분이다. 특히 우리네 사회에서 지금껏 양성적으로는 일천하게 다뤄진 ‘성 소재’들은 여러 사회적 요인들과 뒤얽혀 있어 여전히 보수적인 양상을 보이는 면이 있다. 최근 넷플릭스에서 공개된 예능 프로그램 [성+인물]이 불러일으킨 호불호 논쟁은 그래서 주목할 만한 지점이다. 해외의 성문화를 그 영역에 종사하는 이들을 찾아 인터뷰를 통해 소개하는 [성+인물]은, 그 시도 자체가 지금까지 K예능에서는 좀체 다뤄지지 않았던 것이었지만, 지나치게 선정성에만 머물렀다는 비판을 받았다. 일본의 성인비디오(AV) 산업이나 그 종사자들이 배우들을 인터뷰하는 것이 그 산업이 가진 성 착취적인 요소들을 비판 없이 수용하게 만들 수 있다는 우려 섞인 목소리들이 등장했다. 하지만 그 시스템까지 비판적으로 들여다보는 다큐멘터리가 아닌 예능 프로그램으로서는 과한 지적이 아니냐는 반론들도 나왔다. 또 ‘선정성’이 주는 불편함은 지상파 같은 채널에서 방영된다면 비판받아 마땅할 수 있지만, 개인의 취향에 따라 선택해서 보는 OTT에서는 등급을 통한 접근 제한이 제대로 작동한다면 문제 될 게 없다는 이야기도 나왔다. 사실 ‘억압된 성의 해방’ 같은 사안은 보다 나은 사회 구성원의 행복을 위해 추구해야 하는 일이지만, 성범죄에 대해 특히 예민한 우리 사회의 경우 이 사안의 주장들은 자칫 오해받거나, 엉뚱한 프레임이 씌워질 수 있는 게 현실이기도 하다.

결국 ‘선정성’ 문제 역시 하나의 고정된 기준이 있다기보다는 그 사회가 가진 감수성의 차이에 따라 기준이 달라질 수 있다고 생각한다. 따라서 그 선정성의 문제는 단번에 받아들여질 수 있는 것이 아니라 시대의 감수성에 따라 서서히 변화되고 수용되는 것이 아닐까. 물론 목적 자체가 자극과 선정성에만 머물러 있는 콘텐트는 윤리적 차원을 넘어서 작품 자체로도 호평받기 어려운 게 당연하다. 하지만 작품의 표현에 있어 충분히 납득할 수 있는 선정성은 콘텐트의 보다 자유로운 지평을 만들어줄 수 있기도 하다.

※ 정덕현 - 대중문화평론가이자 칼럼니스트. 연세대학교 국어국문학과를 졸업하고 MBC 시청자 평가원, JTBC 시청자 위원으로 활동했다. 백상 예술대상, 대한민국 예술상 심사위원이며 SBS [열린TV 시청자 세상], KBS [연예가중계] 등 다양한 방송에 출연했다. 저서로 [숨은 마흔 찾기], [다큐처럼 일하고 예능처럼 신나게], [웃기는 레볼루션] 등이 있다.

202306호 (2023.05.17)
목차보기
  • 금주의 베스트 기사
이전 1 / 2 다음