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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정밀취재] 국민의힘 비선 논란 ‘5인회’ 실체 있나 

“김기현 리더십 취약하다는 방증… 내년 총선 공천 때 재점화할 것” 

최현목 월간중앙 기자
수면 아래로 가라앉았지만 ‘윤핵관’의 ‘신(新)핵관’ 견제용 등 논란 여전
“부산 의원 상당수 물갈이 대상 올라… 윤심(尹心) 공천설 지역에 파다”


▎김기현 국민의힘 대표가 6월 26일 오전 국회에서 열린 최고위원회의에 참석하고 있다. / 사진:연합뉴스
정치권력이 바뀔 때마다 벌어지는 ‘비선’ 논란은 정치권 이슈 가운데 가장 폭발력이 크다. 이는 한국의 정치사에서 여러 번 입증됐다. 새누리당(국민의힘 전신)은 ‘문고리 3인방’, ‘십상시’, ‘8선녀’, ‘7인회’ 등 박근혜 전 대통령과 관련한 비선 논란으로 한때 와해 직전까지 내몰렸다. 대통령은 탄핵됐고, 당은 찢어졌으며, 지지율은 사상 처음 10%대로 떨어졌다. 이처럼 박근혜 정부의 몰락을 가져오고 정권을 빼앗긴 과거의 기억이 있기에 최근 국민의힘에서 불쑥 튀어나온 ‘5인회’ 논란은 여권 입장에서는 트라우마일 수밖에 없다. 당 최고 의사결정기구인 최고위원회보다 당내에 더 큰 힘을 발휘하는 세력이 있다는 주장은 곧바로 사그라들었지만 물밑 논란은 여전하다. 과연 여권 내에 보이지 않는 실세들이 있는 것일까?

5인회 논란이 처음 제기된 것은 지난 5월 30일, 이용호 국민의힘 의원의 발언 때문이었다. 이 의원은 CBS 라디오 ‘박재홍의 한판승부’에 출연해 “김기현 대표 체제가 기대만 못하게 됐다”며 “최고위원회의가 (당내) 최고 의사결정기구인데 실제로 중요한 핵심 의제 결정은 다른 데서 하는 거 아니냐. 당내에서도 5인회가 있다(는 얘기가 있다)”고 주장했다. 국민의힘 내부는 발칵 뒤집혔다. 최고위보다 더 힘이 센 ‘비선 실세 조직’이 당 의사결정을 좌지우지한다는 뜻으로 해석될 수 있어서다. 파장은 온갖 추측을 낳았다. 5인회가 존재하는지, 있다면 그 구성원은 누구누구인지, 어떤 역할을 하는지 등이 주요 쟁점으로 떠올랐다.

여의도에서는 즉각 몇 가지 버전의 5인회 명단이 돌았다. 이철규 사무총장, 박대출 정책위원회 의장, 박성민 전략기획부총장, 배현진 사무부총장, 유상범·강민국 수석대변인, 박수영 여의도연구원 원장 등이 이름을 올렸다. ‘윤핵관(윤석열 대통령 핵심 관계자)’인 이철규 사무총장을 제외하면 모두 ‘신(新)핵관’으로 분류되는 인물들이다.

5인회로 거론된 인물들은 현재 국민의힘 주요 당직을 맡고 있다. 이 때문에 김 대표가 평일 오전 8시에 소집하는 비공개 사전전략회의를 5인회로 지목한 것 아니냐는 의견이 지배적이었다. 이 의원이 당직자, 실무자들 회의를 사조직으로 오해했다는 것이다. 하지만 일각에서는 김 대표를 패싱한 5인회가 존재할 수 있다며 의심의 눈초리를 거두지 않았다.

“용산 그립이 강하면 5인회, 7인회 계속 나올 것”


▎윤석열 국민의힘 대선 후보가 2021년 12월 7일 국회에서 국민의힘에 입당한 이용호 무소속 의원과 포옹하고 있다. / 사진:연합뉴스
당 지도부는 즉각 사태 수습에 나섰다. 김 대표는 “당대표, 사무총장, 정책위의장, 사무부총장, 수석대변인이 모여서 (당내 의제를) 논의하는 것이 당연하지, 의논하지 않는 게 당연한 것이냐”며 “말도 안 되고, 일고의 가치도 없는 얘기”라고 반박했다. 당사자로 지목된 이철규 사무총장 역시 “현재 우리 당에 이런 사조직이, 보이지 않는 손이 작용할 수 있는 여지가 없다”며 “그런 것을 용납할 수도 없다”고 일축했다. 이어 5인회 발언을 ‘괴담’이라고 하기도 했다. 비선 논란에 대한 부실한 대응이 쌓여 정권을 내준 경험이 있는 국민의힘은 해당 논란에 빠르고 단호하게 대처했다.

이에 이 의원은 사흘 만에 자신의 발언을 철회했다. 자신의 페이스북에 “제가 지난 5월 30일 방송에서 한 ‘5인회’ 발언을 취소한다”며 “최고위가 제 역할과 위상을 하루빨리 회복하기 바라는 마음에서 발언하다가 튀어나온 잘못된 어휘였다”고 해명했다. 6월 13일 CBS 라디오에 재차 출연해서는 “정말 힘들었다. 지옥을 경험한 느낌으로 오(5)자 트라우마가 생겼다”고 토로했다. 7월 14일 월간중앙이 이 의원에게 재차 확인했을 때도 “해명대로 실언이었다”고 밝혔다. 다만 ‘5인회는 직접 작명한 것인가’라는 질문에는 끝내 답하지 않았다.

지도부의 적극적인 해명과 이 의원의 발언 철회로 5인회 논란은 일단락된 것처럼 보인다. 하지만 당내에서는 불씨가 여전히 살아 있다는 목소리가 나온다. 5인회 실체에 대해서는 어느 정도 의문점이 해소됐지만, 그 발언이 나오게 된 배경과 내년 총선에 미칠 영향 때문에 예의주시하는 분위기가 감지된다. 특히 여권 사정에 밝은 국민의힘 바깥에서 목소리들이 나온다. 한때 박근혜 정부에서 ‘친박(친박근혜)’ 실세로 꼽혔던 조원진 우리공화당 대표는 “용산 대통령실이 강하면 5인회, 7인회, 10인회가 계속 나온다”고 말했다. 이준석 전 국민의힘 대표도 “현재 돌고 있는 5인회는 실체가 없는 명단”이라면서도 “명단을 짜라면 저는 다르게 짤 것 같다”고 다소 의미심장한 말을 하기도 했다.

국민의힘 안팎에서는 5인회 등 비선 의혹이 당 지도부의 의사결정 투명성에 의문을 제기한 논란인 만큼 내년 4월 총선에 가까워지면서 재점화할 수 있다는 관측이 나온다. 익명을 원한 ‘비윤계(윤핵관과 거리를 두고 있는 국민의힘 의원을 지칭)’ 인사는 월간중앙에 “5인회 실체는 없다”면서도 다음과 같이 말했다. “5인회 논란은 그 자체로 중요한 게 아니라 그러한 논란이 불거지고 설득력을 얻을 정도로 김기현 대표 리더십이 취약하다는 걸 의미한다. 당내에서는 김 대표를 흔들기 위해 PK(부산·경남)에 세력을 둔 ‘친윤계(윤핵관 등 친윤석열 의원을 지칭)’ 일부가 자극적으로 네이밍해 소문을 퍼트렸다는 말이 있다.”

“5인회 네이밍, 의도가 포함돼 있을 가능성 높아”


▎김기현(가운데) 국민의힘 대표, 박대출(오른쪽) 정책위의장, 이철규 사무총장이 6월 8일 청와대 영빈관에서 열린 제17차 비상경제민생회의 겸 반도체 국가전략회의에 앞서 대화하고 있다. / 사진:연합뉴스
윤핵관이 신핵관을 견제하는 과정에서 불거졌다는 해석도 덧붙였다. 윤 대통령이 아무런 정치적 자산 없이 대선판에 뛰어들었을 때부터 지지해 온 윤핵관은 현재 당을 좌지우지할 수 있는 가장 강력한 파워 그룹으로 인식되고 있다. 하지만 그에 따른 부담도 있다. 이슈에 대해 자유롭게 발언하기가 어렵기 때문에 정치인으로서 운신의 폭이 좁고, 견제도 많이 받는 것이 현실이다. 이 때문에 윤핵관 4인방으로 꼽히는 권성동·장제원·이철규·윤한홍 의원 가운데 이철규 사무총장을 제외하면 주요 당직을 맡고 있지 않다. 중앙 정치에 대해 민감한 발언을 최대한 줄이며, 사실상 백의종군에 가깝게 움직인다.

반면 신핵관은 현재 김 대표를 중심으로 당을 운영하며 실세로 자리 잡았다. 이러한 가운데 5인회 논란은 신핵관의 존재를 부각시키는 효과를 냈다. 신권력 집단으로 보일 여지가 생긴 것이다. 윤핵관이 내년 총선 공천의 전면에 나설 것인지, 2선으로 후퇴할 것인지를 두고 설왕설래가 이어지는 것처럼 신핵관을 두고도 견제의 목소리가 높아질 수 있다.

한 친윤계 관계자는 이를 두고 “우리 당은 과거 사조직 논란에 크게 데었기 때문에 비슷한 단어만 들어도 리액션이 크게 나올 수밖에 없다”며 “5인회와 같은 말을 만들어내면 대중에게 각인돼 몇 번이고 다시 이슈화될 수 있다. 아마 그 점을 노리고 5인회라는 말을 누군가 퍼트린 게 아닐까 싶다”고 했다.

신율 명지대 정치외교학과 교수는 “5인회는 사람들로 하여금 비선, 즉 정상적인 정책결정 과정이 아닌 다른 루트를 통해 결정된다는 걸 연상케 한다”며 “5인회의 구성이 어떻게 됐든, 사실 정상적인 의사결정 과정이라고 하더라도 그런 네이밍은 어떤 의도가 포함돼 있을 가능성이 높아 보인다”고 바라봤다.

그렇다면 5인회 등 비선 논란은 앞으로 또 어떤 이슈와 화학적 결합을 이뤄 폭발력을 가지게 될까? 앞서 친윤계 관계자는 “부산 물갈이론에 주목할 필요가 있다”고 귀띔했다. ‘부산 물갈이론’은 내년 총선에서 당이 부산 현역 국회의원을 대폭 교체할 것이라는 내용이다. 부산 물갈이론은 이 지역 현역 의원들 가운데 공천을 주기 힘든 의원들이 다수 포함돼 있다는 분석에 기인한다. 21대 총선 당시 국민의힘은 더불어민주당에 180석을 내주면서도 부산 지역에서는 전체 18석 중 15석을 차지하는 역대급 승리를 거뒀다. 15석 가운데 초선의원이 9명으로 절대다수를 차지한다. 당 입장에서는 중진 의원을 교체하는 것보다 초선 의원을 교체하는 것이 상대적으로 부담이 적을 수밖에 없다.

윤심(尹心) 공천설’에 벌써 부산 의원들 긴장


▎김기현 국민의힘 대표가 6월 13일 국회 본회의에서 박성민 의원과 대화하고 있다.
부산 민심도 물갈이론에 힘을 싣는 분위기다. 부산지역 정가에서는 “부산 유권자들이 국민의힘을 크게 밀어줬는데 4년 동안 보여준 것 없이 구설수만 잔뜩 남겼다”는 말을 어렵지 않게 들을 수 있다. 일례로 황보승희(중구영도구) 의원은 최근 ‘불법자금 의혹’, ‘사생활 논란’으로 국민의힘을 탈당하고 총선 불출마를 선언했다. 5선으로 부산 지역 최다선인 조경태(사하구을)·서병수(부산진구갑) 의원은 각각 당대표, 국회 부의장 선거에서 낙선하며 이렇다 할 활약을 보여주지 못했다. 부산 지역 핵심인 3선의 장제원(사상구) 의원은 ‘김장연대(김기현+장제원 연대)’로 여전히 실세임을 증명했지만, 윤핵관 프레임에서 좀처럼 벗어나지 못하는 모습이다. 부산에서 활동하고 있는 한 경제인은 “부산 지역에서는 장제원, 박수영(남구갑), 전봉민(수영구), 정동만(기장군) 의원 정도 빼고는 다 물갈이된다는 얘기가 있을 정도로 분위기가 흉흉하다”고 주장했다.

여기에 더해 윤 대통령 측근 인사들이 내년 총선판에 투입된다는 관측이 파다하다. 유승민 전 국민의힘 의원은 7월 13일 MBC 라디오 ‘신장식의 뉴스 하이킥’에 출연해 “(윤 대통령이) 내년 총선에 대해서 벌써 신경을 굉장히 쓰고 계신다는 이야기가 있다”며 “윤 대통령이 노골적으로 공천에 개입해 결국 ‘친윤’이 공천될 것”이라고 내다봤다. 이른바 ‘윤심(尹心) 공천설’이다. 특히 현재 윤 대통령을 돕는 측근 중에 부산 출신들이 유독 많다는 얘기가 돌면서 부산 물갈이론이 힘을 받고 있다.

3선 의원인 이진복 대통령비서실 정무수석을 비롯해 김윤일 미래정책비서관, 주진우 법률비서관, 조승환 해양수산부 장관, 박성훈 해양수산부 차관, 박성근 국무총리실 비서실장, 석동현 민주평화통일자문회의 사무처장, 정승윤 국민권익위원회 부위원장, 장예찬 국민의힘 청년최고위원 등이 후보군으로 거론된다. 이와 관련해 한 비윤계 측 인사는 5인회 논란과 연결해 다음과 같은 흥미로운 해석을 내놨다.

“부산 공천은 용산의 입김이 상당히 반영될 가능성이 높다. 지금 부산 현역 의원 가운데 공천에 대한 확신을 가진 사람은 아마 없을 것이다. 그런 차원에서 5인회 논란 등 일련의 사태는 PK지역 친윤계가 김 대표에게 ‘언제든 리더십을 흔들 수 있으니 조심하라’며 보내는 경고성 메시지로 읽힌다.”

- 최현목 월간중앙 기자 choi.hyunmok@joongang.co.kr

202308호 (2023.07.17)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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