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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전병서의 중국 경제 다시보기(5)] 한국 산업의 대중 수출 의존도 이대로 괜찮나 

중국발 ‘제2 요소수’ 사태 겪을 수도 

대중 수출 최저 수준인데도 ‘안미경미’?… 고래 싸움에 새우 등 터지는 격
세계 최대 스마트폰·자동차·전기차·반도체·배터리 中 시장, 놓쳐서는 곤란


▎한국의 대중 수출은 2018년이 피크아웃 시점이었다. 그로부터 5년이 지났지만, 대응책 없이 관망하다가 대중 무역 적자 규모가 확대됐다. 사진은 중국 저장성 저우산항 컨테이너 항구. / 사진:신경진 중앙일보 특파원
윤석열 정부 들어 ‘탈(脫)중국’이 필요하다는 주장이 넘쳐 난다. 하지만 한국의 1980년 이후 수출 역사를 보면 특정 국가에 대한 수출 의존도는 34~40%가 임계치였다. 한국의 대(對)중국 수출은 2018년이 이미 피크아웃 시점이었다. 그로부터 5년이 지났지만, 대응책 없이 관망하다가 대중 수출 감소와 무역 적자 규모 확대에 난리가 났다.

올해 4월 들어 한국의 대중 수출 의존도는 19.1%로 낮아졌다. 대미 의존도 18.5%와 0.6%p 차이밖에 없다. 홍콩을 포함해도 3.7%p 차이에 불과하다. 한국의 대중 수출 의존도는 대만의 25.2%, 호주 24.8%, 일본 19.3% 수준보다 낮다. 더 이상 낮출 의존도도 없다.

무역 측면에서 보면 한·중 관계는 20년 전으로 회귀했다. 한국의 대중 수출 비중이 19%로, 대미 수출 비율을 처음 넘어선 것이 2003년 7월이다. 그랬던 것이 올해 들어 다시 19%대로 낮아졌고, 대미 수출 비중과 거의 같은 수준이 됐다.

2000년 이후 지난 5월까지 한국의 대중 누적 무역 흑자액은 6754억 달러다. 같은 기간 대미 무역 흑자액은 3515억 달러고, 대일 무역 적자 규모는 5502억 달러다. 그런데, 중국에서 벌어들인 돈의 81%는 사실상 일본의 핵심 소재 부품을 구매하는 데 써버렸다. 한국은 2000년 이후 단 1개월도 대일 무역 흑자를 거둔 적이 없다. 대일 만성 무역 적자는 당연시하는 반면, 대중 무역 수지는 2022년 10월 이후 8개월 연속 적자 수준인데도 호들갑이다.

중국 ‘공급망 덫’과 미국 ‘제조 덫’에 걸린 한국

한국은 대중 수출 비중이 2002년 이후 최저 수준인데도 ‘안미경미(安美經美: 안보도 경제도 미국)’ 노선으로 갈아타는 분위기다. 반면 중동 국가들은 ‘안미경중(安美經中: 안보는 미국, 경제는 중국)’ 스탠스를 취하며 실리를 단단히 챙기고 있다. 특히 사우디아라비아는 미·중 패권 전쟁 속 사다리타기를 통해 양국에서 원하는 것을 얻어내는 전략을 쓰고 있다.

이런 와중에 중국이 사우디와 이란의 국교 정상화 중재자로 등장하자 발을 뺐던 미국이 긴장하기 시작했다. ‘중동으로 회귀(Pivot to Middle-East)’를 다시 시도하지만 중동 국가들은 시큰둥한 반응이다. 미국이 사우디와 이스라엘의 외교 관계 정상화를 위해 공을 들이고 있는 이유다.

하지만 쉽지 않은 상황이다. 제이크 설리번 미 백악관 국가안보보좌관, 윌리엄 번스 미 중앙정보국(CIA) 국장, 브렛 맥거크 백악관 중동정책 고문 등이 줄지어 사우디를 방문했다. 6월 6일 토니 블링컨 미 국무장관도 현지에서 사흘간 머물며 무함마드 빈살만 사우디 왕세자를 만났지만 신통한 결과를 얻진 못했다.

미국이 중국을 봉쇄하는 인도·태평양 전략도 중동국들이 중국 편에 서면 문제가 꼬이게 된다. 미국이 아시아에서 중국을 압박해도 중동이 중국과 손잡고 구멍을 내면 미국의 동맹 전략은 의미가 없어진다. 이를 노린 사우디는 의도적으로 중국을 환대하고 미국을 홀대하면서 실리를 챙기고 있다. 사우디는 첨단 무기 제공과 원전 건설 지원, 팔레스타인 문제 해결을 협상 전제로 내걸고 미국과 ‘밀당’ 중이다.

강대국들이 전쟁을 하면 고약한 것이 작은 나라들을 줄 세우기하는 것이다. 미·중 분쟁이 무역 전쟁에서 기술 전쟁으로 바뀌면서 미국은 대중 공급망 차단에 동맹국을 동원하고 있다. 인도·태평양경제프레임워크(IPEF)에 한국을 첫째로 가입시켰고, 한국에 반도체 동맹인 ‘칩4’에도 가입할 것을 요구하고 있다.

문제는 한국 반도체 중 63%가 중국으로 수출되고 있고, 삼성전자와 SK하이닉스의 중국 공장 생산 비중이 높다는 점이다. 미국은 반도체, 배터리, 의약품, 희토류 등 4대 품목 공급망에서 중국을 배제하는 동맹을 추진하고 있지만, 이들 품목에서 한국의 중국 소재 의존도는 반도체 40%, 배터리 93%, 의약품 53%, 희토류 52%다.

한국이 미국의 중국 공급망 봉쇄 동맹에 가입해도 중국이 한국에 별다른 반응을 보이지 않는 이유가 여기에 있다. 한국은 이미 중국 공급망의 덫에 걸려 있다. 탈중국화를 하든, 공급망 봉쇄를 하든 먼저 다치는 쪽은 중국이 아니라 한국이라는 판단을 하고 있기 때문이다.

미국 의회를 통과한 미국 반도체 지원법(Chips-Act), 인플레이션 감축법(Inflation Reduction Act of 2022)은 그 속을 들여다보면 미국의 반도체와 배터리 리쇼어링 정책이다. 돈과 외교력, 군사력을 모두 동원한 미국의 생산 내재화 정책인데, 한국의 최대 경쟁력인 반도체와 배터리에서 경쟁자는 이젠 중국이 아니라 미국이 될 상황이다. 지금 한국은 중국 ‘공급망의 덫’과 미국 ‘제조의 덫’에 걸렸다.

내내 싸우던 미·중은 최근 갑자기 새로운 합의 단계에 돌입했다. 미국이 5월 일본 히로시마에서 열린 주요 7개국(G7) 정상회의를 계기로 실익이 없는 탈중국(De-coupling)보다는 첨단산업만 규제하고 미국에 위협이 되지 않는 전통산업은 규제를 풀어주는 디리스킹(De-risking)으로 전략을 수정하면서다. 그간 미국의 중요 동맹으로서 의리를 지키는 차원에서 탈중국 움직임을 성실히 이행한 한국은 미국의 갑작스런 행태가 당황스러울 수밖에 없다.

한국에서는 대중 수출이 감소세로 돌아서고 무역 흑자가 적자로 돌아서면서 중국은 이제 끝났다는 시각이 넘쳐나고 있다. 그러나 중국은 주중대사의 입을 통해 한국의 무역 적자, 수출 감소는 한국의 탈중국 전략 때문이라고 주장한다.

중국은 그간 바이든 정부의 기술 봉쇄에 당황한 기색이 역력했고, 미국·일본·대만·한국으로 이어지는 미국동맹 중 가장 약한 고리인 한국에 화해의 제스처를 보냈다. 류진쑹 중국 외교부 아주사 사장이 지난 2월 송용삼 포스코차이나 대표법인장과 미팅했고, 4월에는 시진핑 주석이 광둥성 시찰 중 LG디스플레이 공장을 방문했다.

‘탈중국?’ 엄청난 고통과 시간 소요될 것


▎싱하이밍 주한 중국대사가 이재명 더불어민주당 대표와의 미팅에서 “중국의 패배에 베팅하지 말라”고 발언한 것을 계기로 한·중 관계는 새로운 경색 국면에 들어갔다. / 사진:김현동 중앙일보 기자
그러나 미국 방문을 앞둔 한국 정상이 중국 측에서 ‘핵심이익’으로 정의하는 대만 문제를 언급하면서 강한 반발을 불러일으켰고 한·중 관계는 악화했다. 윤석열 정부는 중국에 대한 실리외교보다는 미국의 가치외교에 무게중심을 두면서 문재인 정부와 큰 차이를 보였고, 여기에 중국도 다소 당황한 기색이지만 아직 크게 동요하는 것 같지는 않다.

이 와중에 싱하이밍 주한 중국대사가 이재명 더불어민주당 대표와의 미팅에서 “중국의 패배에 베팅하지 말라”고 발언한 것을 계기로 한·중 관계는 새로운 경색 국면에 들어갔다. 문제는 중국이 겉으로는 이 문제를 확대시키고 싶지 않다는 의도를 내비치고 있지만, 속으로는 한국에 대한 대응 수위를 조절하고 있는 것으로 보인다는 점이다.

한국의 대중 수출 비중이 크게 낮아진 지금 만약 한·중 관계가 더 악화한다면 중국은 그간의 한국에 대한 수입 통제가 아닌, 핵심 광물과 소재 수출 통제를 보복 수단으로 쓸 가능성이 커졌기 때문이다. 반도체와 배터리 등에 필요한 핵심 광물과 소재를 중국 수입에 의존하는 한국은 중국발 ‘제2 요소수’ 사태를 조심해야 한다.

세계 어느 나라도 모든 공급망을 다 가진 곳은 없다. 공급망은 소유하는 것이 아니라 관리하는 것이다. 과도한 중국 의존도에서 탈피하는 것은 바람직한 일이지만, 현실적 대안이 없는 품목은 방법이 없다. 한국은 지난 30년간 자원·돈·기술·상품·사람 등 수많은 부분에서 중국과 얽혀 있었다.

탈중국, 말은 쉽다. 하지만 중국의 자원·돈·기술·상품·사람과 모두 결별하려면 엄청난 고통과 시간이 소요된다. 이를 단계적으로 정교하게 정리하지 못한 채 탈중국하면 고통은 배가되고 실익은 잃어버리는 현실에 부딪힐 수 있다. 그래서 미국의 디리스킹 전략은 정작 미국이 아닌 한국의 대중 외교에 더 필요한 방편이다.

윤석열 정부 들어 ‘안미경중’의 수명이 다했다는 얘기가 난무하고 있다. 현재와 같은 대중 무역 추세라면 3~4년 뒤면 자연스레 경중이라는 단어가 자취를 감출 판이다. 문제는 ‘안미경미’가 고착화했을 때다. 한국 기업 경쟁력에 타격이 불가피하기 때문이다. 당장 향후 30년을 내다보면 중국이 한국에 재앙이 되는 시대가 올 수 있다. 제조업에서 중국은 한국의 경쟁자로, 금융업에서는 침략자로, 4차 산업혁명 관련 업종에서는 흡입자로 다가올 수 있음을 경계해야 한다.

자본주의 국가에서는 정책의 기억력이 4~5년이지만, 사회주의 체제 아래에서는 최하 10~15년이다. 4차 산업혁명과 공급망 전쟁에서는 지속적 투자와 정책의 일관성이 중요하다. 당장 4~5년 표심에 목숨 거는 자본주의 국가와 달리 사회주의 국가는 기술 개발이든 경제 정책이든 자본주의보다 멀리 보고 길게 간다.

기술은 시장을 못 이겨… 중국은 최대 시장


▎중국은 세계 최대 스마트폰·자동차· 전기차·반도체· 배터리·명품 소비 시장이다. 위기론에도 중국으로 돈이 몰리는 이유다. 사진은 4월 26일 중국 베이징의 거리 모습. / 사진:AP·연합뉴스
시장을 중국에 의존하는 반도체, 그리고 소재를 중국에 의존하는 전기차 배터리 때문에 소금장사와 우산장사 아들을 둔 어머니와 같은 마음이 한국의 현재 상황이다. 지금 같은 중간재 중심 대중 수출 산업 구조에서는 무역 흑자가 아닌 균형이 최선일 수밖에 없는 상황이다. 소재를 중국에 의존하는 배터리의 수출 호조가 대중 무역 흑자를 가로막는 주범이다.

이젠 탈중국이 아니라, 한국의 대중 수출 비중을 어떻게 하면 그나마 현재 수준으로 유지할 수 있을지가 관건일 수도 있다. 돈의 흐름을 보면 답이 나온다. 돈에게 물어보면 ‘탈중국’이 아닌 ‘진(進)중국’에 답이 있다. 2022년 중국의 외국인 주식 매수 자금과 기업들의 직접투자(FDI)가 사상 최고치를 경신했다. 이런 추세는 올해 들어서도 지속되고 있다. 한국의 대중 무역 문제가 중국 시장의 문제인지 한국 경쟁력의 문제인지를 정확히 인지하고 대응해야 올바른 답이 나온다.

시장은 항상 옳고 돈은 항상 정확하다. 전 세계 최대 자동차·스마트폰·전기차 시장이 중국이다. 서방 언론 뉴스에는 중국 위기론이 넘쳐나는데도 전 세계 투자자와 기업이 중국에 주식과 FDI로 돈을 묻고 있다. 이런데도 한국은 ‘안미경중’의 수명이 끝났다는 담론만 얘기할 뿐 액션 플랜이 없다.

투자는 가까운 시장에 하는 것이 진리다. 단순히 보조금을 많이 준다고, 인건비가 저렴하다고 섣불리 생산기지를 옮겼다간 머지않아 공장을 멈춰 세워야 하는 불상사가 생길 수 있다. 사회주의 국가 베트남을 예로 들어보자. 중국의 판박이다. 한국은 지난 30년간 중국에서 ‘인건비 따먹기’를 해왔다. 그러다가 인건비 경쟁력이 떨어지자 베트남으로 공장을 이전했다. 베트남은 중국과 같은 사회주의국가다. 이미 중국을 참고서로 삼아 공부를 끝냈을 것이다. 베트남 공장의 수명은 중국의 3분의 1도 못 될 가능성이 크다.

기술은 시장을 못 이긴다. 스마트폰·자동차·전기차·반도체·배터리·럭셔리 제품 최대 소비 시장이 지금 중국이다. 미국 경제지 포천이 선정한 전 세계 500대 기업이 모두 진출해 있는 중국에 대해 막연한 공포에 휩싸여 ‘탈중국’해야 한다는 얘기는 좀 신중할 필요가 있다. 중국 시장 점유율은 한번 감소하면 회복하기 어렵다. 그만큼 경쟁이 치열하다는 얘기다. 빈 공간은 누군가 반드시 바로 채우게 돼있다. 미래 산업인 중국 현지 스마트폰·전기차·VR·AR 시장에서 한국 브랜드가 사라져 간다. 한국의 작은 화장품 회사나 패션 업체가 중국에서 브랜드를 알릴 수 있는 때는 이미 지났다. 삼성전자의 스마트폰과 현대차·기아 전기차가 다시 중국 시장에 침투해 세계 수준의 기술력을 현지 소비자에게 각인시켜야 다른 한국 소비재 브랜드도 진출할 수 있다.

‘탈중국’ 대신 ‘진(進)중국’ 전략 필요한 때


▎세계 최대 전기차 시장인 중국을 놓치면 글로벌 경쟁에서도 밀릴 수밖에 없다. 6월 2일 중국 상하이 기가팩토리에서 일론 머스크 테슬라 CEO가 현지 직원들과 기념 촬영을 하고 있다. / 사진:머스크 CEO 트위터 캡처
중국 스마트폰 제조사들은 5nm 이하 첨단반도체 수급 문제로, 5세대 이동통신(5G) 시대에 상대적 어려움을 겪고 있다. 한국 기업에는 기회다. 중국 전기차 시장은 이미 미국의 7배로 커졌다. 세계 최대 시장을 놓치면 글로벌 경쟁에서도 밀릴 수밖에 없다. 전기차는 단순 이동수단이 아니다. 스마트폰과 비교할 수 없을 만큼 수많은 부품을 집약한 최첨단 전자제품이다. 중국 전기차 시장을 반도체와 전자 부품의 초대형 수요처로 바라봐야 한다는 얘기다. 중국 전기차 시장을 놓치는 것은 단순 차량 완제품 수출 차원이 아닌, 글로벌 최대 전자 부품 시장에서의 거대한 성장 기회를 잃는 것이나 다름없다.

미국이 만든 인플레이션감축법(IRA)에 한국은 뒤통수를 맞았지만, 배터리가 필요한 미국 전기차 업체와 미국으로 진출하고 싶은 중국 배터리 소재 업체들의 최대 투자 지역으로 한국이 급부상했다. 새만금과 포항이 새로운 배터리 소재 메카로 등장하면서 한국은 중국이 미국에 진출하는 우회기지로 뜨고 있다. 한국 역시 배터리 소재 공급망 차원에서 중국이 점점 더 중요해지고 있다.

한국은 중국을 과거처럼 단순 ‘중간재 수출 달러박스’로 여겨서는 곤란하다. 공급망 전쟁 시대를 맞아 ‘자원 조달과 소비재 판매 시장’으로 접근하는 것이 옳다. ‘인건비 따먹기’하던 시절의 ‘탈중국’, 경쟁력이 약화한 제품의 중국 내 비중을 줄이는 ‘감(減) 중국’, 신시장으로 부상하는 중국에 빨리 뛰어들어야 하는 상황에서의 ‘진(進)중국’을 제대로 구분해야 한다.

한국은 늑대(중국)는 가까이에 있고, 늑대와 앙숙인 독수리(미국)는 멀리 있는 상황이다. 제조업이라는 초원을 점령해버린 늑대를 독수리가 쫓아내기는 어렵다. 독수리는 한국에 늑대의 초원에서 발을 빼라고 강요하지만, 한번 빠져나오면 다시 늑대를 잡을 기회조차 사라진다.

중국이라는 늑대는 식량·에너지·반도체가 부족한 ‘배고픈 늑대’다. 중국은 세계 2위 경제대국이자 1위 제조대국이지만 석유의 71%, 콩의 85%, 반도체의 69%를 수입에 의존하는 수입대국이기도 하다. 식량은 미국과 중남미가, 에너지는 중동이, 반도체는 한국과 대만이 쥐고 있다. 한국은 가진 것을 레버리지해 더 큰 것을 얻어야 한다. 힘 빠진 하늘의 왕자 독수리가 조언하는 대로 그냥 따라갔다간 땅에서는 바보가 된다.

한국을 보더라도 1인당 소득 1만 달러 이상 시대에는 가성비(價性比)가 아닌 가심비(價心比)가 중요하다. 수입 제품은 값싸고 질 좋은 것이 아닌, 오리지널리티가 있는 브랜드 제품에 가격도 비싼 상품이 오히려 더 잘 팔렸다. 이젠 중국에서도 가성비만큼은 자국산이 더 좋기 때문에 무조건 중국 제품을 쓸 수밖에 없다. 어중간한 가격대의 한국산 가성비 제품은 중국 소비자의 구매 리스트에 더 이상 올라갈 수 없다.

의료서비스·관광은 아직도 한국의 경쟁력

이젠 품질은 기본이고 스토리와 브랜드를 넣어야 팔리는 시장이 중국이다. 한국 제품은 브랜드와 스토리텔링이 없다. 이미 중국인이 한참 전에 기억에서 지운 한류 또는 한한령 타령이나 하고 있지 현지인이 혹할 콘셉트와 스토리텔링이 있는 제품이 없다. 한국인이 쓰던 것, 먹던 것, 바르던 것을 그냥 관성대로 그냥 가져다 팔려고 하면 답이 없다. 이미 중국 소비자의 눈은 높아졌는데, 한국은 여전히 한한령 ‘보복 타령’에다가 ‘탈중국 타령’으로 시간을 허비하고 있다.

전 세계에 판매되는 벤츠의 36%를 사고 전 세계 명품의 35%를 사는 나라가 지금 중국이고, 전 세계 최대 스마트폰 사용국이 중국이다. 독일 자동차, 프랑스 화장품, 이탈리아 명품, 중국에서 만들었지만 브랜드는 미국 제품인 애플 스마트폰은 중국에서 좀처럼 불황을 겪지 않고 있다. 소비재는 곧 브랜드가 중요하다. 브랜드는 스토리텔링과 역사가 만든다. 미국은 빵·피자·햄버거·커피 같은 먹거리에도 스토리와 브랜드를 집어넣는다. 유럽은 가재도구와 일상용품에도 100년 이상의 히스토리를 집어넣어 판매한다. 이것이 미국과 일본, 유럽의 소비재 판매 전략이다.

한국은 한류와 한한령에 연연할 필요가 없다. 이미 드라마·K팝·영화 등에서 세계적 명성을 얻은 한국이다. 자국에 들어오지 말고 보지도 않겠다는 중국에 계속 문을 열어달라고 매달릴 필요가 없다. 그리고 중국인의 눈높이와 문화가 바뀌었는데, 계속 ‘대발이 아버지’나 ‘대장금’ 얘기나 하고 있으면 진짜 ‘라떼 바보’ 된다.

돈에는 꼬리표가 없다. 3교대 제조업으로 번 돈이나 서비스나 투자를 통해 번 돈이나 결과는 마찬가지다. 중국에서 경쟁력이 없어진 한국 제조업을 두고 가마솥에 빠진 입 큰 개구리처럼 계속 울고만 있으면 서서히 죽어가는 길밖에 없다. 대안은 서비스 산업에서의 아웃바운드가 아니라 인바운드 중국을 유치하는 것이다.

의료 서비스와 관광은 아직도 한국이 경쟁력이 있는 분야다. 코로나19 팬데믹 3년간 막혔던 수요를 잘 개발하고 유도하면 자동차와 스마트폰에 버금가는 서비스 분야에서 흑자를 낼 수 있다. 그러나 한·중 관계 악화는 서비스 분야에서 좀처럼 시장을 키울 수 없게 만든다. 과도한 반중 정서와 불필요한 정치권의 대중국 발언으로 양국 관계를 실익도 없는 긴장 관계로 몰아가는 것도 바람직하지 않다. 그리고 양국 간을 오가는 비자나 출입국 절차가 복잡한 것도 큰 장애요인이다.

한·중 관계는 철저한 이해 관계였지, 사상의 동지나 이념의 친구였던 적이 없다. 필요하면 교류하거나 교역했고 필요 없으면 버렸다. ‘제대로 된 의료·미용·성형 서비스에서 1인당 쏘나타 한 대 값의 부가가치가 나온다’는 말이 있다. 한국 의료 관광을 제대로 활성화하는 방안을 강구할 필요가 있다. 한국은 연간 1억6000만 명이 해외를 찾는 관광소비대국 중국을 옆에 두고 있다. 중국의 자동차·스마트폰 시장을 공략하기 어렵다면 타깃을 바꾸는 것도 방법이다. 매년 중국 해외 관광객의 5~10%만 유치하면 대중 무역 적자 문제는 간단히 해결할 수 있을 것이라는 얘기다.

- 전병서 중국경제금융연구소장 bsj7000@hanmail.net

202308호 (2023.07.17)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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