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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케다 다이사쿠 칼럼] 이케다 다이사쿠 SGI 회장의 이탈리아 팔레르모대학교 기념강연 

문명은 대화로부터 꽃 피운다 (中) 

문명 충돌의 위기를 평화로 바꾸는 원천은 대화와 신뢰
상대의 선성에 대한 ‘믿음’과 ‘인내’가 문명 공존의 원천


▎2016년 서울 구로구 한국SGI 이케다홀에서 열린 ‘법화경-평화와 공생의 메시지’전의 한 장면. 서로의 선성(善性)에 대한 믿음과 대화를 통해 평화와 공생을 이룰 수 있다는 메시지를 담았다.
빠르게 격동하는 세계에서 지금만큼 ‘대화’의 중요성이 요구되는 때는 없다. 이케다 다이사쿠(池田大作) SGI 회장은 2007년에 이탈리아 국립 팔레르모대학교 교육학부가 수여하는 명예박사학위를 받고, ‘문명의 십자로에서 인간문화의 흥륭을’이라는 제목으로 기념강연을 발표했다. 강연에서는 ‘대화’의 중요성을 언급했다. 이번 글은 3회에 걸친 연재 중 월간중앙 6월호에 이어 두 번째다. [편집자 주]

자칫하면 ‘차이’가 서로 충돌해 긴장감을 조성하기 쉬운 문명과 문명의 관계를, 평화적이고 창조적인 방향으로 전환하는 원동력은 도대체 무엇인가. 나는 그 열쇠가 바로 두 번째 주제인 ‘내발적 정신을 바탕으로 한 열린 대화’라고 생각합니다. 바꿔 말하면 서로의 공통점을 찾아내, 각각의 다양성을 살리는 ‘열린 정신의 대화’라고도 할 수 있습니다.

일찍이 철학자 스피노자는 평화를 ‘정신의 힘에서 생기는 덕(德)’이라고 규정했습니다. 확실히 ‘평화’를 외쳐도 거기에 인간의 적극적인 의지가 따르지 않으면, 타자(他者)와 형성된 관계는 불안정한 상황을 모면할 수 없습니다. 또 ‘소극적인 관용’의 범위를 탈피하지 않는 한, ‘차이=서로를 갈라놓는 것’이라는 발상에서 끝까지 벗어나지 못하고, ‘독선(獨善)’이라는 어둠 속을 계속 방황할지도 모릅니다.

그렇지 않고 다른 문명과 나누는 교류를 통해 자신을 계발하고 향상시키는 ‘성장의 양식’으로 삼는다, 그 기반을 이루는 것이 바로 어둠 속에서 서로의 발밑을 비추는 등불이 되고, 인간의 마음과 마음을 맺는 유대가 되는 ‘열린 대화’입니다.

여기서 21세기에 요구되는 ‘열린 대화’의 요건을 고찰함에 있어 시칠리아 역사에 찬연히 빛나는 ‘평화의 대화’, 팔레르모가 낳은 명군 페데리코 2세(프리드리히 2세, 1194~1250년)와 이슬람 군주 알 카밀(1180~1238년)이 이뤄낸 평화협정의 위업을 언급하겠습니다.

말할 나위도 없이, 어려서 시칠리아 왕에 등극한 페데리코 2세는 1215년 신성로마제국 황제에 즉위했습니다. 역사가 부르크하르트가 ‘왕좌에 있는 최초의 근대인’이라고 부르고, ‘경이로운 존재’라고 세계에서 찬탄받은 페데리코 2세는 그리스어와 아랍어를 비롯해 7개 언어에 능통했습니다. 또한 이슬람문화에도 조예가 깊었다고 합니다. 그리고 유럽에서 오랜 역사를 자랑하는 대학인 나폴리대학교를 설립하는 등 교육사업에도 힘을 쏟았습니다.

특필할 만한 점은 페데리코 2세가 예루살렘을 탈환하기 위해 군대를 이끌고 전쟁을 벌여야 하는 상황에서 그가 취한 행동입니다. 당시는 아이유브 왕조의 군주 알 카밀이 예루살렘을 지배하고, 서유럽의 공격을 물리쳤습니다. 유럽의 맹주가 된 페데리코 2세에게 예루살렘 탈환은 자신의 의지와 상관없는 지상 명령이 됐습니다.

그렇지만 어릴 때부터 이슬람문화에 친숙해 유능한 아랍인 신하를 많이 고용한 그에게는 이슬람 세계와 싸우고자 하는 뜻이 없었습니다. 그래서 그는 한 가지 방법을 고안해 1228년 예루살렘 공략의 근거지인 이스라엘 북부 도시 아코로 향했습니다.

페데리코 2세는 먼저 이슬람 군주인 알 카밀에게 깊은 경의를 담은 편지와 함께 사절을 보냈습니다. 알 카밀도 페데리코 2세의 영지(英智)와 인격에 깊은 감명을 받았던 것 같습니다. 그리고 5개월에 걸친 평화를 위한 끈질긴 교섭이 시작됐습니다.

놀랍게도 두 사람은 편지로 어쩔 수 없이 영토 교섭을 진행하는 한편, 철학과 수학 등 어려운 문제를 둘러싸고 학문에 관해 끊임없이 활발하게 대화했습니다. 그 과정에서 서로 신뢰 관계를 키우며, 자신의 지위가 위험한 상황임에도 불구하고 거듭 양보했습니다.

그리고 마침내 성지의 평화적 통치를 결정하는 역사적인 ‘자파 조약’을 체결했습니다. 두 사람은 한 번도 싸우지 않고 ‘평화’를 실현한 것입니다. 종교적 열광과 증오, 정치적·경제적 이해(利害)가 소용돌이치는, 성지를 둘러싼 투쟁의 역사 속에서 분명히 기적 같은 사건이었습니다.

어째서 이런 ‘평화협정’이 가능했는가? 당연히 여러 견해가 있겠지만, 그것은 “첫째, 두 사람이 끝까지 ‘평화적 해결’을 목적으로 했다는 점입니다. 둘째, 두 사람이 모두 ‘세계주의자’로서 자질을 갖추고 있었다는 점입니다. 셋째, 두 사람은 ‘적과 아군’이라는 적대 관계가 아니라, 한 인간으로서 대등한 위치에서 일관되게 서로 대했다는 점이었습니다”고 생각했습니다.

편지 형식이라도 정신의 대화를 거듭하는 속에서 어느덧 두 사람 사이에는 우정까지 싹튼 것입니다. 물론 현대와는 시대적 상황이 너무나도 다를지 모릅니다. 그러나 두 사람이 이뤄낸 위업은 시대를 초월해 인류가 배워야 할 여러 시사점이 많습니다.

20세기 비극을 초래한 선악의 분단화

20세기 역사를 굳이 한 마디로 총괄한다면, ‘적과 아군’이나 ‘선과 악’이라는 이원론(二元論)에 따른 분단화가 지구적 규모로 진행되는 가운데 전쟁과 파괴가 되풀이돼 존귀한 인명을 너무나도 많이 잃은 ‘대량 살상의 세기’였습니다. 홀로코스트와 제노사이드도, 냉전 후에 계속 발생한 민족 정화도 그렇습니다.

“인간은 한쪽 편으로 선(善)을 밀어내고, 다른 한쪽 편으로 불선(不善)을 밀어내기 위해 세기를 거듭해서 싸우며 노력하고 있다”라는 톨스토이의 경고에서 인류는 아직 벗어나지 못하고 있습니다. 모든 ‘선’은 자신들에게 가까이 끌어당기고, 모든 ‘악’은 다른 사람들에게 돌립니다. 그러한 삶의 방식에 몸을 맡기면, 메피스토펠레스에게 영혼을 판 파우스트처럼 어느 사이에 양심의 가책조차 느끼지 못할지도 모릅니다.

테러나 민족 분쟁으로 고통받는 21세기의 세계가 어려운 문제를 극복하면서, 외재적(外在的)인 ‘차이’에 의거한 저주를 타파하고, 평화와 공생의 지구사회를 구축하는 원천이 바로 ‘대화’이고 ‘커뮤니케이션’입니다. 앞에서 언급한 페데리코 2세와 알 카밀의 사례처럼, ‘적과 아군’의 차원을 초월한 인간적인 공감과 정신의 내발성에 뒷받침된 말은 상대의 마음 깊은 곳에 닿아 다 함께 평화의 방향으로 한 걸음 내딛게 하는 것이 아닐까요.

불법(佛法)에서는 이 점을 ‘선악불이(善惡不二)’라고 하며, 모든 인간의 생명에는 잠재적으로 ‘선악’의 양면이 갖춰져 있어, 연(緣)에 따라 선과 악으로 바뀐다고 가르칩니다. 따라서 나는 자타 함께 내적인 ‘악’이 밖으로 발현되는 것을 억누르고, ‘선’을 나타내도록 생명을 연마하는 작업이야말로 창조적인 ‘대화’의 진면목이라고 생각합니다. 현대에서 요구되는 ‘대화’ 방식도, ‘커뮤니케이션’의 요건도 파고들면 여기에 도달하지 않을까요.

대화의 바탕은 자기 반성과 상대에 대한 신뢰


▎13세기 6차 십자군 원정 중 이슬람의 맹주 술탄 알 카밀(왼쪽에서 두 번째)과 기독교 세계를 대표한 프리드리히 2세는 5개월에 걸친 진심 어린 대화 끝에 전쟁을 치르지 않고 예루살렘을 평화적으로 통치하는 조약을 맺었다.
이 문제를 깊이 파악하는 데 다음과 같은 석존의 말이 시사하는 바가 있습니다. “‘그들도 나와 같고, 나도 그들과 같다’고 생각해 자신의 몸과 비교해서(살아 있는 것을) 살해하면 안 된다. 또 타인으로 하여금 살생하게 만들어서는 안 된다.”

여기에는 중요한 두 가지 관점이 있습니다. 첫째는 지켜야 할 계율을 외재적인 규칙으로 규정하는 것이 아니라 ‘자신의 몸과 비교해서’라고 돼 있듯이, 동고(同苦)의 눈길을 바탕으로 한 내재적인 질문을 출발점으로 하고 있습니다. 둘째는 ‘타인으로 하여금 살생하게 만들어서는 안 된다’고 돼 있듯이, 단지 자신이 살생하지 않을 뿐만 아니라 다른 사람에게도 생명존엄 사상이 강하게 작용할 수 있도록 촉구하는 점입니다.

이 ‘내재적인 질문’과 ‘타자에 대한 작용’을 반복하는 작업, 다시 말해 끊임없이 자기를 반성하면서 상대의 선성(善性)을 믿고 호소하는 ‘대화’는, 자기를 통제하고 규율하는 힘을 확고히 단련하는 과정이 될 것입니다. 그런 의미에서 대화를 유지하는 양 바퀴란, 모든 인간이 갖춘 ‘선성에 대한 신뢰’와 그것을 끈기 있게 이끌어내는 ‘인내의 정신’에 있다고 해도 좋을 것입니다. 이 양 바퀴야말로 문명 간 대화, 그리고 종교 간 대화의 ‘화룡점정’입니다.

나는 대화의 진가는 대화로 얻을 수 있는 성과 이상으로, 인간의 정신과 정신이 촉발해 이루는 대화의 과정 그 자체에 있다고 강하게 느꼈습니다. 본디 종교의 사명은 ‘생명존엄’이라는 인류의 보편적인 지평(地平)에 인간 한 사람 한 사람의 마음을 돌아오게 하고, ‘평화 문화’를 구축하기 위한 에토스(도덕적 기풍)의 원천이 돼 그것을 확립하는 것입니다. ‘대화’가 ‘인간정신의 눈’을 뜨고 사람들을 좁은 편견과 증오의 저주에서 해방하는 것이라면, 평화적 공존의 삶의 자세를 사회에 정착시키고 시대의 확실한 사상으로 고양하는 것이 바로 ‘교육’입니다. (12월호에서 계속)

※ 이케다 다이사쿠 - 1928년 1월 2일 도쿄 출생. 창가학회인터내셔널 회장. 소카대학교·소카학원·민주음악협회·도쿄후지미술관·동양철학연구소 등 설립. 유엔평화상·대한민국 화관문화훈장 등 24개국 훈장, 세계계관시인 등 수상 다수. 전 세계 대학으로부터 408개의 명예박사·명예교수 칭호 수여. 토인비 박사와의 대담집 [21세기를 여는 대화]를 비롯한 저서 다수

202310호 (2023.09.17)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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