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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긴급기고] 한국 경제, 대중국 정책 어떻게 할 것인가? 

“이제 원자재 공급국으로서 중국을 중동처럼 다뤄야” 

미국 위주 탈중국 정책 일관하기엔 중국 경제 규모 워낙 커, 中은 성장 위주로 전환
반도체·배터리 소재 중국 의존은 여전… 韓, 공급망 관리 차원에서 정책 재설정해야


▎2023년 11월 미국 샌프란시스코에서 열린 APEC 정상회의에서 시진핑(오른쪽) 주석과 악수하는 윤석열 대통령. 이제 한국은 대중국 경제 정책 전면 재전환의 갈림길에 서 있다. / 사진:연합뉴스
2023년 한국의 무역 성적표가 나왔다. 다행히도 무역 적자는 2022년 478억 달러에서 113억 달러로 365억 달러나 줄어들었다. 주목할 점은 대(對)중국 무역이 30년 만에 179억 달러 적자로 전환한 반면, 대미(美) 무역 흑자는 280억 달러에서 435억 달러로 155억 달러나 늘어났다. 대미 수출 비중도 12월에는 19.6%로 대중 수출 비중 19%를 넘어섰다.

무역 적자가 줄어들어 다행이지만, 대중 적자 확대는 가벼이 볼 수 없는 상황이다. 일부 우리 언론에서는 “한국이 미국 주도의 신(新)통상질서에 편승해 대중 무역 축소, 대미 무역 확대를 성공적으로 이룬 것”이라고 표현하지만, 정말 한국이 탈(脫)중국에 편승해 산업구조나 무역구조를 성공적으로 변화시킨 것인지는 의문스럽다.

2023년 한국의 대표 수출 품목은 단연 반도체와 자동차다. 그다음이 기계, 석유제품, 화학, 철강 순이다. 2023년 상위 6대 품목의 수출을 보면 자동차 하나를 빼고는 모두 마이너스 성장이었다. 자동차의 선방이 그나마 무역적자를 줄이는 데 기여한 것이다. 반도체는 코로나19 특수가 끝나고 수요 감소와 설비 증설에 따른 공급과잉이 일어났다. 심각한 재고 과잉으로 가격이 하락하는 바람에 23%나 수출이 줄어들었다. 2023년 하반기 들어 반도체 업체들의 공급조절 노력과 세트 업체들의 재고 소진으로 반도체 가격은 4분기 들어 반등세를 보이고 있다. 2024년 전망을 낙관적으로 만들어 주는 요인이다.

반도체와 자동차의 세계 최대 시장은 중국

다만 여기서 문제는 반도체와 자동차의 세계 최대 시장이 미국이 아닌 중국이라는 사실이다. 이외에도 기계, 석유제품, 화학, 철강 모두 세계 최대 시장은 중국이다. 서방 언론에서는 ‘탈중국’을 노래 부르지만, 실제 미국부터 전통 제조업에서 탈중국이 어렵다. 그래서 ‘디커플링(decoupling)’이 아니라 ‘디리스킹(de-risking)’이라는 언어유희를 통해 슬쩍 방향을 바꾼 것이다.

한국이 2023년 유일하게 선방한 자동차시장을 봐도 전기차, 석유 자동차를 불문하고 세계 최대시장은 미국이 아닌 중국이다. 2022년 전기차는 미국이 99만 대, 중국이 689만 대를 소비해 중국이 미국의 7배 가까이 큰 시장이다. 자동차 구매는 중국이 2686만 대, 미국이 1429만 대로 중국이 미국보다 1257만 대나 더 많다.

반도체 소비시장 역시 중국이 세계 최대 시장이고 미국이 그다음이다. 그리고 중국은 노트북, 휴대폰, 디지털TV 전 세계 생산량의 60~90%를 소화하고 있다. 실제 주문자 상표 부착 생산(OEM) 제품에 장착돼 재수출되는 반도체까지 포함하면 세계시장의 50~60% 이상을 차지한다.

2023년 7월 중국 1위 부동산회사 비구이위안(컨트리가든)의 부도 이후 서방세계에서는 중국위기설이 쏟아져 나왔다. 성장엔진이 식었고 40년 성장은 끝났으며, 외국인의 대중국 해외직접투자(FDI)가 순유출로 전환했다는 것이 그 근거였다. 부동산위기로 금융위기가 코앞이고, 최고치를 갈아 치운 청년실업률, 마이너스로 돌아선 소비자물가지수(CPI) 등이 겹치며 디플레이션의 악순환에 빠질 것이란 ‘예언’이었다. 또 과도한 부채로 미국 무디스도 중국의 신용평가 등급을 내렸다는 것이 지난 5개월간 배회한 중국 위기설의 레퍼토리였지만, 12월 말까지 중국의 국가부도는 없었다.

중국이라는 독감 환자를 말기 암 환자로 보면 실수한다. 2023년 5.2% 성장은 중국으로 보면 역대 최저성장이지만 전 세계 주요국 중 인도 다음으로 높은 성장률이다. 중국의 경제성장이 끝났다는 것은 과장이다. 1%대 성장하는 한국이나 일본은 어떻게 된 것인가를 생각해 볼 필요가 있다. FDI 순유출은 위안화 절하에 따른 환차손과 미·중 금리 역전으로 14~15% 발생한 손실, 손실 축소를 위한 채권 손절매 때문이다. 중국에 공장을 짓는 그린필드 투자는 마이너스 10%에 그쳤다. 외자기업들이 중국공장을 다 팔고 떠난 것이 아니라는 의미다.

부동산 1위 기업 비구이위안 부도를 전체 부동산 업계의 위기로 보는 것도 오해다. 1위 회사는 부도났지만, 2~10위 기업은 멀쩡하다. 3년 내리 부동산 규제를 했던 중국 정부는 비구이위안 부도를 계기로 모든 규제를 다 풀었다. 이젠 부동산 대출금리를 내리고, 구매 우대 조치와 부동산기업에 자금지원까지 하면서 경기부양으로 정책 스탠스를 전환했다. 7월 이후 부동산발 금융위기설이 난무했지만 금융위기는 없었다. 부동산에 대출해준 대부분의 은행은 국가은행이라서 국가가 부도나지 않으면 은행이 부도 날 수 없기 때문이다.

서방국가와 달리 음식료의 CPI 비중이 30%에 달하는 중국 CPI의 특성으로 돼지와 채소 가격 급락이 CPI의 마이너스를 가져왔지만, 코어(Core) CPI는 여전히 플러스를 유지하고 있다. 디플레는 마이너스 CPI에 소득·소비·생산이 같이 마이너스가 나와야 진짜 디플레인데, 여전히 플러스다. 중국에 대한 무디스의 A1 등급은 일본, 사우디와 같은 등급이다.

중국의 ‘십년마일검(十年磨一劍)’을 주의해야


▎ 사진:연합뉴스
당나라 시인 가도(賈島)의 시 ‘검객(劍客)’에 십년마일검(十年磨一劍)이란 구절이 나온다. 미·중의 반도체 기술전쟁에서 중국은 “10년을 두고 칼 한 자루 간다”는 비장한 심정으로 국가의 모든 자원을 동원하는 거국 체제를 통해 ‘US-Tech Free’를 달성하려 한다. 어느덧 한국은 반도체 하나를 빼곤 중국보다 딱히 잘하는 것이 없는 나라가 됐지만, 한국은 중국위기론이나 탈중국론에만 몰입돼 중국의 진짜 실력을 보지 못하고 있다. 2002년 이후로 20년간 한국은 단 한 해도 중국보다 높은 성장을 한 적이 없는 데도 피크 차이나(Peak China)론에만 몰입돼 있다. 한국은 지금 중국 피크론이 아니라 한국 피크(Peak Korea)를 더 걱정해야 할 판이다.

한국은 ‘따거(大哥)’, ‘사장님(老板)’으로 부르던 중국이 이젠 냉대와 홀대를 넘어서 박대하는 상황에 분노한다. 이런 중국의 오만과 무례함이 누적되며 반중정서는 사상 최악으로 치닫고 있다. 그러나 한·중관계 30년이 아니라 더 긴 2000년의 역사를 돌아보면, 중국이 강해졌을 때 한국을 가만 내버려 둔 적이 없었다. 일본의 위안부보다 더 치욕적인, 사람을 공물로 바치는 공녀(贡女)의 역사가 통일신라 때부터 조선 시대까지 이어져 왔던 것을 잊어서는 안 된다.

한국은 사회주의 중국과 사상의 동지, 이념의 친구였던 적이 없다. 한·중관계는 철저한 이해관계다. 비즈니스 관계는 돈이 되면 친구(朋友)고 따거(大哥), 사장님(老板)이지만 돈이 안 되면 바로 남이다. 이제 한·중관계의 수명은 한국의 반도체산업 기술 수명과 같이 간다. 반도체에서 기술 격차를 얼마나 오래 유지하느냐가 한·중관계의 관건이다. 중국과의 관계에서 따거(大哥), 사장님(老板)으로 대접받으려면 반도체를 뛰어넘는 첨단기술 확보 외에는 방법이 없다.

반도체와 자동차는 한국의 양대 수출 주력 산업이고, 세계 최대 시장이 중국이기 때문에 중국을 고려하지 않은 정책과 전략은 결국 한국의 점유율 하락, 경쟁력 하락으로 이어진다. 그래서 무역 적자를 낸 2023년 한국 무역에서 유일하게 선방한 자동차와 대미 수출에 마냥 박수만 치고 있기는 어렵다.

기술은 시장을 못 이긴다. 공장은 보조금 많이 주는 데 짓는 것이 아니고 시장 가까운 데 짓는 것이 정석이다. 최대 시장 중국은 이제 우리가 만만하게 보던 옛날 시장이 아니고 전 세계 기업이 피 터지게 싸우는 전쟁터 같은 시장이다. 여기서 이기면 세계 1등이고 지면 퇴출이다.

미국 대선이 1년 앞으로 다가왔다. 한국의 자동차와 전기차 그리고 배터리산업이 지금은 잘나가고 있지만 만약 트럼프가 당선된다면 치명적인 독이 나올 것 같다. ‘AMERICA First’가 아니라 이젠 ‘AMERICA Only’로 가는 트럼프의 인플레이션감축법(IRA)은 폐기하고, 미국의 석유와 자동차산업 부활을 공약으로 내걸었기 때문이다. 보조금과 세금 혜택이 사라진 전기차와 배터리공장은 미국에서 코스트를 맞추기 어렵다.

미·중의 전쟁이 가속화되면 필연적으로 반도체와 전기차의 전쟁이 벌어질 판인데, 한국은 전기차와 반도체 소재의 대중 의존도가 40~80%나 된다. 미·중이 싸울 때 어부지리로 얻는 것이 아니라 배터리와 반도체가 소재무기화의 돌멩이에 맞아 한국이 코피 터지는 상황이 올 수 있는 것이다. 미국의 대선, 미·중의 전쟁 불똥이 기술에서 자원으로 튀면 한국의 자동차, 배터리, 전기차의 미래를 낙관할 수 없다는 점에서 2023년 자동차와 대미 흑자의 선방을 박수치기보다는 걱정이 앞선다.

성장우선으로 회귀한 중국서 얻을 것을 고민하자


▎중국 경제를 이끌어온 부동산 개발이 주춤하지만, 그럴수록 중국 정부는 경기 부양에 총력을 기울이고 있다. / 사진:로이터연합뉴스
2024년 경제 정책의 기조를 결정하는 2023년 경제 공작회의에서 중국 정부는 “선립후파(先立后破)”라는 용어를 등장시킨 대신, 지난 3년간 노래를 불렀던 “공부론(共富论)”과 부동산 투기억제의 구호였던 “집은 투기하는 곳이 아니다(房住不炒)”라는 단어는 사라졌다. 선립후파는 성장 우선으로 정책 기조를 바꾼다는 말이다. 2024년 중국의 대졸자는 1179만 명에 달할 전망이다. GDP 1%당 고용유발계수가 240만 수준인 중국은 2024년에는 5%대 성장을 하지 않으면 청년실업 문제가 심각해지기 때문에 2024년 경제성장 목표를 5% 이상으로 가지고 간다는 말이다. 공부론의 공공의 적이었던 부동산, 플랫폼 기업에 대해 규제가 아니라 부양으로 돌아선 것도 바로 이 때문이다.

경제가 큰 충격을 받으면 그 상흔의 후유증이 3년 ~3년 반을 간다는 코로나 3년 봉쇄의 상흔효과(Scarring Effect) 충격은 2023년 말 혹은 2024년 상반기까지로 추정된다. 2023년 중국은 위기와 기회의 비중이 7:3이었다면 봉쇄 3년의 후유증이 풀리는 2024년은 3:7로 역전할 것으로 전망된다. 한국이 중국위기론에만 몰입하고 탈중국 얘기만 하기보다는 중국의 “성장으로의 회귀”에 편승해 무엇을 얻을지를 고민할 필요가 있다

공급망 관리능력이 실력이고, 국력이다


▎2023년 12월 중국 정부가 우리나라의 요소 수출 통관을 보류하자 ‘제2의 요소수 대란’이 우려됐다. 중국의 자원무기화에 대비할 시기다.
중국위기론은 미국 정부나 언론의 레토릭이 아니라 미국 기업의 행태를 보고 판단해야 한다. 인건비 따라가는 기업은 삼류고, 시장 따라가는 기업이 일류다. 중국 내수가 문제고, 경제위기라지만 미국의 테슬라와 애플이 중국에서 공장을 뺀다는 이야기는 없다. 맥도날드·스타벅스·월마트가 중국에서 철수한다는 이야기도, GM·포드가 중국에서 자동차공장을 뺀다는 이야기도 없다. 엔비디아, 인텔, AMD, 마이크론 같은 미국 반도체 회사들이 중국에 대한 반도체 추가제재를 반대하고 나선 것도 시장 때문이다.

지금 중국은 전 세계 최대의 반도체, 배터리, 자동차, 전기차, 휴대폰, 노트북, 가전제품 시장이지만 한국에는 반도체 하나를 빼면 모두 그림의 떡이다. 중국의 경쟁력에 밀려 중국에 팔 게 없기 때문이다. 중국에서 모조리 털리고 나왔다는 것이 한국에 퍼진 일반적 정서지만 1992년 수교 이후 2022년까지 30년간 한국의 대중 흑자는 7065억 달러에 달했고, 같은 기간 대일 적자는 6269억 달러였다.

중국에서 벌어서 일본의 원자재를 사는 데 번 돈의 89%를 썼다는 얘기다. 한국의 대중 적자는 30년 흑자에서 2023년 한 해 적자를 낸 것인데, 한국은 적자를 흑자로 바꿀 전략이나 상품개발 없이 탈중국만 외치고 있으면 답이 없다. 돈에는 꼬리표가 없다. 꼭 중국에서 흑자를 못 낸다고 난리 칠 일은 아니지만 이젠 대중국 전략을 바꾸어야 한다. 반도체와 배터리, 전기차가 한국의 대미 무역흑자의 주력이다. 중국에서 원자재를 수입해서 미국과 유럽에 수출해 흑자를 내면 된다. 그런데 반도체와 배터리 소재의 중국의존도가 40~80%를 넘어선다. 중국은 반도체에는 희토류로, 전기차에는 영구자석으로, 배터리 규제에는 흑연 수출통제로 대응하는 전략을 쓰고 있다. 중국의 자원 무기화의 최대 피해자가 한국이 될 수 있다.

어떤 나라도 모든 공급망을 가진 나라는 없다. 공급망은 소유하는 것이 아니라 관리하는 것이다. 공급망 관리능력이 실력이고, 국력이다. 중동의 석유가 수입이 안 되면 한국 산업은 올스톱이다. 마찬가지로 지금 한국의 주력 수출품목인 반도체와 배터리는 ‘중국 원자재의 덫’에 걸렸다. 이젠 한국은 시장으로서 중국이 아니라, 원자재 공급국으로서 중국을 중동처럼 잘 관리해야 한다.

- 전병서 중국경제금융연구소장 bsj7000@hanmail.net

202402호 (2024.01.17)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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