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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재계화제] 사법리스크 해소한 이재용 삼성전자 회장 

초격차 기술·미래 먹거리 확보 속도 낸다 

최은석 월간중앙 기자
말레이시아 사업장 찾아 “확고한 경쟁력 확보하자” 격려
올해도 ‘기술 경영’에 방점… 6G 기술 주도권 확보 사활


▎이재용 삼성전자 회장이 법원 무죄 판결 이튿날인 2월 6일 출국을 위해 서울 강서구 서울김포비즈니스항공센터에 들어서고 있다. / 사진:연합뉴스
이재용 삼성전자 회장이 사법 리스크에서 해방됐다. 법원은 최근 ‘삼성물산·제일모직 부당 합병과 삼성바이오로직스 분식회계 의혹’에 대해 모두 무죄 판결을 내렸다. 2020년 9월 기소 이후 3년 5개월 만의 결론이다. 법원의 이번 판단으로 그간 삼성 경영에 걸림돌이 됐던 사법 리스크 상당 부분이 해소됐다. 검찰이 법원의 1심 판단에 불복해 항소했지만, 대세는 이미 기울었다는 관측이 지배적이다. 이에 따라 이 회장의 현장 경영 행보와 ‘초격차 기술’ 확보 전략, 미래 먹거리 발굴 작업 등이 한층 탄력을 받게 됐다. 김동원 KB증권 애널리스트는 “그간 삼성전자를 포함한 삼성 주식 전반의 낮은 기업 가치는 이 회장 사법 리스크에 따른 전략적 의사 결정 지연과 정책 및 규제 리스크 확대 등이 해외 대형 펀드의 투자 조건에 부합하지 못한 측면이 컸다”며 “재판이 마무리 단계에 진입하면서 주주 환원 정책 강화, 인수·합병(M&A), 신규 투자 확대 등의 신속한 의사 결정이 가능해질 것”이라고 바라봤다.

“단기 실적에 연연하지 말고 과감한 도전” 주문


▎이재용(사진 가운데) 삼성전자 회장은 기업 생존의 핵심인 기술 인재 양성에 심혈을 기울이고 있다. 이 회장이 1월 16일 삼성전자 서초사옥에서 명장 간담회를 가진 뒤 참석자들과 기념촬영을 하고 있다. / 사진:삼성전자
이 회장은 법원의 1심 판결 직후인 지난 설 연휴 기간 삼성SDI 해외 사업장을 찾아 임직원을 격려했다. 올해는 무죄 판결 덕분에 모처럼 홀가분한 마음으로 현장 경영 행보를 이어갔을 것으로 보인다. 2월 6일 오후 출국을 위해 서울 강서구 서울김포비즈니스항공센터에 들어선 이 회장의 표정은 한결 밝아 보였다.

이 회장은 올해 첫 해외 출장지로 말레이시아 스름반(Seremban)을 택했다. 2월 9일 스름반에 자리한 삼성SDI 배터리 1공장에 도착한 그는 현지 임직원들과 만난 자리에서 “어렵다고 위축되지 말고 담대하게 투자해야 한다”고 주문했다. 이어 “단기 실적에 일희일비하지 말고, 과감한 도전으로 변화를 주도해야 한다”며 “새로운 가치를 만들고 확고한 경쟁력을 확보하자”고 강조했다.

이 회장은 타지에서 가족과 떨어져 근무하는 임직원을 별도로 따뜻하게 챙기기도 했다. 말레이시아 1공장을 가동하고 있는 삼성SDI는 날로 증가하는 원형 배터리 수요에 대응하기 위해 2022년부터 2공장을 건설하고 있다. 1조7000억원을 투자해 건설하는 2공장은 내년 완공될 예정이다. 1991년 설립한 스름반 공장은 삼성SDI의 최초 해외 법인이다. 초기에는 브라운관을 제조하다가 2012년부터 배터리를 생산하기 시작했다.

삼성SDI는 지난해 매출 22조7000억원, 영업이익 1조6000억원의 사상 최대 실적을 거뒀지만 올해 들어선 전동 공구와 전기차 글로벌 시장 성장 둔화의 영향을 받고 있다. 삼성SDI는 이 회장의 주문에 발맞춰 단기적 시장 정체 상황에도 미래를 위한 투자를 차질 없이 진행한다는 계획이다. 또한 차별화한 기술 경쟁력을 확보해 지속 성장 기반을 마련한다는 목표다.

이 회장은 이튿날 말레이시아 최대 도시인 수도 쿠알라룸푸르에서 현지 시장 반응을 직접 살피기도 했다. 말레이시아는 삼성 스마트폰 출하량 1위 국가다. 이 회장은 이날 삼성전자와 말레이시아 유통기업 ‘센헹(Senheng)’이 2022년 함께 만든 동남아 최대 매장을 찾아 전략 IT 제품에 대한 소비자들의 반응을 체크했다.

이 회장의 해외 사업장 방문은 매년 명절 때마다 이어져 왔다. 지난해 추석에는 이스라엘 삼성전자 R&D센터와 이집트에 자리한 삼성전자 TV·태블릿 공장을 찾았고, 사우디아라비아에 들러 삼성물산의 네옴시티 지하 터널 공사 현장을 점검했다. 2022년 추석에는 멕시코에 위치한 삼성전자 가전 공장과 삼성엔지니어링 정유 공장 건설 현장을 둘러봤고, 파나마의 삼성전자 판매법인 현장을 찾기도 했다.

이 회장은 ‘기술 경영’에도 더욱 속도를 내고 있다. 이 회장은 2022년 6월, 12일간의 유럽 출장 뒤 소감을 묻는 기자들에게 “첫 번째도 기술, 두 번째도 기술, 세 번째도 기술”이라며 “저희가 할 일은 좋은 사람 모셔오고, 유연한 문화를 만드는 것”이라고 강조한 바 있다. 이 회장은 그 뒤로 기술 경영 방침을 착실히 이행하고 있다. 작년 첫 경영 행보로 삼성디스플레이 아산캠퍼스를 찾아 차세대 디스플레이 기술 개발 로드맵을 논의한 데 이어 올해엔 새해 시작과 동시에 삼성의 ‘글로벌 R&D 허브’로 불리는 삼성리서치로 달려갔다.

‘글로벌 R&D 허브’ 삼성리서치 찾아 격려


▎이 회장은 올해 첫 경영 행보로 1월 10일 서울 서초구 우면동 삼성리서치를 찾아 연구원들을 격려했다. / 사진:삼성전자
1월 10일 서울 서초구 우면동 소재 삼성리서치를 찾은 이 회장은 6G 통신 기술 개발 현황과 국제 기술 표준화 전망, 6G 및 5G 어드밴스드 등 차세대 통신 기술 트렌드를 살폈다. 삼성리서치는 차세대 네트워크·통신 기술·인공지능(AI)·로봇·헬스케어 등 최첨단 미래 기술을 연구하는 조직이다. 이 회장은 삼성리서치 차세대통신연구센터 및 삼성전자 네트워크사업부 연구원들과 만난 자리에서 “새로운 기술 확보에 우리의 생존과 미래가 달려 있다”며 “어려울 때일수록 선제적 R&D와 흔들림 없는 투자가 중요하다”고 했다. 이어 “더 과감하게, 더 치열하게 도전해 달라”고 주문했다. 선제적 투자와 연구 개발 확대를 통한 초격차 기술 선점과 ‘미래 준비’를 약속하고 당부했다.

이 회장이 올해 첫 경영 행보로 차세대 6G 통신 기술 개발 현장을 찾은 데는 6G 기술 선점 여부가 삼성의 미래는 물론 대한민국의 국가 경쟁력을 좌우할 수 있는 핵심 포인트이기 때문이다. 6G는 AI를 내재화해 더 높은 에너지 효율과 더 넓은 네트워크 범위를 제공하고, AI·자율주행차·로봇·확장현실(XR) 등 첨단 기술을 일상생활에서 구현할 수 있도록 하는 기술로 꼽힌다. 미국, 일본, 유럽 등 세계 각국은 6G 기술 주도권 확보를 국가적 프로젝트로 추진하고 있다. 우리 정부도 지난해 말 6G 기술을 12대 국가 전략 기술로 선정하고 본격 육성에 나섰다. 삼성리서치 관계자는 “6G는 5G가 인류의 삶과 산업의 변화에 끼친 영향보다 훨씬 더 큰 변화를 가져올 것으로 예상되는 분야”라며 “내년 글로벌 표준화 절차를 시작해 2030년을 전후로 본격 상용화할 것으로 예상된다”고 설명했다. 삼성전자는 세계 최초로 5G 통신기술을 상용화한 경험과 역량을 바탕으로 6G 분야에서도 ‘초격차 리더십’을 이어간다는 목표다.

삼성전자는 5G에서의 경험과 함께 스마트폰·네트워크 장비·반도체 칩을 아우르는 폭넓은 기술 포트폴리오를 살려 ▷AI 기술 ▷고성능 통신칩 ▷통신 SW 등을 폭넓게 발전시키는 등 6G 통신 분야에서도 리더십을 강화해 나간다는 전략이다.

이 회장은 이와 관련해 6G 국내 산업 생태계 강화에도 집중할 계획이다. 삼성은 2022년 6G 분야의 세계적 전문가들과 학계·업계 관계자들이 미래기술을 논의하고 공유할 수 있도록 하기 위해 ‘삼성 6G 포럼’을 개최했다. 삼성은 포럼에서 ▷초지능화 ▷초광대역 ▷초저지연 ▷초공간적 특성을 갖는 6G 기술을 통해 모든 것이 연결되는 새로운 차원의 초연결 경험을 제공하겠다는 목표를 밝힌 바 있다. 삼성은 2019년 삼성리서치에 차세대통신연구센터를 설립해 6G 글로벌 표준화와 기술 주도권 확보에 나섰다. 2020년에는 6G 백서를 통해 ‘6G 비전’을 제시하기도 했다.

“기술 인재, 포기할 수 없는 핵심 경쟁력”

이 회장은 최근 삼성의 핵심 기술 인재인 ‘명장’들과 만나 인재 육성의 중요성을 강조해 눈길을 끌기도 했다. 이 회장은 1월 16일 삼성전자 서초사옥에서 ‘2024 삼성 명장’ 15명과 간담회를 갖고 기술 경영 행보를 이어갔다. 이 회장은 이날 간담회에서 “기술인재는 포기할 수 없는 핵심 경쟁력”이라며 “삼성의 미래는 기술 인재의 확보와 육성에 달려 있는 만큼, 기술 인재가 마음껏 도전하고 혁신할 수 있는 환경을 만들겠다”고 약속했다.

삼성 명장은 제조 기술·품질 등 각 분야에서 두각을 보인 사내 최고 기술 전문가를 뜻한다. 삼성은 높은 숙련도와 축적된 경험, 전문성이 중요한 ▷제조 기술 ▷금형 ▷품질 ▷설비 ▷인프라 등의 분야에서 20년 이상 근무하면서 제품 경쟁력 향상과 경영 실적에 기여한 최고 수준의 기술 전문가를 명장으로 선정하고 있다. 삼성전자에 이어 삼성디스플레이, 삼성전기, 삼성SDI가 제도를 운영 중이다. 명장들은 최고 전문가로 인정받은 것에 대한 자긍심을 바탕으로 후배 양성에 적극적으로 나서 직원들 사이에서 ‘롤모델’로 인식되고 있다.

삼성은 학력, 성별, 국적 등 출신과 무관하게 기술 인재들에게 동등한 기회를 부여해 능력에 따라 핵심 인재로 중용하는 곳으로 유명하다. 고졸 사원으로 입사해 삼성 명장에 오른 직원도 상당수다. 삼성은 1957년 국내 최초로 공채 제도를 도입했다. 1995년부터는 입사 자격 요건에서 학력을 완전히 제외하는 등 능력 위주 채용 문화를 확산시켜 왔다.

삼성은 이 회장의 ‘기술 중시 경영철학’에 따라 미래 기술 인재 양성과 저변 확대를 위한 노력도 지속하고 있다. 삼성전자는 청년 기술 인재 육성과 세계산업 발전을 지원하기 위해 삼성기능올릭픽 사무국을 설치하고 2007년부터 국내외 기능경기대회를 후원 중이다. 2007년 일본 시즈오카 대회부터 국제기능올림픽을 8회 연속 후원했다. 올해 프랑스 리옹에서 열리는 대회도 후원할 예정이다. 삼성은 국제기능올림픽에 출전하는 대한민국 국가대표팀의 전지훈련비도 지원한다. 국내에서는 2006년 고용노동부와 ‘기능장려협약’을 체결하고, 2007년부터 17년 연속 전국기능경기대회를 후원하고 있다.

삼성전자를 비롯해 삼성디스플레이, 삼성전기, 삼성SDI, 삼성물산, 삼성바이오로직스, 삼성중공업, 에스원 등 삼성 관계사는 전국기능경기대회 출신 기술 인재를 매년 100여 명씩 특별 채용하고 있다. 삼성 관계사들이 채용한 전국기능경기대회 출신 기술 인재만 1500여 명에 달한다.

이 회장은 2022년 10월 ‘국제기능올림픽 특별대회 고양’ 폐막식에 참석해 대한민국 선수단을 격려하고 수상자에게 직접 메달을 수여하기도 했다. 이 회장은 선수단에게 “젊은 인재들이 기술 혁명 시대의 챔피언이고 미래 기술 한국의 주역”이라며 “대한민국이 이만큼 발전할 수 있었던 것도 젊은 기술 인재 덕분”이라고 강조했다.

- 최은석 월간중앙 기자 choi.eunseok@joongang.co.kr

202403호 (2024.02.17)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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