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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긴급점검] 비트코인 현물 ETF 승인에 담긴 의미와 전망 

15년 만에 제도권 진입… ‘디지털 골드’ 미래는 ‘맑음’ 

박상혁 디지털애셋 기자
美 증권거래위 비트코인 현물 ETF 승인 첫 주에 1조원 넘는 투자금 유입
4월에는 비트코인 반감기 예정… 역대 반감기 거치며 큰 폭 가격 상승해


▎1월 9일 미국 증권거래위원회(SEC)가 비트코인 현물 상장지수펀드(ETF)를 승인할 거란 기대감에 국내 비트코인 시세가 6200만원을 넘겼다. 이틀 뒤 SEC는 비트코인 ETF를 승인했다. / 사진:연합뉴스
"비트코인을 실행합니다.”

2009년 1월 11일 할 피니는 X(전 트위터)에 이렇게 적었다. 그는 비트코인의 창시자 나카모토 사토시와 함께 최초로 비트코인 소프트웨어를 다운로드하고 실행한 인물로 알려져 있다. 그는 2100만 개의 비트코인이 언젠가 개당 1000만 달러(약 131억5000만원)의 가치를 가질 수 있다고 믿은 사람이었다.

그가 비트코인을 처음 실행한 지 정확히 15년 만인 2024년 1월 11일(미 동부시각 2024년 1월 10일) 미국 증권거래위원회(SEC)가 비트코인 현물 상장지수펀드(ETF)를 승인했다. 가상자산 시장 참여자들은 미국 비트코인 현물 ETF 승인으로 그의 꿈에 한 발짝 다가설 수 있는 첫 발판이 마련됐다고 보고 있다.

2009년 첫 비트코인이 발행된 이래로 현물 ETF 승인은 암호화폐 진영의 숙원이었다. 현물 ETF 승인이 코인의 제도권 진입 관문으로 여겨져서다. 현물 ETF가 승인되면 기존 자산시장의 인프라로 개인과 기관이 이 코인을 편리하게 투자할 수 있는 환경이 마련될 거라고 기대했다. 2010년대 초까지도 개인투자자와 기관투자자 모두 비트코인을 직접 투자하기가 쉽지 않았다. 초창기 비트코인은 주로 개인 간(P2P) 거래로 매매가 이뤄졌기 때문에 암호화폐와 블록체인에 관한 지식과 이해가 없으면 진입하기가 어려웠다. 원활한 투자와 안정성을 중요하게 보는 기관투자자들은 당연히 이 코인에 투자할 수 없었다.

2010년대 중반에야 비로소 마운트곡스와 같은 초기 가상자산 거래소가 등장하지만, 지금의 거래소와 비교하면 시스템이 불편했고 보안에 취약했다. 실제로 마운트곡스는 2014년 해킹으로 고객 비트코인 약 85만 개(2023년 12월 31일 기준 약 48조원)를 탈취당하고 같은 해 파산했다.

비트코인 현물 ETF에 자산시장이 주목한 이유

이런 상황에서 비트코인을 일찍 접한 인물들은 현물 ETF의 중요성을 알아채고 ETF 승인을 암호화폐계의 중요 과제로 삼았다. 가장 먼저 비트코인 현물 ETF를 신청한 인물은 페이스북의 아이디어를 최초로 떠올렸다고 알려진 윙클보스 형제였다. 이들은 2013년에 ETF 신청서를 SEC에 제출했다. 이후 반에크, 비트와이즈 등 여러 자산운용사가 SEC에 비트코인 현물 ETF를 신청했지만, 그때마다 SEC는 비트코인의 가격 변동성으로 인한 시장조작 위험성 등을 이유로 이 ETF를 거절했다.

장기간 이어진 거절 기조는 2021년 SEC가 프로셰어즈의 비트코인 선물 ETF ‘프로셰어즈 비트코인 스트래티지(BITO)’를 승인하면서 변화의 조짐을 보였다. 비록 현물 ETF는 아니지만 비트코인이 제도권 자산시장에 데뷔하면서 현물 ETF 승인도 불가능한 일은 아니라는 인식이 시장에 확산됐다. 그러나 이후 약 2년간 SEC는 자산운용사들이 신청한 비트코인 현물 ETF를 번번이 돌려보냈다. 선물 ETF와 달리 현물 ETF는 현물 비트코인을 추종하는 상품이기 때문에 자산운용사들이 이 코인을 잘 못 관리했다가 투자자들이 피해를 볼 수 있고 현물 거래량 등이 충분하지 않아 가격 변동의 위험이 있다고 봤기 때문이다.

하지만 2023년 8월 가상자산운용사 그레이스케일이 자사 비트코인 신탁상품을 현물 ETF로 전환하는 건에 대해 SEC를 상대로 낸 소송에서 승소하면서 상황이 급변했다. 앞서 그레이스케일은 기관투자자를 대상으로 자사 비트코인 신탁상품을 판매했는데, 이 서비스는 현물 비트코인으로 환매가 불가능했기 때문에 현물 ETF 전환을 신청했다. 그러나 이를 SEC가 거절하자 소송을 진행한 것이다. 소송에서 법원은 SEC의 거절 사유가 명확하지 않기 때문에 이 신청서를 재검토해야 한다고 결정했다.

이 결정에 시장 참여자들은 비트코인 현물 ETF 승인 가능성이 커졌다고 보고 서둘러 투자에 나서기 시작했다. 실제로 비트코인은 2023년 9월 1일 2만7000달러(약 3550만원) 선에서 이번 현물 ETF 승인 직전이었던 2024년 1월 1일까지 4개월 만에 약 80% 급등했다.

결국 시장의 예상대로 SEC는 2024년 1월 11일 자산운용사들이 신청한 11개 비트코인 현물 ETF 상품을 일괄 승인했다. 개리 겐슬러 SEC 위원장은 1월 11일 성명서에서 “우리는 2023년 3월까지 비트코인 현물 ETF에 대한 20개 이상의 19b-4(거래규칙변경서) 승인을 거절하거나 반려했지만 그레이스케일과의 소송에서 패소한 후 상황이 변했다”며 “법원은 우리가 그레이스케일 비트코인 현물 ETF 전환 신청서를 거절한 사유가 명확하지 않다고 봤는데 이러한 상황에서 지속가능한 길은 이 ETF 상장과 거래를 승인하는 것이라고 생각했다”고 밝혔다.

투자자들은 환호했다. 일부에선 2004년 11월 금 현물 EFT가 등장한 이래 20년 만에 벌어진 역사적 승인 사례로 꼽았다. 앞서 비트코인 선물 ETF가 제도권에 안착하긴 했지만, 선물 ETF는 비트코인 선물가격을 추종하기 때문에 자산운용사들이 비트코인 현물을 살 필요는 없었다. 하지만, 현물 ETF는 수요가 증가하는 만큼의 현물을 보관해야 하기 때문에 ETF에 자금이 유입될수록 비트코인 현물 매수세가 거세질 수밖에 없다.

또 비트코인 현물 ETF 승인은 기관투자자가 규제를 준수하면서 이 코인에 자유롭게 투자할 수 있는 창구가 열렸다는 것을 의미한다. 이전부터 그레이스케일의 비트코인 신탁상품이나 시카고상품거래소(CME)의 비트코인 선물을 통해 기관투자자가 비트코인에 간접 투자할 길은 있었지만, 이 상품들은 환매가 불가능하거나 현물 기반이 아니라는 명백한 한계가 있었다. 그러나 비트코인 현물 ETF는 이런 문제를 해결할 수 있기에 월스트리트 기관투자자들의 거대한 자금이 비트코인에 유입되는 효과를 기대할 수 있게 됐다. 이 때문에 비트코인 현물 ETF 승인 가능성이 커졌다는 이유만으로도 투자자들이 적극적으로 태도를 돌변한 것이다.

거래 첫 주 ‘1조800억’ 순유입, GBTC 유출은 변수


소문난 잔치에 먹을 게 없다는 말과 달리 비트코인 현물 ETF가 출시되자 자금이 몰렸다. ETF 출시 첫 주(1월 11~12일)에만 약 8억2100만 달러(약 1조800억원)의 자금이 순유입됐다. 이는 전문가들의 첫 주 순유입액 예상치인 ‘2억 달러(약 2630억원)에서 4억 달러(약 5276억원)’를 크게 웃돈 수치다. 지난 1월 10일 비트코인 현물 ETF 운용사 중 하나인 발키리 공동설립자 스티븐 맥클러그는 “이 ETF가 출시되면 첫 주 최소 2억 달러에서 최대 4억 달러까지 유입될 수 있을 것”이라고 전망했다.

대표적인 암호화폐 투자사인 그레이스케일의 비트코인 현물 ETF에서 5억7900만 달러(약 7613억여원)의 순유출이 발생했지만, 나머지 8개 현물 ETF가 약 14억 달러(약 1조8410억원)의 순유입을 기록해 매도 압력을 소화했다.

전문가들은 비트코인 현물 ETF에 대한 수요가 단기적으로는 예상치를 하회할 수 있지만, 장기적으로는 가상자산 시장 전체 자금 유입에 큰 도움이 될 것으로 전망하고 있다. CNBC는 지난 1월 13일 “비트코인 현물 ETF를 미국에서 거래할 수 있게 되면서 그동안 가상자산에 접근하지 못 했던 많은 대형 자산 관리자들이 비트코인 등 주요 가상자산에 접근할 수 있는 길이 열렸다”고 스탠다드차타드은행 보고서를 인용해 보도했다. 또 “올해 가상자산 시장에 유입되는 자금이 최소 500억 달러(약 65조7500억원)에서 최대 1000억 달러(약 131조5000억원)에 이를 것으로 보인다”고 했다.

모처럼의 희소식에 국내에서도 비트코인 ETF 투자에 관심을 갖는 이들이 늘었지만, 아쉽게도 국내에서 미국의 비트코인 현물 ETF 투자는 불가능하다. SEC 승인 이후 금융위원회가 국내 투자자의 해외 상장 비트코인 현물 ETF 투자를 차단했기 때문이다. 금융위는 1월 11일 국내 증권사가 해외에 상장된 비트코인 현물 ETF를 중개하는 것이 자본시장법 위반 소지가 있다고 유권해석했다. 이에 따라 해외 현물 ETF를 중개했던 국내 증권사들은 서둘러 매매를 중단했다. 업계에선 가상자산에 대한 법률적 정의와 규제 등 명확한 제도적 기반이 마련되기 전까진 국내에서 해외 비트코인 ETF 상품 투자가 재개되기 어려울 것으로 전망하고 있다.

국내에서 비트코인 현물 ETF 투자는 아직 불가능


▎게리 겐슬러 미국 증권거래위원회(SEC) 위원장은 1월 11일 성명을 통해 11개 비트코인 현물 ETF를 승인한다고 밝혔다. / 사진:연합뉴스
금융위의 이 같은 결정이 국내 암호화폐 투자 열기에 찬물을 끼얹은 건 분명해 보인다. 하지만, 비트코인을 비롯한 암호화폐 투자에 대한 관심은 더 높아질 것으로 예상된다. 현물 ETF 승인에 이어 추가 가격 상승을 이끌 호재가 아직 남아 있기 때문이다. 바로 약 4년마다 돌아오는 이벤트인 ‘비트코인 반감기’가 그것이다.

반감기란 비트코인 채굴 보상량이 절반으로 줄어드는 현상을 뜻한다. 비트코인 수량은 2100만 개로 정해져 있다. ‘채굴기’라 부르는 고성능 컴퓨터를 이용해 복잡한 계산식(작업증명)을 거쳐 발행되는데, 반감기가 되면 보상량이 절반으로 줄고 채굴 난도는 높아진다. 이는 비트코인 공급량이 절반으로 줄어든다는 의미여서 수요와 공급의 원칙에 따른 가격 상승 압력이 높아진다.

이번 반감기는 2024년 4월로 예정돼 있다. 실제로 비트코인은 반감기 때마다 가격이 급등했다. 첫 반감기인 2012년 11월 당시 개당 12달러에 거래되던 비트코인은 1년여 만에 1178달러, 9218.67% 상승률이라는 경이로운 기록을 세웠다. 이후 조정을 거쳐 두 번째 반감기인 2016년 7월에는 657달러에서 18개월 뒤 1만9680달러를 찍었다. 세 번째 반감기인 2020년 5월에는 8800달러에서 6만9000달러로 역대 최고가를 경신했다. 해외 전문가들은 비트코인 가격 상승을 예측하는 분위기다. 비트코인 가격 예측모델을 고안한 네덜란드 출신 애널리스트 플랜비(PlanB)는 2024년까지 비트코인 가격이 10만 달러에 이를 것이라고 전망했다. 암호화폐 투자자들 사이에서 ‘돈나무 언니’라고 불리는 캐서린 우드 아크인베스트먼트 CEO는 2030년까지 비트코인 가격이 100만 달러에 도달할 거라고 예상했다.

물론 낙관론만 있는 건 아니다. 아직 대부분의 국가에서 암호화폐에 대한 규제가 정착되지 않아 위험부담이 크다는 점을 꼽는다. 게리 겐슬러 SEC 위원장이 현물 ETF를 승인하면서도 투자자들에게 “비트코인 및 암호화폐와 연계된 상품의 위험성에 계속 주의를 기울여야 한다”고 당부한 이유다. 어찌 됐든 비트코인 현물 ETF가 주춤했던 미국 경제에 활력으로 작용할 것은 분명해 보인다. 홍성욱 NH투자증권 연구원은 “중장기적으로 비트코인 현물 ETF에 총 1000억 달러의 자금 유입이 가능해 보인다. 낙관적으로는 첫 6개월 안에 200억 달러 유입도 가능하다”고 내다봤다. 홍 연구원은 “전 세계 ETF 자산운용 규모의 1%가 1000억 달러인데, 금 ETF의 자산운용 규모가 900억 달러(약 118조3500억원)”라고 말했다.

- 박상혁 디지털애셋 기자 seminomad@digitalasset.works

202402호 (2024.01.17)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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