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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총선특집Ⅰ| 지역통신] 동요하는 호남 민심 

호남 인물 싹 자른 민주당에 분노…, 조국혁신당 ‘바람몰이’ 심상치 않다 

최권일 광주일보 정치총괄본부장
지역 정서 무시한 친명 패권에 민심 예측불허
‘지역구는 민주당, 비례는 조국혁신당’ 가능성


▎4·10 총선을 앞두고 더불어민주당의 전통적인 텃밭인 호남 민심은 착잡하다. 지역 민심이 선택할 수 있는 새로운 인물이 사실상 친명계 인사로만 한정되면서 ‘친명 패권’에 대한 불만이 팽배하다. / 사진:연합뉴스
4·10 총선을 앞두고 더불어민주당의 전통적인 텃밭인 호남 민심은 착잡하다.

민주당 공천 과정에서 계파 간 갈등에 따른 이른바 ‘비명횡사, 친명횡재’라는 공천 파동에 실망한 민심이 출렁이고 있어서다. 여기에 최근 돌풍을 일으키고 있는 조국혁신당과 이낙연 공동대표를 필두로 한 민주당 탈당파가 창당한 ‘새로운미래’라는 새로운 선택지도 생겼다.

그동안 광주와 전남은 민주당의 전통적인 지지기반이었다. 그만큼 민주당에 대한 애정과 전폭적인 지지가 이어져 왔다. 하지만 4·10 총선을 앞두고 민주당의 심장으로 불리는 광주에서는 민주당 현역 의원 대부분이 경선에서 패하면서 ‘현역 교체’ 바람이 뜨거워지는 등 민심 이반이 만만치 않은 것으로 보인다.

민주당 경선 결과 광주 8곳 선거구 중 광산을에서 친명(친이재명)계인 민형배 의원만 공천권을 따냈을 뿐 7곳의 현역 의원들은 모두 고배를 마셨다. 이들 대부분은 친명계 원외인사들에게 패하는 수모를 당했다. 정진욱 당 대표 정무특보가 광주 동남갑 후보로 확정됐고, 이 대표의 대장동 사건을 변호했던 박균택 전 광주고검장이 광주 광산갑 공천권을 따냈다. 이 대표의 사법리스크 대응을 총괄했던 양부남 당 법률위원장은 광주 서구을에 공천됐다.

이러한 ‘현역 교체’ 바람은 전남 지역에도 어느 정도 영향을 미치고 있다.

광주·전남 ‘현역 교체’ 광풍… 전북은 10명 중 6명 생존


▎해남·완도·진도 선거구에서도 ‘올드보이’로 꼽히며 논란과 관심을 한 몸에 받았던 박지원 전 국정원장이 현역인 윤재갑 의원을 꺾고 5선 도전에 나서게 됐다. / 사진:연합뉴스
전남 10곳 선거구 중 14일 현재 경선이 마무리된 6곳 가운데 현역인 소병철 의원이 불출마한 순천·광양·곡성·구례 갑 선거구를 제외한 3곳의 현역 의원들이 경선에서 패했다.

고흥·보성·장흥·강진에서는 김승남 의원이 문금주 전 전남도 행정부지사에게 경선에서 패했고, 여수을에서는 김회재 의원이 조계원 민주당 부대변인에게 공천권을 내줬다. 현역 의원을 누른 문 전 부지사와 조 부대변인은 친명계로 꼽힌다. 해남·완도·진도 선거구에서도 ‘올드보이’로 꼽히며 논란과 관심을 한 몸에 받았던 박지원 전 국정원장이 현역인 윤재갑 의원을 꺾고 5선 도전에 나서게 됐다. 현역 의원 중 목포 김원이 의원과 여수갑 주철현 의원만이 경선의 벽을 넘어섰다.

전북에서는 현역 교체 바람이 거셀 거란 당초 예측과 달리 8명의 현역 의원 가운데 2명이 낙마하는데 그쳤다.

전북 10곳 선거구 가운데 현역 국회의원이 없는 전주을, 남원·장수·임실·순창 선거구를 제외하면 전북 8명 국회의원 중 현역의원 6명이 생존한 것이다.

현역을 꺾고 공천장을 따낸 후보는 ‘올드보이’로 꼽히며 5선 도전에 나서는 정동영 전 통일부 장관과 이춘석 전 의원이다. 이처럼 현역 교체 바람이 불었던 배경에는 광주·전남지역 국회의원들이 정권 재창출에도 실패한 데다, ‘윤석열 정부 심판론’에 크게 기여하지 못한 데 따른 결과라는 해석이 지배적이다.

민주당에 실망한 성난 지역 민심이 경선 과정에서 현역 의원들에게 따끔한 ‘죽비’를 때린 것으로 풀이 된다.

하지만 경선 과정에 지역 민심이 선택할 수 있는 새로운 인물이 사실상 친명계 인사로만 한정되면서 ‘친명 패권’에 대한 불만도 만만치 않다.

실제로 비명(비이재명)계 현역 의원들과 인사들 가운데 각종 여론조사에서 1위를 달렸지만 컷오프(경선 배제)돼 경선 기회조차 받지 못하는 경우도 있었다. 또한, 광주·전남 지역 현역 의원 중 대표적인 비명계로 꼽히는 송갑석 의원은 현역 의원 평가 하위 20%라는 ‘덫’에 걸려 결국 경선 문턱을 넘지 못하는 등 광주·전남에서도 ‘비명횡사, 친명횡재’라는 민주당 ‘공천 파동’에 대한 후폭풍이 상당했다.

무엇보다도 송 의원을 비롯해 임종석(전남 장흥) 전 대통령 비서실장, 박광온(전남 해남), 전해철(목포시), 박용진(전북 장수), 홍영표(전북 고창) 등 호남 출신 중진 의원들이 비명계로 ‘좌표’가 찍혀 공천에서 아예 배제되거나 하위 20%에 포함되는 ‘페널티’를 받은 점도 호남 민심을 자극한 것으로 풀이된다. 이 대표 체제에서 민주당 내 ‘호남 인물’ 싹 자르기를 하는 것 아니냐는 불만도 나오고 있다.

이는 각종 여론조사 지표에서도 확인할 수 있다.

한국갤럽이 지난달 27~29일 전국 18세 이상 1001명을 대상으로 전화조사원 인터뷰 방식으로 조사를 진행한 결과, 광주·전라 지역의 민주당 지지율은 53%를 기록해 1주일 전의 67%보다 14%p나 하락한 것으로 나타났다.

조사가 진행되던 시기는 민주당의 공천 내홍이 한창이던 때다(이번 조사의 오차범위는 95% 신뢰수준에 ±3.1%p, 응답률은 15.8%. 자세한 내용은 중앙선거여론조사심의위원회 홈페이지 참조).

지역 정치권 관계자인 김모(54) 씨는 “지역에서 이번 민주당 공천은 ‘이변’이 없다는 우스갯소리가 나온다”면서 “친명계 인사들에게 유리한 경선 방법에 모두 친명계가 될 것이라는 예상이 맞아떨어져 이변은 없다는 소리가 나온 것이다”면서 민주당 공천을 꼬집었다.

다만 민주당 공천 파동과 ‘현역 물갈이’로 표출된 실망감이 계속 이어질지는 미지수다. 민주당 공천이 마무리 국면에 접어들면서 ‘정권 심판론’이 강한 호남 민심이 ‘미워도 다시 한번’으로 민주당으로 결집할 수 있기 때문이다.

‘친명 패권’에 분노도… 호남출신 중진 ‘물갈이’


▎조국 조국혁신당 대표가 3월 14일 광주 동구 충장로에서 발언하고 있다. / 사진:연합뉴스
여기에 최근 돌풍을 일으키고 있는 조국혁신당의 호남에서의 높은 지지율이 민주당 지지율 반등에도 도움이 될 것이라는 분석이 나오고 있다.

실제로 여론조사기관 리얼미터가 에너지경제신문 의뢰로 지난 4~8일 전국 18세 이상 2551명을 대상으로 조사(95% 신뢰수준에 오차범위 ±1.9% 포인트)한 결과, 광주·전라 지역의 민주당 지지율은 지난주보다 8.6%p 오른 71.1%로 조사됐다(무선 97%·유선3% 자동응답 방식으로 진행. 응답률 3.9%. 자세한 사항은 중앙선거여론조사심의위원회 홈페이지 참조).

선명한 정권 심판론으로 호남 유권자의 마음을 사로잡고 있는 조국혁신당의 돌풍이 최근 호남 민심의 결집을 가져오고 있다는 분석도 있다. 민주당에 등을 돌린 호남 민심이 빠르게 조국혁신당으로 결집하는 모양새다.

비례정당 투표 의향을 묻는 각종 여론조사에서 전국 두 자릿수 지지율로 껑충 뛰어오른 조국혁신당은 호남에서 지지율을 견인하고 있는 것으로 나타났다.

KBS가 한국리서치에 의뢰해 지난 7일부터 9일까지 전국 만 18세 이상 남녀 3000명을 대상으로 한 전화면접 조사 결과 광주·전라지역 비례정당 지지율에서 조국혁신당이 26%로, 더불어민주연합(33%)과 큰 차이를 보이지 않고 있다(이번 조사의 표본 오차는 95% 신뢰수준에 ±1.8%p. 자세한 내용은 중앙선거여론조사심의위원회 홈페이지 참조).

조국혁신당 열풍은 ‘지역구는 민주당, 비례는 조국혁신당’이라는 이른바 ‘지민비조’ 전략에 따른 교차투표 심리가 작용하기 때문으로 분석된다. 이 대표의 공천에 실망한 민주당 지지층과 함께 1호 공약으로 한동훈 특검법을 내세울 정도로 선명한 조국혁신당의 정권 심판론에 지역의 진보층이 결집한 것으로 보인다.

조국혁신당이 당색을 ‘광주의 하늘’로 정할 정도로 광주에 공을 들인 점도 호남 유권자들의 마음을 샀다는 평가다.

이 때문에 공천 갈등을 빚어온 민주당 지지율이 하락하지 않고 공천이 마무리 단계인 최근에는 호남에서 오히려 상승하고 있는 분위기다.

조국혁신당의 호남 선전이 민주당의 지지율을 깎아 먹기보다 공통의 목표인 ‘정권 심판론’을 자극해 야권 지지층을 투표장으로 이끄는 ‘윈윈 효과’를 내고 있기 때문으로 해석된다. 호남에서는 조국혁신당 돌풍이 신당 창당에 따른 컨벤션효과에 그칠지, 아니면 정권 심판론을 실현하는 정당으로 기록될지 주목하는 분위기다.

이런 가운데 이낙연 전 민주당 대표와 민주당 탈당 인사들이 창당한 새로운미래는 미풍에 그치고 있어 대조적이다. 여전히 민주당 분열 세력으로 생각하는 유권자들이 상당하기 때문이다.

조국혁신당 돌풍 속 ‘새로운미래’는 미풍


▎이낙연 새로운미래 공동대표가 3월 10일 광주 서구 김대중컨벤션센터에서 열린 당원 집회·필승 결의대회에서 당 지도부와 기념사진을 찍고 있다. / 사진:연합뉴스
택시 기사 전모(71) 씨는 “호남에서 수십 년을 커온 이낙연 전 대표는 세상을 그렇게 살면 안 된다. 정치인들이 ‘철새’가 많다고 하지만 이 전 대표만큼은 그래선 안 됐다”며 “정권 재창출에도 실패하고 현 정부 심판도 제대로 못 하는 민주당이 이번에는 공천으로까지 시끄러워 누구를 찍어야 할지 모르겠다”고 착잡해했다.

회사원 강영숙(53·여) 씨는 “민주당에 실망한 지 오래됐다. 시민들이 촛불로 만든 정권을 재창출하지 못한 데 대한 실망에 이미 등을 돌렸다”면서 “그러고도 당권이나 계파 싸움에만 매몰돼 있고 또 호남에 표만 달라고 할 것 아니냐”고 민주당에 대한 실망감을 드러냈다. 그러면서 “특히 이번에는 공천도 시끄러웠다”면서 “현역 의원을 꺾은 사람들 모두 이재명 당 대표 사람들이라고 하니 지역구 투표는 포기하고 비례 투표만 할까 한다”고 말했다.

하지만 이낙연 새로운미래 공동대표가 광주 광산을 선거구에 직접 출마함에 따라 향후 지역에서 바람을 일으킬지 주목된다. 특히 민주당 광주지역 경선에서 유일하게 생존한 ‘친명계’ 민형배 의원의 지역구라는 점에서 이번 총선의 최대 격전지로 꼽히고 있다.

선거에서 항상 변수는 생겨난다. 이번 총선에서 호남에서는 민주당의 강세가 여전할 것이라는 게 지역 정치권의 대체적인 분석이지만, 호남지역 투표율과 민주당에 대한 득표율이 낮아질 수도 있다는 전망이 나오고 있다. 조국혁신당과 새로운미래 등으로 선택지가 넓어진 만큼 민주당에 실망한 호남 민심이 다른 대안을 찾을 수 있기 때문이다.

- 최권일 광주일보 정치총괄본부장 cki@kwangju.co.kr

202404호 (2024.03.17)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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