국민의힘 TK 물갈이 소폭… 현역 다수 생존해 중진 목소리 커질 듯
김부겸·유시민 등 진보 진영도 ‘지역주의 타파’ 움직임 보이지 않아

▎박근혜 전 대통령이 지난 2월 5일 오후 대구 수성구 호텔인터불고에서 열린 도서 [박근혜 회고록: 어둠을 지나 미래로1·2] 출간기념회에 입장하고 있다. / 사진:연합뉴스

대구·경북(TK)에서 22대 총선을 맞는 분위기는 타 지역과 사뭇 다르다. 국민의힘의 ‘안방’인 TK에서 공천이 마무리되면서, “사실상 선거가 끝났다”는 평가가 지배적이다. TK에서 보수 여당의 공천은 사실상 당선을 의미한다. 특히 전국에서 이어진 국민의힘의 현역 중심의 ‘조용한 공천’ 기조가 TK에서도 똑같이 적용되면서 이번 총선은 더욱 조용하게 치러질 것으로 보인다.

더욱이 진보 진영에서 김부겸 전 의원, 더 앞서서는 유시민 전 장관같이 ‘지역주의’를 타파하기 위한 움직임도 보이지 않는다. TK 시·도민들은 본인 지역구에 누가 당선되는 것을 궁금해하기보다는 국민의힘이 12년 만에 원내 1당을 ‘되찾을 수 있는가’에 관심이 쏠려 있다는 평가가 정확할 것이다.

그렇다고 해서 22대 총선에서 TK가 마냥 재미없는 곳은 아닐 것 같다. 즉, 국민의힘이 TK 지역구 싹쓸이를 하더라도 그 속에 담긴 의미를 분석해야 한다. 2024년 봄 현재의 ‘친박(친박근혜)’ 영향력과 총선 이후 펼쳐질 당 또는 차기 대권에 대한 미묘한 기류 변화 등 여당 후보 당선 너머를 봐야 한다는 것이 TK 정가의 지적이다.

보수 여당에서 공천 파동의 중심지는 항상 TK였다. 18대 친이(친이명박), 19대 친박 공천에서 20대 ‘진박(진짜 박근혜계) 공천’이 대표적이다. 아무나 공천해도 된다는 인식으로 당 지도부의 입맛에 맞는 후보를 결정하려 했고, 이를 위한 물갈이도 지속됐다. 때문에 ‘잡음 없는 공천’이 사실 TK에서는 어색한 단어다.

최초로 물갈이 안 한 TK

▎윤재옥 국민의힘 원내대표(대구 달서을)가 지난 1월 7일 오후 대구 달서구 영남중·고등학교 강당에서 의정보고회를 열고 있다. / 사진:연합뉴스

하지만 22대 총선 후보 공천은 ‘역대급’으로 조용했다. 이는 낮은 현역 교체율 때문이다. TK는 2000년대 이후 역대 선거에서 항상 50% 수준 또는 그 이상의 현역 교체가 이뤄졌다. 물갈이는 중앙당에서 후보를 내리꽂기 위한 ‘자리 마련’의 의미도 있지만, 당 공천의 ‘기계적인’ 교체 수치를 위한 희생도 있었다. 쇄신을 보여주는 당 전체의 현역 교체율을 위해서라도, TK의 교체 비율은 항상 ‘중앙당 목표+α’가 될 수밖에 없는 구조였다. 실제로 21대 총선에선 미래통합당(국민의힘 전신)의 TK 현역 교체율이 64%에 달했다. 전체 당이 43.5%였던 것을 고려하면 항상 TK 지역을 통해 평균을 올린 셈이다.

하지만 이번 공천 과정에서 TK는 오히려 현역 생존율이 64%를 기록했다(3월 15일 기준). 당이 시스템 공천과 경선 원칙을 적용하면서 이뤄진 현상이다. 이 같은 공천 기조에 ‘전략 공천’이나 ‘낙하산’도 사라졌다. 보수 여당을 위해 항상 희생했던 TK에서는 처음 벌어지는 현상이다.

경선에도 큰 잡음이 없었다. TK 25개 선거구 가운데 절반 이상인 16곳에서 경선이 이뤄졌고, 단수 추천은 7명에 불과했다. 이들 중 윤재옥·추경호·정희용 의원은 도전자도 없었으며, 윤석열 정부 ‘개국공신’이기도 해 아무런 잡음이 없었다. 유영하 변호사의 단수 추천에 맞서 현역 홍석준 의원이 반발하긴 했지만, 이내 당의 결정을 수용한다고 밝히며 선거대책위원회에 이름을 올렸다. 경선의 경우 현역 4명이 탈락한 것이 ‘의외’라는 평가도 나오지만, 감점 또는 대결 상대를 고려했을 때 충분히 납득할 만한 수준이란 평가다.

이외에도 대구 2곳은 국민추천 프로젝트로 사실상 현역을 컷오프하고 신인들의 전략 공천도 이뤄졌지만, 이 역시도 큰 반발은 일어나지 않았다.

지역 출신의 한 정치평론가는 “컷오프 자체도 얼마 없었지만 향후 공공기관 등 자리를 받을 수 있는 집권 여당의 장점이 나오지 않았나 생각한다”며 “전체 공천에서 큰 문제가 없었던 만큼, 특정 지역에서 공천의 문제점을 부각하며 무소속으로 나오기도 쉽지 않았을 것”이라고 말했다.

당초 TK에서 우려됐던 ‘윤심(尹心) 논란’은 없었다. 6개월여 전만 해도 TK에선 대통령실 참모나 장·차관, 검사 출신 인사들이 TK 지역을 비롯한 영남 지역에서 출마할 것이란 관측에 무게가 실렸다. 실제로 검찰 시절 윤 대통령과의 친분을 과시하며 기자나 시민 사회계에 “출마를 약속받았다”는 인사들도 ‘한 트럭’이었다. 이와 함께 당 지도부가 연말만 해도 친윤 일색이었던 만큼, 지도부와 친분을 과시하던 인사들도 많았다.

용산 입김·친윤도 없었다

▎유영하 변호사가 2월 5일 오후 대구 수성구 호텔인터불고에서 열린 도서 [박근혜 회고록: 어둠을 지나 미래로1·2] 출간기념회에서 발언하며 눈시울을 붉히고 있다. / 사진:연합뉴스

대통령실 및 장·차관 중 TK 인사의 출마도 초미의 관심사였다. 총선을 앞두고 최대 15명이 지역구를 점찍어 놓았다는 분석이 나오기도 했다. 이에 대해 TK에선 민감하게 반응했다. 과거 청와대발 인사가 지역에서 뿌리내리지 못하고 현역 의원과 갈등이 이어지면서 총선 갈등이 촉발됐던 사례가 있기에 더욱 촉각을 곤두세웠다.

하지만 대통령실 및 장·차관 중에서는 조지연 전 행정관과 임종득 전 국가안보실 2차장 등 2명만이 공천을 받아 ‘친윤 낙하산’은 없었다는 평가가 나왔다. 이 같은 국민의힘 공천은 향후 TK 지역 정치판에 적지 않은 영향을 가져올 것으로 보인다. 현역을 포함한 예비 후보자들이 공천에만 목을 매고 이를 위해 ‘권력의 줄’에 기대는 후진적 정치 행태가 사라질 수 있다는 희망을 갖게 한다. 평소에는 아무것도 하지 않다가 선거 때만 되면 국회의원이 되겠다며 얼굴을 내미는 현상이 사라질 수 있다. TK에는 이른바 ‘서울 TK’라 불리며 고향이 TK지만 평생을 수도권에서 보낸 뒤 권력을 등에 업고, 총선 직전 지역 출신이라는 타이틀을 내걸고 ‘낙하산’을 타고 내려오는 경우가 많았다. 하지만 낙하산이 사실상 사라지면서 지역 정치권이 한 단계 성장했다는 평가가 나온다.

반면 극복해야 할 과제도 명확하다. 현행 제도에서 경선은 현역에게 절대적으로 유리한 ‘기울어진 운동장’이다. 현역에 대한 ‘페널티(감점)’가 있어도 현역 의원의 우세가 점쳐지는 게 현실이다. 실제로 TK의 16개 경선 지역에서 3곳(대구 2곳, 경북 1곳)에서만 현역이 패했다. 더욱이 패한 지역 모두 지역구 관리가 부족할 수밖에 없는 초선들이었다. 1곳은 대구에서 재선 시장을 지낸 권영진 전 시장이었기에 현역의 ‘높은 벽’이 어느 때보다 명확하게 드러났다.

이는 동시에 정치 신인들에게는 ‘진입 장벽’을 확인한 셈이다. 선거 흥행 및 정치신인 등장을 위해서라도 앞으로 TK에서만큼은 현역에 대한 감점, 신인에 대한 가점 강화가 필수적이라는 지적도 있다.

이번 총선에서 TK의 주요 키워드로 등장한 것은 ‘친박’이다. 박 전 대통령의 최측근이자 언론과의 소통창구 역할을 하는 유영하 변호사가 대구 달서구 갑에 경선도 없이 단수공천을 받았다. 유 변호사는 지난 지방선거에서 대구시장에 출마했었고 대구 수성구을 재보궐에도 출마 의사를 드러내면서 지역 정치권에 문을 두드린 바 있다. 특히 대구시장 선거 당시 박 전 대통령이 지지 영상으로 공개적인 지원에 나서면서 유 변호사의 대구 정치권 입성에 도움을 주기도 했다. 유 변호사가 올해 1월 22일 출마 선언을 했고, 2월 5일 박 전 대통령이 대구에서 북콘서트를 연 것도 사실상 유 변호사에 대한 박 전 대통령의 ‘지원사격’으로 보는 견해가 많다.

‘친박’ 과거 영향력 회복할지 관심

▎제22대 총선에서 경북 경산은 ‘친박 매치’로 주목받고 있다. 왼쪽은 국민의힘 예비후보인 박근혜 정부 청와대 출신 조지연 전 행정관, 오른쪽은 무소속 최경환 전 경제부총리. / 사진:연합뉴스

TK에서 유일하게 접전 지역구인 ‘경산’도 친박으로 설명이 된다. 한때 친박 좌장이었던 최경환 전 경제 부총리가 과거 자신의 지역구에서 무소속으로 출마한 것이다. 더욱이 상대는 박근혜 정부 청와대 출신 조지연 전 행정관으로 ‘친박 매치’가 치러지게 됐다.

그런데 이 상황에서 조 전 행정관과 유영하 변호사가 만나 사진을 올려 눈길을 끌었다. 정치권에선 ‘박심(朴心)’이 최 전 부총리가 아닌 조 전 행정관으로 향하고 있다고 분석했다. 박 전 대통령이 ‘친박’에 대해 선을 분명히 그으며 “정치적으로 친박은 없다”, “정치를 안 하겠다”고 했지만, 이들의 활동은 ‘박근혜 마케팅’이라고 보기에 충분하다. 향후 당과 윤 대통령도 비슷한 종류의 지원사격을 할 것이란 전망이 벌써부터 나온다.

그렇다고 당 내부에서 소위 친박이라 할 수 있는 인사들의 재결집까지는 이어질 가능성이 낮다고 보는 시각이 많다. 새누리당의 주류였지만, 2017년 박 전 대통령 탄핵 사태 이후 구심점을 잃고 흩어졌고, 지금은 구심점으로 활약할 수 있는 의원들이 남아 있지 않기 때문이다. 유 변호사가 국회에 입성한다고 해도 초선의 한계를 극복하기는 어려워 보이며, 도태우 변호사나 김재원 전 의원 등이 공천을 받지 못해 유 변호사 단독으론 친박세를 불리기에는 역부족이라는 지적이 나온다.

TK가 보수 여당의 심장이 된 이유는 무엇일까. ‘권력지향적’이기 때문이다. TK는 과거 숱한 대통령을 배출했던 지역이며, 권력에서 오는 ‘단맛’을 정확하게 알고 있다. TK가 지난 대선에서 80% 가까운 지지로, 수도권 지역의 열세를 뒤집는 1등 공신을 한 이유도 여기에 있다. 이번 선거에서도 TK 시·도민들이 보수 여당에 강한 지지세를 보낼 것이라는 점은 누구나 알 수 있는 사실이다. 여기에는 ‘정권재창출’의 밑거름이 되라는 의미가 담겨 있다.

더 나아가면 지역을 대표하는 정치인, 즉 ‘지도자’의 등장에도 기대를 하고 있다. TK는 지역의 주류였던 친박이 힘을 잃었고, 지속된 ‘물갈이’로 인해 지역 정치인들은 크게 성장하지 못했다. 이번 총선에서도 지역에는 대선까지 바라보는 인물이 없는 것이 현실이다. 6선에 도전하는 주호영 의원이 국회의장을 목표로 하는 것 외엔, 중앙 정치 무대에서 이름을 알린 인사들이 너무나 부족하다.

그럼에도 주목해야 하는 점은 이번 현역 중심의 공천 의미는 초·재선 중심이었던 지역에서 벗어나 3선 이상 의원들을 보유한 무게감 있는 지역이 될 수 있다는 가능성이다. 소위 중진이라 할 수 있는 의원들이 늘어나면, 국회 상임위나 당의 주요 직책을 맡을 수 있다. 즉, 중앙 정치 무대에서 ‘경험치’를 쌓을 수 있을 전망이다. 경산에서 4선의 최경환 전 부총리가 무소속으로 당선될 경우에는 지역 및 향후 당내 구도도 달라질 수 있다. 다시 최 의원을 중심으로 하는 구심점이 생길 수도 있기 때문이다.

-정재훈 영남일보 서울본부 기자 jjhoon@yeongnam.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