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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세태취재] 고물가 시대에 만난 도시락 애호가 10인10색 

“돈 아끼고 건강도 챙기고, 일석이조” 

김도원 인턴기자
점심 값 폭등에 편의점 도시락 5천원으로 한 끼 해결
채식 즐기고 건강 식단 선호해 도시락 직접 싸오기도


▎점심 식사에서 가성비를 찾는 직장인이 늘면서 도시락을 즐기는 이들이 증가하고 있다. / 사진:BGF리테일
"비싸기는 한데, 어쩔 수 없죠.” 3월 6일 점심을 먹기 위해 서울 강남구의 한 식당을 찾은 직장인 윤서영(가명·28) 씨는 1만3000원짜리 볶음국수를 주문했다. 식당의 차림표를 보니 1만원보다 저렴한 메뉴가 아예 없었다. 윤씨가 즐겨 간다는 회사 근처 다른 식당 또한 대부분 메뉴가 1만원 초반대에 형성돼 있다고 했다. 윤씨의 실수령 월 급여는 200만원대 후반. 그런데도 매달 20여 만원을 점심 식비로 지출한다고 털어놨다. 윤씨가 매달 받는 급여의 약 10%가 평일 점심으로 소비되고 있었다.

“월급 빼고 다 올랐다”는 말이 어느 때보다 실감되는 요즘이다. 통계청에 따르면, 소비자물가지수 중 가공식품(6.8%)과 외식(6%), 구내식당(7%) 물가가 특히 큰 폭으로 올랐다. 이제 서울에서 직장에 다니는 회사원이 식당에서 점심을 사먹으려면 평균 1만원을 준비해야 한다. 점심 식사를 도시락으로 해결하는 사람들이 늘어난 이유다.

“점심은 분위기보다 가성비죠”


▎저렴한 가격에도 구성이 알찬 편의점 도시락이 인기를 끌고 있다. / 사진:CU
고물가 시대 점심 비용을 줄이려는 직장인들의 노력은 여러 형태로 나타난다. 첫 번째, 일반 식당을 가기보다는 편의점 도시락을 먹는 직장인들이 늘었다. 서울 금천구에 있는 직장을 다니는 한성수(29) 씨는 1주일에 5일 중 4일은 점심을 편의점 도시락으로 해결한다. 그는 CU 편의점에서 파는 ‘백○○의 백판한판’ 도시락 애호가다. 가격은 4700원. 사각의 상품 안에 제육볶음, 김치전, 나물과 김치 등 12종의 반찬이 들어간다. 또 다른 직장인 박민성(27) 씨도 편의점 도시락을 즐긴다. 그가 가장 좋아하는 도시락은 GS25의 ‘○○로운 집밥 제육한판’ 도시락이다. 4500원으로 저렴하다.

직장인들의 기호에 맞춰 편의점 도시락의 종류도 다양화됐다. 밥과 반찬을 담은 전형적인 도시락뿐만 아니라 파스타, 샐러드, 비빔밥 등 여러 종류의 도시락들을 찾아볼 수 있다. 저렴한 샐러드는 2500원 수준이지만 구성이 다양하고 풍성한 도시락은 7000원이 넘기도 하는 등 가격대도 다양하다.

점심시간에 편의점에서 만난 한 직장인은 “회사 다니는 사람들의 점심식사라는 게 고급 식당에서 맛이나 분위기를 따지는 식사 자리가 아니라 끼니 해결이다 보니 가성비를 따지게 된다”고 말했다. 허경옥 성신여대 소비자학과 교수는 이에 대해 “고물가 시대에는 소득이 많지 않은 젊은 층이나 고물가에 식비가 부담되는 이들에게 도시락이 좋은 방안”이라고 공감했다.

편의점 업계 매출액 1위를 달리는 GS25의 발표에 따르면 2023년 말 기준으로 도시락 매출은 전년대비 51% 성장했다. 국내 최대 점포 수를 가진 편의점 CU도 마찬가지다. CU 전체 매출에서 식품류가 차지하는 비중은 매년 늘어 2023년에는 56.8%에 달했다. 이를 견인한 품목이 바로 도시락이었다. 지난해 CU의 도시락 매출은 전년보다 26.8% 늘었다. 도시락이 고물가시대에 편의점 업계 효자 노릇을 톡톡히 하고 있는 셈이다.

두 번째, 집에서 직접 도시락을 싸오는 사람들이 늘었다. 지난 2월 29일 마포구 중앙도서관에서 만난 김나연(24) 씨는 취업준비생이었다. 김씨는 “공부에 집중하기 위해 간단히 먹을 수 있게 집에서 도시락을 싸온다”고 말했다. 김씨가 자주 찾는 도서관 안에는 도시락을 먹을 수 있는 휴게 공간이 있다. 김씨는 “부모님과 함께 살아서 따로 도시락을 위한 장을 보진 않는다. 집에 있는 재료를 활용하기 때문에 돈이 들지 않는다”고 했다. 김씨는 “요리하는 걸 즐기는데, 도시락을 준비하면 먹고 싶은 메뉴를 직접 요리할 수 있어 좋다”며 “도시락 덕분에 군것질을 하거나, 끼니를 거르는 일도 줄었다”고 덧붙였다. 김씨에게는 도시락이 취미 생활이자 건강까지 챙겨주는 수단인 셈이다.

“한 끼 평균 3000원 절약 효과”


▎건강을 위해 도시락을 싸기도 한다. 원서연 씨와 양정혜 씨가 채식과 통풍 완화를 위해 준비한 도시락. / 사진:원서연, 양정혜
평소 주식투자와 앱테크 등 자산 관리에 관심이 많은 허현진(41) 씨도 점심 비용을 아끼기 위해 출근 전에 도시락을 미리 준비해 온다. 벌써 4개월째 도시락으로 점심을 해결하고 있는 허씨는 도시락을 애용하게 된 결정적 계기로 ‘가계부’를 들었다. 그는 “4개월 전 가계부를 살펴보다가 깜짝 놀랐다. 보험료, 통신비 등 고정비를 제외하고 가장 큰 비중을 차지하는 게 밥값이었다”고 털어놨다. 허씨는 “점심을 식당에서 사 먹으면 매 끼니마다 1만원 이상을 지출해야 하지만 집에서 도시락을 준비하면 한 달 장보기 비용 15만원 이내로 점심을 해결할 수 있다”고 말했다. 평일 점심만 어림잡아 계산해도 25% 절감 효과가 있더라고 했다. ‘도시락 애호가’를 자처한 허씨는 “도시락은 ‘골라 먹는 재미’가 있고, 양도 원하는 만큼 조절할 수 있어 안성맞춤”이라며 “돈도 아낄 수 있을 뿐 아니라 건강도 챙길 수 있어 일석이조”라고 말했다.

도시락은 실제 직장인들에게 가계부 절약 효과가 크다. 판매처에 따라 편차가 있지만, 대략 5000원 안팎 가격으로 구매할 수 있다. 곁들여 음료수를 마시거나 컵라면 등을 추가하더라도 1만원이 넘지 않는다. 직접 도시락을 챙겨 오면 절약 효과는 더욱 커진다. 지난해 잡코리아가 실시한 조사에서는 점심을 식당에서 사 먹는 직장인에 비해 도시락을 애용하는 직장인은 한 끼에 평균 3000원가량 절약하는 것으로 나타났다. 편의점 음식이나 구내식당에서 먹는 경우와 비교해도 가장 지출이 적었다.

“건강 위해 도시락 싸와서 먹어요”

건강을 챙기기 위해 도시락을 먹는 이들도 많다. 서울 여의도에 있는 사무실로 출근하는 원서연(29)씨는 육식보다 채식을 즐긴다. 주로 신선 식품 위주의 식단으로 직접 도시락을 준비한다. 2023년 말, 뜻하지 않게 병원 신세를 진 원씨는 잦은 외식과 밀키트 식품이 자신의 건강에 도움이 되지 않는다는 것을 알게 됐다. 채식을 결심한 원씨는 회사 인근의 식당과 구내식당 음식으로는 채식을 실천하는 데 한계를 느꼈다. 결국 건강을 위한 채식 식단을 준비하는 데는 자신이 직접 만든 도시락이 유일한 선택지라는 결론을 내렸다.

최근 직장인들을 괴롭히는 통풍과 당뇨 또한 도시락 문화가 확산하는 이유 중 하나다. 충남 천안에 거주하는 양정혜(34) 씨는 통풍으로 고생하는 남편을 위해 아침마다 도시락을 준비한다. 양씨는 “보통 한달에 90만~100만원 정도가 식비로 지출됐는데, 부부가 모두 도시락을 싸서 다니니까 한 달에 35만원(한 끼에 3000원)으로 해결할 수 있었다”고 말했다. 양씨가 도시락을 준비할 때 가장 신경 쓰는 부분은 ‘좋은 재료의 활용’이다. 양씨는 “남편이 두부를 싫어하기 때문에 참신하고 보기 좋은 모양의 두부요리를 내놓으려고 애쓴다”고 말했다.

다행히 양씨가 직접 만든 도시락 식단을 실천한 지 두 달 만에 남편의 요산 수치와 콜레스테롤, 혈압 수치가 정상으로 돌아왔다. 양씨는 “도시락을 즐기면서 남편의 몸무게가 10kg가량 줄었다. 이제는 남편도 의욕이 생겼는지, 건강을 회복하는 데 아주 적극적이다”고 말했다. 채식을 시작한 원씨에게도 긍정적 변화가 찾아왔다. 두 달 정도 지속했더니 그녀를 괴롭히던 잔병치레가 확연히 줄었다고 했다.

이 같은 도시락 문화는 언제까지 계속될까? 물가가 꺾이지 않는 이상 지속될 가능성이 크다. 하지만 역설적으로 인플레이션이 계속되면 도시락의 장점도 사라질 수 있다. ‘경제적 이점’으로 시작한 도시락이 언젠가는 ‘경제적 단점’ 때문에 중단될 수 있다는 뜻이다. 이영애 인천대 소비자학과 교수는 “소비자들의 장바구니 물가가 계속 오르면 도시락을 직접 싸는 비용도 오르게 된다”며 “음식 만드는 재료비가 너무 올라 일반 식당 음식값과 큰 차이가 없게 되면 도시락에 대한 선호도가 떨어질 수 있다”고 바라봤다.

- 김도원 인턴기자 vvayaway@naver.com

202404호 (2024.03.17)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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