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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특별 인터뷰] 가브리엘리우스 란드스베르기스 리투아니아 외교장관 

“한국과 반도체 동맹 결성 희망… 방산 기업들 투자도 이어졌으면” 

김태욱 월간중앙 기자
“리투아니아는 레이저 기술 강국… 한국과 협력 강화는 서로에게 윈-윈”
“한국·리투아니아도 향후 ‘칩4(한·미·일·대만)’ 같은 동맹 형성할 수 있어”


▎가브리엘리우스 란드스베르기스 리투아니아 외교부 장관은 “리투아니아는 보다 넓은 시각으로 인도·태평양 지역을 바라보기 시작했다”고 설명했다.
인구 270만의 작은 나라 리투아니아가 국제무대에서 강한 파급력을 발산하고 있다. 리투아니아의 영향력은 ‘민주주의’와 ‘기술’에서 나온다. 우수한 IT·레이저 기술을 보유한 반도체 강소국 리투아니아는 사회주의 국가의 권위주의 체제를 매섭게 비판한다. 리투아니아는 일찌감치 지난 2014년 부유식 액화천연가스(LNG) 저장 및 재기화 설비(FSRU) ‘인디펜던스호’를 도입했다. 훗날 러시아산 가스 수입을 중단할 수도 있다고 봤기 때문이다. 지난 2021년 11월에는 대만과 협력을 강화함으로써 중국과의 충돌을 감행했다. 중·러와 결별할 시점이 조만간 올 것으로 본 것이다. 실제 그로부터 채 4개월도 지나지 않아 우크라이나 전쟁이 발발했다.

리투아니아는 타이베이 대표부가 아닌 대만(Taiwanese) 대표부 설립을 기점으로 인구 14억 대국인 중국과 격돌하며 국제사회에 존재감을 알리기 시작했다. 이듬해 우크라이나 전쟁 발발 직후 유럽연합(EU)에서 가장 먼저 러시아산 가스 수입을 중단하기도 했다. 우크라이나 전쟁이 한창이던 지난 2023년 7월에는 북대서양조약기구(나토·NATO) 정상회의를 자국에서 개최하기도 했다. 그리고 2024년 5월, 블라디미르 푸틴 러시아 대통령이 5연임에 성공하면서 다시 리투아니아의 통찰을 경청할 시점이 왔다. 리투아니아가 생각하는 우크라이나 전쟁과 주요 국제무대 플레이어들의 미래에 대해 묻고 싶었다. 한국 반도체 산업과 협력 문제도 궁금했다. 가브리엘리우스 란드스베르기스 리투아니아 외교부 장관과 마주 앉은 이유다. 인터뷰는 지난 4월 26일 서울 중구 주한 리투아니아 대사관에서 이뤄졌다.

“탈중국 박차, 반도체 강한 대만과 협력 강화”


이번 방한의 목적이 궁금하다.

“주한 리투아니아 대사관 개관식에 참석하기 위해 한국을 방문했다. 한국은 리투아니아에 대단히 중요한 국가다. 우리는 한국과 협력 강화를 희망한다. 주한 리투아니아 대사관 규모도 과거에 비해 커졌다.”(한국과 리투아니아는 지난 1991년 수교 이후 대사급 외교관계를 이어왔다. 지난 2021년 10월 서울 중구 롯데호텔에 주한 대사관을 개설한 리투아니아는 올해 광화문 교보생명빌딩으로 이전했다. 그 이전까지는 주중 리투아니아 대사관에서 한국을 겸임했다.)

리투아니아에게 한국이 중요한 이유가 궁금하다.

“리투아니아가 보다 넓은 시각으로 인도·태평양 지역을 바라보기 시작했다는 점을 말하고 싶다. 과거 유럽의 많은 국가들은 중국을 통해 아시아를 바라보곤 했다. 예전에 우리도 그랬다. 리투아니아는 이같은 정책에 변화를 두고자 한다.”

‘탈중국’으로 해석해도 되는가?

“그렇다. 우리가 ‘탈중국’을 택한 이유는 간단하다. 우리는 오랜 대러시아 외교 경험을 통해 러시아와 중국이 우리 경제에서 차지하는 비중이 압도적으로 높을 때 생기는 위험성을 인지하고 있었다. 오늘날 유럽에선 ‘탈중국’을 디리스킹(De-risking)으로 부른다. 리투아니아가 외교 다각화에 나선 이유다. 사실 우리는 그동안 시간을 낭비했다.”

어떤 점에서 시간을 낭비했다는 것인가?

“더 일찍 한국과의 관계 강화를 위해 노력했어야 한다는 의미다. 방금 한국은 리투아니아에 대단히 중요한 국가라고 말한 것은 결코 외교적인 수사가 아니다. 지정학적 요인도 양국 협력 강화가 시급한 이유 중 하나다. 오늘날 리투아니아가 대만과 협력을 강화하고 있는 것도 디리스킹과 궤를 같이한다.”

대다수 국가가 ‘타이베이 대표부’를 두는 반면 리투아니아에는 ‘대만 대표부’가 설립돼 있어 이채로웠다.

“우리는 ‘하나의 중국’ 원칙을 존중한다. 다만 대만이 스스로 대표부 이름을 택할 수 있어야 한다고 믿는다. 물론 중국은 이를 두고 ‘레드라인’을 넘었다며 강력 반발했다. 하지만 우리는 중국이 스스로 레드라인을 긋고 있다는 입장이다. 불행히도 중국은 앞으로도 계속 자신만의 레드라인을 만들 것 같다. 대만 대표부 설립은 리투아니아 같은 소국(小國)도 중국의 압력을 견딜 수 있다는 메시지다.”(리투아니아의 인구는 약 270만 명으로, 약 14억2500만 명인 중국 인구의 약 0.18%다.)

대만과의 협력 강화는 반도체를 염두에 둔 것이라는 분석이 있다.

“협력 강화 이유 중 하나다. 대만은 한국과 더불어 우리의 훌륭한 파트너다. 한국과 마찬가지로 대만도 리투아니아와 거대한 시너지를 낼 수 있다고 본다. 리투아니아는 정밀 레이저 기술을 포함한 다양한 레이저 기술을 보유한 레이저 강국이다. 한국과 대만은 전 세계에서 손에 꼽히는 반도체 선도국이다. 그런 점에서 리투아니아와 한국 간 협력 강화는 윈-윈이라고 생각한다. 리투아니아·대만 협력도 마찬가지다.”(리투아니아는 반도체 제조에 필요한 정밀 레이저 기술 분야에 강점을 가진 국가로 유럽의 반도체 산업 강소국이다.)

“리투아니아 레이저 기업도 한국 기업과 협력 강화 원해”


▎지난 2019년 리투아니아 수도 빌뉴스에서 열린 리투아니아 북대서양조약기구 (나토·NATO) 가입 15주년 기념행사 모습. / 사진:로이터
향후 한국·리투아니아·대만 등이 ‘칩4(한국·미국·일본·대만)’ 반도체 동맹과 유사한 형태의 반도체 동맹을 형성할 수 있을까?

“물론이다. 그런 날이 오길 희망한다. 리투아니아 레이저 기업들은 한국 반도체 생산 라인에 포함되기 위해 많은 노력을 하고 있다. 대만과의 협력으로 리투아니아 자체 반도체 생산 시스템도 빠르게 구축되고 있다. 이 밖에도 한국과 리투아니아 사이에는 지정학적인 공통점이 있다. 조금 전 조태열 외교부장관과 회담을 가졌다. 방금 나눈 대화도 지정학적인 요인에 관한 것이었다. 지정학적인 공통점은 양국 협력 강화의 원동력이다.”

한국과 리투아니아는 러시아 정부로부터 ‘비우호국’으로 분류됐다는 공통점이 있다.

“리투아니아는 우크라이나 전쟁 이전부터 러시아의 위협에 대해 깊은 우려를 표해왔다. 오늘날 ‘새로운 시대’가 도래했다는 점에서 더욱 우려스럽다.”

‘새로운 시대’란 구체적으로 어떤 시대를 의미하는가?

“쉽게 말해 나쁜 행위자들이 협력을 강화하기 시작한 시대다. 북한에서 러시아로 탄약이 이전되고 있고, 러시아는 북한으로 기술을 이전하고 있다. 이란과 러시아 간의 협력도 나날이 증가하고 있다. 우리 눈앞에서 새로운 시대(신냉전)가 전개되고 있다.”

우크라이나 전쟁 이후 대러 외교 셈법이 복잡해졌다. 우크라이나 전쟁 이후 한국 정부는 ‘살상 무기 지원 불가’ 원칙을 고수했음에도 오늘날 한·러 관계는 악화일로를 걷고 있다.

“한국은 러시아의 우크라이나 침공이 주권에 대한 중대한 위반이라는 점을 표명해왔다. 한국은 이미 역사의 올바른 지점에 서 있다. 반면 러시아는 전 세계를 이분법적으로만 바라본다. ‘친서방’과 ‘반서방’으로 본다는 의미다.”

한국의 노력에도 러시아가 호응하지 않는다면 한국 정부가 우크라이나에 대한 무기 지원도 검토해야 한다고 생각하는가?

“나는 리투아니아가 아닌 다른 나라의 외교·국방정책에 대해선 언급할 수 없다. 다만 우크라이나는 155㎜ 포탄과 대공방어 시스템이 부족한 상황이란 말로 답을 대신하겠다. 지금도 러시아는 우크라이나에 대규모 폭격을 감행하며 우크라이나를 잿더미로 만들고 있다. 리투아니아는 러시아의 이 같은 위험성을 예전부터 알고 있었다. 우크라이나 전쟁 이전부터 ‘탈러시아’에 박차를 가한 이유다.”

“한국 방산 기업들의 리투아니아 진출도 희망”

‘인디펜던스호’ 도입도 탈러시아의 일환인가?

“그렇다. 지난 2014년 한국에서 도입한 부유식 액화천연가스(LNG) 저장 및 재기화 설비(FSRU) ‘인디펜던스호’ 덕분에 우리는 우크라이나 전쟁 발발 직후 러시아산 가스 수입을 전면 중단했다. 인디펜던스호는 한국과 리투아니아의 소중한 관계를 단적으로 보여준다. 양국 협력은 인디펜던스호가 증명하듯 윈-윈이 될 수 있다.”

인디펜던스호가 리투아니아에서 차지하는 의미가 큰 것 같다.

“우리는 인디펜던스호 덕분에 러시아산 가스 수입을 중단했을 뿐 아니라 ‘부유식 액화천연가스(LNG) 저장 및 재기화 설비(FSRU)’ 운영법을 익힐 수 있었다. 실제로 리투아니아 기업인 ‘KN Energies’는 오늘날 리투아니아뿐 아니라 독일과 브라질 등지에서 LNG 터미널을 운영하고 있다.”(리투아니아는 지난 2014년 ‘바다 위 LNG 기지’로 불리는 부유식 액화천연가스 저장 및 재기화 설비를 도입했다. 선박은 ‘독립’을 의미하는 ‘인디펜던스(Independence)’로 명명했다. 인디펜던스호는 현대중공업이 세계 최초로 건조한 부유식 액화천연가스 저장 및 재기화 설비다.)

레이저·반도체 이외에 양국이 협력할 수 있는 분야로는 무엇이 있을까?

“방산 분야에서 협력을 강화할 수 있다고 본다. 우리 정부는 최근 리투아니아 진출을 희망하는 해외 방산 기업들의 행정 절차를 대폭 간소화했다. 독일 최대 방산 업체인 라인메탈도 곧 리투아니아에서 탄약과 포탄을 생산한다. 조만간 한국 방산 기업들도 리투아니아에 진출하길 희망한다.”

- 글 김태욱 월간중앙 기자 kim.taewook@joongang.co.kr / 사진 김상선 기자 kim.sangseon@joongang.co.kr

202406호 (2024.05.17)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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