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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노사갈등 해법… 한국]갈등의 뿌리는 98년 '2·6 대협약' 

IMF 때 고통분담 차원서 마련… 노사 제각각 해석, “근본적으로 잘못된 협약” 지적도 

이재광 imi@joongang.co.kr
서울대학교 법대생들은 1970년 11월 20일 고 전태일군의 영정을 들고 문리대쪽으로 추도행진을 벌였다. 98년 2월6일 오전 고용조정(정리해고)도입 등 대타협 공동합의문을 발표한 노사정위원회 대표들이 손을 맞잡고 포즈를 취하고 있다.“우리 역사상 처음으로 대타협을 이룬 역사적 사건이며, 우리 민족의 정신사에 큰 획을 긋고 희망찬 출발을 기록한 날입니다.”



5년 전인 1998년 2월7일 김대중 당시 대통령 당선자는 기쁨을 감추지 못한 채 국회로 초청해 간담회를 가졌던 노사정 대표들에게 이렇게 얘기했다. 하루 전인 2월6일 노사정 대표들은 그동안 힘겨루기로 일관했던 주요 현안들을 일괄 타결하고 다시 한자리에 둘러앉은 것이다. 김당선자는 당선 한 달 반만에 일궈낸 쾌거와 외신들의 칭찬에 한껏 고무돼 있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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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583호 (2021.05.0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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