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동갑내기 윤석만 - 정준양 ‘한 지붕’ 경쟁 

포스트 이구택은 누구?
외부인사 사공일, 강만수 발탁설 솔솔 … UBS증권 “비철강인 CEO 오르면 주가 추락 우려” 

포스코 제2의 도약을 실현했던 이구택(63) 회장은 결국 떠나고 그 자리는 지금 공석이다. 자연 세인들 관심은 “Who is next?”다. 내부 승진일까, 외부 인사 영입일까에서 시작되는 하마평은 꼬리에 꼬리를 물고 이어진다. 그 실상을 취재했다.

#장면1 이구택의 소신 ‘단임론’


“임원들은 단임 정신으로 일하라.” 2004년, 이구택 포스코 회장은 임원들을 향해 비수와 같은 일침을 날렸다. “민영화된 공기업의 임원이 순혈주의를 주장하면서 장기 재임하는 경향을 걱정스럽게 바라보는 시각이 많다.”

재직 중 연임 생각을 아예 버리라는 경고다. 이 회장은 솔선수범하는 스타일이다. 자신은 지키지도 못할 명령을 함부로 내리지 않는다. 그날도 그랬다. “나(이구택)부터 단임정신으로 일하겠다.” 하지만 약속은 지켜지지 않았다.

2007년 2월, 그는 재임에 성공했다. 손바닥 뒤집듯 말을 바꾼 게 아니다. 이구택의 아성이 너무도 공고했기 때문이다. 그와 ‘일합(一合)’의 싸움을 벌일 만한 적수가 없었다는 것이다.

당시 ‘포스트 이구택’으로 하마평에 올랐던 사람들은 “아직은 때가 아니다”며 손사래를 치곤 했다. 사실 그럴 만한 이유가 있었다. 이 회장은 포스코의 상징이나 다름없다.

서울대 금속공학과를 졸업한 뒤 유학을 포기하고 포스코(당시 포항제철)에 공채 1기로 입사한 전력은 그의 가치를 더욱 빛냈다. 업적도 나무랄 데 없었다. 매년 사상 최대 실적을 갈아치웠을 뿐 아니라 포스코의 ‘고질병’이었던 부패의 사슬도 무디게 만들었다. 그의 끊임없는 ‘윤리경영’ 덕분이라는 게 포스코 관계자의 말이다. 그에게 포스코의 키를 다시 한번 맡긴 것은 불가피한 선택이었다.

#장면2 “2007년 재임 때부터 고민”

그로부터 2년여 후인 2009년 1월 15일. 이 회장이 돌연 사의를 표명했다. 그는 “포스코에는 새로운 리더십이 필요하다”며 사퇴의 변을 밝혔다. 아직은 잔여임기 1년여가 남아있는 상태. 졸지에 선장을 잃은 포스코는 지금 혼돈 속으로 빠져들고 있다. 이 회장은 어쩌면 수년간 사임을 준비했을지 모른다.

스스로도 그렇게 말했다. “2007년 연임됐을 때부터 (사퇴를) 고민했다.” 널리 알려지진 않았지만 단임론은 그의 소신이었다. 그럼에도 납득하기 어려운 부분이 있다. 이 회장은 원칙론자다. 자존심도 무척 강하다. 자신의 책무를 두고 뒷방으로 꼬리를 내빼는 스타일과는 거리가 멀다. 그의 자진사퇴를 둘러싸고 설왕설래가 가득한 이유다.

왜일까? 이 회장의 입지가 불과 수년 새 줄어든 것일까? 이렇게 의문부호를 달지 모르지만 실제는 그게 아니다. 이 회장이 재임했을 때, 포스코의 고속질주는 계속됐다. 아니 쾌속질주였다. 글로벌 금융위기가 본격화한 지난해에도 포스코는 조강 생산 3314만t, 매출액 30조6420억원, 영업이익 6조5400억원이라는 사상 최대 실적을 올렸다.

매출액과 영업이익은 전년 대비 각각 38%, 52% 늘어난 수치다. 생산량도 무려 20.9% 증가했다. 철강업계의 숙원이었던 파이넥스(FINEX) 공장을 세계 최초로 준공(2007년)하는 업적도 남겼다. 파이넥스는 친환경 제철 신기술이다. ‘보이지 않는 손’이 이 회장을 끌어내렸다는 소문이 떠도는 것도 무리가 아니다.

더욱이 포스코 회장은 정권이 바뀔 때마다 교체된 전력이 있다. 정치적 외압설에 대해 이 회장은 강력 부인하고 있다. “외풍 때문에 그만두는 게 아니냐는 추측이 있는데, 사실이 아니다.” 외압의 당사자로 지목되고 있는 청와대는 아예 “포스코는 민영화된 기업”이라며 있을 수 없는 일이라고 일축했다.


핵심 당사자들이 입을 다물고 있는 지금, 외압설의 진위는 파악하기 어렵다. 그래서 포스코의 새 지휘봉을 누가 잡을지가 중요하다. 철강과 무관하고, 정치색이 짙은 외부인사가 회장에 낙점되면 외압설의 실체가 드러날 수 있기 때문이다. 게다가 포스코는 올해 깊은 불황을 헤쳐나가야 할 과제를 안고 있다.

어느 때보다 수장의 역할이 중요하다는 얘기다. 포스코의 차기 회장에 누가 오를지 관심이 집중되는 또 하나의 이유다. ‘거함’ 포스코의 다음 키는 누가 잡을까? 내부 인사 중 가장 빨리 물망에 오른 인사는 윤석만(61) 사장이다. 윤 사장은 이 회장을 뺀 상임이사 가운데 가장 선임이다. 그가 ‘포스트 이구택’ 1순위로 줄곧 지목된 것도 이런 이유다.

포스코 상임이사는 이 회장, 윤 사장, 정준양 포스코건설 사장, 정길수 부사장, 이동희 부사장, 최종태 부사장, 조성식 부사장 등이다. 충남 당진 출신인 윤석만 사장은 중앙대 행정학과, 연세대 대학원을 졸업했다. 그의 첫 근무지는 홍보실. 박태준 명예회장이 회장이었던 1986년, 홍보부장으로 발탁됐다. 포스코에서 35년 근무하는 동안 20여 년간 홍보만 했다.

이미지 홍보 전문성 vs 현장경험

그래서 그의 강점은 포스코의 현재 이미지를 손수 만들고, 포장했다는 것이다. 포스코의 대표적 슬로건 ‘제철입국’과 ‘소리 없이 세상을 움직인다’는 문구는 그가 주도한 작품 중 하나다. 그가 비(非)이공계 출신으론 세 번째로 사장에 오를 수 있었던 이유도 여기에 있다. 윤 사장의 성격은 원만하고 깔끔하다.

합리적 업무처리는 그의 장점이다. 일할 땐 누구보다 철저하고 부지런하기로 유명하다. 포스코 임원 재직 시절, 바쁜 시간을 쪼개 행정학 박사학위를 받은 것은 유명한 일화다. 하지만 그는 현장경험이 부족하다는 지적으로부터 자유로울 수 없다. 제철소장을 역임하지 않은 것도 약점이다. 내부 승진으로 포스코 회장에 오른 인사 중 제철소장을 거치지 않은 경우는 ‘재무통’인 황경로 전 회장뿐이다.

또 다른 후보는 동갑내기 라이벌 정준양(61) 포스코건설 사장이다. 나이는 같지만 윤 사장이 1년 빨리 입사해, 직장에선 정 사장이 후배다. 그는 용광로에서 성장했다. 엔지니어 출신인 그는 광양제철소장을 거쳐, 생산기술부문 총괄 사장도 거쳤다. 그래서 현장 경험이 많다는 장점이 있다. 정 사장은 담백하고 원만한 성격으로 유명하다. 엔지니어 출신이지만 문화·예술에 관심이 많아 풍부한 ‘대화거리’를 가지고 있다는 후문이다.

그래서 적보단 동지가 더 많고 이 회장의 신뢰도 깊었다. 정 사장이 계열사 포스코건설 사장으로 옮겼음에도 포스코 상임이사 자리를 유지한 것에서도 이 회장의 신뢰를 읽을 수 있다. 한때 ‘박태준 4인방(황경로·박득표·이대공·유상부)’으로 명성을 떨쳤던 이대공(68) 포스코 교육재단 이사장도 거론된다.

포스코에서 부사장까지 지낸 그는 1998년부터 국내 최대 사학 포스코 교육재단 이사장으로 활동하고 있다. 현장교육자로 뛰고 있는 그가 물망에 오른 것은 전형적인 ‘철강맨’이기 때문이다. 그러나 그의 이런 역량에도 MB정권과 인연이 있다는 소문과 고향이 이상득 한나라당 의원과 같은 포항이라는 점은 오히려 발목을 잡을 수 있다는 평가다.

잠재적 회장 후보군으로 꼽히는 최종태(60), 이동희(60) 부사장이 깜짝 발탁될지도 관전 포인트다. 최 부사장은 인재개발·인사노무·자재구매 및 외주 부문 등에서 경험을 쌓은 인사관리 전문가. 이 부사장은 글로벌 성장 투자 전략의 수립, 원가절감 추진 및 인수합병(M&A) 전략 수립 등에서 두각을 나타내고 있다.

외부인사도 하마평에 오르내린다. 포스코 이사회도 이 회장의 후임 인선 과정에서 외부인사 발탁을 배제하지 않기로 결정했다. 현재로선 강창오(67) 전 포스코 사장과 사공일(69) 국가경쟁력강화위원장이 거론된다. 강만수(64) 기획재정부 장관, 윤진식(63) 전 산업자원부(현 지식경제부) 장관의 이름도 흘러 나오지만 가능성은 희박하다는 분석이다.

강창오 전 사장은 외부인사라도 영입할 만한 인물이라는 평가를 받는다. 공채 3기 출신인 강 전 사장은 제선부장, 포항제철소장, 부사장, 사장 등 요직을 두루 섭렵했다. 2003년 유상부 전 회장의 갑작스런 낙마 후 이 회장과 포스코를 이끈 경험도 있다. 그는 ‘호방한’ 인물로 알려져 있다. 나눔경영의 전도사로 불릴 정도로 사회공헌에도 관심이 많다고 한다.

포스코의 활발한 사회공헌활동의 초석을 다진 주인공도 강 전 사장이다. 2003년 포스코 봉사단이 설립됐을 때 그는 초대 단장을 맡은 바 있다. 사공일 위원장은 전두환·노태우 정권에서 대통령 경제수석비서관과 재무부 장관을 역임했던 설명이 필요없는 경제학자다. 1993년 세계경제연구원을 설립할 정도로 식견이 넓다.

MB정권과도 떼려야 뗄 수 없는 관계다. 2007년 한나라당 대선후보 경선과정에서 이명박 대통령의 정책자문역으로 활동했을 뿐 아니라 당 중앙선대위 산하 경제살리기 특위의 고문으로도 활동했다. 그를 MB의 경제멘토, MB노믹스 전도사라고 부르는 것도 이런 이유다.

독이 든 성배 “누가 마실까?”

포스코엔 지금 비상등이 켜졌다. 외압설 논란으로 오랫동안 쌓아왔던 대외 신인도가 흔들릴 판이다. 포스코의 지배구조가 외풍에 약하다는 비판에서도 자유롭지 못하다. 게다가 세계적 불황으로 포스코를 둘러싼 경영환경마저 여의치 않다. 이 회사의 올해 연간 조강 생산량은 지난해보다 100만t 이상 줄어들 전망이다.

이에 따라 지난해 30조6000억원에 달했던 매출액이 올해는 30조원을 크게 밑돌 것으로 보인다. 외국계 증권사들이 “이 회장 사임보다 누가 새 CEO에 선임될지가 더욱 중요하다”고 강조하고 나선 까닭이다. 노무라증권은 “포스코의 후임 CEO에 누가 선임될지는 중요하다”며 현재 추진하고 있는 포스코의 주요 프로젝트를 이끌 만한 능력이 없거나 정치적 색채가 짙은 인물이 후임 CEO로 선임될 가능성을 우려했다.

UBS증권도 이 회장의 사임보다는 누가 차기 CEO로 선임되느냐가 핵심 포인트라고 밝히면서 “포스코의 새로운 CEO로 철강전문가가 선임된다면 큰 영향이 없겠지만 그렇지 않을 경우 주가에 충격을 줄 수도 있다”고 강조했다. 이처럼 ‘포스트 이구택’이 해결해야 할 과제들은 숱하게 많다. 특히 외부 인사에게 포스코 회장직은 ‘독이 든 성배’가 될 수 있다.

포스코는 2009년을 ‘생존을 넘어 도약을 준비하는 한 해로 만들겠다’고 했다. 미래성장동력 확보를 위해 사상 최대인 7조5000억원을 투자하겠다는 계획도 밝혔다. 포스코로서는 그 어느 때보다 빼어난 실력을 가진 선장이 필요할 때다. 그렇지 않다면 ‘거함’ 포스코는 바다가 아닌 산으로 향할 수도 있다. 과연 이 회장의 후임자는 누구일까? ‘포스트 이구택’의 향방에 재계의 관심이 쏠리고 있는 요즘이다.

포스코 새 회장 어떻게 결정되나?
포스코는 1월 15일 이구택 회장 후임자를 선정하기 위해 사외이사들로 구성된 최고경영자(CEO)추천위원회를 구성했다. CEO추천위원회는 외부인사를 포함한 100여 명가량의 사내외 후보자 리스트를 만들고 광범위한 인선 작업에 들어간 상태다.

앞으로 5회가량의 CEO추천위원회를 개최한 뒤 2월 6일 이사회와 2월 27일 예정된 주주총회를 거쳐 신임 회장을 확정할 예정이다. 이에 따라 설날 명절이 끝난 2월 초면 새 회장의 윤곽이 드러날 것으로 보인다.


972호 (2009.02.0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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