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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유동성 함정’에 이미 빠진 것 아닐까? 

“초입이다” “아니다” 논란 확산 … “헬리콥터에서 돈 뿌려야 하나” 우려도
한국은행, 기준금리 또 내렸지만… 

백우진 기자·cobalt@joongang.co.kr

금통위에서 의사봉을 두드리는 이성태 한은 총재.

한국은행이 2월 12일 기준금리를 2.5%에서 2.0%로 0.5%포인트 인하했다. 지난해 10월 5.25%였던 기준금리가 4개월 만에 3.25%포인트나 낮아졌다. 문제는 기준금리를 연거푸 낮추는데도 회사채금리가 충분히 떨어지지 않고 소비나 투자도 살아날 기미가 보이지 않는다는 점이다.

그러자 통화정책이 ‘유동성 함정’에 빠진 것 아니냐는 지적이 나왔다. 유동성 함정이란 경제학자 케인스가 처음 쓴 개념으로, 통화당국이 금리를 낮추고 자금을 공급해도 시중금리가 떨어지지 않고 수요가 증가하지도 않는 상황을 가리킨다. 이미 시장에서는 유동성 함정 징후가 포착되고 있다는 지적이 들린다.

바로 시중자금이 마땅한 투자처를 찾지 못해 만기가 단기인 상품에 몰리는, 즉 시중자금 단기부동화 현상이 그것이다. 일부 이코노미스트는 금리를 줄기차게 내렸는데도 시중에 돈이 돌지 않고 있는 것을 놓고 우리 경제가 이미 유동성 함정에 빠졌다고 단언하기도 한다. 그러나 이성태 한국은행 총재는 12일 기준금리를 낮춘 뒤 유동성 함정을 우려할 만한 상황은 아니라고 진단했다.

한국은행은 이와 관련, “유동성 함정은 기준금리를 내려도 시중금리가 전혀 반응하지 않는 상황”이라고 설명했다. 기준금리 인하에 따라 단기금리를 중심으로 금리가 큰 폭 떨어졌기 때문이라는 얘기다. 아직 우리 경제가 유동성 함정에 빠지지 않았더라도 그런 상황에 대비할 필요는 있다.

예컨대 금리를 낮추는 통화정책 대신 직접 유동성을 공급하는 등 다른 방법을 생각할 수 있다. 직접적인 유동성 공급은 ‘헬리콥터에서 돈을 뿌리는 것’에 비유된다. 벤 버냉키 미국 연방준비제도이사회(FRB) 의장이 “헬리콥터에서 돈을 뿌려서라도 디플레이션을 막겠다”고 발언한 바 있다.

직접적인 유동성 공급 정책은 ‘양적 완화’ 정책으로 불리며, 중앙은행이 금융회사가 보유한 국채와 채권 등을 매입해주는 방식으로 이뤄진다. 양적 완화 정책은 미 FRB가 지난해 12월 “장기 국채 매입을 검토하겠다”고 발표하면서 처음 수면으로 올라왔다. FRB는 지난달 28일에는 “장기 국채를 매입할 준비가 돼 있다”며 한층 강한 의지를 드러냈다.

국내에서는 기업어음(CP)을 한은이 직접 매입해야 한다는 요구가 제기됐다. 이에 대해 이성태 총재는 “요즘은 사람들이 중앙은행이 할 수 없는 일까지 하라고 요구하고 있다”는 말로 한은의 입장을 밝혔다. 이 총재는 지난달 30일 강연에서 “미국에서 GM을 중앙은행보고 도우라고 하느냐”고 반문했다.

그는 이어 “금융이 돌아가도록 하는 게 중앙은행의 임무”라며 나라 경제를 살리는 것이 중앙은행의 역할은 아니라고 덧붙였다. 그러나 이 총재는 “앞으로 필요하다면 더 과감하고 통상적이 아닌 조치까지도 할 준비를 하고 있다”는 말로 여운을 남긴 상태다.

975호 (2009.02.2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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