Cover Story

불황 앞에 선 그대… 원츠 못 찾으면 쪽박신세 

“소비자 욕구 간파 위해 조직체계 정비한 기업 ‘선전’”
통찰경영- 원츠에 울고 웃는 기업들 

1. 빈털터리 전락한 마이더스


1990년대 중반, 대우전자(현 대우일렉트로닉스)는 ‘세제 없는 세탁기’를 출시했다. 세계 최초 무세제 세탁기였다. 대우전자는 성공을 확신했다. 그래서 지은 이름도 ‘마이더스’. 출시 초창기, 마이더스 세탁기는 이름값을 톡톡히 했다.

1998년 아시아 기술혁신상을 받았고, 산업자원부(현 지식경제부)의 신기술 인증(2001년)도 획득했다. 대우전자는 ‘세제가 필요 없다’는 컨셉트 하나만으로 소비자의 원츠(wants)를 제대로 잡을 수 있을 것으로 믿었다.

하지만 이 세탁기는 황금을 주무르기는커녕 단종되는(2006년) 쓴 잔을 맛봤다. 이유는 별다른 게 아니었다. 소비자들은 뜻밖에도 무세제 세탁기의 효용을 의심했다. ‘세탁할 땐 거품이 많이 나야 한다’는 관념 때문이었다.

소비자 원츠를 잘못 짚은 대표적 사례다. 김유경 한국외국어대학교 언론정보학부 교수는 “원츠를 제대로 파악하지 않으면 자칫 쪽박을 찰 수도 있다”고 경고했다. 여기서 원초적 질문 한 가지. 니즈(Needs)와 원츠의 차이점은 무엇일까? 쉽게 말해, 갈증을 풀고 싶다는 욕구는 니즈다.

목마름을 물로 풀겠다는 것은 원츠다. 인정받고 싶다는 소망이 니즈라면 예쁜 옷을 입어야 한다는 것은 원츠다. 니즈는 평균적이고, 원츠는 사람마다 차이가 있다. 가령 인정받고 싶은 욕구는 누구에게나 있지만, 예쁜 옷을 입어야 한다는 사람은 일부다. LG전자 인사이트 마케팅팀 최명화 상무는 “니즈가 기본적 정의라면 원츠는 세부적이고 기능적인 것”이라고 말했다.

이런 맥락에서 ‘산업에서 니즈는 필요 없다’는 의견도 있다. 단국대학교 언론영상학부 전종우 교수는 “갈증처럼 막연하게 느끼는 것이 니즈이기 때문에 기업이 이를 신경 쓸 필요는 많지 않다”고 주장했다. 원츠는 개인 성향에 따라서만 달라지는 것은 아니다. 문화적, 사회적 습성(습관)과도 밀접하게 연관돼 있다.

2. 독일 주부의 ‘조용한’ 불매 운동

인스턴트 커피 판매업체가 들불처럼 일어났던 1980년대, 이들은 독일 시장에 전격 진출했다. ‘간편하게 커피를 마실 수 있다’는 장점이 독일 소비자의 원츠를 휘어잡을 수 있을 것으로 봤다. 결과는? 그야말로 참패였다. 독일 소비자, 특히 주부층은 인스턴트 커피를 외면했다. 불매운동을 방불케 할 정도로 소비가 없었다.

독일에는 당시 독특한 주부 문화가 있었다. 독일 주부들은 커피를 맛있게 타는 것으로 자신들의 성실성을 보여주곤 했다. 일종의 관례이자 관습. 이런 그들에게 인스턴트 커피의 장점인 ‘간편함’이 통할 리 만무했던 것이다. 원츠가 달랐다는 얘기다.
이뿐 아니다. 원츠는 소비자의 마음속에 자리 잡고 있는 고정관념과도 연관돼 있다.

예컨대 ‘김치는 꼭 매워야 한다’는 식의 변하지 않는 관념이다. 전종우 교수는 이를 ‘소비자 스스로 만들어 놓은 거부할 수 없는 카테고리이자 넘기 어려운 울타리’라고 표현했다. 이런 카테고리를 벗어난 것은 제아무리 혁신제품이라도 소비자의 원츠가 아니라는 얘기다.

3. 소비자의 고정관념 넘지 못한 옐로 콜라

해태음료가 야심차게 출시했던 옐로 콜라가 실패한 것은 대표적 사례다. 소비자는 콜라의 이미지를 관념적으로 검은색으로 인식하는 경향이 강하다. 다른 색깔의 콜라는 일단 ‘거부반응’부터 일으키게 마련이다. ‘콜라가 아니다’는 관념이 작용하는 것이다. 옐로 콜라는 소비자의 카테고리 안에 없었고, 이에 따라 원츠도 충족할 수 없었다는 이야기다.

김유경 교수는 “콜라의 블랙 이미지는 이제 고정관념을 넘어, 실체적 진실에 가깝다”며 “이를 인정하지 않고 빨강 또는 하얀색 콜라를 만들어낸다면 소비자의 원츠를 절대 붙잡을 수 없을 것”이라고 했다.원츠는 이처럼 다양한 스펙트럼을 가지고 있다. 원츠를 ‘요하리의 창(Johari’s Window)’에 빗대는 견해도 있다.

김유경 교수는 “소비자의 원츠는 요하리의 창에 네 가지 자아(열린 자아·눈먼 자아·감춰진 자아·알 수 없는 자아)가 있는 것처럼 복잡하고 다양하다”고 말했다. 해외발 불황 쓰나미가 덮친 한국 경제는 지금 시계 제로 상황이다. 1997년 외환위기를 방불케 하는 거센 풍랑을 맞고 있는 기업은 그야말로 악전고투 중이다.

나아질 기미도 보이지 않는다. 얇아진 소비자의 지갑은 자물쇠가 채워진 듯 꽉 닫혀 있다. 문제는 소비자가 무엇을 원하는지조차 파악하기 어렵다는 것이다. 가뜩이나 파악하기 어려운 원츠가 더욱 불투명해지고, 불가측하다는 것이다. 원츠를 찾아 제품을 팔아야 생존할 수 있는 기업으로선 목이 바짝 탈 노릇이다.

최명화 상무는 “소비자는 경기가 침체되면 제품 구입 리스크를 최소화하려는 경향이 있다”며 “그렇기 때문에 소비자의 기존 원츠는 다른 모습으로 나타나게 마련”이라고 말했다. 엘베스트 고경영 부국장은 소비자의 ‘우유부단함’을 이유로 꼽았다. “불황기 소비자들은 제품을 살 때 늘 주춤거리는 경향을 나타내는데, 이 과정에서 기존 원츠가 크게 흔들린다”는 것이다.

이런 이유로 기업들은 너나 할 것 없이 고객대응조직 재정비에 나서고 있다. 불황기 격동하는 원츠를 잡기 위해서다. 아모레퍼시픽은 DCC(Direct Consumer Contact) 시스템을 운영하고 있다. 이는 소비자 원츠를 찾기 위해 마케터가 직접 고객을 만나고 관찰하는 것이다. LG전자는 소비자 인사이트팀까지 별도 조직하고, 원츠 파악에 심혈을 기울이고 있다.

국내외 소비자의 행태를 직접 조사하는 것은 기본. 때론 24시간 관찰도, 때론 눈동자의 움직임까지 분석해 원츠를 찾는다고 한다. 지금으로선 원츠를 제대로 잡아 빠르게 실천하는 게 관건이다. 원츠를 직접 경영하라는 것이다. 원츠를 간파하고, 이를 실천에 옮긴 기업은 극심한 불황 속에서도 힘찬 진군을 계속하고 있다.

4. 소황제 욕구 간파한 LG전자의 승전보

LG전자는 글로벌 경제위기가 본격 불어닥친 지난해, 중국에서 풀터치폰을 히트시켰다. 중국 소비시장을 쥐락펴락하고 있는 이른바 ‘소황제(小皇帝) 1세대’의 원츠를 간파한 게 한몫 톡톡히 했다. 신(新)중산층으로 불리는 소황제 1세대는 중국의 ‘1가구 1자녀’ 정책에 따라 1979년 이후 태어난 세대를 일컫는다.

이 때문에 집안의 사랑을 독차지하면서 성장했다. 물질적 풍요도 그 어떤 세대보다 만끽했다. 그래서인지 주택·가전·패션·금융 등 다양한 분야에서 소비욕구를 분출하기 일쑤다. 과시욕도 남다르다. 돈만 있다면 좋은 휴대폰을 덥석 사는 사례도 많다. LG전자 인사이트 마케팅팀 관계자는 중국에서 수개월 동안 소황제 1세대의 구매욕구를 꼼꼼하게 살폈다.

이 과정에서 소황제 1세대가 가장 원하는 휴대폰은 풀터치폰이고, 가격 때문에 고민하고 있다는 점을 알아냈다. 원츠가 파악되면 곧장 행동에 옮겨야 한다. 그래야 남들보다 먼저 소비자의 원츠를 공략 가능하다. LG전자는 곧바로 풀터치 기능은 강화하고, 다른 기능을 빼버린 제품을 출시했다. 이를테면 값싼 풀터치폰을 출시했던 것. 이는 소황제 1세대의 마음을 관통했고, 이 풀터치폰은 대박을 낳았다. 수개월간 원츠 찾기에 골몰한 LG전자의 의미있는 승전보였다.

5. 고객 마음속으로 ‘닌텐도&리얼클릭의 원츠학’

일본 게임업체 닌텐도가 불황 속 고속성장을 할 수 있는 원동력도 고객 원츠를 정확하게 파악하고 있었기 때문이다. 닌텐도는 그룹 설립 초창기부터 주요 고객인 아이들의 마음을 간파하기 위해 혼신의 힘을 쏟았다. 프리랜서 저널리스트 데이비드 셰프는 자신의 저서 『닌텐도의 비밀』에 이렇게 적고 있다.

“…닌텐도는 어린이와 대등한 입장에서 그들이 말하는 것을 듣기 위해 최선을 다했다. 그 결과 그들로부터 놀라운 발상을 얻기도 했다….” 원츠를 파악해 새로운 제품구상을 꾀했다는 것이다. 닌텐도는 2008 회계연도(2008년 4월~2009년 3월)에 매출액 1조8200억 엔(약 27조3000억원), 영업이익 5300억 엔을 달성할 전망이다.

전년 대비 10% 증가한 규모다. 예상대로라면 도요타를 제치고 일본 상장사 가운데 이익 규모 선두에 오르게 된다. 국내 온라인 광고시장의 새로운 강자로 부상하고 있는 리얼클릭도 마찬가지다. 광고주의 원츠를 사업으로 연결해, 승승장구하고 있는 것이다. 대부분의 온라인 광고업체는 사실 잘못된 원츠를 파악하고 있었다.

광고를 잘 보이는 곳에 배치만 하면 광고주가 좋아할 것이라고 생각했다. 하지만 이는 속단이자 오판이었다. 온라인 광고주는 자신들의 광고효과를 실시간으로 체크하길 원했다. 오프라인, 온라인 광고의 성격이 다르다는 점을 알고 있었다는 얘기다. 이 회사 김연수 대표는 곧장 ‘클릭 과금 시스템’을 만들었다.

광고를 클릭하는 형태로 만들어, 광고효과를 24시간 보여주는 전략을 꾀했던 것. 이는 광고주의 숨은 원츠를 제대로 짚었고, 이 회사 성장의 원동력으로 작용하고 있다. 2005년 7억원에 불과했던 리얼클릭의 매출은 지난해 92억원을 돌파, 100억원 매출 시대 진입을 눈앞에 두고 있다.

6. 대한생명 ‘고객의 어려움이 원츠’

극심한 불황으로 민생이 팍팍하다. 가계 곳간은 텅텅 비어가고, 대출도 어렵다. 예상보다 심각한 경기침체로 대대적인 구조조정과 실업이 잇따르면서 가계 파산 가능성이 높아지고 있다. 그렇다고 취약계층 지원을 위한 사회안전망이 충분한 것도 아니다. 이들의 원츠는 불 보듯 뻔하다. 구조조정에 대비해 현금을 마련하는 것이다.

대한생명은 이 같은 소비자의 원츠를 잘 간파해, 알찬 실적을 올리고 있다. 2007년 11월, 연금자산 50%를 일시금으로 받을 수 있는 골드에이지 변액연금보험상품을 출시해 인기를 끌었다. 매달 1만3000여 건이 판매됐을 정도. 이는 목돈 또는 급전이 필요한 소비자 원츠를 제대로 공략한 상품으로 손꼽힌다.

엘베스트 고경영 부국장은 “불안에 벌벌 떨고 있는 소비자의 마음을 제대로 읽은 상품이 바로 대한생명의 골드에이지 상품으로 보인다”고 평가했다. 이처럼 소비자의 숨은 원츠를 잡아야 한다. 그래야만 지긋지긋한 불황의 늪에서 탈출할 수 있다. 물론 쉽지 않다. 웬만한 통찰력(Insight)으론 원츠를 간파하기 어렵다.

그렇다고 포기해서야 되겠는가? 안 되면 소비자를 24시간 관찰하고, 눈동자의 움직임까지 파악해야 한다. 생존이 달린 문제다. 사상 유례없는 불황이다. 구매 의욕을 잃은 채 곳곳에 떠돌고 있는 소비 부동층의 숨은 원츠를 파악하는 것은 급선무이자 과제다. ‘과제’를 현명하게 풀어야 언젠가 찾아올 ‘축제’를 즐길 수 있다. 소비자의 마음을 꿰뚫어보는 ‘통찰경영’이 필요하다는 얘기다.

리츠칼튼 호텔, 투숙객 원츠 사전에 찾아내 명성
원츠 파악해 승승장구하는 해외 기업들
미국에서 뉴욕타임스 구독을 신청하면 두 번 놀란다. 가장 먼저 놀라는 것은 주말판의 두께다. 주말에만 나오는 ‘시티 섹션’ 등은 물론이고 일반 주간지 판형의 ‘뉴욕타임스 매거진’까지 온다. 하루종일 봐도 다 못 보기 때문에 정기구독자들에게는 목요일과 금요일에 일부 나눠서 배달된다.

이 신문의 일요판을 가판에서 사면 4달러가 넘는다. 1달러 50센트인 평일판의 두 배가 넘는다. 바쁜 맨해튼 사람들이 일요일에 몰아서 정보를 습득하는 습관, 다시 말해 ‘원츠’를 파악하고 있기 때문이다. 더 놀라운 점은 자신이 신문을 받고 싶은 시간을 정할 수 있다는 점이다. 배달 시간이 정해져 있어도, 고객이 요청하면 바뀐다.

뉴욕타임스가 세계 최고 권위의 언론으로 각광받는 것은 내용뿐 아니라 배달·판매방식까지 고객의 원츠에 맞추고 있기 때문이다. 스위스 은행인 크레디트스위스퍼스트보스턴은행은 우량고객의 취미와 관심사를 이용한 것으로 유명하다. 보스턴은행은 상위 15%의 고객이 은행 전체 수익의 85%를 차지하는 것을 이용했다. 상위 15% 고객들을 취미별로 묶어 사교클럽을 조성한 것.

골프, 테니스, 요트 등의 동일한 취미를 가진 고객들에게 사교클럽 비용을 전액 후원하고 지역 유명인사들과의 교류도 시행했다. 부자고객들이 비슷한 라이프 스타일을 가진 사람들과의 교류를 원한다는 것을 파악했기 때문이다. 보스턴은행은 사교클럽 후원을 통해 불과 3년 만에 대부금 잔액이 9배나 늘어났고 고객 증가율도 300%로 끌어올렸다.

리츠칼튼 호텔은 고객이 자신을 특별한 고객이라고 느낄 수 있도록 하는 데 주력했다. 고객이 특정 호텔 브랜드에 로열티를 갖는 것이 아니라 호텔이 자신에게 로열티를 갖고 있다는 생각이 드는 서비스를 제공했다. 리츠칼튼은 한 번이라도 다녀간 투숙객의 세세한 기호를 통합데이터베이스 시스템에 축적해 놓는다. 영국 출장을 갔던 미국인이 한국 관광을 와서도 자신의 기호에 맞게 머무를 수 있는 것.

이는 ‘고객 기호 핫라인’ 프로그램을 시행했기 때문이다. 고객이 프런트에 전화를 걸어 홍차 대신 녹차를 요구했거나, 딱딱한 베개를 달라고 했다면 다음 번 방문에서는 미리 고객의 기호를 맞춰놓는 프로그램이다. 리츠칼튼은 이런 CRM으로 절반 이상의 이용객의 기호를 미리 파악하고 있다.

한정연 기자·jayhan@joongang.co.kr
원츠 파악해 웃는 기업 (회사명·내용·이유 순)
□ LG전자 소황제 열광시킨 풀터치폰의 기적
인사이트 마케팅팀 구성, 소비자 욕구 찾아
□ 닌텐도 매출액 2조 엔 육박 전년비 10% 성장
기업 설립 초창기부터 아이들 마음 간파 노력
□ 리얼클릭 2008년 92억원 매출 달성
온라인 광고주 원츠 파악하고 새로운 시스템 개발
□ 대한생명 매달 3000여 건 이상 가입
연금자산 일부 일시금으로 받는 상품 출시 인기몰이
원츠 오판해 운 기업 (회사명·내용·이유 순)
□ 대우전자 세제 없는 세탁기 참패
(현 대우일렉트로닉스) 한국 소비자의 원츠 ‘거품 나야 잘 빨린다’
□ 인스턴트 커피 판매업체 독일 인스턴트 커피 판매 실패
독일 주부들의 독특한 커피 문화
□ 해태음료 날개 꺾인 옐로 콜라
소비자의 고정관념도 원츠
□ 독일 지멘스 시각+청각 컨버전스 시도 실패
타이밍 못 맞춰 원츠 해소 실패


978호 (2009.03.17)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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