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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앞이 보이지 않는다”혁신과 교육으로 새 길 찾기 

웅진씽크빅 본사 직원 중 12% 혁신업무에 배치 … 삼성·오리온도 계열사 임원들 집중교육 

밥을 굶어도 자식 교육은 거르지 않았던 것이 한국인이다. 불황인 요즘 그렇게 행동하는 기업이 있다. 위기에 수세적으로 대응하기보다 혁신과 재교육을 통해 위기를 기회로 바꾸려는 기업들을 소개한다.

어린이 책으로 가득 찬 파주 출판단지 내 웅진씽크빅 사옥 로비.

지난 4월 3일 오전 10시, 경기도 파주에 있는 이채 쇼핑몰의 한 영화관에는 이른 아침부터 객석이 가득 찼다. 150여 명의 관객은 스크린을 뚫어져라 봤다. 스크린 위에는 영화가 아니라 복잡한 프레젠테이션 자료가 비춰졌다. 관객들은 일반인이 아닌 웅진씽크빅 직원과 웅진그룹 계열사 사람이 전부였다.

이날 행사는 웅진씽크빅이 올해 출범시킨 ‘이노오션(Inno-Ocean)그룹’이 1분기 성과를 발표하는 자리였다. 이날 첫째 발표 주제는 '새로운 고객층을 상대로 한 웅진씽크빅의 000 서비스'였다. "이 서비스에 대한 가격정책은 0000원으로 나왔다"거나 "매년 신규로 창출되는 고객 수는 000000명으로 예상되며" "계층별로 지불능력은 각각 0000원, 0000원으로 추정된다" 등 다양한 내용이 나왔다.

발표 내용은 회사의 대외비라 구체적으로 언급하지 못한다. 이날 발표된 이노오션 그룹의 혁신 내용은 기존 사업부문에서는 엄두를 내지 못하거나 어렵다고 포기한 것도 많았다. 과제들은 ‘공통비용 절감 방안’부터 '신규 고객을 대상으로 한 마케팅'이나 ‘새로운 멤버십 서비스’ 등 다양했다.

일부 과제는 현실적으로 많은 제약이 있는 프로젝트였지만 각 그룹은 현장조사와 사업타당성 조사, 수요자 조사, 기존 사업부와의 협업 타진 등 상당한 수준까지 조사·연구를 진행했다. 그저 아이디어 수준에서 혁신회의를 한 것이 아니라 실제 사업화됐을 경우를 상정해 구체적인 수치까지 도출했다.

이노오션그룹의 혁신발표 주목

발표가 끝난 후에는 사업본부별로 질문과 평가가 이어졌다. 직접 사업을 하는 현업부서에서 보면 이노오션 그룹의 ‘혁신’이 비현실적일 수도 있기 때문이다. 모두 9개 사업본부에서 질문이 이어졌다. “물류비가 너무 적게 책정된 것 아닌가?” 전혀 다른 고객층에 대해 기존 인프라를 활용한 효과적인 영업이 가능한가?"...

답변이 이어졌고 반박에 재반박도 나왔다. 이런 치열한 논쟁이 끝나고 나면 사업부를 상대로 이 그룹의 혁신안을 사업부에서 활용할 것인지 말 것인지 평가가 이뤄진다. 아이디어를 활용하겠다는 사업부의 수가 곧 평가인 셈이다. 평가자를 사장이나 외부 심사위원단으로 하지 않고 사업본부에 맡긴 것도 혁신이 말 잔치가 아니라 현실에서 활용되도록 하기 위한 것이다.

이처럼 웅진씽크빅은 외환위기 이후 최대 불황이라는 올해 초부터 본사 직원의 12%인 60명으로 혁신팀을 구성해 가동하고 있다. 총 11개 팀으로 구성된 이노오션그룹은 불황을 맞아 신성장동력과 수익성 개선을 위한 웅진씽크빅의 풀타임 혁신조직이다. 최봉수 웅진씽크빅 사장은 “혁신은 호황보다는 불황 때 더 필요하고, 실행방법은 부업이 아니라 전업으로 해야 효과가 있다는 판단에서 취임하자마자 이노오션 그룹을 만들었다”고 배경설명을 했다.

이 그룹엔 각 부서에서 우수인력이 모였다. 최 사장은 이노오션팀이 제대로 가동되도록 하기 위해 지난해 고과에서 B등급 이상 받은 사람들만 이노오션팀에 올 수 있다고 사업본부장들에게 지시했다. CEO의 강력한 의지 덕에 이노오션 활동에도 힘이 실리고 있다. 회사 측은 “분기별 평가를 통해 외부 컨설팅 업체가 사업본부에 신사업을 제안하듯이 그룹별로 경쟁을 시키고 있다”고 설명했다.

웅진씽크빅뿐 아니라 웅진그룹은 지난해 하반기 이후 전체 계열사에서 이와 유사한 ‘혁신위원회’ 활동이 붐을 이루고 있다. 웅진그룹뿐 아니다. 오리온그룹도 지난 2월 초부터 상무급 이상 그룹의 핵심 임원만 모아 경기도 양평에 있는 그룹 연수원에서 매주 월·화요일 합숙을 하면서 담철곤 회장과 이화경 사장이 그룹 CEO·임원들과 함께 강의와 토론을 반복하고 있다.

1기는 상무급 이상 임원이었고 3월 초부터 시작한 2기는 6주간 계열사 CEO와 차세대 리더들을 대상으로 한다. 교육내용에는 현재 그룹의 상황과 앞으로의 비전 등 경영관련 주제뿐 아니라 고전강독 등 다양한 프로그램이 포함돼 있다. 주로 이화경 사장이 강연과 토론을 주재하는 것으로 알려졌다.

위기는 결국 사람이 헤쳐나가는 것

오리온그룹 측은 지난 몇 년간 제과를 제외한 신사업의 성장이 정체되면서 위기감이 커져 왔다. 바이더웨이, 메가박스 등을 매각한 후 부동산 개발사업으로 눈을 돌리려는 시점에서 미국발 금융위기가 닥치는 바람에 변신에도 다소 어려움을 겪고 있다. 이런 대내외적 위기 속에서 그룹 수뇌부가 비즈니스 현장에서 떨어져 집중 토론하는 시간을 가지는 것도 흔치 않은 일이다.

오리온그룹 관계자는 “위기일수록 그룹의 핵심인력들이 한뜻으로 뭉치자는 것이 이번 교육의 취지”라고 말했다. 삼성그룹도 임원들이 지난달 말부터 이달 23일까지 순차적으로 삼성인력개발원에 들어가 1박2일 일정으로 불황타개 교육을 받고 있다. 교육 대상은 사장급 이상 최고경영자를 제외한 모든 임원이다.

삼성 측은 공식적으로 “연례적인 행사”라고 부인하고 있지만 전 계열사 임원이 짧은 기간에 교육을 받는 것은 이례적인 일이다. 교육을 다녀온 한 임원은 “교육은 수시로 있지만 올해는 그룹의 상황이 예전과 다른 만큼 느끼는 강도도 좀 다르다”고 말했다. 인사컨설팅 회사인 휴잇의 박경미 대표는 “창의적인 아이디어는 위기 때 나온다”면서 “위기에 어떻게 대응하느냐에 따라 위기가 끝난 후 회사의 운명이 달라지는 것을 외환위기를 통해 느꼈을 것”이라고 말했다. 결국 위기를 헤쳐나가려면 사람들의 힘 이외엔 의지할 것이 없다는 얘기다.

“어려울수록 새 방법 필요”
최봉수 웅진씽크빅 사장은 지난해 12월 1일자로 부임했다. 부임하자마자 그는 이노오션이라는 별동대 조직을 만들었다. 불황기에 그는 왜 영업보다 혁신을 떠올렸을까?

>> 불황이면 현장조직을 더 강화해야 하는 것 아닌가?
“어려움에 처하면 더 열심히 하는 것도 중요하지만 새로운 방법이 필요하다. 새로운 상황에는 새로운 대응책이 우선이다.”

>> 조직의 10%를 떼냈다. 그것도 우수한 직원으로.
“혁신은 부업처럼 하면 안 된다. 회사의 핵심을 데리고 해야 힘이 실린다. 본부장들에게 ‘그만둘 사람 보내면 보낸 사람도 그만두게 하겠다’고 했다.”

>> 현업부서는 인력이 없다고 불평이 있을 법한데.
“전체 인원이 줄지 않았다. 다들 회사일 하는 사람이다. 더 좋은 방법, 더 큰 시장, 더 나은 수익원을 개발하면 현업부서에 바로 도움이 된다.”

>> 혁신이 유행처럼 번진다. 하지만 진짜 혁신된 회사는 많지 않다.
“CEO에게 보이기 위한 혁신이 많아서 그렇다. 우리는 혁신그룹을 11개로 나눠 서로 경쟁하게 했다. 11개 주제도 혁신그룹 사람들이 스스로 뽑은 거다. 11개 과제 중 사업부서에서 어떤 걸 채택하느냐에 그 사람들의 운명이 달렸다. 경쟁하게 하고, 현업부서에서 평가할 수 있도록 했다. 벌써 3개 과제는 현업부서에서 채택해 적용하고 있다.”

>> 이런 때 본업을 떠나면 구조조정 대상으로 의심받을 수 있다.
“우리 회사에서 이노오션은 상시조직이 될 것이다. 여기서 성과를 낸 사람은 금의환향할 수 있다. 이노오션그룹을 만들면서 세 가지 약속을 했다. ‘언제든지 메일을 보내면 답장을 보내겠다, 언제든지 내 방에 상담하러 와도 좋다, 한 달에 한 번은 같이 저녁을 먹겠다’였다.”

>> 성과가 있나?
“앞서 3개 과제가 현업부서에서 채택됐다고 했다. 이미 사업본부들도 자체적으로 혁신팀을 만들어 운용하고 있다. 이노오션그룹에 들어가고 싶다고 메일을 보내온 직원도 몇 명 있다.”


983호 (2009.04.2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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