Focus

미꾸라지 잡는다고 진흙탕이 청정수 될까? 

 

코스닥 시장에 매서운 ‘칼바람’이 불고 있다. 일종의 정화 바람이다. 부실기업을 털어내고 건전성을 확보하겠다는 게 한국거래소의 목표다. 코스닥을 중소·벤처기업의 진정한 요람으로 만들겠다는 각오다. 하지만 ‘미꾸라지 몇 마리 잡는다고 진흙탕이 청정수가 되는 것은 아니다’는 비판도 나온다.

상장기업 1043곳, 시가총액 66조1630억원(4월 8일 현재). 올해로 14세가 된 코스닥시장의 성적표다. 코스닥은 나스닥(NASDAQ)과 비슷한 기능을 하는 중소·벤처기업의 요람이자 신산업 발전과 경제 성장동력 창출의 원천이다.

그래서 장외에 머물고 있는 중소·벤처기업 CEO에게 목표를 물으면 십중팔구 ‘코스닥 입성’이라는 답이 돌아온다. 하지만 코스닥의 빛과 그림자는 뚜렷하다.

한쪽에선 불량기업의 ‘장’이라고 혹평한다. 대주주의 비리·횡령 의혹도 모자라 ‘작전’ 등 검은 머니게임이 판친다는 이유다. ‘코스피(유가증권시장)로 가는 정거장’이라는 오명도 쉽게 털지 못하고 있다.

아시아나항공·LG텔레콤(2007년)·NHN(2008년) 등 코스닥 대장주들이 고구마 줄기 엮이듯 줄줄이 코스피행(行)을 선언했기 때문이다.

“칼바람이 황사를 몰아낼 순 없다”

이들의 코스피행 선언 배경을 살펴보면, 코스닥의 한계가 무엇인지 쉽게 가늠할 수 있다. 코스닥은 기관·외국인 투자가의 외면을 받기 십상이다. 기업 규모가 상대적으로 작은 반면 실적 변동성은 크기 때문이다. 일례로 코스닥 대장기업이 유가증권 시장에 진입하면 연기금·자산운용사·외국인투자가의 투자를 받을 수 있다.

신규 수요가 그만큼 많아져 주식가치도 올라간다. 여기에 기왕이면 큰 물에서 놀고, 머니게임이 판치는 진흙탕에서 발을 빼겠다는 심리도 코스피행을 부추긴다. 한국거래소가 올해를 ‘클린 코스닥 원년으로 삼겠다’며 부실기업 퇴출작업에 전력을 기울이는 것도 이런 이유다.

코스닥의 낡고 부정적인 이미지를 털어버리고 중소·벤처기업의 진정한 요람으로 만들겠다는 계산이다. 거래소의 퇴출작업은 그야말로 대대적이다. 경영부실 등 이유로 상장폐지 위기에 놓인 기업은 64곳에 이른다. 코스닥 상장사 전체의 6% 규모다. 이들이 모두 퇴출된다면 1996년 코스닥시장 개설 이후 최대 수치다.

코스닥 상장사가 가장 많이 퇴출된 2004년(40곳)보다 60% 많다. 포넷·코스모스피엘시 등 7개사는 자본 전액잠식을 이유로 퇴출됐다. 케이디세코·산양전기 등 4곳은 2년 연속 50% 이상 자본잠식률을 기록하거나 자기자본 10억원 미만 등으로 쫓겨났다. 사법보고서를 제출하지 않은 희훈디앤지·H1바이오도 코스닥을 떠나게 됐다.

상장폐지 위기에 놓은 기업도 적지 않다. 3SOFT·KNS홀딩스 등 11곳은 회계감사법인의 감사 거절로 사장폐지 사유가 발생했다. 한국거래소 코스닥시장본부 황성윤 본부장보(이사)는 “이전까진 매출액·자본잠식 등 형식적 기준만 충족하면 퇴출을 면할 수 있었다”며 “하지만 올 초 실질검사제도를 도입함에 따라 매출 조작 등 눈 가리고 아웅하는 식으로 퇴출을 모면해 왔던 한계 기업들은 칼바람을 피하지 못할 것”이라고 말했다.

자본시장통합법에 따라 지난 2월 4일 시행된 실질검사제는 기준 미달 여부를 구체적으로 확인·검증하는 절차를 말한다. 황성윤 본부장보는 또 “클린 코스닥으로 가기 위해선 이 같은 뼈를 깎는 아픔을 겪어야 한다”고 강조했다. 하지만 코스닥이 넘어야 할 벽은 여전히 높고 가파르다.


상장폐지 발표 후 코스닥 지수변동 추이

칼바람이 황사를 몰아낼 수 없듯, 퇴출작업이 곧 ‘클린 코스닥’을 의미하는 것은 아니다. 그간 코스닥 상장사의 퇴출은 연례행사처럼 반복됐다. 2000년 이후 연 평균 27곳이 코스닥에서 쫓겨났다.

문제는 퇴출 이후 과연 코스닥이 건전성을 회복했느냐는 것이다. 답은 ‘아니요’다. 실례로 거래소는 2004년, 2005년 각각 40곳, 39곳을 퇴출했지만 비슷한 기간 횡령·배임 의혹은 오히려 늘어났다.

2005년 17건에 불과하던 횡령·배임공시가 2007년 47건으로 176% 급증한 것이 이를 잘 보여준다.

칼바람 후 코스피지수 상승 “기대감 반영”

요즘도 그렇다. 코스닥 상장기업들은 횡령·배임, 특허침해, 경영권 분쟁 등으로 인한 소송 때문에 홍역을 앓고 있다. 금융감독원에 따르면 코스닥 기업의 소송 관련 공시 건수는 올 들어 160건에 이른다. 코스피 상장사(50여 건)의 3배 이상 규모다. ‘퇴출 칼바람’은 매년 불었지만 고질병은 더욱 깊어진 셈이다.

이유는 별다른 게 아니다. 부실기업이 퇴출된 자리를 또다시 부실기업이 메웠기 때문이라는 지적이다. 악순환의 결과물이라는 것이다. 앞서 언급했듯 코스닥은 중소·벤처기업이 중심이다. 아무래도 대기업과 비교했을 때 검증되지 않은 기업이 많을 수밖에 없다. 우회상장을 꾀하는 기업도 아직 많다.

특히 바이오·풍력·에너지 등 차세대 동력산업을 영위하는 기업은 경상이익·자기자본비율(ROE) 등 까다로운 기준을 통과하지 않아도 코스닥에 입성할 수 있다. ‘성장형’ 벤처기업을 육성하기 위해 마련된 일종의 특례조항 덕분이다. 물론 ‘외부 전문평가기관의 기술평가결과 A등급 이상’이라는 전제가 깔려 있지만 기술이 탁월하다고 꼭 시장에서 통하는 것은 아니다.

구체적 실적이 뒷받침되지 않으면 이들의 기술은 봉이 김선달의 허무한 ‘물장사 놀음’과 다를 게 없다. 한 경제 전문가는 “코스닥에서 퇴출될 위기에 빠진 기업들이 한때 ‘녹색성장’을 테마로 증시를 뒤흔들었던 것을 감안하면 퇴출보다 중요한 게 진입”이라며 “진입요건을 보다 엄격하게 설정해 코스닥을 작지만 알찬 시장으로 만드는 것이 중요한 과제”라고 강조했다.

이에 대해 한국거래소 코스닥시장본부 박성래 시장공시제도팀 부장은 “옥석을 가려 코스닥에 진입시키는 것이 무엇보다 중요하다”면서도 “하지만 높은 성장 가능성에도 아직 이익이 크게 나지 않는 기업에도 기회를 줘야 한다”고 말했다. 상장폐지가 최종 확정된 코스닥 상장기업 14곳의 시가총액은 총 200여억원에 이른다.

여기에 상장폐지 확정 기업 수가 늘어나고, 채권까지 포함될 경우 최대 수천억원에 달하는 시가총액이 감소할 것으로 보인다. 하지만 숫자는 무미건조한 숫자일 뿐이다. 중요한 것은 가치다. ‘얼마나 많은 알짜 기업이 들어차 있느냐’가 클린 코스닥의 관건이다. 코스닥지수는 4월 8일 460.83을 기록했다.

퇴출 칼바람이 불어 닥치기 직전인 3월 31일(421.44)보다 9%포인트가량 올랐다. 시장은 일단 코스닥 퇴출 바람에 ‘기대된다’는 메시지를 보내고 있는 셈이다. 이런 시장의 기대감에 한국거래소는 ‘클린 코스닥’의 완성으로 답해야 한다. 이전처럼 퇴출작업을 하면서도 고질병을 치료하지 못하는 ‘우’를 범해선 안 된다. 그러면 시장의 시그널은 또다시 ‘싸늘하게’ 바뀔지 모른다.




983호 (2009.04.21)
목차보기
  • 금주의 베스트 기사
이전 1 / 2 다음