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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명 바꿔 살림 좀 나아졌나요? 

5년 전 이름 바꾼 코스닥 69곳 중 27곳 5년 연속 적자 … 연속 흑자는 16개사뿐 


▎주식 시세판에 빼곡이 적힌 사명. 지난해 코스닥 상장사 중 83개가 사명을 바꿨다.

코스닥 상장사인 S사. 유명 연예인들이 소속한 엔터테인먼트 회사인 S사는 지난 5년간 사명을 네 번 바꿨다. 그때마다 회사가 밝힌 이유는 ‘기업 이미지 제고’다. 이 회사의 이미지는 개선됐을까? 2월 10일 코스닥시장본부는 S사를 불성실공시 법인으로 지정하고 공시 위반 제재금 3000만원을 부과했다. S사는 소송 판결·결정 공시 지연 5건을 비롯한 20건의 공시 의무를 위반했다. 실적은 형편없다. 이 회사는 최근 5년간 영업손실을 봤다. 전 경영진은 횡령 혐의로 검찰 조사를 받는 중이다. S사는 2월 6일 상장폐지 실질심사 대상에 올랐다.

지난해 상호를 바꾼 상장사는 123개사(유가증권 40, 코스닥 83)다. 회사 이름을 자주 바꾸는 것에 대한 부정적 인식이 확산하면서 예전보다 줄었지만(그래프 참조) 여전히 많은 기업이 이런저런 이유로 사명을 바꾼다.

이코노미스트가 지난해 사명을 바꾼 코스닥 83개사를 조사했더니 45곳이 기업 이미지 제고를 변경 이유로 들었다. 다음은 합병·분할(30곳), 사업 다각화·신사업 진출(17곳) 순이다. 이들 중 절반은 과거에도 사명을 바꾼 적이 있었다.

사명을 바꾸는 것은 기업의 판단이자 재량이다. 글로벌 진출을 위해 우리말 이름을 영문으로 바꾸거나 사업 확대를 위해 조선, 제지, 섬유, 공업, 화학 등의 업종 이름을 삭제하는 경우는 많다. 합병·분할에 따라 부득이 사명을 바꿔야 하는 때도 있다. 2006~10년 이름을 바꾼 상장사는 700곳이 넘는다(중복 포함).

문제는 특별한 이유가 없거나 불확실한 신사업 진출을 명분으로 사명부터 바꾸고 보는 경우다. 또한 회사가 횡령·주가 조작에 연루되거나 최대주주나 대표이사가 바뀌면 이미지 제고를 빌미로 이름을 바꾸는 경우가 허다하다. 우회 상장한 회사가 덜컥 사명부터 바꾸는 사례도 비일비재하다.

E사가 대표적 예다. 이 회사는 2005년 이후 최대주주가 열 번 바뀌었다. IT(정보기술) 사업으로 출발한 이 회사는 버너·오븐 제조, 엔터테인먼트, 곡물 유통 회사로 변신(?)을 거듭했다. 그사이 회사 이름은 다섯 번 변경됐다. 이런 회사에 좋은 실적을 기대하기는 어렵다. E사는 최근 5년 연속 영업이익 적자를 봤다.

부실 감추기 위한 분칠 경우 많아

증권가에서는 잦은 상호 변경을 ‘부실을 감추기 위한 분칠’로 보는 경향이 있다. 실적이 부진하거나 기업 이미지가 악화하면 사명을 바꿔 이를 감추려 한다는 것이다. 또한 준비 안 된 새로운 사업목적을 추가하면서 이름을 바꿔 주가 상승을 노리는 경우도 많다. 그렇다면 ‘부실 기업이 자주 이름을 바꾼다’는 가설은 맞는 말일까?


이코노미스트는 5년 전인 2006년 상호 변경을 공시한 코스닥 기업 97곳의 현황을 조사했다. 28개 회사가 상장폐지됐다. 이 중 4곳은 유가증권시장으로 옮기거나 비상장 회사에 합병되면서 상장 폐지된 경우다. 나머지는 자본잠식, 감사의견 거절, 횡령·배임 등으로 증시를 떠났다.

97곳 중 지금까지 코스닥에 살아남은 회사는 69개사. 5년 전 이들 회사가 이름을 바꾼 이유는 ‘이미지 제고’(36곳), ‘사업 다각화 및 신사업 진출’(21), ‘합병·분할’(10) 순이었다. 하지만 현재 사정은 이런 변경 사유와 큰 차이를 보인다.

69개사 중 40%는 최근 5년 연속 영업이익 또는 순이익 적자를 냈다. 같은 기간 4년 연속 적자를 본 기업을 포함하면 50%를 넘는다. 반면 5년 연속 흑자를 본 기업은 16곳에 머물렀다. 또한 조사 대상 중 현재 사명이 5년 전과 같은 곳은 32곳이었다. 절반 이상이 그사이 또 회사 이름을 바꿨다는 얘기다. 이 중 15곳은 두 번 이상 변경했다.

이는 사명 변경이 기업의 미래 가치나 실적 전환과 무관한 일이라는 것을 보여준다. 오히려 사명을 자주 변경한 기업일수록 부실할 가능성이 크다는 것을 보여준다. 특히 이런 기업일수록 사명을 변경한 후 ‘장밋빛 전망’을 쏟아내는 경향이 있다. 얼마 전 상장폐지된 S사는 2009년 말 실적예측 공시를 통해 2010년 매출 300억원, 영업이익 50억원을 달성할 것이라고 공시했다.

하지만 지난해 상반기 매출 25억원에 214억원 손실을 봤다. 이 회사는 전년에도 실적 전망을 과다 공시해 금융당국으로부터 제재를 받았다.

사명 변경은 주주총회 결의를 거친다. 이 때문에 주총 시즌이 되면 이름을 바꾸는 상장사가 봇물을 이룬다. 티가 덜 나게 묻어갈 수 있을 뿐 아니라 분위기를 쇄신할 수 있는 좋은 기회로 보기 때문이다. 실제로 지난해 상호를 바꾼 123개사 중 46개사가 3월 주총 시즌 중 간판을 바꿔 달았다.

곧 주총 시즌이다. 투자자는 왜 이 기업이 이름을 바꾸는지, 전력은 어떤지 유심히 봐야 할 필요가 있다. 실제로 현재 코스닥 관리종목 대상 38개 종목 중 7곳을 제외하면 최근 5년 내 이름을 바꾼 경험이 있다. 이 중 15곳은 2회 이상 바꿨다.




1077호 (2011.03.08)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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