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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농업CEO 시대] 천수답 농사는 옛말 ‘6차 산업’ 이끈다 

재배+가공+유통·관광 접목…경영마인드로 무장한 농업 기업가 늘어 

김태윤·허정연 이코노미스트 기자, 박인호 전원&토지 칼럼리스트 pin21@joongang.co.kr

요즘 귀농 신드롬을 보면 농업이 신 유망산업이 된 듯하다. 농림수산식품부는 지난해 1억원 넘는 소득을 올린 농업경영체가 1만7000여 곳이라고 발표했다. FTA 파고에 휩쓸린다던 농촌에 무슨 일이 있는 걸까. 답은 기업형 농업, CEO형 농부에 있다. 하늘만 바라보고 농사를 짓는 것이 아니라, 전문 지식과 경영마인드로 무장한 농업CEO가 농촌의 변화를 이끌고 있다. 쌈 하나로 100억원 대 매출을 올리는 농부가 있는가 하면, 재배와 가공·관광을 접목해 농업을 6차 산업으로 발전시키고 있는 농업인도 늘고 있다. 농업 CEO의 성공 사례와 기업형 농업 발전을 위한 대안을 취재했다. 실패 사례와 귀농 때 주의할 점도 알아봤다.

3월 26일 강원도 춘천시 우두동에 있는 강원도농업기술원 소회의실에 20~40대 농업인 30여 명이 모였다. 젊은 농업 CEO들이 주축이 된 ‘영파머스클럽’ 강원 지회 발족식을 위해서다. 참석자는 강원 지역 농업인이 대부분이었지만, 충남 부여·경북 청송 등에서도 발족식을 보기 위해 찾았다. 이 단체 설립을 주도한 최죠셉 영파머스클럽 단장이 회의 도중 한 회원에게 질문을 던졌다. “3000평에 시설 오이를 재배하면 매출이 얼마나 나오죠?” 회원은 “하우스 15동 정도 들어가면 1억원 조금 넘을 것”이라고 답했다. 최 단장은 “농업은 부가가치가 낮고 이익이 잘 안 난다”며 “판을 바꿔야 한다”고 말했다. 이날 모인 영파머스클럽 회원들이 재배하는 농작물은 약초, 토마토, 비타민나무, 가시오가피, 버섯, 신선초, 구기자, 야콘, 쌀 등 다양했다. 하지만 이들은 단순히 작물을 재배하는 것에 만족하지 않는다. 가공·생산·유통을 통해 부가가치를 높이는 기업형 농업을 추구한다는 공통점이 있다. 이 단체가 밝힌 비전은 농업의 규모화, 6차 농업을 통한 산업화, 해외시장 진출을 통한 글로벌화다. 회원들의 명함에는 대부분 ‘대표이사’라는 직함이 찍혀 있었다.

1차 산업인 농업이 ‘6차 산업’으로 진화하고 있다. 농산물을 생산하는 1차 산업의 한계에서 벗어나, 농산물을 제조·가공하는 2차 산업, 여기에 유통 서비스와 관광 상품 등 3차 산업을 접목한 것이 6차(1차+2차+3차) 산업이다. 1990년 대 후반 일본에서 처음 개념이 소개된 6차 산업이 자유무역협정(FTA) 파고로 위기에 몰린 한국 농업의 돌파구로 주목 받고 있다. 6차 산업을 이끄는 이들은 밀짚모자를 쓰고 재배만 하는 농부에 만족하지 않고, 사업·투자 계획서를 쓰고 마케팅과 연구개발(R & D), 제품·비즈니스 모델 개발까지 챙기는 CEO형 농부들이다.

기업형 농업 추구

강원도 강릉시 오죽헌 인근에서 허브파크를 운영하는 박순용 대표는 전형적인 6차 산업형 농업 CEO다. 2000년에 허브파크를 설립한 박 대표는 애초부터 1차(재배), 2차(가공), 3차(서비스) 산업을 융합하는 계획을 세웠다. 허브파크는 허브만 재배하는 것이 아니라 허브비누, 허브차, 공예품 등을 가공해 판매한다. 관광지인 오죽헌의 지역 특색을 고려해 허브레스토랑과 허브체험관 등도 열었다. 최근에는 지역특산물인 블루베리를 이용한 사임당쌀빵을 만들어 좋은 반응을 얻고 있다. 티백 형태의 커피 제품도 시제품을 만들어 테스트 단계에 있다. 브랜드명은 ‘강릉커피’다. 박 대표는 “처음 시작할 때부터 농업을 새로운 산업으로 만들어보자는 생각을 했다”며 “아직 규모는 작지만 지역 생산자들과의 네트워크를 통해 규모를 키워갈 것”이라고 말했다.

전남 보성의 보향다원 최영기 대표도 좋은 사례다. 5대째 녹차 농원을 물려받아 운영하는 최 대표는 2009년 금녹차를 개발해 화제를 모았다. 금녹차는 금콜로이드 용액을 물과 섞어 차나무 뿌리에 뿌려주면 금성분이 차나무에 흡수되는데, 이 잎을 이용해 만든 것이다. 2010년 농림수산식품부가 주최한 제9회 벤처농업창업경연대회 최우수상을 받은 이 제품은 현재 신라호텔, 강원랜드, 오스트리아 차 전문업체인 하스앤하스에 납품하고 있다. 보향다원은 조만간 금녹차를 이용한 화장품도 출시할 예정이다. 보향다원은 녹차체험관도 운영하고 있다. 지난해만 1만 여 명의 관광객이 다녀갔다. 최영기 대표는 해외 시장 진출도 준비하고 있다. 최 대표는 “우리나라 1인당 차 소비량은 50g 정도인데 중국은 열 배가 넘는다”며 “중국시장 진출을 준비하고 있고 1~2년 내 가시적인 성과를 보여줄 것”이라고 말했다.


농림수산식품부에 따르면, 지난해 소득이 1억원을 넘는 농업경영체는 1만6722개다. 2009년 조사 때보다 14% 늘었다. 소득 2억원을 넘긴 농업법인은 760여 곳이다. 이 중 164곳은 소득이 10억원 이상이었다. 농식품부는 고소득 농업경영체의 증가 요인으로 시설 규모화와 생산성 향상, 부가가치가 높은 친환경농업 확대, 생산비 절감 등을 꼽는다. 마케팅 경쟁력과 교섭력 증대, 안정적인 판로 확보도 주요 원인이었다. 농식품부 관계자는 “성공한 농업경영체들은 비용절감과 신기술 개발, 해외 수출시장 개척, 유통혁신 등에 주력했다”면서 “결국 경영하는 농업인의 창의력과 노력이 성공 비결”이라고 말했다.

생산 혁신·R & D·마케팅 전략으로 고성장

그런 사례는 많다. 애농영농조합법인은 생산혁신을 통해 급성장한 곳이다. 일본 동경대에서 농학박사 학위를 받은 천준진 대표는 2004년 귀국해 영농종합법인인 애농을 설립했다. 천 대표는 샐러드 전용 어린잎 채소에 관심을 갖고 연구를 시작해 기존 어린잎 채소보다 작은 마이크로 채소 아이순을 국내 최초로 개발했다. 아울러 친환경 회전식 생산시스템을 도입하는 데 성공해 생산 혁신을 이뤘다. 설립 7년 만에 8개 생산공장과 서울·대전·인천·광주 영업소를 갖춘 애농은 지난해에는 전북 전주시에 유통센터를 구축했다. 애농의 제품은 전국 백화점과 대형마트 등 200여 곳에 납품된다. 지난해 매출은 13억원. 이런 성과를 인정받아 천춘진 대표는 올해 농식품부가 선정한 신지식농업인에 선정됐다.

연구개발을 통해 단순한 영농종합에서 바이오벤처로 성장한 곳도 있다. 경남 진주시에 본사가 있는 금황바이오(대표 성병훈)다. 1995년 진주버섯영농조합을 시작한 이곳은 처음에는 영지, 표고, 느타리 버섯 등을 생산만 하다가, 2003년 고품질의 우량상황버섯을 생산할 수 있는 기술 개발에 성공하면서 금황바이오를 설립했다. 현재 금황바이오는 5600㎡ 면적에서 재배한 상황버섯을 이용해 건강기능식품과 의약품 원료 등을 만들고 있다.

최근에는 경영컨설팅을 통해 돌파구를 찾은 농업법인도 늘고 있다. 전남 곡성군에 있는 황등쌀 영농조합법인이 좋은 예다. 친환경 농법인 ‘6-6-6농법(10a 당 질소사용량 6g 이하, 모내기 6월 실시, 3.3㎡ 당 60주 심기)’으로 생산하는 황등쌀은 2003년 농림부가 주최하는 전국 밥맛 검사에서 장관상을 받을 만큼 품질을 인정받았다. 하지만, 판로는 쉽게 열리지 않았다. 황철규 대표는 경영컨설팅을 받고 해법을 찾았다. 브랜드와 상표·포장재 디자인을 개발하면서, 동시에 임직원들은 마케팅 교육을 받았다. 학교 급식·기업체에 납품하기 위해 시장개척 노하우도 전수받았다. 현재 황등쌀은 서울지역 초등학교에 급식으로 납품되고 있다.

만화가 허영만 화백의 ‘식객’에 나오는 덕산막걸리로 유명한 세왕주조영농조합법인 역시 최근 수출 컨설팅을 받고 있다. 충북 진천에 있는 세왕주조는 3대째 막걸리를 만들고 있는 전통 명가로 유명하다. 쌀 막걸리를 비롯해 검정쌀 먹걸리, 흑미 와인, 덕산약주 등 35가지 제품을 생산하는 세왕주조는 지역문화재로 등록된 90년 된 양조장을 관광상품화해 성공을 거뒀다. 농어촌개발원 서동채 원장은 “이규형 세왕주조 대표와 머리를 맞대고 문화적, 역사적인 스토리텔링이 있는 세왕주조 양조장을 외국인이 체험할 수 있도록 조성해 수출로 연결하는 전략을 추진하고 있다”고 말했다.

생산 혁신을 이루고, R & D 투자를 하고, 경영컨설팅을 받지 않더라도, 발상의 전환만 있다면 성공을 거둘 수도 있다. 양석준 상명대경영학과 교수가 들려준 사례다. 양계장에 닭을 새로 들여 놓으면 며칠 동안 작은 알을 낳는다. 초란이다. 한 농민이 일반 계란보다 크기가 작은 초란을 싼값에라도 팔고 싶어했다. 한판에 980원 정도를 생각했다고 한다. 하지만 이 농민은 생각을 바꿨다. 초란이 정력에 좋고, 영양이 풍부하다는 사실을 알고 이를 마케팅 기법으로 활용했다. 초란이 예로부터 귀한 음식이라 남편도 안 주고 아들만 주는 음식이라고 홍보했다. 판매가격도 기존 계획보다 훨씬 높은 3980원으로 올렸다. 준비한 물량 700판이 이틀 만에 모두 팔려나갔다. 양 교수는 “농산물의 포장과 농산물에 대한 설명, 판매방식만 달라져도 가격을 훨씬 높게 받을 수 있다”며 “농업도 이젠 그 가치를 제대로 인정받아 저렴한 가격이 아닌 제값 받는 작업을 해나가야 한다”고 말했다.

최근에는 농업CEO를 꿈꾸는 학생들도 늘고 있다. 한국농수산대학의 올해 입학 경쟁률은 4.6:1로 역대 최고를 기록했다. 이 대학 학과는 채소학과·과수학과·특용작물학과·식량식물학과·수산양식학과 등 농수산업에 특화돼있다. 학과를 막론하고 학생들이 필수로 이수해야 할 과목은 경영학과 경제학이다. 또한 국내외 선진 농장을 방문해 생산·가공·유통 등 농업경영을 배운다. 양주환 교양공통학과 교수는 “농장 실습을 통해 경영환경은 물론 성공 및 실폐사례를 학습한다”면서 “농장 경영주로서의 경영 능력과 소명감을 확립하는 게 이 수업의 목표”라고 설명했다. 이 대학 졸업생 평균 소득은 연 6516만원으로 상위 100대 기업 평균 연봉보다 300만원 이상 높은 수준이다.


전문성 갖춘 기업농 키워야

기업형 농업과 농부CEO가 주목 받고, 성공 사례도 심심찮게 알려지고 있지만 아직은 성공보다 실패 사례가 훨씬 많은 게 사실이다. 규모가 워낙 작고, 지속적인 성장을 기대할 수 있는 곳 역시 많지 않다. 한 농업전문가는 “IT(정보기술) 벤처기업은 매출 100억원이면 영세업체로 치지만, 농업 분야는 매출이 10억원만 넘어도 부러움을 산다”고 말했다. 또한 그는 “기업형 농업을 위해서는 투자가 받쳐줘야 하는데, 젊은 농업인이 가져오는 사업기획서를 보면 투자를 받기 어려운 것이 대부분”이라고 지적했다. “재배와 가공식품 개발에 서비스를 접목하는 것은 단순히 농산물을 시장에 파는 것보다 보다 치밀한 시장 분석과 마케팅 전략이 필요한데 이는 장밋빛 기대만 갖고 되는 것은 아니다”는 것이다. 농업정책관리단이 운용하는 농식품모태펀드 운용 현황만 봐도 알 수 있다. 농식품모태펀드는 농식품경영체의 성장 기반을 마련하기 위해 민관 합작형태로 조성한 농업금융이다. 2010~2011년 2300억원이 조성됐고, 올해도 1000억원 규모의 펀드가 운용될 예정이다. 투자사의 관심도 많다. 농식품부 김윤종 녹색미래전략과장은 “최근 42개 투자사를 대상으로 농식품 분야 투자의향을 물은 결과 2015년까지 7560억원의 농식품투자조합이 결성될 것으로 기대된다”고 말했다. 하지만 2010~2011년 조성된 2300억원 중 실제로 집행된 투자액은 17개 업체에 395억원 정도다. 투자를 해서 이익을 회수할만한 농업 기업이 그만큼 부족하다는 얘기다.

최근 불고 있는 귀농 붐을 걱정하는 목소리도 크다. 전업 농부도 성공하기 어려운데, 농업지식이나 경영 마인드도 없이 일단 귀농하고 보자는 사례가 많다는 것이다. 전문가들은 도시인들이 성공적인 귀농을 이루기 위해서는 새로운 영역을 개척하겠다는 마음의 각오와 함께 발상의 전환 즉, 혁신적 사고가 필요하다고 지적한다. 단순히 시골로 내려가 농사를 짓는 농부가 아니라 인터넷과 SNS, 자기만의 전문성과 노하우, 그리고 인적 기반을 최대한 활용해 시너지 효과를 만들어내는 ‘CEO형 농부’로 변신해야 한다는 것이다. 국립한국농수산대학 장광진 교수는 “농업관련 패러다임이 양에서 질을 거쳐 가치로 변화하고 있다”며 “농촌 역시 단순한 생산 공간이 아니라 교육, 관광, 체험 등 다기능 공간으로 바뀌고 있기 때문에 농업인 역시 단순 생산자가 아니라 전업농, 자급농, 기업농 이라는 경영인 마인드가 무엇보다 필요하다”고 설명했다. 아울러 그는 귀농에 성공하기 위해서는 뼈를 깎는 자기개발과 함께 과학농업과 판매농업을 잘 이해하고 실천해야 한다고 주문했다. 강원도 홍천군농업기술센터의 윤용권 소장은 “귀농한 사람들은 경험과 노하우가 전무한 생산농업보다는 오히려 도시에서의 전문성과 인적 네트워크를 활용한 판매, 마케팅 및 홍보, 농산물가공 등 부가가치를 높일 수 있는 전후방 활동에 종사하는 게 더 낫다”고 말했다. 그는 “단지 시골농부가 아니라 창의성과 리더십이 강한 도시형 농부가 돼야 한다”고 덧붙였다.

1132호 (2012.04.09)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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