Series

[Golf] 대회 마지막 날 마법은 시작된다 

3라운드 1타차 선두가 우승할 확률 34.5%… 쫓기는 마음이 최대 적 

남화영 골프다이제스트 기자

재미교포 나상욱(미국명 케빈 나)이 늑장플레이 때문에 다잡았던 우승을 놓쳤다고들 한다. 제5의 메이저라 불리는 플레이어스챔피언십에서 그는 3라운드까지 1타차 선두를 달렸다. 우승할 가능성이 커 보인 그가 4라운드에서 무너지고 말았다. 이에 대해 고질적인 늑장플레이 습관과 갤러리의 야유가 그의 발목을 잡았다고들 했다. 다양한 근거가 나왔다. 전날에도 ‘경기 진행이 늦다’는 이유로 경기위원의 경고를 받고 벌타 위기에 몰렸다. 빈 스윙을 반복하다가 어드레스를 풀었고 왜글을 수없이 반복했다. 드디어 마지막 날 갤러리들은 그를 용납하지 않았다. ‘플레이를 빨리 하라’며 야유를 보냈다. 어드레스를 취하고 시간을 끌면 ‘방아쇠를 당기라’며 소리를 쳤다. 챔피언조에서 선두로 출발한 나상욱은 5∼9번 홀에서 보기를 4개나 하며 우승 경쟁에서 멀어졌다. 그린 적중률은 56%까지 떨어졌고 퍼트 수는 31개로 치솟았다. 결국 그날 하루 4오버 76타를 치면서 공동 7위로 떨어졌다.

PGA대회 3라운드 선두 우승 확률 45%

나상욱이 늑장플레이로 인해, 혹은 갤러리들의 등쌀에 밀려 잡을 수 있었던 우승을 놓친 것일까? 일단, 이 대회의 역사를 살펴보자. 제5의 메이저로 이름 높은 플레이어스챔피언십은 역대로 셋째 날 선두가 마지막까지 승기를 좀처럼 이어가지 못했다. 3라운드까지 선두였던 선수가 우승한 건 20년간 8번뿐이었다. 지난해 챔피언인 최경주는 마지막 라운드를 1타차 공동 2위에서 출발해 역시 2위였던 데이비드 톰스와의 연장전에 들어갔다. 그렇다면 선두였던 그레엄 맥도웰은 대체 어찌 되었나? 무려 7오버파 79타를 치면서 공동 33위로 주저앉았다.

미국의 투어 전문 주간지 골프월드는 golfstats.com 자료를 인용해 2007년부터 5년에 걸쳐 미국 PGA투어 243경기를 분석한 자료를 최근호에 실었다. 이에 따르면 공동 선두를 포함해 3라운드 54홀까지 선두를 달리던 선수가 결국 우승 트로피를 들어 올린 대회는 총 109개였다. 선두의 4라운드 우승 확률이 44.9%란 얘기다. 앞서 달리던 선수가 마지막 날에 우승 못할 확률이 더 높아진다는 스코어의 역설이 나온다.

100미터 단거리 경주에서는 75미터 정도에서 순위가 그대로 굳어지는 걸 본다. 단거리 황제 우사인 볼트를 보면 이 정도에서 2위와의 거리차를 더 벌린다. 골프에서도 한 때 타이거 우즈가 3라운드까지 선두였다면 거침없이 우승까지 내달리곤 했다. 그런데 양용은이란 선수한테 역전패 당하고 뒤이어 성추문에 시달린 뒤로는 그런 전설이 무너졌다는 얘기도 들린다.

골프에서는 3라운드의 선두가 오히려 우승하기 힘든 통계를 좀더 파고 들어가 보자. 243번의 경기 중에서 1타차 리드를 지킨 선수가 우승할 확률이 가장 떨어졌다. 84번의 경기 중에서 그대로 우승한 선수는 29명에 불과했다. 우승 확률은 불과 34.5%. 1타차 선두를 달리던 3명 중에서 2명은 돌아가는 차 속에서 눈물을 삼켰다는 얘기다.

1타차 선두였던 올해의 나상욱이나 지난해의 맥도웰이나 우승만 하면 171만 달러(19억원)의 대박이 쏟아져 들어오는데 1번 홀에 섰을 때 과연 떨지 않았을까? 전날 밤에 잠이나 제대로 잤을까? 그렇다면 2타차 선두라면 어떨까? 총 41번의 대회에서 2타차 선두였던 선수가 우승한 경우는 16번으로 이때의 우승 확률은 39%에 그쳤다. 3타차 선두인 경우도 안심할 수는 없다. 36번 중에 15번 우승했으니 41.7%로 반타작도 안 된다.

정리하자면, 3라운드를 마쳤을 때 1~3타 선두를 가지고서는 마지막 날에 우승할 수 없는 확률이 더 높았다. 총 161번의 경기에서 3타차 이내의 선두가 우승한 횟수는 고작 60번으로, 이때의 우승 확률은 37.3%에 그쳤다. 하지만 4타를 앞서서 4라운드를 시작한 선수라면 선두임을 만끽하면서 우승할 확률이 71%(14번 중에 10번)로 높아졌다. 5타차 선두일 때는 오히려 66.7%로 낮아졌다. 6타차 이상 벌어졌을 때는 승률 80%, 7타차 이상이면 100%였다. 4타차 이상 차이가 났던 31번의 경기에서 선두를 달리던 선수가 우승에 이른 경우는 23번이니 승률 74.2%였다.


마지막 날에 근소한 타수의 리드를 지키던 선수가 우승 경쟁에서 오히려 불리한 통계는 미국 PGA투어에서 일반적인 공식이 아니다. 골프월드에 따르면 2003년부터 2006년까지 대회를 분석한 결과 182번의 대회에서 3라운드까지 선두를 지키던 선수가 우승한 경우는 119번으로 확률은 무려 65.4%에 달했다. 그러던 게 2007년부터 최근 5년간 44.9%로 낮아진 것이다. 2007년 이전으로 돌아가 보자. 그때 골프계에는 확실한 황제 타이거 우즈의 독야청청 시대였다. 그리고 황제가 출전해 3라운드까지 선두를 달리면 다른 이들은 황제의 위엄에 지레 겁먹고 주눅들곤 했다. 비제이 싱이나 필 미켈슨 정도로 우즈와 필적한 만한 이들이 3라운드에 아슬아슬한 선두로 치고 나가도 마지막 날에 그들이 우승하는 데 큰 지장이 없었다.

최근의 대회는 양상이 달라졌다. 절대 강자가 없어지고부터는 우승 경험 없는 다양한 선수들이 치고 올라온다. 수퍼스타들이 예전의 아우라를 뿜어내지 못하면서 백가쟁명의 시대에 접어든 것이다. 우사인 볼트가 빠진 100미터 단거리라면 피니시 라인까지 엎치락뒤치락 한다는 얘기다.

올해 파머스인슈어런스 오픈에서 루키인 카일 스탠리는 4라운드를 시작할 때 5타차 선두였다. 하지만 마지막 날 74타를 치면서 공동 선두를 허용했다가 연장전에서 브랜트 스네데커에 패했다. 바로 다음 대회인 웨이스트매니지먼트에서는 반대였다. 최종일 선두에 8타나 뒤진 공동 5위로 4라운드에 나선 카일 스탠리가 선두 스펜서 레빈이 3오버파로 자멸하는 사이에 버디 6개를 뽑아내고 역전 우승을 일궜다. 바로 다음 대회인 AT&T내셔널프로암에서 아직 우승이 없는 위창수는 3일 내내 선두를 달려 3타차 선두였다. 하지만 마지막 날 중압감을 견뎌내지 못하고 주춤해 필 미켈슨에게 우승컵을 헌납해야 했다.


올해의 모든 PGA투어 경기가 이런 흐름 속에서 진행되고 있다. 22개의 경기가 치러졌으나 이 중 제이슨 더프너만 2승을 거둔 상태다. 요즘은 특히 3라운드의 선두에 이전까지 한 번도 우승해본 적이 없는 선수가 올라오는 확률이 더욱 높아졌다.

절대 강자가 없는 요즘과 같은 투어에서 마지막 라운드에 임하는 선두는 쫓기는 심정이 된다. 선두에 오른 선수의 산만함(Distraction)이 4라운드 우승의 가장 큰 적이 된다. 골프 심리학자인 밥 로텔라의 말이다. “마지막 조의 선수는 다른 선수들이 어떻게 쳤는지 볼 수밖에 없는 상황이 마음을 분열시킨다. 그래서 나는 선수들에게 상담할 때 항상 리더 보드를 보지 말라고 조언한다.” 대부분의 선수들이 리더 보드를 보는 순간 생각이 많아지고, 그게 결국엔 자신의 플레이에도 큰 영향을 끼친다는 것이다.

실제로 2007년 이래 공동 선두로 올랐던 선수들의 마지막 날 평균 스코어는 71.35타였다. 이는 그날의 전체 평균 스코어인 71.19타보다 더 나쁜 스코어다. 심리학자들의 분석에 따르면 선두에 선 선수들은 ‘오늘 경기를 망치지 말아야겠다’는 생각을 하는 데서부터 문제점이 생겨난다. 그건 어느 순간 ‘현상 유지’를 원하는 마음으로 바뀌고, 이는 곧 ‘선두를 지켜야 한다’는 강박으로 이어진다는 게 심리학자들의 진단이다.

“리더 보드를 보지 말라”

그래서 똑같이 퍼트를 하나 놓치더라도 3라운드까지는 ‘아쉬움’에 그치던 것이 4라운드에서는 그 놓친 퍼트에 ‘위기감’을 느끼는 것이다. 그런 심리는 스윙에도 작용해서 큰 근육은 굳어버리고 작은 근육들은 빨라진다. 결국 리듬이 깨지게 된다는 것이다. 절대 강자가 없는 세상에서 약간의 선두는 오히려 불리한 조건이다.

‘누군 얼마를 쳤을까? 이길 수 있겠다! 트로피를 들겠다! 상금을 타겠다!’라는 마음이 선수들의 마음에 자리잡는 순간 경기력은 무너지고 만다. 이 불편한 진실, 선두의 역설이 요즘 미국 PGA투어를 보는 관전 포인트다. 그러니 나상욱이 우승 못한 것을 갤러리 탓으로 돌리지 마시길. 그리고, 근본적으로 치열한 선두 경쟁을 벌여야만 하고, 약간 앞섰다고 자만할 수 없는 냉혹한 현실이 골프계의 현상만은 아님을 다들 잘 아시지 않는가.

/images/sph164x220.jpg
1140호 (2012.06.04)
목차보기
  • 금주의 베스트 기사
이전 1 / 2 다음