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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업다각화로 불황 파고 넘는다 

권혁운 아이에스동서 회장 

조득진 포브스코리아 기자
건설·제조·물류·렌털로 영역 넓혀 … ‘건설업계의 워런 버핏’으로 불려



“지금과 같은 건설경기 위축을 정확히 예측한 것은 아닙니다. 하지만 이미 주택보급률이 100%를 넘은데다 도로건설 등 주요 인프라가 포화상태에 이른 우리나라에서 과거와 같은 건설경기 붐이 재연되기는 어렵다고 판단했어요. 게다가 건설산업은 경기 부침에 영향을 많이 받지요. 기업이 한가지 분야의 성공에 안주하면 망합니다.”

권혁운 아이에스동서 회장은 증권가에서 ‘건설업계의 워런 버핏’으로 불린다. 아이에스동서가 본업을 알차게 키우는 동시에 싸게 나온 회사를 인수하며 성장하는 모습이 버핏이 이끄는 버크셔해서웨이의 한국판 같다는 이야기다. 아이에스동서는 건설에 제조·물류·렌털 등 사업다각화로 건설경기 침체에도 리스크를 분산하고 성장세를 구가하고 있다.

5월 9일 서울 청담동 아이에스동서 본사에서 만난 권 회장은 “3~4년 주기로 호황과 불황이 교체하는 부동산 경기 특성상 호황 때 불황을 대비하고 불황 때 호황을 맞을 전략이 필요하다”고 말했다. 다음은 일문일답.

애초 금융맨을 꿈꾸었다고 들었다.


“1974년 대학을 중퇴하고 일본 유학을 준비했다. 하지만 일본행 배는 뜨지 않았다. 그해 8월 15일 광복절 기념식에서 육영수 여사가 흉탄에 숨지는 사건이 터졌는데 범인 문세광이 일본에서 들어오는 배편에 총기를 숨겨온 사실이 밝혀지면서 한·일 관계가 악화됐기 때문이다. 그때 잠시 의탁할 생각으로 대한조선공사 계열의 옥포기업에 취직했다. 성취감이 높고 재미도 있었다. 우연한 기회에 건설업에 뛰어들었는데 궁합이 잘 맞아 평생 일터가 됐다.”

부채와 매출에 대한 경영철학이 눈에 띈다.

“부사장으로 재직했던 신동양건설이 부도나고 연대 보증인으로 집안에 압류 딱지가 붙는 것을 보고 건설업의 위험성을 깨달았다. 건설회사는 아파트 등 상업용 건물이 미분양되거나 경기부침을 심하게 타면 부도나기 십상이다.

제조업을 하다가 망하면 공장이나 기계라도 남지만 건설회사는 부도나면 빈 책상에 먼지 밖에 없다. 아이들 탁상시계에까지 붙은 압류 딱지를 보면서 부채비율이 100%대를 넘어서는 안 된다는 원칙과 건설부문 매출이 40%를 넘지 않아야 한다는 기준을 세웠다. 현재 부채비율은 100%를 약간 넘었고, 건설부문 매출은 전체 매출의 절반이 되지 않는다.”

1949년 경북 의성군에서 태어난 권 회장은 30대 초반에 당시 경남지역 1위 건설사인 신동양건설 임원으로 스카우트 될 정도로 능력을 인정받았다. 부사장까지 지낸 그는 1987년 일신주택을 설립했다. 부산 등 경남권에서 사업을 펼치던 그는 아파트 브랜드 ‘에일린의 뜰’을 앞세워 전국으로 사업을 확장했다.

아이에스동서는 국내에서는 보기 드문 건설·제조 겸영 기업이다. 종합건설회사 일신건설산업이 2008년 국내 건자재업계 선두였던 동서산업을 흡수합병하면서 탄생했다. 국내 건설경기 침체가 계속되고 있지만 매출은 2009년 2997억원에서 지난해 6397억원으로 두 배 이상으로 성장했다.

성장 핵심은 사업다각화다. 2008년 동서산업, 2010년 삼홍테크·대한조선(아이에스해운), 2011년 한국렌탈 등을 인수합병(M&A)하면서 건설·제조·물류·렌탈서비스를 고루 갖춘 중견기업으로 컸다. 그러나 권 회장은 “M&A에 대한 지식도 짧고 M&A라는 말도 좋아하지 않는다”고 말했다. 마치 기업 사냥하는 느낌을 주기때문이다. 대신 그는 ‘사업다각화’라는 표현을 썼다.

사업다각화의 핵심은 무엇인가?

“건설업은 늘 ‘올인’의 유혹에 노출된다. 500억원 규모의 사업을 했다면 이후 800억원 규모의 사업에 도전하게 되는데, 그렇다고 300억원 수익을 낸 것도 아니다. 회사 전 재산에다 금융권 차입까지 더해 투자한다. 이게 바로 올인이다. 어느 순간 돈이 돌지 않으면 모든 것이 무너진다. 건설업만으로 기업을 지속하기는 힘들다. 사업 비중을 나누어 리스크를 분산하는 사업다각화가 필요하다.”

대기업의 문어발식 확장과 무엇이 다른가?

“사업 간의 연관성이 중요하다. 주택건설과 정부 토목공사를 전문으로 하던 일신건설산업은 동서산업을 흡수합병하면서 요업·타일 분야에 진출했다. ‘비데 사관학교’로 불리는 삼홍테크를 인수한 것도 같은 맥락이다. 조선업이 가장 바닥일 때 벌크선 2대를 사들여 아이에스해운을 세운 것도 건설업 호황을 준비한 것이다. 한국 렌탈은 국내 기업의 해외 건설현장에 공장건설장비와 건설 관련 컴퓨터기기를 대여하고 있다.”

동서산업은 1997년 외환위기로 어려움을 겪다가 2001년 부도를 냈고, 법정관리를 거쳐 2004년 대상그룹에 인수되는 등 우여곡절을 겪었다. 하지만 여전히 요업·타일 등 분야에서 1위였다. 두 회사 합병으로 동서산업은 일신건설산업이 갖춘 네트워크를 통해 신규 수요처 발굴에도 나설 수 있었다. 삼홍테크는 유럽을 중심으로 전 세계 50여 개국에 비데를 수출한다.

현재 아들 민석(35)씨는 아이에스동서·아이에스건설·아이에스해운의 대표를, 딸 지혜(38)씨는 삼홍테크 대표를 맡고 있다. 그 결과 아이에스동서에서 건설부문 매출은 전체 매출의 절반도 되지 않는다. 건설경기와 건자재시장이 다소 위축되긴 했지만 기업 전체 매출은 오히려 늘고 있다.

인수합병한 기업을 흑자 전환시키면서 리스크를 분산한 결과다. 특히 권 회장은 부동산 경기가 최고조에 달했던 2007~2008년에는 보유 용지를 매각하며 현금을 확보하고 2008년 금융위기가 터진 뒤 헐값에 나오는 토지를 매입했다. 부동산을 보는 눈이 남다르다는 평가다.

업계에서는 부동산에 대한 권 회장의 ‘감’을 높이 사던데.

“특별한 비결은 없다. 평소 부동산의 흐름을 파악하려고 현장을 자주 찾는다. 염두에 둔 땅이 있으면 아침저녁으로 가 본다. 유동인구가 많을 때도, 한가할 때도 예외없다. 시내 중심가와의 시간적 거리, 도시발전에 대한 비전 등을 따져 보려면 몸소현장을 다녀보는 것이 상책이다.”

최근 승인 받은 부산 용호만 주상복합아파트 사업 계획은?

“부산 용호만 매립지에 69층 4개동의 주상복합아파트를 짓는다. 부산에는 이미 주상복합아파트가 상당량 보급된 상황이지만 용호만 주상복합아파트는 입지 자체가 충분한 경쟁력을 갖추고 있다. 해운대는 바다 조망이 대부분이지만 용호동 사업부지는 해운대·광안리·광안대교 등이 모두 조망권에 있다. 용호동 이기 대도시 자연공원과 요트부두·뮤지컬극장 등이 개발될 예정이며, 상가시설·극장·복합쇼핑몰 등이 생겨 용호만 일대를 부산의 새로운 랜드마크로 만들 수 있을 것이다.”

가족 경영회사다. 자녀들에게 강조하는 것은?

“끊임없이 위기의식을 갖고 생존 방법을 고민하라고 강조한다. 천석꾼은 천 가지 걱정, 만석꾼은 만 가지 걱정이 있듯이 기업이 커질수록 마음을 더 졸인다. 우리 회사가 세계적인 기술을 가진 기업도 아니고 남들 다하는 건설·제조업이니 소비자 신뢰가 중요하다. 최우선은 기업과 임직원의 겸손한 마음이다.”

침체된 건설경기를 살릴 방안은?

“건설이야말로 밑바닥 경기를 살리는 효과가 크다. 기업 규모를 막론하고 모두 건설업과 관련된다. 건설경기를 살리려면 부동산 관련 규제를 더 풀어야 한다. 건설경기 호황 때 정해놓은 법을 불황에도 적용한다면 문제가 크다. 시장에서 자연도태되는 것은 당연한 이치지만 시대에 맞지 않는 규제 탓에 기업이 쓰러지는 것은 막아야 한다.”




1190호 (2013.06.0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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