Column

CEO 에세이 - 태국의 추억과 망고 3개 

 

안규문 밀레코리아 대표



종합상사인 쌍용에 몸 담고 있던 필자는 1997년 1월 태국 지사장으로 발령을 받았다. 날씨는 덥고 음식은 입에 맞지 않을 것이고 치안도 불안할 것이라는 걱정이 들었다. 하지만 태국에서 4년 가까이 지사장 생활을 하면서 느낀 건 딴판이었다. 외국인에게 친절은 기본이요, 매너·음식·치안·숙박 등 어느 것 하나 부족함이 없었다. 물론 날씨가 더운 건 빼고….

태국인들은 언제 어디서나 부드럽고 상냥한 미소와 함께 “싸왓디 캅(안녕하세요)”이라고 말한다. 그러면서 두 손을 모으고 공손하게 합장하는 태국식 인사법 ‘와이(Waai)’로 손님을 맞이한다.

최근 태국관광청(TAT)의 조사 결과 외국인이 태국 관광의 매력으로 가장 먼저 꼽은 게 친절함과 환대였다. 남을 배려하는 매너 또한 훌륭하다. 수도 방콕 거리는 사람 많기로 유명한데 태국 사람들은 다른 사람과 조금만 스치더라도 꼭 “컷톳캅(미안합니다)”이라는 말로 미안함을 표현한다.

빼어난 볼거리·먹거리 이외에 이런 좋은 이미지와 평판 덕에 태국이 동남아 최고 관광지 반열에 오른 게 아닌가 싶다. 미국 뉴욕에 본부를 둔 국제평판연구소 조사에서도 태국이 호평을 받았다. 1997년 설립된 이 연구소는 미국·독일·일본 등 주요 8개국(G8) 국민 2만7000명을 상대로 해마다 50개국의 평판 순위를 매긴다. 올해 순위에서 태국은 24위로, 우리나라보다 10계단이나 높았다.

태국에 좋은 기억을 가진 필자는 얼마 전 태국지사장이 아닌 여행자로서 영원한 반려자와 함께 태국땅을 다시 밟았다. 아직 태국에서 일하는 몇몇 옛 동료를 저녁 식사에 초대하고 싶어 연락했다. 그중 가장 기억에 남는 동료는 태국지사장 시절 출퇴근 및 모든 업무 때마다 운전을 도와준 직원이었다. 지금은 관광객을 상대로 여행 안내를 돕고 있다는 소식을 들었다. 4년 가까이 함께 했던 그를 만날 생각에 기대가 컸지만, 저녁 식사를 마칠 때까지 그의 모습은 보이지 않았다.

식사가 끝날 무렵, 급하게 식당 안쪽으로 그가 땀을 뻘뻘 흘리며 들어왔다. 저녁 식사에 늦지 않기 위해 차를 가지고 바쁘게 서둘렀지만 차가 고장 나는 바람에 급하게 오토바이를 얻어 타고 2시간 반 만에 약속장소에 나타난 것이다. 약속 장소에 힘들게 와준 것도 고마운데 한 손에 든 작은 봉지에 커다란 망고 3개가 있었다. 그는 16년 전 필자가 태국지사장 시절, 따뜻하게 대한 마음이 떠올라 필자의 가족이 좋아한 망고를 어려운 와중에도 사왔다.

그날 사람과 사람이 만나서 생기는 정이라는 것에 국경이 없다는 걸 다시 한번 되새겼다. 가전제품을 판매하고 고객에게 서비스를 제공하는 입장에서 매장을 찾는 손님을 한 사람 한 사람 모두 기억하긴 어렵다. 그러나 고객을 감동시킬 수 있는 감성으로 다가가야겠다는 생각을 태국에서 만난 직원을 통해 다시 절감했다.

우리는 감정보다 이성이 앞서고, 과정보다 결과를 중시하는 세상에 살고 있다. 매사를 계산하고 따지기보다 마음으로 다가갈 때 존중과 신뢰, 기쁨과 열의 같은 감성 에너지가 충만하지 않을까 생각한다.

1216호 (2013.12.16)
목차보기
  • 금주의 베스트 기사
이전 1 / 2 다음