Column

CEO 에세이 - 감사들 하십니까? 

 

이상호 참좋은레져 대표



새롭게 시작하고픈데 뒤를 돌아보니 마무리가 그리 깔끔하지 않습니다. 지금 우리 사회는 노사 간, 정당 간, 계층 간, 세대 간 갈등으로 몸살을 앓고 있습니다. 물론 저는 그리 크게 걱정하지 않습니다. 어차피 시간이 필요한 문제니까요. ‘무관심하다’ 거나 ‘경영자라는 사람이 너무 느긋한 것 아니냐’는 지적을 받을 순 있겠지요.

그렇다고 ‘서둘러 빨리 해결하자’고는 못하겠습니다. 이 모든 갈등의 원인이 바로 그 ‘빨리빨리’에 있다고 보기 때문입니다. 우리는 앞선 나라들이 수 세기에 걸쳐 이룩한 민주적 제도와 문화적 발전 과정을 따라 잡으려 쉼 없이 달려왔습니다. 경제성장은 말할 것도 없지요. 어쩔 수 없이 걷기보단 달렸습니다. 힘들어도 참아야 했고, 결과 앞에 과정은 때로 중요하지 않은 걸로 치부됐습니다. 그러는 사이 ‘빨리빨리’는 한국인의 DNA에 각인됐습니다.

회의나 대화를 할 때 상대방의 이야기가 채 끝나기도 전에 “됐어” 하며 다 들은 냥하고, 조금 세세한 이야기라도 할라치면 “굳이 그런 이야기를 해야 하나? 알아서 해야지”하는 면박이 돌아옵니다. 거두절미를 즐기는 희한한 대화의 방식이 사람들 사이에 쌓이고 쌓였습니다. 그러니 한쪽에서는 불통을 이야기하고, 또 다른 한쪽에서는 억울하다 합니다.

이청득심(以聽得心). 귀 기울여 남의 말을 듣는 것이야 말로 사람의 마음을 얻는 최고의 지혜가 아닐까요? 경청은 배려의 출발점입니다. 저는 조금 천천히 상대방의 말에 귀를 기울이는 것만으로도 갈등 중 상당수는 해결될 것이라 믿습니다. 그러려면 새해에 잘 어울리는 글 하나를 곱씹어보는 것도 좋겠습니다.

섣달 그믐날 일본 북해도의 한 우동집에 두 아이의 손을 잡은 엄마가 들어섭니다. 남루한 차림의 아이 엄마는 걱정스러운 표정으로 이렇게 말합니다. “저, 우동을 1인분만 주문해도 괜찮을까요?” 머뭇거리는 그에게 안주인은 “네, 그럼요”라고 답하고는 주방에 있는 남편에게 “불쌍해 보이니 서비스로 3인분을 내주자”고 제안합니다.

하지만 남편은 “오히려 불편하게 여길 거요”라고 답하고는 티가 나지 않게 1.5인분의 우동을 내옵니다. 수년 전 우리의 심금을 울렸던 구리 료헤이 소설 『우동 한 그릇』의 한 장면입니다. 그렇게 매년 섣달 그믐에 나타나 우동을 먹던 엄마와 두 아들은 수 년이 지나 다시 우동집을 찾아 “우동 한 그릇 때문에 어려운 시기를 잘 넘길 수 있었다”며 감사의 인사를 전합니다.

겉으로 드러나진 않지만 마음까지 훈훈해지는, 받는 사람에게 부담을 주지 않으면서도 진심을 전달하는 그런 배려가 필요한 때입니다. 잘 듣고, 배려하면 감사하게 됩니다. 바라지 말고 내 자신이 먼저 시작해보는 건 어떨까요? ‘감사합니다. 2014’.

1219호 (2014.01.06)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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