Column

CEO 에세이 - 밥 대신 소주가 소중한 까닭 

 

이상홍 KT파워텔 대표



어느새 12월 중순이다. 우리나라는 실제 날씨와 상관없이 12월부터 2월까지 겨울이란 이름을 붙인다. 하지만 뚝 떨어진 기온이나 매서운 바람을 몸으로 느끼는 겨울은 조금 일찍 오기도 하고 더디게 오기도 한다. 그 해의 기상 변화에 따라 또는 개인의 체감에 따라 겨울은 제각기 온다.

식물에 관심이 많은 필자가 눈으로 느끼는 또 다른 겨울의 모습은 꽃양배추로부터다. 가을 들꽃들은 모두 지고, 작은 나무들마저 낙엽을 떨구고 앙상한 가지만 남은 겨울 화단은 황량하기 그지없다.

이 볼 품 없는 화단을 채워주는 큼직한 꽃양배추 화분을 발견하는 순간 ‘아! 겨울이구나’ 하는 생각이 든다.

실제 꽃은 아니지만 바깥쪽은 푸른색으로 꽃 잎 흉내를 내고, 안쪽 포기는 흰색 또는 보라색으로 꽃의 흉내를 내어 사람들의 시선을 끈다. 꽃양배추 때문에 이 겨울 화단의 황량함을 조금이라도 채울 수 있다면, 사람들이 이 겨울을 조금 덜 춥게 느낀다면 꽃양배추는 꿩 대신 닭의 역할을 충분히 다한 게 아닌가 싶다.

날씨가 추워질수록 어려운 사람은 더 힘들어진다. 그래서 겨울은 조금 더 가진 사람들이 마음을 나누는 봉사의 손길이 더욱 필요한 시기다. 필자의 회사에는 파워엔젤이라는 자발적인 봉사 모임이 있다. 이들과 함께하며 알게 된 서울 영등포 역사 노숙자들의 사연을 독자들과 나누고자 한다.

한겨울에도 저녁 8시경 영등포 역사 광장에서는 여러 봉사단체의 재정적인 후원을 통해 노숙자들에게 무료 급식이 진행된다. 이 일을 천직으로 여기는 분이 ‘밥사랑 열린 공동체’ 대표인 털보 목사 박희돈씨다. 언젠가 박 목사님이 왜 그들이 어렵게 번 푼돈으로 왜 술을 사 마시는지 말씀하신 적이 있다.

노숙자들은 왜 술을 마시는가? 우선 밥 대신이다. 배는 고픈데 그 돈으로 음식을 사서 배 불리 먹기는 어렵고, 차라리 배고픔을 잊는 데는 술이 최고이기 때문이다. 약 대신 마시기도 한다. 머리는 쑤실 듯 아프고 신경통으로 온몸이 성한 데가 없는데 소주 몇 잔이면 통증이 다 가라앉는다. 마지막으로 이불 대신이다. 긴 겨울 밤을 대형 냉장고 박스 하나와 비닐로는 견디기 어렵다. 그래서 하루 밤을 견디려 소주를 마신다. 추운 영등포 역사의 밤 기온이 전혀 춥지 않게 느껴지는 참 가슴 아픈 이야기였다.

항상 느끼는 것이지만 내가 가진 것을 나눌 때, 남을 위해 주는 것보다는 얻어오는 것이 훨씬 더 많다. 결국, 돌아오는 건 잘난 나 자신을 발견하고 안도하는 일일지도 모른다. 그리고 마음이나 물질에 몸까지 보태면 훨씬 더 많은 걸 가슴에 담아 올 수가 있다. 어렵고 힘든 이들을 돌보는 일은 기본적으로 국가가 할 일이다.

하지만, 더딘 그들에게만 맡기기보다, 아니 잘난 나 자신을 확인하기 위해서라도 꿩 대신에 닭들이 나서는 건 어떨까. 빨간 제복이 잘 어울리는 구세군의 맑은 종소리에 마음을 열고, 텅 빈 겨울 화단을 채워주는 꽃양배추와 같은 역할을 기꺼이 챙길 때이 겨울이 조금은 더 따뜻해지지 않을까 싶다.

1217호 (2013.12.23)
목차보기
  • 금주의 베스트 기사
이전 1 / 2 다음