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기업주는 무한책임을 진다 

유망중소·중견기업 후계 경영자 ⑧ 이상선 오에스밸브 전무 

국내외 대기업 계약 수주하러 동분서주 … 특수 밸브 틈새시장에 성공적 진입



11월 한달 동안 이상선(34) 오에스밸브 전무는 네 건의 수출 계약을 진행하느라 몸이 두 개라도 모자랄 지경이었다. 11월 11일 말레이시아의 국영기업 페트로나스, 18일 현대건설이 수주한 태국 국영 석유화학기업 LABIX, 19일 일본 고베철강, 21일 일본 JFE엔지니어링과 잇따라 밸브 공급 계약을 했다.

“업계에서 이름만 대면 아는 글로벌 기업이 저희 제품을 선택했습니다. 지난 수년 간 기술 개발을 위해 노력한 성과를 인정받는 것 같아 뿌듯합니다.”

경기도 김포시의 오에스밸브는 2006년에 설립된 신생기업이다. 석유화학 발전소에서 사용하는 플러그 밸브와 게이트 밸브가 주력 제품이다. 오에스밸브의 모회사는 오성컴퍼니다. 1980년 이 전무의 아버지 이용면 오성컴퍼니 대표가 설립한 기업이다. 산업용 정화시스템에 들어가는 활성탄과 석유화학용 촉매를 공급한다. 지난해 250억원의 매출을 올렸다.

“30년 가까이 대기업에 활성탄을 공급한 작지만 탄탄한 기업입니다. 하지만 우리 제품을 직접 만들어 보고 싶은 마음에 7년 전 밸브 사업을 시작했습니다.”


25세 젊은이의 과감한 도전

국내 석유화학 밸브 시장 규모는 약 1조원. 그중 오에스밸브가 치고 들어간 석유화학용 특수 밸브 시장은 3000억원 규모다. 한국 대형 밸브 제조 기업이 크게 신경 쓰지 않는 틈새시장이다.

오성컴퍼니는 석유화학공장과 발전소에 활성탄을 납품해 온 기업이라 인적 네트워크가 탄탄하다. 유통구조도 잘 알고 있어 효과적인 영업·마케팅을 할 수 있다. 승산이 있다고 판단한 이 대표는 아들과 함께 사업을 시작했다.

“최신 제품을 만들어 시장에 진출할 계획을 세웠습니다. 경쟁사 대부분 오래된 기업이라 보니 순익이 적은 제품을 위해 새로 제조공정을 만들기 어렵습니다. 마침 설비 투자를 늘리는 대기업은 최신 설비를 원하고 있었습니다. 신생업체의 강점을 살려 융통성 있게 회사를 운영하면 살아남을 것이라 생각했습니다.”

오에스밸브는 2004년부터 사업을 준비했다. 당시 이 전무의 나이는 불과 25세. 겁 없는 젊은이의 도전이었다. 먼저 은퇴한 기술자를 찾아 다녔다. 경력 30년 이상의 정년퇴직자를 찾아가 초빙했다. 주말이면 도서관을 찾아 밸브 공부를 시작했다. 사람을 모으고 기계 설비를 주문했다. 처음엔 예상대로 잘 돌아 갔다.

2006년 회사를 설립하자마자 반 년 만에 GS칼텍스 전남 여수 공장에 납품할 수 있었다. 직원들과 함께 밤을 세워가며 제품을 만들었다. 제품에 대한 평가도 좋았다. 하지만 곧 커다란 벽에 부딪혔다. 기존 업체의 견제가 시작되며 거래처 뚫는 일이 점점 어려워진 것이다.

“밸브 업계는 대단히 보수적입니다. 단순히 세일즈 개념으로 접근하면 안됩니다. 이곳은 사람 보고 거래합니다. 얼마나 믿을 수 있는지 먼저 신뢰를 쌓아야 거래가 가능합니다. 무턱대고 달려든 신생업체가 고전하는 것이 당연했습니다.”

설립 이후 3년 간 오에스밸브는 고전했다. 이 전무는 살길을 찾기 위해 해외로 눈을 돌렸다. 2009년 중앙아시아·동남아시아·중동을 다니며 거래처를 뚫었다. 고생 끝에 이란의 칼비안 페트로케미컬에 제품을 공급하는 50만 달러 상당의 계약을 따낼 수 있었다.

“제가 수주한 첫 해외 계약입니다. 이란 은행에서 대금 지불을 보증 받은 다음 제품을 보냈습니다. 그런데 생각지도 못한 악재가 터졌습니다. 미국의 대이란 제재가 시작되며 모든 이란계 은행의 거래가 정지됐습니다. 하늘이 무너진다는 말이 뭔지 알 것 같았습니다.”

물건 실은 배는 떠났고, 이란 은행은 거래가 중지됐다. 이 전무는 대금을 받기 위해 동분서주했다. 매일 이란에 전화를 걸며 아쉬운 소리를 하거나 화를 냈다. 대금은 반 년이 지나서야 독일을 경유해서 받을 수 있었다. 이 전무는 추가 계약을 따내기 위해 동분서주 했다.

그 와중에 확실히 배운 일이 있다. 계약만 따오면 나머지는 회사가 알아서 돌아갈 것이라 생각했는데 큰 오산이었다. 이 대표는 아들에게 “중소기업 CEO가 어떤 자리인지 모른다”며 싫은 소리를 했다. 하지만 이 전무는 세대차이라 생각하고 자신의 일에 매진했다. 그러다 한 사건을 겪었다. 생산한 밸브는 나무 상자에 담아 배송한다.

그는 박스 수만 확인하고 물건을 보냈다. 곧장 불호령이 떨어졌다. 박스에 담긴 밸브를 일일이 확인하지 않아서다. 실제로 배송된 밸브 중에는 페인트가 벗겨진 제품이 있었다. 완전히 마르기 전에 포장한 탓에 상자 벽에 닿은 부분이 벗겨진 것이다. 새로운 제품을 보내주며 그는 생각했다. 왜 다른 사람의 실수를 내가 책임져야 하는지. 답은 간단했다. 기업주 가족이기 때문이다.

“직원은 시키는 일만 해도 됩니다. 오너는 결과를 책임지는 사람입니다. 그러려면 직접 뛰고 만들고 확인해야 합니다. 항의가 들어온 다음에야 배웠습니다. 대표 심정을 조금이나마 이해할 수 있었습니다.” 이 전무는 시간만 나며 해외로 나가 발품을 팔았다. 2011년에 들어 해외 계약 건수가 하나 둘 늘기 시작했다. 미국·일본·인도네시아·말레이시아에 소량이지만 제품을 수출했다. 매번 이번이 마지막 기회라고 생각하며 밸브를 만들었다.

해외에 진출하는 한국 대기업의 움직임도 주목했다. 그의 눈에 모로코 국영비료공장 건설 프로젝트를 따낸 대우건설이 들어왔다. 당장 샘플을 들고 회사로 향했다. 그는 담당자를 찾아 기회만 준다면 대우건설의 조건에 충족하는 제품을 들고 오겠다고 사정했다. 마침내 제품 테스트에 응할 수 있는 기회를 얻은 이 전무는 곧장 제품 개발을 시작했다. 대기업 납품 조건은 웬만한 국가 기준보다 더 깐깐하다. 납품 제품이 잘못되면 기업 이미지에 악영향을 미치기 때문이다.

11월에만 해외 기업 네 곳과 계약

특히 모로코에서 사용할 제품은 까다로운 편이었다. 공장이 해안가에 있어 부식 저항력이 강한 재료를 사용해 특수코팅까지 해야했다. 실수하면 끝이기에 이 전무는 모든 제품을 직접 관리하며 만들었다. 그는 대기업과 일하며 많은 것을 배웠다. 대우건설은 일단 일을 시작하자 제작 과정과 해외 제출 서류를 검토해줬다.

“얼마나 밤을 지샜는지 기억도 안 납니다. 아침 7시까지 제품 조립해 9시에 테스트 받은 일도 있습니다. 그 결과 올 여름에 500만 달러 상당의 제품을 납품할 수 있었습니다. 우리 회사 역사상 가장 큰 계약이었고, 주위에서 오에스밸브를 보는 눈도 달라졌습니다.”

대형 계약을 성공리에 마무리하자 해외 인지도가 높아졌다. 여전히 신생업체지만 믿을 수 있는 제품을 합리적인 가격에 공급하는업체라고 평가 받을 수 있었다. 여세를 몰아 이 전무는 올 11월에만 4개 글로벌 기업과 제품공급 계약을 했다. “지난해 매출은 내수에서 7, 수출에서 3 정도 비율로 올렸는데요, 올해는 수출에서 6 내수에서 4 정도로 변했습니다. 앞으로 수출 비중을 꾸준히 높여가며 회사를 키워볼 생각입니다.”

1216호 (2013.12.16)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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