People

CEO - 독일 본사도 ‘한 국식 경영’ 배우죠 

안규문 밀레코리아 대표 

9년 간 해마다 15% 성장 강남 부유층에 고가 명품 이미지 심어



지난해 12월 10일 독일 명품 가전기업 밀레의 안규문 한국 대표는 부담스런 손님을 맞았다. 마르쿠스 밀레와 라인하르트 진칸 밀레 공동 회장이 본사 주요 경영진과 아시아 7개국의 법인장 등 모두 28명을 이끌고 한국을 찾았기 때문이다. 이들은 한국에서 열리는 ‘밀레 2014 비즈니스 플랜 미팅-아시아’ 행사 참석을 위해 방한했다.

안 대표는 행사 기간 동안 한국을 찾은 경영진에게 밀레코리아의 성공 사례를 소개하는 시간을 가졌다. 실제로 마르쿠스 밀레와 라인하르트 진칸 밀레 공동 회장은 “아시아 비즈니스가 무엇인지 한국을 보고 배워야 한다”며 한국을 찾은 이유를 설명했다.

밀레의 오너이자 최고경영자가 방한한 것은 이번이 처음이다. 안 대표는 “아시아지역의 발전 가능성과 주요 현안을 논의하는 자리를 한국에서 가진 만큼, 밀레브랜드 가치에 기여할 수 있는 방법을 모색할 것”이라며 “한국시장에서 밀레가 꾸준히 성장해가는 모습을 알리는 기회로 삼겠다”고 말했다.

밀레는 1899년 진칸과 밀레 가문이 함께 설립한 기업이다. 세계 40여개국에서 사업을 벌인다. 한국에는 2005년 진출했다. 밀레코리아는 설립 이후 해마다 15% 성장을 이뤘다. 국산 브랜드 점유율이 90% 이상인 국내 가전시장에서 고품질의 진공청소기·세탁기·전기레인지를 내놓는 차별화 전략으로 자리 잡았다. 밀레 본사가 한국을 주목한 이유를 묻자 안 대표는 ‘기존 관행에 안주하지 않는 혁신과 차별화 전략’을 들었다.

한국 법인 설립 당시 밀레코리아는 B2B(Busieiss to Business) 방식, 즉 기업을 대상으로 제품을 판매했다. 밀레 주력 제품인 냉장고와 세탁기 판매의 70%를 B2B로 소화했다. 서울 도곡동 타워팰리스와 삼성동 아이파크, 한남동 더 힐 같은고급 주상복합아파트에 프리미엄 빌트인 가전을 납품하며 이름을 알렸다.

안 대표는 쌍용에 입사해 쌍용 쿠웨이트 지사장, 쌍용시멘트 건재부 부장, 방콕 지사장을 거쳤다. 2003년 쌍용그룹 계열사인 코미상사 대표로 재직하며 밀레 제품을 수입했다. 2005년 밀레가 한국 지사를 설립하며 대표로 부임했다. 건설 자재 사업 경험이 있는 안 대표는 국내 부동산 시장의 흐름에 관심이 있었다.

그는 부동산 시장의 변화를 느꼈다. 특히 대단지 아파트의 인기가 예년만 못했다. 이는 B2B로 제품을 판매해온 밀레코리아에 큰 영향을 미칠 수 있는 변수였다. 그는 고객에게 직접 제품을 판매하는 B2C(Business to Consumer) 비중을 서서히 늘렸다. 본사는 왜 불필요한 일을 하느냐는 반응이었다. “밀레는 아시아에서 B2B 위주로 사업을 벌였습니다. 브랜드 이미지 관리가 편하고 마케팅 비용도 아낄 수 있기 때문입니다. 지속성장을 위해 꼭 필요한 일이라며 B2C 사업을 확대했습니다.”

본사 경영진 28명 방한해 성공담 경청

B2C로 사업을 확대한 데에는 제품에 대한 자신감이 있었다. 그는 “밀레는 사용자 중심의 제품 설계와 확실히 검증된 제품만 내놓으며 브랜드 이미지를 관리해온 기업”이라며 “소비자들도 모르고 지나치는 세세한 부분까지 고려하며 글로벌 가전 시장에서 프리미엄 브랜드 자리를 지켜왔다”고 설명했다.

그의 경영전략은 실적으로 나타났다. 9년 간 밀레코리아의 매출과 영업이익은 한번도 꺾이지 않고 성장 곡선을 그렸다. 국내 부동산 시장불황으로 B2B 관련 매출은 크게 줄었지만 B2C에서 나온 실적으로 이를 만회하고 남았다. 지난해 밀레코리아 매출의 90%가 B2C에서 나왔다.

밀레코리아의 실적은 다른 아시아 법인과 비교됐다. 일본·홍콩·싱가포르·인도 등 밀레 주요 아시아 법인은 여전히 B2B 중심으로 사업을 벌인다. 부동산 시장이 호황이면 전년 대비 두 배 수준의 매출을 올릴 정도로 높은 실적을 올렸다. 하지만 불황기에는 실적이 반 토막 나며 경영에 어려움을 겪었다. “독일 기업은 꾸준함을 선호합니다. 밀레코리아가 시장을 예측하며 미리 대비하는 모습을 인상적으로 바라본 이유입니다.”

본사에서 주목한 한국만의 특징에는 남다른 고객 관리 방식도 있다. 밀레코리아 본사 건물 매입이 좋은 사례다. 밀레 아시아 법인은 도심의 교통·문화 중심지에 사무실을 차린다. 항상 건물을 임대해서 사용했다. 안 대표가 서울 강남지역의 건물을 구입해야 한다고 건의하자 본사 경영진이 크게 반발했다. 회사 정책에 반하는 불필요한 지출이란 것이다. 건물을 임대해서 사용하는 아시아 법인의 경우를 봐도 사업에 아무 문제가 없다는 논리였다.

안 대표는 세가지 이유를 들어 빌딩 매입을 주장했다. 먼저 건물을 구입하면 고객 신뢰가 높아진다. 이전에 한국에 진출했지만 실적이 나오지 않자 철수한 글로벌 기업이 있다. 고가의 제품을 구입했지만 본사가 철수한 탓에 사후관리(AS)를 받지 못한 소비자들이 많다. 한국에 뿌리를 내리고 사업을 벌일 것이란 인상을 줘야 한다.

둘째, 비용을 봐도 구입이 유리하다. 시간이 지나면 임대비용이 건물 구입 비용을 넘어선다. 강남 부동산의 특성상 건물주가 임대료를 크게 올릴 가능성이 있다. 이사 비용, 고객에게 새로운 장소를 공지하는 비용, 홍보 자료와 명함 등을 다시 만드는 비용이 상당하다. 마지막으로 10년 정도 지나면 건물 앞에 지하철이 지나갈 가능성이 크다. 그러면 건물 가격이 크게 상승해 회사에 이익을 줄 수 있다.

본사 경영진은 고심 끝에 안 대표의 손을 들어줬다. 밀레코리아가 서울 역삼동 차병원 사거리의 빌딩을 매입한 배경이다. 그로부터 9년이 지난 지금 본사 경영진은 안 대표의 판단에 높은 점수를 준다. 밀레 제품의 가격대는 높은 편이다. 냉장고는 800만원, 세탁기와 커피메이커도 200만원을 호가한다. 부유층을 상대로 마케팅을 벌일 때 본사가 강남에 있다는 점은 강점이다.

서울 강남과 한남동에서 연락이 오면 30분이면 찾아가서 애프터서비스를 제공할 수 있다. 건물에서 나오는 임대 수입도 짭짤하다. 밀레코리아는 8층 건물 중 3개층을 임대하고 있다. 마지막으로 차병원 사거리에 9호선 연장 노선 지하철역이 공사 중이다.

강남에 빌딩 매입해 근거리 A/S

“2년 전 일본 법인이 본사를 이전했습니다. 기존 건물주가 임대료를 올려서입니다. 당시 일본 부동산 가격이 크게 올라 변두리로 자리를 옮겼습니다. 이때 일본 법인장이 건물 구입을 이야기했다 혼이 났습니다. 왜 부동산 가격이 오른 다음에서야 이야기를 꺼냈느냐는 것이지요. 옆 나라 한국을 보고 배우란 이야기가 나왔다고 합니다.”

안 대표는 올해 밀레의 최고급 주방용품을 추가로 들여와 소비자들에게 내놓을 계획이다. 그는 “까다로운 한국 소비자들을 만족시키려면 품질로 승부해야 한다”며 “제품군을 밀레의 최고급 제품군으로 확대해 한국시장을 공략할 계획”이라고 말했다.

1220호 (2014.01.13)
목차보기
  • 금주의 베스트 기사
이전 1 / 2 다음