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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일형 대외경제정책연구원장 - “포용적 성장으로 소득 불균형 해결” 

규제 완화로 일자리 늘리는 정책 펴야 대학의 선별적인 기술교육도 중요 

박근혜정부의 한국 경제 활성화에 대한 화두는 ‘저성장 해결’로 대표된다. 경제 성장률이 잠재 성장률을 겨우 웃도는 현 시점에서 저성장의 피해는 경제 곳곳에 막대한 영향을 미친다. 수출은 비교적 호조지만 내수가 전혀 성장을 하지 못하는 게 핵심이다. 이런 원인으로 소득 불균형이 꼽힌다. 2000년대 초반부터 미국 신자유주의 경제학파가 득세하면서 전 세계 소득 불균형은 심화됐다. 한국의 경우 경제협력개발기구(OECD) 국가 가운데 소득 불균형은 상위권에 올라 있다.


이런 이유에서일까. 올해 소득 불균형의 문제를 파헤친 토마 피케티 파리경제대학 교수의 저서 <21세기의 자본>이 한국에서도 유행처럼 번졌다. 피케티는 주요 선진국을 대상으로 300년간 소득과 부의 자료를 통해 각국의 불평등 수준을 실증적으로 측정했다. 자본수익률이 경제 성장률보다 더 크다는 게 초점이다. 돈이 돈을 더 벌어주기 때문에 시간이 흐를수록 부익부 빈익빈이 심해진다는 분석이다.

소득 불균형이 한국 경제의 발목을 잡고 있는 가운데 의미 있는 세미나가 열렸다. 대외경제정책연구원(KIEP)은 12월 10일 서울대에서 국제노동기구(ILO)·서울대와 공동으로 ‘소득 불평등과 지속가능한 성장’을 주제로 세미나를 개최했다. 이번 행사를 마련한 이일형(56) KIEP 원장을 만나 저성장의 문제점과 소득 불평등 해결책을 들어봤다. 이 원장은 “과거 경제 데이터에 다양한 추정방법을 적용해보면 소득 불평등이 경제 성장에 부정적인 영향을 미친 것으로 나타났다”며 “이런 소득 불평등을 해결하기 위해서는 포용적 성장을 통한 경제 선순환이 필요하다”고 강조했다. 그는 영국 런던경제대학(LSE)을 졸업하고 워릭대에서 경제학 박사 학위를 받았다. 이후 국제통화기금(IMF)에서 24년 간 일했다. 지난해 5월 주요 20개국(G20) 국제협력대사(셰르파)로 임명되면서 IMF 생활을 정리하고 귀국했다. 셰르파는 각국 정상을 대리해 G20 정상회의 의제 등을 조율하는 자리다. 이어 지난해 8월 제9대 KIEP 원장에 선임됐다.

올해 피케티 열풍으로 소득 불평등에 대한 관심이 큰 데.

“이번 세미나는 지난해 초부터 준비했다. 사실상 박근혜 대통령의 고민에서 시작됐다. 현 정부는 소득 불균형을 해결해야 저성장을 극복할 수 있다고 본다. 박 대통령의 경제 정책의 핵심은 ‘창조경제, 포용적 성장, 질서가 바로 선 시장경제’의 세 가지로 요약할 수 있다. 이 가운데 소득 불균형 해결의 키는 포용적 성장이다. 단순히 ‘소득 불균형이 OECD 국가 가운데 몇 위다, 올해 더 나빠졌다’는 식은 의미가 없다. 해결책이 중요하다. 지난 6월 여러 가지 계량적 방법으로 소득 불균형을 조사한 결과 포용적 성장이 실패하면 경제 성장 견인이 어렵다는 결론이 나왔다. 결국 포용적 성장 아래 일자리 창출 중심의 성장 전략을 짜야한다.”

세계 경제가 저성장에 갇혀있다. 내년에도 부정적 전망이 많은데.

“세계 경제 저성장의 이유는 급속한 세계화의 후유증이다. 세계화에 따른 기술혁신으로 일자리가 줄었다. 금융의 산업화가 가속하면서 전 세계에 너무 많은 유동성이 나타났다. 그동안 이런 유동성을 바탕으로 선진국이 고속 성장을 했고 개발도상국이나 신흥국의 수출로 이어지면서 세계 경제가 성장했다. 문제는 부의 불균형, 소득의 불균형이 심화한 데 있다. 중산층의 생활이 어려워졌다. 중산층이 준 것도 있지만 소득이 준 게 치명타다. 일반적으로 가계 부채가 줄면 소비가 늘어나야 하는데 실제 그렇지 않은 게 이런 이유다. 더구나 가계 부채는 2008년 글로벌 금융위기 이후 줄어들지도 않았다. 오히려 늘었고 기축통화인 달러를 쓰는 미국만 통화확대로 평행선을 유지했다. 유럽과 일본에서는 가계 부채가 급격히 증가한다.”

한국 경제도 가계 부채가 취약점으로 꼽힌다.

“소비가 늘려면 경제 선순환이 이뤄져야 한다. 문제는 가계 소득이 그대로라 소비를 더 늘리지 못한다는 데 있다. 소비가 늘지 않으니 기업은 투자를 하지 않고 다시 일자리가 줄어 소비가 주는 악순환이 된다. 생산에 따른 소득을 구분할 때 가계·기업뿐 아니라 노동·자본·경영으로 구분할 수 있다. 노동 임금(자영업자 포함)은 지난 30년 동안 지속적으로 떨어졌는데 유독 기업 이윤만 올라갔다. 정부가 재정을 확대해 경제를 견인하려고 밀다가 주저앉는 현상이 종종 나타난다. 이런 재정확대는 기업의 혜택으로만 이어졌다. 기업의 이윤은 금융위기 이후 더 커졌다. 단순한 재정정책이 아닌 근본적인 해결이 필요하다.”

일자리 창출은 역대 정권의 핵심 공약이었지만 별다른 성과를 거두지 못했는데.

“일자리 창출 중심의 성장 전략을 짠다는 것은 경기 변동성 있을 때 일자리를 만들어 주는 땜빵 식의 재정확대가 아니다. 새로 창출된 일자리는 직접적으로 부가가치와 연결되고 지속성이 있는 것을 말한다. 공공근로 형태가 아닌 이른바 양질의 일자리다. 부가가치가 창출되는 일자리로 소비자들이 원하는 것을 생산해야 하는 게 기본 조건이다. 요즘 가격을 결정하는 공급과 수요곡선의 교차점이 세계화 영향으로 좌측으로 이동했다. 이런 문제로 잉여 노동력이 발생한다. 억지로 자영업을 하거나 실업자가 되는 구조다. 해답은 가격 결정 지점을 제자리로 돌아가게 변화를 줘야 한다. 경쟁을 활성화하면 숨어 있는 일자리가 수면 위로 떠오른다. 경쟁 활성화의 세 가지 조건은 규제 강화, 규제 완화, 경제민주화로 대표된다.”

이명박 정부에 이어 현 정부도 경기 부양을 위해 재정확대를 하는데.

“당시 4대강 사업과 지금의 재정확대는 기본적으로 다르다. 확장적 재정정책은 무조건 지출을 늘리는 것이 아니다. 4대강은 정부가 투자를 많이 해 경기를 활성화하겠다는 개념이다. 현 정부는 포용적 성장을 위해 재정지출을 확대하는 것이다. 경기를 부양한다고 무작정 과도하게 재정을 푸는 것은 지양해야 한다.”

경쟁(규제 완화 및 강화)을 통해 포용적 성장을 하려면 시간이 너무 걸리지 않는가.

“시간이 걸리기 때문에 중간에 확장적 재정정책을 통해 성장을 견인해줘야 한다. 경쟁이 이루어지면 생산이 늘어나고 일자리 창출이 가능해진다. 그동안 경쟁이 안 됐던 이유는 독점도 있었지만 진입장벽이 큰 문제였다. 독점은 규제를 강화하고 진입장벽은 규제를 완화해 빨리 치료를 해야 한다. 규제 개혁은 누군가가 이권을 상실한다는 의미라 단기적으로 소비심리에 부정적일 수도 있다. 이런 부작용을 방지하기 위해 확장적 재정정책이 뒷받침이 돼야 한다.”

요즘 일본의 양적완화가 주변국에 피해를 준다는 분석이 나온다.

“이미 엔·달러 환율이 120엔이 깨진 상황에서 내년 일본 정부가 더 이상 엔화 약세를 방치하기 어려울 것이다. 일본 국민의 저항이 커져서다. 원·달러는 예측하기 힘들다. 우리나라 경상수지 흑자가 정상적인 경제 환경에서는 환율에 도움이 되지만 지금은 내수 성장이 ‘0’으로 떨어졌다.정부가 경상수지 흑자에 따른 원화 강세를 방관할 수 없다는 얘기다.

내년 우리 경제를 좌우할 대외적 변수는.

“미국 금리 인상의 후폭풍이 가장 큰 걱정이다. 다음으로 유가인하 경쟁의 여파로 미국-러시아 등 정치적 불안 요소가 경제에 미칠 영향이다. 수출 시장의 위축 같은 우려다. 마지막으로 에너지 가격이 더 떨어졌을 때 우리나라에 어떤 부정적인 영향을 미칠 것인가도 대비해야 한다.”

1266호 (2014.12.2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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