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일본 대표 사케 브랜드 핫카이산의 나구모 지로 대표 - “장인의 손끝 감각에서 최고급 사케 나와” 

2000년 밀레니엄 기념한 최고가 사케 ‘공고신(金剛心)’ 대박 술시장에도 아베노믹스 양극화 폐단 


핫카이산(八海山)은 일본의 전통술(이하 사케)로 유명하다. 일본 내 사케 브랜드 선두권으로 우리나라에도 꽤 많은 애호가가 있다. 1922년 일본 동북부인 니가타현에서 창업한 핫카이산은 사용하는 쌀을 과감히 정미(精米)해 고품질의 사케를 만드는 게 특징이다. 니가타는 맛있는 쌀의 하나인 고시히카리 산지로도 유명하다.

핫카이산 창업자의 3세인 나구모 지로(南雲二郞·55) 대표를 2014년 12월 말 서울 삼성동 인터컨티넨탈호텔에서 만났다. 나구모 대표는 “핫카이산은 쌀알을 많이 깎아내 달지 않고 드라이한데다 저온에서 발효시켜 향을 억제한 게 특징”이라며 “술잔을 입에 댔을 때 향보다는 목에 넘어간 이후의 잔향이 더 그윽하다”고 설명했다. 핫카이산의 지난해 매출은 약 500억원 정도로 연간 300만병을 생산한다. 이 가운데 수출 물량은 3% 수준이다. 가격대는 일본에서 고급 사케의 기준선인 2000엔(약 1만9000원) 이상이다. 전체 생산량 가운데 고급 사케가 80%이고 나머지 20%는 이보다 훨씬 비싼 최고급 사케가 차지한다. 한국에는 전체 생산량의 0.5%가 수출되는 데 2010년 이후 매년 두 자릿수 증가율을 기록할 정도로 호조다.

핫카이산을 일본 대표 사케 브랜드로 올려놓은 제품은 ‘공고신(金剛心)’이다. 특출한 광고가 아니라 미디어와 사케 애호가의 구전을 통해 명품이 됐다. 사케 업계 관계자는 “공고신은 효고현에서 재배되는 특등급 쌀인 야마다니시키를 정미해 1년에 2번 만들어내는 명주”라며 “중후한 향기에 묵직하게 입안을 채우는 숙성감이 뛰어나다”고 평한다.

나구모 대표는 “2000년 밀레니엄을 생각하면서 프랑스의 ‘보졸레 누보’ 와인 마케팅이 떠올려 사케에 접목한 것이 공고신”이라며“ 밀레니엄을 기념해 유리병 대신에 안 썩고, 안 변하고, 구멍이 뚫려도 고칠 수 있도록 장기간 보존이 가능한 티타늄으로 제작했다”고 말한다. 당시 시판 가격은 두 병을 묶어 무려 3만 5000엔(약 33만원)으로 가장 비쌌다. 최고급 사케라고 해봐야 1만엔을 넘지 않는 상황에서 여러모로 화제였다. 공고신에 대한 언론과 사케 평론가의 호평이 이어지면서 매년 한정 상품으로 출시되고 있다. 달라진 것은 비싼 티타늄 병이 아닌 800ml 유리병을 사용했다. 여름용은 파란색, 겨울용은 갈색병에 담아 각각 연간 3000병을 만든다. 병 모양이 일반 술병과 다르다. 병을 문지르면 소원을 들어주는 알라딘 요정이 튀어나올 것 같다.

길지 않은 역사에도 핫카이산이 일본 대표 사케 브랜드 됐다.

“할아버지가 창업하셨으니 가업을 물려받은 게 3대째다. 어느정도 사업 기반이 안정된 상태라 내 숙명은 ‘고품질의 사케’로 귀결됐다. 고급 원료나 첨단 기계설비뿐 아니라, 술을 만드는 사람의 자세나 태도가 고급 사케에 꼭 필요하다. 손의 감각·경험 같은 것이라고 할까. 쌀을 발효시키면서 온도를 높이거나 내리는 것은 과학적인 수치뿐 아니라 손끝의 감각이 좌우한다. 기계에 의존해서는 고품질 사케를 만들 수 없다. 핫카이산은 최첨단 기계설비를 갖췄지만 50년 이상 사케를 빚어온 전문가들의 손맛에 의해 독특한 맛과 향이 나온다.”

최고급 사케는 어떤 점이 다른가.

“앞에서 말한 대로 원료뿐 아니라 감각이라는 점이 중요하다. 사케는 똑같은 쌀을 쓰더라도 가공 기술에 따라 맛과 향, 빛깔이 다르다. 최고급 사케를 상품화하는 데 걸리는 시간은 2∼4년 이다. 한 번에 비교적 소량인 700kg 정도의 쌀을 사용한다. 8일 정도 거의 날밤을 새면서 사케를 만들고 이후 2~4년 간 숙성을 해보면서 맛과 향을 결정한다.”

술은 음식과 궁합이 중요하다. 핫카이산과 가장 잘 어울리는 음식은.

“술은 그 나라의 문화를 반영한다. 뭐니뭐니 해도 핫카이산을 비롯한 사케는 일본 요리와 가장 잘 어울린다. 사시미·스시를 비롯해 튀김과 전골 종류와 다 잘 맞는다. 한국 요리 가운데는 불고기가 가장 잘 어울린다. 한국의 매운 음식과는 매칭이 어렵다.”

사케는 와인과 달리 장기 숙성이 어려운데.

“사케의 색깔은 유통기한에 따라 달라진다. 색이 바랜 것은 마시면 안 된다. 밸런스가 좋은 사케는 대부분 무색에 투명하다. 쌀의 성분에 따라 사케의 질이 달라지기도 한다. 일본 쌀과 미국 쌀로 만든 술은 맛과 향이 확연히 다르다. ”

일본에서 사케가 맥주·와인에 밀려 중장년의 술로 퇴색됐다가 다시 붐이라는데.

“우선 알코올 개념이 점점 바뀌는 게 큰 요인이다. 요즘은 술에 취하려고 술을 마시는 층은 거의 찾아보기 어렵다. 술자리와 더불어 술의 향과 맛을 즐기는 풍류 같은 문화라고 할까. 이런 영향인지 2007년부터 2000엔대(소매 기준) 이상의 고급 사케 인기가 되살아났다. 특히 양적완화를 표방한 아베노믹스의 영향으로 부자들의 소득이 늘면서 고급 이자카야는 예약이 불가능 할 정도다. 고급 사케 시장도 대박이다. 상대적으로 저렴한 서민 이자카야는 영업이 어렵고 1000엔 이하의 보통 사케 시장은 썰렁하다.”

요즘 공고신에 대한 평가는 어떤가.

“2000년 밀레니엄을 기념할 무언가를 만들고 싶었다. 미래에 대한 상상을 담은 술이라고 개념을 정리했다. 특별한 재료를 사용하고, 특별한 병을 사용해 장기 보존이 가능한 사케를 만들어보자는 도전이었다. 우선 재료부터 달리했다. 통상 니가타 양조장은 ‘고야쿠만고쿠’라는 일반 쌀로 술을 빚었다. 공고신에는 너무 비싸 잘 쓰지 않는 ‘야마다니시키’라는 특등급 쌀을 사용한 게 그런 결정이다. 야마다니시키는 고급 사케를 만드는 전용 쌀로 불린다. 전국의 양조장들이 확보 경쟁을 하는 이상적인 쌀로 가장 비싸다. 주로 긴죠급 이상 고급 사케를 만들 때 쓴다.”

공고신은 고급 사케 마케팅의 효시로 평가받는다.

“공고신은 야마다니시키 쌀알을 60%를 깎아내 사용하고 영하 3도에서 2년 간 숙성시켰다. 1년에 6, 12월 단 두 차례에 걸쳐 극소량을 판매한다. 한정 마케팅이라고 할까. 지역 주민들에게도 1인 1병 이상 판매하지 않는다. 한국에서도 소량 판매하는 데 병당 30만원 정도다.”

일본 대표하는 전통술 ‘사케’ - 고급 사케는 10~15도에서 차게 마셔야


▎핫카이산의 ‘공고신’ 여름 제품(왼쪽)과 겨울 제품.
일본에서 사케(酒)란 통상 쌀과 누룩을 띄워 걸러낸 맑은 술인 청주를 가리킨다. 통상 알코올 도수는 15∼17도 정도다. 쌀의 바깥쪽엔 단백질이나 지방 같은 영양소가 많다. 이런 영양소가 술을 탁하게 하는 영향을 미친다. 그래서 사케는 막걸리와 달리 쌀의 껍데기를 깎아낸다. 쌀을 많이 깎아낼수록 향은 은은 해지고 맛은 깨끗해진다. 쌀알의 겉을 깎아내고 남은 비율을 정미율(精米率)이라고 하는데 이 수치가 낮을수록 품질은 올라간다. 정미율에 따라 등급이 나뉜다. 50%면 다이긴죠, 60%는 긴죠, 70%는 혼죠조로 구분한다. 원재료에 따라 세 가지로 분류한다. 최고급이 준마이슈(純米酒)로 쌀과 누룩·물로만 만든다. 그 다음이 혼죠조슈(本釀浩酒)로 쌀·물·누룩에 양조 알코올을 추가한다. 가장 싼 게 후츠슈(普通酒)다. 쌀·물·누룩, 양조 알코올에 당류나 산미료 등을 더 넣어 만든다. 일본에서 80% 이상이 후츠슈다. 산도는 사케를 마셨을 때 느끼는 경쾌함의 척도다. 사케 100㎖ 속에 들어있는 호박산·사과산·유산 같은 각종 산의 총량을 말한다. 산도의 수치가 높으면 신맛이, 낮으면 약간 단맛이 난다. 고급 사케는 10∼15도에서 차게 마시는 게 좋다. 와인은 숙성에 따라 맛과 향이 달라지지만 사케는 장기 보관이 불가능해 ‘몇 년 산 쌀로 만든 사케’라는 빈티지의 의미는 없다.

- 김태진 전문기자 tjkim@joongang.co.kr

1269호 (2015.01.19)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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