Cover Story

부장의 라이프스타일 - ‘상무님께서~’ 문자에 가슴이 철렁 

운동하려 노력하지만 술·담배 끊기 어려워 … 가족 사이에선 ‘외계인 


“강 부장, 진짜 이런 식으로 할 거야? 연말에 어쩌려고 이래?” 아침부터 김 상무는 언성을 높였다. 묵묵히 듣기만 했다. 속은 부글부글 끓는다. ‘그 놈의 실적! 답답하면 니가 직접 해라!’라고 외치고 싶었다. 물론 못했다. 요즘 상무의 짜증이 부쩍 늘었다. 그의 질책을 이해하면서도 나빠진 경기에 도리가 없다는 생각도 든다. 밑바닥 형편을 뻔히 아는데 과장·대리를 다그쳐 실적을 긁어 모으는 데도 진절머리가 난다. ‘오후에 또 한 번 불려가겠지’라는 생각이 들자 식욕이 뚝 떨어진다.

엘리베이터를 타고 1층에 내려가 담배를 꺼내 물었다. 끊고 싶은 마음이 굴뚝같지만 매년 새해 소망으로 끝난다. 담뱃값이 오른 올해는 어떻게든 금연하겠다며 아내와 약속을 하고 일주일 정도 참았지만 끝내 유혹을 뿌리치지 못했다. 설문에 참여한 189명의 부장들은 ‘직장에서 받은 스트레스를 주로 어떻게 푸느냐’는 질문에 운동(54명), 가족과의 시간(54명), 술·담배(52명) 등이라 답했다.

머리숱은 줄고, 배둘레햄은 그대로


담배 몇 모금에 마음이 약간 진정됐다. 화장실로 갔다. 앞 자리에 앉은 문 대리가 ‘담배 냄새 난다’며 성화라 손도 씻고, 가글도 해야 한다. 문득 거울 앞에 선 자신을 봤다. 머리숱이 갈수록 줄어드는 느낌이다. 눈 밑 다크서클은 더욱 진해지고, 소변 줄기도 영 마음에 안 든다. 몸무게는 줄었는데 배둘레햄은 그대로다. 이렇게 늙어가는 건가 싶어 괜히 서글프다. 둘째까지 대학에 보내려면 한참 멀었는데…. ‘부장이 된 후 탈모나 체중 변화, 건강 악화를 경험한 적 있느냐’는 질문에 113명(59.8%)이 ‘그렇다’고 답했다.

옆 부서 동기와 했던 점심 약속을 취소했다. 운동이라도 해야겠다 싶어 건물 지하 헬스클럽에 들렀다. 건강관리를 위해 주로 하는 운동을 묻는 질문에 74명(39.2%)이 ‘걷기’라고 답했다. ‘피트니스(39명)’, ‘골프(30명)’가 뒤를 이었다. 러닝 머신 위에 올라서 30분간 뛰었더니 약간은 상쾌한 기분이 든다. 또 한번 ‘운동을 자주 해야겠다’ 결심했지만 그래 봐야 일주일에 한두 번 찾는게 전부다. 돈이 아깝다는 생각이 들지만 피곤한 몸이 먼저다. 일주일 간 운동에 투자하는 시간을 묻는 질문에는 ‘1~2시간’이 68명(36.0%), ‘3~4시간’ 65명(34.4%) 순으로 답했다.

예상과 달리 오후는 조용히 지나갔다. 기뻐할 일만은 아니다. 오후 내내 임원회의에 참석한 상무가 말 할 타이밍을 못 잡았을 뿐이다. 어차피 곧 만나야 한다. 바이어와 만나는 저녁 식사에 동석하기로 해서다. 말이 저녁이지 술 자리다. 횟집에서 1차를 하고, 2차로 옮겼다. 오늘 만난 바이어는 업계에서 ‘말술’로 유명한 사람이다. 술을 잘 못하는 상무 눈치 보랴, 빈잔 채우랴 내가 사원인지, 부장인지 모르겠다. 대리만 되면 술 따르는 일은 없을 줄 알았다. 폭탄주만 스무 잔 이상 마셨다. 파장이 다가오니 술인지 물인지 모르겠다. 일주일 간 평균 음주 횟수를 묻는 질문에 ‘3~4회’가 85명(45.0%)으로 가장 많았고, ‘1~2회’가 71명(37.6%)로 뒤를 이었다

시간은 벌써 12시. 택시 잡기 보통 힘든 게 아니다. 겨우 바이어를 보냈다. 상무는 기사가 모시러 왔다. 나는? 다시 택시를 찾았다. 집에 도착한 시간은 1시 30분. 당연히 아내와 아이는 자고 있다. 거실 소파에 잠시 기댔다. 눈을 뜨니 아침 6시. 아내가 ‘방에 들어가서 자’라며 깨운다. 겨우 한 시간 더 잘 거 무슨 의미가 있겠냐 싶다. 다시 눈을 감으려 했더니 큰 아이가 거실로 나왔다. 눈을 마주쳤다. 목만 까딱한다. ‘내가 교장선생님이냐?’라고 생각만 한다. 첫째는 고등학교에 들어간 뒤로 부쩍 말수가 줄었다. 지난주 카카오톡으로 운동화를 사달라고 했던 얘기가 마지막 대화다. 일주일 간 자녀와의 평균 대화 시간을 묻는 질문에는 ‘30분~1시간’과 ‘1시간~2시간’이 각각 47명(24.9%)과 46명(24.3%)으로 가장 많았다. ‘30분 미만’이라 답한 부장도 39명이나 됐다.

일주일 평균 음주 횟수는 3~4회

초등학교 6학년인 둘째까지 일어났다. 네 식구가 한 자리에 모였다. 진짜 오랜 만인 듯싶다. 일주일 간 가족이 모두 모여 식사하는 횟수를 묻자 91명(48.2%)이 ‘2~3회’라고 답했다. ‘4~5회’가 51명, ‘0~1회’가 26명으로 뒤를 이었다. 여전히 말은 없다. 침묵을 깨고 싶었다. 첫째에게 물었다. ‘지연이는 남자친구 있어?’ 순간 나를 제외한 세명의 수저가 멈췄다. 아내가 노려본다. 한창 공부하는 애한테 대체 뭔 소리를 하느냐는 눈빛이다. 약 5초 간의 정적이 더 흐르고 둘째가 못을 박았다. ‘아빠 깜박이는 좀 켜고 들어와요(예고를 좀 하고 이야기를 하란 의미)’. 머쓱했다. 끝내 첫째의 답변은 듣지 못했다. 사실 별로 궁금하지 않았다.

8시. 회사에 도착했다. 갑자기 졸음이 몰려온다. 커피 한 잔을 들고 1층을 내려가 담배 한 대를 꺼내 물었다. 그 때 문자메시지가 떴다. 정 대리다. ‘상무님께서 찾으십니다’. 잠이 확 달아났다. 전쟁은 오늘도 계속된다.

1273호 (2015.02.16)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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