Column

오늘을 살아가는 법 

 

이상호 참좋은레져 대표

부끄러운 고백부터 하자. 나이 반백이 넘었고, 직장 생활도 30년 넘게 했지만 어찌해야 할지 모르는 일이 나에게는 아직도 너무나 많다. 그래서인지 나는 직원들이 어렵고, 주주들이 두렵고, 이 사회와 세상이 때로 무섭다. 뉴스를 챙겨보고, 출근하면 조간신문부터 펼친다. 각종 전문지도 꽤 많이 본다. 열심히 배우지만 여전히 내가 세상을 보는 눈은 정확하지 않다.

오늘을 살아가기 위해 참고했던 지난날의 사례나 교훈도 별 도움이 안 된다. 특정 직업이나 학력을 보면 그 사람이나 그가 속한 집단을 어느 정도 객관적으로 판단할 수 있었지만 이젠 그마저도 쉽지 않다. 이제껏 우리 사회를 선도하고 지탱해온 사회 지도층의 일탈이 일상이 된 탓이다. 연륜·경륜·경험으로 인정 받았고, 실제로 그들에 의해 사회에 뿌리내린 유용한 가치들이 한 순간에 무너지고 있다.

최고의 지성이라는 교수의 끊이지 않는 논문 표절과 연구비 횡령, 심지어 제자 성추행까지…. 높디 높던 상아탑에 금이 간지 오래다. ‘그림자도 밟지 않는다’는 존경의 대상은 눈에 넣어도 아프지 않을 어린아이를 두들겨 패고, 학대하는 사람이 됐다. 정의로움의 상징이자, 사회 질서의 마지막 보루인 법조인 역시 끊이지 않는 막말 논란과 금품수수로 권위를 상실했다. 이미 동네북이 되어버린 정부와 정치권은 또 어떤가. 연말정산 혼란과 원로 정치인의 성추행, 자질을 의심케 하는 언동에서 우리는 무엇을 느껴야 하는가? 공정한 보도 윤리를 생명처럼 여겨야 할 언론은 ‘아니면 말고’ 식의 보도와 불법 녹취로 스스로 나락으로 떨어뜨리고 있지 않은가?

기업도 예외가 아니다. 일부 경영자의 ‘갑질’이야 새삼스러운 것도 아니지만 최근 더욱 부각되는 것은 벼랑 끝에 내몰린 취업 준비생의 간절한 열정을 악용하는 일이다. 턱없이 낮은 급여로 노동력을 착취하는 악덕 업주가 워낙 많다 보니 이를 비꼬는 ‘열정페이’라는 신조어도 생겼다. 인턴십이라는 미명 하에 젊은 청춘의 노동력을 악용하고, 입사원서에 생기는 스펙 한 줄이 아쉬운 학생들을 이용해 불공정 노동행위를 하는 서슴지 않는 이들을 보면서 같은 경영자로서 자괴감을 느낀다.

언제부터, 대체 왜 우리 사회가 이렇게 되었을까? 나는 이 시대의 문제가 특정 계층과 특정 집단의 문제가 아니라 총체적이고 전반적인 위기 현상이라 생각한다. 우리 사회가 성장·글로벌·혁신 등의 화두를 강조하면서 새로움에 천착한 부산물은 아닐까? 속도를 중시하면서 기본을 망각한 부작용은 아닐까? 이대로 가선 안 된다. 어느 한 쪽에 힘을 싣지 말고, 균형을 찾아야 한다. 강함보다는 부드러움이, 권한보다는 책임이, 발언 보다는 경청이 더 중요한 가치가 돼야 한다.

두 손으로 모래를 한 움큼 잡아보라. 부드럽게 잡은 모래는 거의 흘러내리지 않지만 꽉 움켜잡으면 모래는 손가락 사이로 빠르게 새나간다. 강하게 잡으면 잡을수록 더욱 많은 모래가 빠져 나가버린다. 지금은 쥐어짤 때가 아니다. 곪을 대로 곪은 우리 사회를 치료하고, 공공의 건강을 회복해야 한다. 성장도 좋고 혁신도 좋지만 조용히 되돌아보자. 오늘을 사는 우리에게 필요한 게 무었인지 진지하게 복기해보자. ‘오늘을 사는 법’이란 질문에 대한 답은 정치 구단이라는 김종필 전 총리의 말로 대신하고 싶다. “입 다물고 건의는 조용히….”

1275호 (2015.03.09)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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