Column

싸우지 않고 이겨라 

 

남상건 LG스포츠 사장

‘야구 한 게임엔 사람의 인생이 담겨있다’는 이야기를 자주 한다. 야구는 압도적으로 이길 것 같은 팀이 의외로 고전하고, 열세를 예상했던 팀이 기적같이 승리하기도 한다. 예측하기 어려운 ‘의외성’이 마치 우리네 인생사와 같아서 하는 말일 테다.

프로야구 10개팀이 정규리그를 앞두고 시범경기를 치르고 있다. 스프링캠프에서 갈고 닦은 기술을 실전에 적용하기 앞서 테스트해보는 귀중한 시간이다. 신생팀인 KT의 가세로 10개팀으로 늘어난 가운데 올해는 팀 간 전력이 상당히 평준화 됐다는 평가를 받는다. 우승 전력이라고 손꼽는 팀은 있지만 월등하다고 보긴 어렵다. 어느 때보다 초반 기선 제압이 중요해졌다.

이순신 장군은 일본 수군에 초반 대승하면서 남해 바다 제해권(制海權)을 손쉽게 장악했다. 세 번째 해전인 한산대첩에서는 그 유명한 학익진을 선보이며 완벽하게 승리했다. 이후 도요토미 히데요시는 왜군에 ‘조선 수군과 싸우지 말라’는 지시를 내렸다. 일본 수군은 남해 바다에서 이순신 장군 기(旗)만 봐도 전투를 포기하고 도망치기 바빴다. [손자병법(孫子兵法)]에 나오는 ‘싸우지 않고 이기는 것이 최고’라는 말을 잘 보여주는 사례다.

물론 야구는 상대와 9이닝 동안 싸워야 한다. 안 싸우고 이길 수는 없는 법. 대신 경기 전에 상대팀과의 기싸움에서 이기거나 정신적으로 제압할 수 있다. 실제 시즌 중에는 이런 기싸움이 제법 효과를 발휘한다. 이 때문에 전문가들은 이길 때도 상대를 완벽하게 제압하는 것이 중요하다고 말한다. 대부분의 감독은 좋은 분위기로 이기고 있을 때에도 더욱 몰아쳐 큰 점수 차이로 승리하려 한다. 물론 상대를 자극하지 않는 범위 안에서 말이다. 시즌 후반으로 갈수록 상대 전적에서 우세한 팀이 승을 더해가고, 열세인 팀은 패배를 더해가는 비밀이 여기에 있다.

지난 2013년과 2014년 시즌 강팀은 약팀과 만날 때 팀의 최고 에이스 투수를 투입해 확실한 승리를 챙기려는 경향이 있었다. 한 달에 한 번씩 3~4일 간의 휴식일이 있어 선발 로테이션 조정이 비교적 자유로웠기 때문이다. 이때 약팀은 어차피 승리 확률이 적다고 판단해 에이스 투수를 아끼고 4·5선발급 투수로 상대하는 경우도 있었다. 약팀으로선 이기면 고맙고, 지면 본전이란 마음을 먹었을 것이다. 이런 경기에서 강팀이 이긴다면 사실상 경기 전에 승리를 확정한 것이나 마찬가지다.

물론 야구는 본디 각본 없는 드라마라고 할 정도로 결과를 예측하기 어렵다. 막상 뚜껑을 열어보면 예상과 다른 결과가 나오는 경우가 많다. 시즌 초반엔 하위권에 머물다가 선수들의 몸 컨디션을 천천히 끌어올려 중반부터 치고 올라와 좋은 성적으로 시즌을 마무리하는 특성을 수년 동안 보여준 팀도 있었다. 그래도 기왕이면 처음부터 끝까지 잘하는 게 낫다.

새 시즌을 시작하는 개막전을 승리해 초반 분위기를 잡고, 시즌 내내 동력으로 끌고 가려는 10개 팀의 경쟁이 곧 시작된다. [손자병법]에는 ‘전쟁을 잘하는 장수는 미리 승리할 준비를 한다’는 말도 나온다. 선수들은 자신과의 치열한 싸움을 거쳐 스프링캠프와 시범경기를 통해 준비를 많이 했을 것이다. 야구를 좋아하는 이들이라면 준비된 자만이 승리할 수 있다는 평범한 이치를 야구장에서 직접 두 눈으로 확인하시길 바란다. 특히 잠실야구장에서 말이다.

1277호 (2015.03.23)
목차보기
  • 금주의 베스트 기사
이전 1 / 2 다음