Column

직장생활의 자부심 

 

김경준 딜로이트 컨설팅 대표이사

남극 탐험, 히말라야 고봉 등반, 사하라 사막 트레킹, 북미 대륙 자전거 횡단…. 과거 전문가들이 도전했던 영역들이 취업준비생들의 스펙 준비 범위에 포함되고 있다고 한다. 통상적인 학점, 외국어 성적, 동아리 활동 등으로는 차별화가 어렵게 되자 이른바 ‘극한 스펙’을 통해 자신만의 강점을 나타내 보려는 지원자가 늘어나고 있는 것이다. 독특한 개성과 나름의 스토리를 가진 다양한 사람의 채용에 관심이 커진 기업들이 열정과 도전정신이 충만해 보이는 지원자들에게 주목하는 것은 당연하다. 이런 류의 취업 성공사례가 생겨나면서 앞으로는 극한 스펙 역시 지원자들의 고려사항으로 부각될 듯하다. 신세대들이 대학입시부터 겪기 시작하는 스펙전쟁이라는 무한 경쟁이 급기야 취업 단계에서 더욱 증폭되고 있는 양상이다. 하지만 지원자들이 극한 스펙까지 동원해서 들어가는 직장이란 본질적으로 개인의 차원을 넘어서 다수의 개성이 조직역량으로 결집되는 공간이다. 개인과 조직의 균형점을 찾아야 굴러갈 수 있다.

최근 다양한 매체에서 매일 다람쥐 쳇바퀴처럼 반복되는 일상의 굴레를 벗어나 여행·예술·요리·탐험·강연 등 다양한 영역으로 자신의 진정한 삶을 찾아서 떠난다는 식의 인생 스토리가 자주 소개된다. 어차피 삶이란 자신이 선택하고 책임지는 것이고, 직장을 떠나 행복을 찾겠다는 선택도 소중한 것이다. 하지만 이들 중 일부는 자신의 새로운 선택에 대한 개인적 정당성 부여의 차원을 넘어서 직장에서 일하는 타인들의 삶까지 필요 이상으로 폄하하는 오만이 느껴지기도 한다.

특정 개인이 직장의 반복적인 일상에 지쳤다고 느껴서 새로운 선택을 하는 것은 존중 받아야 하겠지만 그렇다고 다른 사람들의 직장생활도 모두 반복적이고 무의미하다고 속단하는 것은 곤란하다. 더욱이 일부 저급한 매체들의 선정적 과장까지 덧붙여져 마치 직장에서 일하는 사람들은 생계를 위해 자신의 삶을 소진하고 있을 뿐이고, 조직을 떠나 무언가 독특한 것을 해야만 가치 있고 행복한 인생이라는 위험한 이분법까지 저변에 깔리는 경우까지 있다. 대개 조직생활을 제대로 경험해 보지도 않은 얼치기들이 어줍잖은 인생관에 기반해 ‘진정으로 원하는 것을 찾아 떠나라’는 식의 행복론을 양념으로 버무려 젊은 세대들이 매력을 느끼기도 하지만 본질은 교만과 무책임이라고 생각한다.

사람에 따라 조직을 떠나서 만족하는 삶도 있는 것이고, 조직 속에서 보람을 찾는 삶도 또한 존재한다. 조직생활과는 별도로 존재하는 극히 개인적이고 다양한 만족과 성취의 기준을 섣불리 일반화하는 것은 어불성설이다. 조직생활이 싫어서, 혹은 적응하지 못해 떠나는 것은 개인의 자유이지만 남아있는 타인의 삶까지 부정할 권리는 없다.

직장인들은 물론 일차적으로 밥벌이를 위해서 출근하지만 그걸 통해서 경험을 쌓고 역량을 키우면서 미래의 가능성을 찾아나간다. 남들이 뭐라 하든 그것이 자신에게 주어진 공간이고 세상이다. 인턴사원의 직장생활을 그린 만화 [미생]에서 하찮아 보이는 인턴사원 주인공의 ‘나는 어머니의 자부심이다’는 독백처럼 평범해 보이는 직장인들은 모두 누군가의 자부심들이다. 겉만 그럴듯해 보이는 연예인 부류들이 함부로 직장생활 운운하는 것이 가소로울 따름이다.

1276호 (2015.03.16)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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