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주목 받는 바레인의 산업 다각화 - 석유 의존도 10%대로 확 낮추다 

금융·제조·관광업 키워 … 세금 줄이고 규제 없애 투자 유치 


▎바레인 수도 마나마 시가지.
지난 2월 9일(현지시간) 바레인 수도 마나마의 중심가. ‘알자지라(Al Jazeera)’라는 이름의 수퍼마켓 안에 들어서자 돼지고기가 가득 진열된 코너가 눈에 들어왔다. 통상 무슬림(이슬람교도)들은 종교적인 이유로 돼지고기를 입에 대지 않는다. 바레인은 다른 중동 국가들과 마찬가지로 이슬람교가 국교다. 그러나 이슬람교가 아닌 종교를 대하는 태도는 너그러운 편이다. 종교의 다양성을 인정하면서 내국인 모두에게 종교의 자유를 허용하는 나라다. 시내에서 이처럼 돼지고기를 판매하는 곳을 심심찮게 볼 수 있고 누구도 이의를 제기하지 않는다. 인도 태생의 점원 마니(41)는 “나처럼 이슬람교가 아닌 다른 종교를 가진 사람들은 돼지고기를 자유롭게 구매할 수 있다”며 “힌두교도뿐 아니라 기독교도인들도 종종 들러 돼지고기를 산다”고 말했다.

수퍼마켓 인근 모스크(이슬람교 사원)와 몇 킬로미터 안 떨어진 곳에서는 교회나 성당을 마주할 수 있었다. 심지어 조금 더 가면 시나고그(유대교 사원)도 있다. 현지에서 만난 한 기업인은 “거래는 거래일 뿐(Business is business)”이라며 “종교는 거래와는 별개의 문제로, 다른 종교를 가진 사람들에게는 그들만의 믿음이 있고 이를 존중해야 한다”고 말했다. 바레인은 중동 외에도 유럽과 미국, 동남아시아, 인도 등지에서 모여든 각계각층 사람들이 머무르는 데 불편함이 없도록 정부 차원에서 나서고 있다.

이들 모두를 ‘국가 경제에 기여하는 요소’로 보고 오히려 더 많은 인원이 유입돼 어려움 없이 경제활동에 전념할 수 있도록 유도하는 것이다. 분위기 자체도 개방적이다. 거리에는 히잡(무슬림 여성들이 머리와 목 등을 가리기 위해 쓰는 가리개의 일종)을 둘러쓴 여성들도 있지만 청바지에 가벼운 티셔츠만 입은 여성들도 있다. 대로변에서는 스타벅스와 맥도날드가 더 많은 소비를 유도한다. 중동 고유의 문화와 서양 문화가 조화롭게 거리를 형성했다.

수도 중심가 수퍼에 돼지고기 진열대


인천국제공항에서 아랍에미리트(UAE) 두바이국제공항까지 비행기로 10시간. 마나마로 향하려면 1시간 15분가량 더 비행기를 타야 한다. 직항편이 없어 두바이나 카타르 도하 등지를 경유하는 것은 필수다. 이렇듯 먼 중동의 섬나라 바레인은 우리에게 낯설지만, 지리적으로 강대국 사이에 위치했다는 공통점을 지녔다. 한국이 중국과 일본, 러시아에 둘러싸였다면 바레인은 수니파 종주국인 사우디아라비아와 시아파 종주국인 이란이라는 양대 강국을 좌우로 뒀다. 이슬람교에서 금하는 주류 판매마저 허용하는 바레인 특유의 개방성은 오랜 기간 강국들 틈바구니에 끼어 교역을 통해 살아남아야 했던 역사와도 무관치 않다. 다만, 한국과 달리 바레인은 원유가 솟는 ‘축복 받은 국토’를 가졌다.

최근 국제 유가 폭락으로 저(低)유가 시대를 맞은 중동 국가들의 고민도 커졌지만 바레인은 다소 예외다. 오래 전부터 국가 차원에서 석유 의존도를 낮추고 다른 산업을 육성하는 다각화 작업에 몰두한 덕에 한시름은 덜었다. 바레인경제개발위원회에 따르면 지난 2000년만 해도 석유 등 에너지 관련 산업이 바레인의 실질 국내총생산(GDP)에서 차지하는 비중이 44%에 달했지만 이 숫자는 2012년 기준 19%로 대폭 줄었다. 이에 비해 금융과 제조 등 거의 모든 산업 분야 비중은 커졌다.

대개 석유 관련 산업이 국가 경제의 중추를 이루는 중동 국가로서는 이례적으로 석유 의존도를 낮추고 다른 산업을 키우면서 석유 고갈과 세계 경기 불확실성 리스크에 대비했다. 그 결과 연간 GDP 성장률이 2013년 5.3%, 지난해 4.2%(잠정치)를 기록하는 등 양호한 흐름을 보이고 있다.

강국 사이에 둘러싸였다는 것은 거꾸로 보면 기회다. 한국이 동아시아 허브 역할을 하며 중국·일본으로부터 경제적 이득을 취하는 부분이 있듯 바레인도 지리적 이점을 십분 활용해 외화 벌이에 나서고 있다. 대표적인 예가 실질 GDP의 17%를 차지하는 금융업이다. 바레인은 가까운 UAE와 함께 중동의 금융 허브 역할을 해내고 있다. 마나마에는 바레인세계무역센터(BWTC)를 중심으로 세계 각지에서 모여든 금융회사 400여 곳이 있다. 바레인이 130만 인구의 작은 나라임을 감안할 때 많은 숫자다. 한국의 우리은행도 이곳에 진출해 있다. 김삼종 우리은행 바레인지점장은 “다수 외국계 은행들이 바레인을 중동의 거점으로 보고 진출했다”며 “사우디아라비아 등 큰 시장과 가까운데 사업을 하기는 (이들 시장보다) 훨씬 편하다”고 말했다. 특히 바레인 금융시장 전체 보험료 규모가 2003년 이후 10년 간 12배로 커졌을 만큼 보험 부문에서 성장세가 두드러지고 있다. 바레인·사우디아라비아·쿠웨이트·UAE·카타르·오만 등 걸프협력회의(GCC) 6개국의 보험료 규모는 2017년경 375억 달러에 달할 전망이다.

이슬람권의 금융 허브


A. 라만 알 베이커 바레인중앙은행 전무는 “바레인의 금융업이 활기를 띠기 시작한 것은 1970년대 초”라며 “이때 많은 금융회사와 각국 은행들의 사무소가 들어섰다”고 배경을 설명했다. 중동 각국이 1970년대 들어 오일쇼크로 격변기를 맞은 상황에서도 바레인은 차근차근 미래에 대비했다. 다른 문화와 종교를 폭넓게 인정하며 경제 주체로 포섭해버리는 바레인 특유의 개방성이 금융업을 성장시키는 밑거름으로 작용했다. 알 베이커 전무는 “바레인은 중동에서 가장 개방적인 사업 환경을 구축했다”며 “선진국형 규제로 GCC뿐 아니라 이슬람권 전체의 금융 허브 기능을 하고 있다”고 덧붙였다. 미국 헤리티지재단(The Heritage Foundation)이 올 초 집계한 ‘2015 경제자유도(Index of Economic Freedom) 조사’에서 바레인은 18위를 차지했다. 중동 국가 중 1위인 동시에 한국(29위), 일본(20위)보다도 앞섰다. 투자하거나 직접 들어와서 사업하기에 그만큼 좋은 여건을 갖췄다는 의미다.

바레인 정부는 세금 감면 등 과감한 규제 축소로 외국 자본이 활발하게 유입되도록 유도하고 있다. 이는 금융업뿐 아니라 제조업 등 여타 산업 전반에서 투자 활성화와 경쟁력 강화로 이어지고 있다. 마나마 동부에 위치한 250만㎡ 규모의 바레인국제투자단지(BIIP)는 중동에서 가장 저렴한 전기료와 낮은 지가(地價)로 외국 기업들의 구미를 돋운다. 이곳에는 독일의 전자업체 지멘스(Siemens), 미국의 식품업체 크래프트푸드(Kraft Foods) 등 다양한 글로벌 기업들이 입주해 있다. 입주 기업들은 10년 간 법인세와 소득세를 내지 않아도 되며 부동산거래세 정도가 과세 대상이다. BIIP는 중동에서 유일하게 외국 기업이 100%의 지분으로 법인을 소유하는 것을 허용한다. 기업들은 바레인에서 거둬들인 이윤을 자국에 송금할 때 따로 세금을 낼 필요가 없다. 컨설팅업체 KPMG는 2012년 한 보고서에서 ‘기업이 똑같은 사업을 할 경우 바레인에서 드는 비용은 UAE나 카타르에서 드는 비용의 3분의 2 수준’이라고 분석하기도 했다.

여성의 사회 참여율도 높아


▎바레인은 사우디아라비아와 연결된 연륙교를 통해 외화 벌이에 적극 나서고 있다.
전체 금융 업계 종사자의 3분의 1은 외국인일 정도로 해외 우수 인력을 활용하는 데도 거침이 없다. 거꾸로 외국 기업들이 바레인에서 노동력을 확보하는 데 어려움을 겪지 않도록 도움을 주기도 한다. 비비안 자말 바레인경제개발위원회 전무는 “바레인에 진출한 외국 기업들이 내국인을 쉽게 고용할 수 있도록 정부 차원에서 지원하고 있다”고 말했다. 바레인 정부는 외국 기업이 들어와 내국인을 고용할 때 이들 임금의 일부를 보조해주는 정책을 펼치고 있다. 이렇게 해서 외국 기업들이 확보하게 되는 노동력의 질은 수준급이다. 바레인 국민들은 영어를 아랍어만큼이나 유창하게 구사한다. 인구가 적은 반면 교육 수준이 높아 고학력자들이 즐비하다.

중동 국가치고는 여성의 사회 참여율이 높은 것도 산업 다각화에 긍정적으로 작용하고 있다. 제조업의 경우 특성상 여전히 남성 인력의 비율이 압도적이지만 금융업에서는 여성 비율이 30% 정도로 높다. 우수한 여성 인력들이 바레인의 경제를 이끄는 데 기여하고 있다. 바레인 여성들은 직장생활은 물론이고 시내 유흥가 출입도 자유롭게 할 수 있을 만큼 사회생활에 제약을 받지 않는다. 무역업 등을 하는 바레인 기업 AM야팀브라더스(AM Yateem Brothers)의 한 여성 임원은 “조부모 세대 때는 여성들의 사회 진출이 부정적으로 인식됐는지 몰라도 부모 세대부터는 여성의 사회 참여를 당연시하는 분위기가 조성됐다”며 “바레인은 중동에서 여성의 사회 진출이 가장 활발한 국가 중 하나”라고 전했다.

바레인 산업 다각화의 또 다른 키워드는 관광업이다. 마찬가지로 지리적 이점과 개방성을 십분 활용한다. 바레인과 사우디아라비아 사이에는 25km 길이의 연륙교 ‘킹파드코즈웨이(King Fahd Causeway)’가 있다. 양국이 교류 강화를 위해 건설, 1986년 개통된 이 연륙교를 통해 주말이면 20만~30만여 사우디아라비아 관광객들이 바레인으로 구름처럼 몰려든다. 이슬람 율법을 엄격하게 해석·적용하는 자국에서는 꿈도 못 꾸는 각종 문화생활을 향유하고 가는 것이 이들의 목표다.

예컨대 사우디아라비아 대부분의 지역에서는 영화 상영 자체가 금지됐지만 바레인에서는 영화관을 찾아 최신 할리우드 영화들을 어렵지 않게 볼 수 있다. 2월 10일(현지시간) 마나마 최대 쇼핑몰인 ‘시티센터(Bahrain City Centre)’ 내 영화관에서는 남편과 아이들 손을 잡은 히잡 차림의 무슬림 여성들이 얼마 전에 현지 개봉한 할리우드 영화 [아메리칸 스나이퍼(American Sniper)]를 보기 위해 줄을 서서 기다리고 있었다. 때로는 유흥도 일부 관광객들의 목표다. 시내 한 나이트클럽 종업원은 “스트레스 해소를 위해 사우디아라비아에서 온 젊은 손님들을 자주 본다”고 말했다. 몰래 술을 사서 자국으로 반입하려다 적발되는 관광객도 있다. 억제된 욕망을 채우려는 다른 나라 무슬림 관광객들의 발걸음이 바레인의 쏠쏠한 외화 벌이로 이어지고 있다.

주말이면 사우디에서 관광객 몰려와


▎마나마의 한 수퍼마켓의 돼지고기 판매 코너를 찾은 거주민들이 진열된 상품을 둘러보고 있다. 바레인은 정부 차원에서 이슬람교 외에 다른 종교를 믿는 거주민들의 편의 도모에도 힘쓰고 있다.
자르모 코틸레인 바레인경제개발위원회 수석이코노미스트는 “바레인 경제는 산업 다각화, 이웃 국가들과의 원만한 관계 유지, 그리고 내부 결속력 강화로 국제 유가 하락과 세계 경기 불확실성에도 안정된 성장세를 보이고 있다”며 “석유 의존도를 계속 낮추면서 금융업과 제조업, 관광업 등 다른 산업을 육성하는 데 전념할 방침”이라고 설명했다. 그는 “바레인은 오랜 세월 지리를 자본의 하나로 활용한 국가”라며 “최근 유가 하락으로 중동 국가들 사이에서 석유 의존도를 낮추자는 목소리가 나오고 있지만 오래 전부터 이를 준비한 바레인은 (유가 하락으로 인한) 타격을 덜 받을 것”이라고 덧붙였다. 바레인 정부는 현재 15%대인 실질 GDP 대비 제조업 비중을 2020년 20%대로 끌어올리는 등 산업 다각화의 속도를 높인다는 계획이다.

1276호 (2015.03.16)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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