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중국 주도 AIIB가 몰고온 파문은 - 위안화 패권 노리는 중국의 거센 도전 

영국·독일·프랑스도 AIIB에 참여 ... 美는 TPP로 반격 나서 

오상용 글로벌모니터 에디터

▎사진:중앙포토
식습관만큼이나 잘 바뀌지 않는 게 돈에 대한 관념이다. 구성원들은 ‘왜’라는 질문을 던지기보다 당연시 하는 법을 먼저 배운다. 국가 간 교역에서도 마찬가지다. 결제통화는 왜 달러여야 하는지 의문을 갖기보다 더 많은 달러를 손에 쥐려 바둥댄다. 사실 국제 교역이 시작된 이래 역사는 숱한 화폐들의 명멸을 지켜봤다. 기축통화로서 달러는 한 세월 더 저 자리를 지킬 것이다. 하지만 역사가 말해주듯 그 자리가 영원하리란 보장은 없다. 미국이 애써 외면하고 우방국들도 쉬쉬했던 사안이 3월 들어 국제 금융가와 외교가를 뜨겁게 달궜다. 바로 중국이 이니셔티브를 쥐고 추진하는 ‘아시아인프라개발은행(AIIB)’이다. AIIB를 둘러싼 국제사회의 치열한 수싸움과 복잡한 노림수는 미국발 금융위기 이래 반복해온 ‘새로운 통화질서’라는 화두를 떠올리게 한다. 미국으로선 달갑지 않은 달러 패권에 대한 도전이라 할 수 있다.

새로운 통화질서 막 오르나?


우선 AIIB에 대한 개요부터 간략히 살피고 가자. 설립 목적은 아시아 신흥국들의 가난 구제를 돕고 동반 성장을 지원하기 위함이다. 여기에 반드시 수반돼야 하는 핵심 기관시설 구축과 사회 인프라망 확충 사업을 AIIB가 선별해 지원하게 된다. 지원 방식은 대부분 AIIB 기금을 통해 저리의 대출로 이뤄지게 된다. 개별 인프라 프로젝트에 대해 AIIB가 지분 투자까지 할지 여부는 현재로선 미정이다. 중국 주도의 이 국제금융기구는 3월 말 자본출자국 모집을 끝낸 뒤 내부 정비를 거쳐 올해 말 본격적인 활동에 들어간다. AIIB의 초기 출자 자본금 목표액은 1000억 달러다. 이 가운데 40~49%가량을 중국이 맡게 되고 나머지를 출자자로 참여하는 주변국들이 분담한다.

중국의 AIIB 구상은 2013년으로 거슬러올라간다. 육상해상 실크로드 구축이라는 ‘일대일로’ 전략과 맞물려 진행돼 왔고, 더 멀리는 2000년대 중반부터 가시화된 중국의 ‘위완화 국제화 전략’과 결부돼 있다. 일대일로 사업은 내부적으로는 중국의 새로운 성장동력인 중서부 개발과 맞닿아 있으며 대외적으로는 국경을 맞댄 중앙아시아를 중화경제권에 포섭하는 한편, 이를 유럽까지 연장하는 것이다. 지상에선 유로시노(유럽-중국) 대륙횡단 고속열차와 간선 도로망이 중국 대륙과 중앙아시아를 관통해 북유럽으로 연결되고, 뱃길을 통해서는 동남아와 인도 중동 지중해를 연결하게 된다. 철도와 도로 항만이 놓이면 이 길을 따라 마을이 들어서고 산업이 생겨난다. 그러면 그 길을 따라 물자와 돈이 오가게 마련이다. 중국의 14억 인구라는 거대 내수시장과 제조기지는 이를 빨아들이는 거대한 구심력이 될 것인데, 이 교역로를 통해 중국 돈(위안)이 주요 결제 통화로 부상한다는 게 당 지도부의 밑그림이다.

이 그림이 완성되면 중국은 글로벌 물류망과 자금 이동 측면에서 세계의 중심, 즉 오랜 세월 스스로를 일컬어왔던 ‘중화’의 자리에 오를 수 있다. AIIB는 일대일로의 도상에 있는 나라들에 도로와 항만, 철로·전력망·가스관을 구축하는 데 필요한 자금을 지원하는 국제은행으로서 핵심 역할을 수행하게 될 것이다. 물론 원대한 밑그림이 단번에 완성될 수는 없다. 오랜 세월 우여곡절을 겪어야 한다. 중국도 이를 잘 안다. 당 지도부가 자주 언급하듯 중국은 ‘더디게 한발짝씩 나아가지만 지나고 보면 거역할 수 없는 물결이 만들어져 있을 것’이라 믿고 있다.

잠잠하나 싶었던 AIIB 설립이 국제사회 이슈로 전면에 부상한 것은 영국 때문이다. 지난 3월13일 영국은 G7국가로선 최초로 AIIB 참여를 공식화했다. 우방국의 AIIB 참여를 막아왔던 미국은 즉각 “영국이 중국의 편의를 너무 봐주고 있다”며 불편한 기색을 감추지 못했다. 물론 영국은 이를 가볍게 무시했다. 사실 유럽의 마음은 이미 중국 쪽으로 기울었던 것 같다. 영국은 그럴 거면 선수를 치는 게 런던 씨티의 뱅커들에게 훨씬 유리하다고 생각했을 거다. 런던 씨티의 금융자본은 1차 세계대전 중 안전한 금고를 찾아 월가로 이동했으며, 그 지류가 지금의 월가를 만들어 냈다. 100년이 지난 지금 런던 씨티의 금융자본은 향후 100년을 고민해야 한다. 달러로 갈아탔던 100년 전의 판단이 옳았다면, 앞으로도 계속 그럴 것인가에 대한 헤지가 필요하다. 영국이 유럽 내에서 가장 적극적으로 역외 위안화 허브를 구상하고 중국과 통화스왑 및 역외위안 청산결제은행 설립을 추진한 것도 이와 무관하지 않다.

좀 더 현실적인 이야기를 해보자. 신흥시장의 인프라 구축은 그 자체로 거대시장을 형성하게 되는데, 도로와 항만, 철로, 하늘 길을 따라 새로운 경제권이 만들어지는, 말 그대로 글로벌 단위 복합개발 사업이다. AIIB는 향후 다양한 지역의 인프라 사업을 심사하게 될 텐데, 이머징과 프론티어의 주요 핵심 사업 정보가 집중된다고 할 수 있다. 런던 씨티의 금융가는 그 정보 취득에서 뒤쳐지고 싶은 마음이 없다. AIIB가 심사하는 프로젝트 중에는 자체 기준 미달로 지원 대상에서 탈락했지만 투자 수익이 유망한 건도 제법 있을 거다. AIIB는 취급하지 못하지만 런던 씨티의 뱅커들이라면 눈독을 들일 만한 그런 사업들 말이다. 영국에게 선수를 빼앗긴 독일과 프랑스 이탈리아도 잇따라 AIIB 참여를 선언했다. 영국이 금융산업이라면, 독일은 자동차 정밀기계 등의 제조산업과 중국 시장의 관계를 고려하지 않을 수 없었다. 외교 안보 부문에서 미국은 우방이나, 먹고 사는 문제에 있어서 유럽은 각자의 국익을 좇을 뿐이다. 여하튼 중국은 쌓아둔 달러를 글로벌 단위 사업(외교·군사·경제를 아우르는 사업)을 영위하는 데 착실히 헐어 쓰기 시작했다. AIIB와 브릭스은행(뉴뱅크), 실크로드 펀드와 같은 국제금융기구의 형태를 빌어서 말이다. 이는 미국 국채에 막대한 자금을 묻어 놓고 놀리는 것 보다 글로벌 수요 창출에 더 도움이 된다. 미국으로서도 자신들이 방출한 달러가 국채에 묶여 있는 것 보다 세계 곳곳을 돌아다니며 신규 수요를 창출하는 게 바람직하다.

아베 정권 어부지리 얻을 수도

버락 오바마 대통령으로선 ‘시진핑 바람’을 잠재우기 위해서라도 자신이 주도하는 환태평양경제동반자협정(TPP) 타결에 한층 드라이브를 걸어야만 할 것이다. 미국 주도의 TPP는 글로벌 교역질서와 달러 패권을 공고히 하는 미국판 ‘일대일로’라 해도 과언이 아니다. 물론 거기엔 중국의 세력 팽창을 효율적으로 봉쇄하기 위한 안보동맹도 결부돼 있다. 이 대목에서 향후 주목해야 할 것은 4월 말로 예정된 아베 신조와 오바마의 정상회담이다. 오바마는 이번 정상회담을 TPP타결의 기폭제로 활용하려들 것이다. 아베도 이에 대한 반대급부를 챙기려 들 거다. 방미 일정(4월27일~30일)을 마치고 돌아온 아베는 미국의 지원을 등에 업고 헌법 개정 이슈를 본격화할 수 있다. 시기적으로도 4월 지방선거가 끝난 뒤라 부담이 덜할 것이다. 동시에 일본 군 사무기 첨단화를 위한 ‘일본판 DARPA(미국 국방부 산하 국방 고등연구계획국)’ 창설이 본격화할 가능성도 농후하다. 최근 아베 내각 내에선 경제산업성 아래에 있는 ‘신에너지 산업기술 개발기구(NEDO)’를 일본판 DARPA, 즉 일본의 첨단무기 개발 연구소로 탈바꿈시키려는 움직임이 대두하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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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279호 (2015.04.06)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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