우리나라 골프 인구가 3300만명(연간 내장객)을 넘어섰다. 골프장 숫자도 곧 500개(18홀 기준)를 돌파한다. 그린피 3만원짜리 골프장도 등장해 특권층의 스포츠란 말도 옛말이 됐다. 평범한 직장인도 마음만 먹으면 즐길 수 있는 대중 스포츠로 자리를 잡아간다는 의미다. 제대로 된 산업으로 키워볼 만한데, 여전히 치는 사람이나 골프장이나 불만이 많다. 고객은 비싸다고 투덜, 골프장은 적자라고 울상이다. 과도한 세금이 발목을 잡고 있어서다. 현행 세제가 대부분 30~40년 전에 설계된 만큼 하루 빨리 개선해야 한다는 목소리가 높다. 우리나라 골프산업의 현주소와 잘못된 세금 제도를 분석했다. 골프 대중화와 내수 활성화를 위한 과제도 짚었다.
▎골프 인구가 늘어가는데 골프장의 절반은 적자에 허덕인다. 개발 시대의 이중적 세금 규제가 골프장 경영 악화를 부추긴다는 지적이 나오고 있다. / 사진:중앙포토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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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 서울에 사는 직장인 박주호(33)씨는 얼마 전 친구들과 처음으로 강원도 원주 골프장에 나갔다가 골프의 매력에 푹 빠졌다. 평소 스크린골프를 자주 쳤지만 실제 필드에서 상쾌한 공기를 마시며, 나들이하는 기분으로 즐기는 골프와는 차원이 달랐다. 운동 효과가 제법 컸고, 비용도 부담할 만했다. 평일 휴가를 냈고, 할인 쿠폰까지 발급받은 덕분에 비용은 1인당 12만원(식비 등 부대비용 포함)가량 들었다. 박씨는 “생각보다 비용이 적게 들어 앞으로 더 자주 필드에 나갈 생각”이라며 “서울에서 가깝고, 시설 좋은 골프장도 그린피가 좀 더 저렴해졌으면 좋겠다”고 말했다.#2. 18홀 회원제 골프장 대표 A씨는 요즘 고민이 많다. 아무리 고민해도 적자를 벗어날 방법이 보이지 않아서다. 주변에 10여개 골프장이 밀집한 지역이라 가격 경쟁은 치열한데 인건비 등 운영비 부담은 갈수록 늘고 있다. 골프장 내장객이 늘어난다는 뉴스도 그에겐 별로 달갑지 않다. 어차피 회원 수요만으로 골프장을 운영하기엔 한계가 있고, 회원들 눈치에 비회원에게 과도한 혜택을 주기도 어렵다. 돈을 버는 것도 아닌데 세금은 왜 이렇게 많은지 한숨만 나온다.
전국 골프장의 절반이 적자 경영불과 10여년 전까지만 해도 집 거실 한 켠에 놓인 골프백은 잘 살고 못 살고를 나누는 척도 중 하나였다. ‘골프를 친다’는 사실 자체가 부를 입증하는 것이었는데 그럴 만했다. 너댓시간 즐기려면 100만~150만원(4인 기준) 정도를 투자해야 하는 비싼 스포츠였기 때문이다. 돈이 있다고 갈 수 있는 것도 아니었다.대부분이 회원제라 골프장이 많지 않던 시절엔 부킹(예약) 자체가 일종의 권력이고, 힘이었다. 그랬던 골프가 지상으로 점점 내려오기 시작했다. 일단 골프장 숫자가 늘었다. 해마다 30~40개씩 늘어난 골프장은 2014년 492.5개(18홀 기준 환산)가 됐다. 올해 500개를 넘어설 것이 확실시 된다. 자연히 경쟁이 본격화됐다. 초기엔 주로 ‘우리가 더 좋다’며 시설로 우열을 다퉜지만, 금융위기를 거치면서 너나 할 것 없이 가격 경쟁을 시작했다.그 사이 다른 쪽에서 예상치 못한 수요가 발생했다. 스크린 골프였다. 1990년대 미국에서 연습용으로 들여온 스크린골프는 2000년대 말부터 저렴한 가격과 높은 접근성을 무기로 빠르게 대중 스포츠로 진화했다. 2008년 600개였던 스크린 골프장은 지난해 약 5500개로 늘었다. 초기엔 40~50대 이상 중장년층이 주로 이용했지만 최근에는 20~30대 비중이 30%를 넘을 정도로 고객층이 다양해졌다. 원래 골프를 즐기던 사람이 아닌 신규 수요를 창출하는 데 성공했다는 의미다. 그리고 이 수요가 얼마 후 실제 필드로 나오기 시작했다.우리나라 골프 인구는 금융위기 여파에도 꾸준히 늘었다. 2006년 1965만명이던 골프장 내장객은 이듬해 2000만명을 돌파했고, 2013년 처음으로 3000만명을 넘어섰다. 지난해엔 사상 최대치인 3314만명이었다. 회원제 골프장이 전년 대비 2.2% 늘어난 1794만명, 비회원제(대중) 골프장이 12.5% 늘어난 1520만명의 고객을 끌어 모았다. 조만간 대중 골프장 내장객이 회원제를 추월할 전망이다. 회원권이 있거나 회원이 동반해야만 골프를 치던 시절도 끝나 간다는 의미다.
회원제 골프장 재산세율 일반 기업의 10~57배공급 경쟁이 치열해지고, 수요가 늘면 당연히 가격은 떨어진다. 골프장 이용요금은 크게 3가지로 나뉜다. 그린피와 캐디피, 카트 이용료다. 캐디피와 카트 이용료는 대략 10만원 정도다. 이와 달리 그린피는 천차만별이다. 1인당 30만원대 그린피를 받는 골프장이 있는가 하면 지방 골프장 중엔 3만원(평일)을 받는 곳도 있다. 사실 10만원 이하의 그린피는 불과 얼마 전까지 상상조차 못했던 일이다. 그러나 최근 많은 골프장이 5~6만원대의 특가 상품을 연이어 내놓으면서 가격 경쟁이 더욱 치열해졌다.가격은 저렴해지고, 회원의 특권마저 사라지는 추세니 사실상 골프가 대중화 단계에 진입했다고 볼 수 있다. 그러나 뭔가 발목을 잡고 있는 느낌이다. 골퍼 입장에선 여전히 비싼 가격이 불만스럽다. 어림 잡아 그린피가 20만원이라고 하면 4인 기준 이용료는 캐디피와 카트 이용료를 포함해 약 100만원이다. 반나절 즐기는데 1인당 25만원이니 고급 스포츠인 게 맞다. 골프장 내장객도 늘고, 요금도 비싸다. 그렇다면 골프장이 떼돈을 벌어야 정상이다. 그런데 아니다. 전국 골프장의 절반(49.2%)이 적자(2013년 기준)다. 수년째 적자에 허덕이다 매물로 나온 골프장만 40여개다. 한창 짓다가 공사를 중단한 골프장, 법정관리 중인 골프장까지 합하면 500개의 골프장 중 5분의 1이 현재 생존의 위기에 처해있다.가장 큰 이유는 바로 세금이다. 골프장에 고율의 세금을 물리기 시작한 건 약 50여년 전으로 거슬러 올라간다. 골프를 사치스런 운동으로 보고, 세금을 과하게 물려 억제해야 할 대상으로 분류했기 때문이다. 당시엔 전국 골프장이 70~80개 정도로 사실상 독과점 체제로 운영된 만큼 이런 입법 목적에도 좋은 취지가 담겨 있었다. 그러나 경제 성장에 따라 일반 국민 중 상당수가 골프를 즐기고, 골프장 경쟁 체제가 시작된 지금도 세제가 그대로라는 점이 문제다.우리나라 골프장은 크게 3가지 종류의 세금을 낸다. 재산세와 취득세, 종합부동산세다. 일반 기업도 다 내는 것이니 특별할 건 없다. 문제는 골프장은 항목마다 중과세 대상이라는 점이다. 현재 회원제 골프장의 취득세율은 취득가액의 10%(대중이나 지방 회원제 골프장은 2%), 재산세율(토지 기준)은 과세표준액의 4%다. 일반 기업 세율(2%)의 5배인 취득세에 대해선 큰 논란이 없다. 취득세는 주로 일회성 비용이어서 부담이 그리 크지 않다.핵심은 재산세다. 회원제 골프장의 재산세율 4%는 일반 기업의 재산세율이 0.07%~0.4%인 것과 비교하면 10배에서 최대 57배나 많다. 모든 스포츠 종목 중 유일하게 회원제 골프장에만 중과세를 매긴다. 도박장이나 유흥주점과 같은 고급 오락장과 세율이 같다. 한 수도권 회원제 골프장 대표는 “현재 회원제 골프장들은 매출이나 영업이익과 무관하게 매년 10억~40억원 가량을 재산세로 낸다”며 “골프장에서 땅은 생산시설인데, 그걸 가지고 있다는 이유만으로 중과세를 하는 건 납득하기 어렵다”고 말했다. 더구나 재산세 산정 기준인 토지나 건물의 공시지가가 상향 조정되기 때문에 매년 부담이 커진다는 설명이다. 흑자를 내는 골프장이라면 버틸 만하지만 아니라면 적자가 누적될 수밖에 없는 구조다.
골프장 개별소비세가 왜 카지노보다 비쌀까?회원제 골프장이 가장 시급하게 개선을 요구하는 건 바로 원형 보전지에 대한 종합부동산세다. 원형보전지는 골프장을 지을 때 부지의 20% 이상 반드시 보유하도록 한 땅이다. 개발을 하더라도 20%는 원형 그대로 유지해 환경을 보호하라는 취지다. 당연히 개발과 거래가 불가능하다. 문제는 이 땅에도 종합부동산세를 매긴다는 점이다. 그것도 종합합산 방식(대중 골프장은 최고세율 0.7%로 별도 합산)을 적용해 최고세율이 2%나 된다. 일반적으로 종합합산 과세는 투기용(비업무용) 또는 사치성 재산에 부과한다. 이기열 대주회계법인 대표이사는 “어쩔 수 없이 보유하도록 했으면 별도 합산을 해야지 종합합산해 중과세 하는 건 납득하기 어렵다”며 “대중 골프장은 별도 합산을 하면서 회원제만 종합합산하는 것 또한 모순”이라고 지적했다.이 문제에 관해 2008년 헌법소원이 제기됐지만 헌재는 시행령의 위헌성은 다루지 않는다며 각하했다. 종합부동산세의 과세 방식 등과 비과세 대상 등은 지방세법 시행령에서 규정하기 때문이다. 다만, 당시 헌법재판관이던 목영준 김앤장 사회공헌 위원장이 낸 반대 의견은 참고할 만하다.‘골프장 내 원형보전지는 회원제 골프장이든 대중 골프장이든 법령상 그 보유가 강제되고 개발 및 처분이 금지되므로, 이는 토지의 과다 보유 및 투기적 수요를 억제하려는 종합부동산세의 입법취지와 맞지 않을 뿐 아니라, 별도 합산 과세제도의 취지 즉, 업종의 성격이나 토지이용의 현황, 과다 보유의 개연성 등을 고려하여 종합합산과세의 획일적 적용에서 오는 불합리를 보정하려는 의도에도 부합하지 않는다.’이러한 세금 부담을 골프장만 떠 안는 게 아니다. 골프장 이용객도 개별소비세와 국민체육진흥기금을 낸다. 미국이나 유럽 등에선 찾아볼 수 없는 세금이다. 우리나라를 제외하면 일본이 평균 500엔 정도의 입장세를 받는 게 전 세계적으로 거의 유일하다. 그러나 골프장 이용객 중에 골프장에 갈 때마다 2만 1120원씩 개별소비세를 내고 있다는 사실을 아는 사람은 드물다. 이 돈은 매번 내는 그린피에 포함돼 있다.이 역시 1961년 도입됐으니 50년이 넘었다. 1976년 특별소비세(현 개별소비세)로 변경됐는데 이후 스키장 등은 부과 대상에서 제외됐지만 골프장은 카지노·경마 등과 함께 그대로 남아있다. 그런데 이런 사행성 업종보다 골프장 개별소비세가 더 비싸다. 내국인 카지노의 3.2배, 경마의 12배, 경륜(경정)의 30배다. 2013년 기준으로 골프장 개별소비세(국세) 수입은 약 2700억원이다. 골프장 측은 ‘개별소비세 면제에 따른 지역경제 활성화와 일자리 창출 등 기대 효과가 1조5550억원에 달한다’고 주장한다. 세수 감소액보다 국가 경제에 훨씬 큰 이득이라는 설명이다.3000원의 체육진흥기금 역시 선뜻 이해하기 어렵다. 기본적으로 골프장을 일반 체육시설이 아닌 사치성 시설로 본다면서 체육기금을 내라는 것이니 뭔가 앞뒤가 안 맞다. 더구나 체육진흥기금은 1986년 아시안게임, 1988년 올림픽 기금 조성을 위해 만든 것으로 징수 목적은 예전에 달성했다. 그럼에도 한동안 이어지다 2000년부터 회원제 골프장을 제외하고 볼링장·스키장·경마장 등은 폐지했다. 2013년부터 회원제 골프장도 체육기금을 받지 않았다가 야당의 ‘부자 감세’ 논리에 밀려 폐지안이 국회에서 부결됐다. 이 때문에 지난해부터 다시 받고 있다.정부가 오락가락 세금 완화로 업계의 분란만 야기했다는 지적도 나온다. 회원제 골프장과 대중 골프장 사이의 갈등이다. 여전히 중과세에서 벗어나지 못한 회원제 골프장과 달리 대중 골프장은 재산세·종부세 일반과세, 개별소비세 면제 등 세제 혜택을 받는다. 사실 회원제라고 회원만 다니는 게 아니다. 비회원 이용객이 평균 75%에 달한다. 비회원인 경우 회원제 골프장에 갈 땐 2만1120원을 내고 대중 골프장에 갈 땐 안 낸다는 얘기다. 보유세 감소분까지 감안하면 대중 골프장 그린피가 더 저렴해야 하지만 실제로 대중 골프장 그린피는 회원제와 별 차이가 없다. 우리나라에서 주말 그린피가 가장 비싼 골프장 1·2위는 대중 골프장이다. 회원 모집 여부를 놓고 기계적으로 나눈 탓에 시장질서만 왜곡된 모양새다.
비싼 그린피에 해외로 나가는 국내 골퍼들정부나 국회도 골프장 세제 개편의 필요성을 어느 정도 인정하지만 선뜻 나서지 못하는 분위기다. 법인세 인하에 대한 반발 기류가 만만치 않은데다, 기본적으로 ‘골프장=체육시설’이란 확실한 판단을 내리지 못했기 때문이다. 그러나 일반 기업의 법인세 인하와 골프장 중과세 완화는 달리 볼 여지가 있다는 게 전문가들의 지적이다. 이기열 대표는 “모순된 세금 제도를 바꾸고 골프장 경영이 안정되면 그 효과가 골프장 이용객에게 곧바로 돌아간다”며 “골프장을 일부 특권층만 이용하던 시절엔 있는 사람에게 세금을 더 깎아주는 격이니 이런 논리가 안 통했지만 이제는 확실히 골프의 대중화를 준비해야 시점이 됐다”고 말했다.한국세무학회의 연구보고서에 따르면 골프장의 재산세율을 4%에서 2%로 낮출 경우 골프장 내장객 1인당 2만6570원을 절감할 수 있다. 개별소비세 폐지, 종부세 중과세 폐지 등과 맞물리면 내장객 1인당 이용요금을 5만~7만5000원 가량 낮출 수 있다는 게 업계의 입장이다. 한 수도권 골프장 재무이사는 “현 세제는 정부가 세금을 기준으로 오히려 부와 가난을 나눠놓은 것”이라며 “과도한 세금을 조정하면 성수기에도 10만원 정도에 즐길 수 있는 ‘반값 골프장’이 가능하고, 그러면 골프장이 일반 체육시설로 자리매김할 수 있다”고 설명했다. 골프장이 세금 혜택만 얻고, 요금 인하에 미온적인 경우에 대비해 아예 관련법에 부칙으로 못을 박는 방법도 있다. 정부는 2008년 서비스산업 선진화 방안을 발표하면서 한시적으로 골프장의 취득세 등을 완화하고, 개별소비세를 감면해줬다. 당시 조세제한특례법 부칙에 지방자치단체장이 주관한 요금 심사위원회를 운영하도록 규정해 사실상 감독 기능을 부여한 바 있다. 한국골프장경영협회 관계자는 “여력이 있는 부유층은 가격에 상관없이 계속 골프를 칠 것”이라며 “골프장 이용요금이 낮아지면 중산층이 더 큰 혜택을 볼 수 있다”고 지적했다.우리나라 골프장 매출은 연간 4조7000억원에 달한다. 전체 산업 영역으로 확장하면 시장 규모가 약 32조원이다. 내수 경기 부양과 고용 창출, 지역경제 활성화 등에서 이미 큰 역할을 담당하고 있다는 의미다. 한 여당 의원은 “국가적·산업적 측면에서 종합적인 육성 계획을 세울 필요가 있지만 부정적인 인식이 여전해 쉽게 나서기 어려운 게 사실”이라고 말했다. 이렇게 시간을 보내는 사이 많은 돈이 해외로 빠져나가고 있다. 해외 원정을 떠나는 골퍼가 해마다 늘고 있어서다. 우리나라 관광객이 해외 골프관광으로 지출하는 돈은 매년 4조원(기타 관광비용 포함)에 달한다는 게 업계의 추산이다.실제로 중국·베트남 등이 저렴한 가격을 무기로 각국 관광객을 유치하고 나서니 국내 골프장은 넋 놓고 당하는 수준이다. 특히 규모로 승부를 거는 중국 골프장 중엔 3박4일에 30만원(항공권과 숙박비 포함)도 안 하는 상품을 내놓은 곳이 수두룩하다. 일정 기간 골프와 숙박을 약정하면 무료 항공권을 제공하는 골프장까지 등장했다. 이와 달리 외국인 관광객이 한국에 와서 골프장을 찾는 경우는 드물다. 외국인 관광객 1000만명 시대에 외국인을 마주치는 게 너무나 자연스런 일이 됐지만 골프장에선 그렇지 않다. 여행 업계에서 상품 개발을 꺼려서다. 한 여행사 관계자는 “우리나라 골프장은 워낙 요금이 비싸고, 세금 비중이 커서 협상의 여지가 거의 없다”며 “그나마 개별소비세가 없어 저렴한 제주도에서 일부 상품을 판매 중이지만 확실히 한계가 있다”고 말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