Column

불황을 대하는 CEO의 태도 

 

김경원 디큐브시티 대표

필자가 초등학교 시절인 1960년대 후반의 일이다. 당시 필자의 부친은 서해안의 한 항구도시에서 어선 10여척을 보유한 수산 업체를 경영하고 있었다.

선친 회사의 어선들 중 유독 한 척의 배가 같은 회사의 배는 물론이고, 그 항구의 모든 어선 평균보다 훨씬 높은 어획고를 올리고 있었다. 특이한 것은 그 배가 태풍 철인 7월에서 9월까지의 기간에는 집중적으로 고기를 많이 잡아 온다는 것이었다. 그 배의 선장은 50대 초반의 경험이 많은 사람이었다.

그는 평소에 말이 별로 없고 항상 생각하는 듯한 표정을 짓고 있었다. 호기심이 많았던 필자는 바다에서 항구로 이 배가 돌아올 때마다 그를 따라다니면서 ‘고기 많이 잡는 비결’을 알려달라고 졸랐다. 꼬맹이의 집요함에 말없는 웃음으로 대하던 그가 보름 간의 조업을 마치고 입항한 어느 날 아침에 필자를 보더니 부둣가의 허름한 매운탕 집으로 데려가서 원하던 대답을 주었다.

그가 태풍이 부는 시기에 고기를 잘 잡는 것은 태풍이 부는 바다에서 잘 버티었기 때문이라는 말부터 꺼냈다. 바다에서 조업 중 라디오를 통해 태풍 예보가 뜨면 다른 배들은 죄다 근처 섬으로 피하지만 자기 배만은 그 자리에 닻을 내리고 남았단다. 그리고 정작 태풍이 닥치면 바다에서 몇 시간 동안 태풍이 지나 가길 기다리고 나서, 날씨가 다시 개면 조업에 나선단다. 태풍이 바다의 바닥까지 뒤집어 놓고 지나가니 이때 떠오른 플랑크톤을 따라 엄청난 크기의 고기 떼가 따라오고 여기다 그물을 던지면 바로 만선이 되곤 했단다. 그의 설명에 필자는 태풍이 불면 배가 침몰하지 않느냐고 물었다. 또 다른 배들도 똑같이 하면 고기를 많이 잡을 수 있지 않겠느냐고 물었다.

그는 배란 바람의 방향으로 뱃머리가 향해 있으면 아무리 거친 파도에도 끄떡 없는 법이라고 답했다. 단, 문제는 바람의 방향을 잘 예상해서 제때에 바람 방향으로 뱃머리를 돌려 놓는 것이 중요하단다. 선장의 경험과 판단력뿐만 아니라 정보수집 노력도 중요한 역할을 한다고 부언했다. 예를 들어 출항 전에 남쪽에서 발생한 태풍의 예상경로를 여러 신문을 통해 머리 속에 넣고 온다고 했다.

필자는 마지막 질문을 했다. 태풍이 불어오는 동안 버티는 것이 두렵지 않느냐고. 그는 이렇게 답했다. 이 태풍 뒤에는 햇살, 잔잔한 바다와 함께 큰 고기떼가 올 것이라는 희망과 확신이 자신과 선원들을 버티게 하고 두려움을 이기게 해준다고. 그리고 태풍 후 만선의 큰 기회를 잡기 위해서는 준비를 철저히 해야 한다고. 태풍이 오기 전 그물을 꼼꼼히 손질해놓고 이를 어창에 넣어 태풍에 손상되지 않도록 잘 보전해야 태풍이 지나가고 난 뒤 제대로 이를 펼칠 수 있다는 것이다. 그리고 그는 일제 강점기에 교육을 받은 세대답게 바다 한가운데에서 닻을 놓고 버티는 것을 뱃사람들은 일본어를 써서 ‘나가레(流れ·물살) 친다’라고 부른다는 것도 알려주었다. 훗날 필자가 일본어를 배우고 나서 이런 뱃사람들의 투지를 ‘나가레 정신’이라 이름 붙이고 웃은 적이 있다.

긴 불황과 더불어 많은 CEO의 수심도 깊어가고 있다. 그러나 요즘 그 선장의 가르침, 즉 ‘나가레 정신’을 다시 새기며 힘을 낸다. 태풍도 견딜 수 있는….

1286호 (2015.05.2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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