Column

도끼를 탓하지 않는 소나무처럼 살길 

 

이상호 참좋은레져 대표

#1. 어느 날 집사람과 동네 식당에 갔을 때의 일이다. 음식을 주문하고 있는데, 직원의 태도가 왠지 모르게 건성건성인 듯해서 기분이 상했다. 다른 직원들의 모습도 비슷했다. 언행이 불친절할 뿐만 아니라 일을 별 생각 없이 대충대충 하는 게 아닌가. 심지어 매우 뜨거운 음식을 운반하면서 주의를 기울이지도 않았다. 그래서 나도 모르게 혼잣말로 지적하고 있는데 집사람의 얼굴이 일그러졌다. “당신이 이 집 사장이야? 왜 그리 못마땅한 게 많아?” 매사 그리 불만이면 외식은 왜 하느냐는 구박이 이어진다. 그러나 일부러 지적하려고 하는 게 아닌데도 부지불식간에 눈에 보이고 귀에 들리니 어찌하겠는가? 매사를 경영자의 관점에서 바라보는 습관 때문에 생긴 일인 듯하다. 이것이 병이라면 직업병이요, 산업재해가 아닌지 모르겠다.

#2. 며칠 전 병원에 갔을 때의 일이다. 예약시간보다 조금 일찍 가서 접수를 하는데 접수창구 직원이 진료 전에 몇 가지 검사를 해야만 진료를 받을 수 있다고 했다. 순간 나도 모르게 “국내 유수의 종합병원이 환자에게 사전고지도 없이 이런 법이 어디 있느냐?”라며 목소리를 높였다. 그러자 접수담당 직원이 차분하게 “분명히 전산상으로 안내문자가 발송된 것으로 나온다”고 반박했다. 다시 확인해 보니 두 개의 문자를 받았는데, 앞의 것은 못 보고 나중에 온 문자만 본 것이다. 미안하다고 가볍게 던지고는 걸음아 날 살려라 하고 진료실로 직행했다. 기다리면서 곰곰이 생각했다. 상대의 조그만 실수나 허물도 용납하지 않겠다는 삐뚤어진 시각으로 나의 몸과 마음이 이미 단단히 굳어져 버린 것은 아닐까. 이것은 분명히 경영자의 직업병이 아니라 인간으로서 인격 부족과 소양의 결핍이 분명해 보인다.

#3. 몇 년 전 경제잡지 포브스코리아의 ‘한국의 CEO를 말한다’라는 기획물에서 CEO들에게 ‘죽을 권리와 살아야 할 의무’ 중에서 하나를 선택하라고 했다. 결과는 ‘품위를 지키면서 죽을 권리가 어떻게든 살아야 할 의무보다 훨씬 더 많다’고 나타났다. 그런데 최근 어느 경영자의 죽음으로 우리 사회가 논란에 휩싸여 있는 것을 보면서 착잡한 생각이 들었다. 마지막 죽음의 순간에도 메시지를 전해 이 세상과 사회에 뭔가를 남기고자 하는 행위가, 옳고 그름을 떠나 분명 다른 직업인과는 참 다르다는 생각이 많이 들었다. 예전 D건설 N사장의 죽음도 생각난다. 한강에 뛰어드는 극단적 선택을 할 수밖에 없었던 충격적 사건으로 아직도 뇌리에 생생하다. 경영자의 죽음은 일반인의 그것과는 조금 다른 것 같다. 특히 종교인의 죽음과는 참으로 다르다는 생각이 든다. 고(故) 김수환 추기경의 ‘서로 사랑하고 용서하라’는 마지막 메시지와 각막기증 행위를 보아도 그러하다. 그러고 보니 이 땅에서 기업을 한다는 것은 정상과 비정상, 준법과 위법이라는 칼날 위에 서 있는 것과 같다는 어느 경영자의 푸념이 떠올라 웃어 넘길 수가 없다. 물론, 성철스님도 ‘사람들은 소중하지 않은 것에 미쳐 칼날 위에서 춤을 추듯 산다’고 진작에 설파하셨지만.

이솝 우화의 ‘도끼를 탓하지 않는 소나무’를 음미하면서 글을 마칠까 한다. ‘나무꾼이 소나무를 쪼개고 있었습니다. 그런데 나무꾼이 쓰는 도끼자루는 바로 그 소나무 가지로 만든 것이었습니다. 그래서 소나무가 말했습니다. 내 몸으로 만들어진 도끼인 만큼 나를 쪼개는 도끼를 탓하지는 않겠습니다.’

1284호 (2015.05.11)
목차보기
  • 금주의 베스트 기사
이전 1 / 2 다음