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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각박한 삶 파고드는 슬로 라이프] 우리는 왜 ‘삼시세끼’에 열광했을까? 

일상의 행복을 찾는 슬로 라이프 확산 ... ‘만드는 기쁨’ 잊었던 ‘소비형 인간’의 반성 

슬로 라이프(Slow Life)가 빠른 속도로 우리 생활에 스며들고 있다. 삶을 옥죄는 성장 압박과 과도한 속도 경쟁에 대한 일종의 반발 심리다. 농사를 지어 직접 요리를 하는 TV프로그램과 영화에 시청자가 반응하고, 별 볼일 없이 걷기만 하는 슬로투어가 인기를 끈다. 소비보다는 생산, 소유보다는 공유, 복잡함보다는 단순함, 화려함보다는 소박함을 추구하는 것으로 생활 방식이 바뀐다는 의미다. 가격이 더 비싸도 자연친화적이고, 건전한 유통 생태계를 갖춘 생필품을 찾는 이들이 늘면서 유통 업계의 생존 전략도 바뀌고 있다. 삶을 바꾸는 슬로 라이프의 최신 흐름을 짚어봤다. 국제슬로시티연맹이 인증한 국내 11개 슬로시티의 현주소도 짚어봤다.

▎[리틀 포레스트: 여름과 가을]의 한 장면. 고향으로 돌아온 이치코가 직접 농사를 짓고, 계절에 맞는 ‘집밥’을 만드는 과정을 그린 영화다. / 사진:중앙포토
도시로 떠났던 이치코는 어느 날 뭔가에 끌리듯 고향으로 돌아온다. 토호쿠 지방(도쿄가 있는 간토와 훗카이도 사이에 있는 일본의 동북지역)의 작은 시골마을 코모리가 그의 고향이다. 장을 보려면 한 시간 반이나 걸어나가야 하는 벽촌이다. 고향에 돌아온 그는 어린 시절 그때처럼 농사를 짓고, 텃밭에 가꾼 채소로 식사를 준비한다. 장마철 습기 제거를 위해 설치한 장작 난로로 빵을 굽고, 한여름 무더위를 날려줄 식혜 한 잔에 행복한 미소를 짓는다. 유년기 추억이 담긴 수유나무 열매로 잼을 만들고, 개울에서 딴 멍울풀 절임으로 식욕을 돋운다.

계절이 바뀐다. 으름 간장조림과 호두밥이면 훌륭한 수확철 도시락이 완성된다. 껍질을 까서 설탕을 넣고 조리기만 하면 후딱 완성되는 밤조림은 온 동네에 유행 간식처럼 퍼진다. 샐러리 볶음을 만들 땐 그 옛날 ‘엄마의 맛’을 떠올린다. 식감을 재현해내는 게 좀처럼 쉽지 않다. 이유는 간단했다. 엄마는 샐러리를 감싼 껍질을 일일이 벗겨냈었다. 이치코는 이 간단한 음식에도 엄마가 얼마나 큰 정성을 쏟았는지 새삼 깨닫는다. 엄마는 말했다. “요리는 마음을 비추는 거울이야.”

지난 2월 개봉한 일본 영화 [리틀 포레스트: 여름과 가을]이 담은 두 계절은 그렇게 차분히 흘러간다. 노동과 노동 사이, 계절의 맛을 듬뿍 담은 14개의 소소한 음식과 주인공의 내레이션이 이 영화의 전부다. 여느 맛집 프로그램처럼 음식을 값비싼 카메라로, 기가 막힌 앵글로 잡는 것도 아니다. 그저 빵에 잼을 가득 발라 맛나게 씹는 이치코의 표정에서 만족감을 대신 느낄 뿐이다. 어제 벤 잡초에서 새싹이 돋아난 걸 보고 놀라운 생명력을 체감하는 그를 통해 땅의 가치를 다시 한번 생각할 뿐이다. 이 영화의 주제를 가장 정확하게 표현한 대사는 이거다. ‘말은 믿을 수 없지만 내 몸이 느낀 거라면 믿을 수 있다.’

“말은 믿을 수 없지만 내 몸이 느낀 거라면…”


▎[삼시세끼] 출연자들은 현지에서 직접 텃밭을 가꾸고, 식재료를 구해 밥상을 차리는 데 열중한다. 결과물보다는 재료의 취득과 요리 과정에 초점을 맞춘 [삼시세끼]는 슬로푸드에 공감하는 시청자로부터 큰 사랑을 받고 있다. / 사진:중앙포토
도시를 떠나온 이유, 엄마가 사라진 이유, 이치코처럼 고향으로 돌아온 후배 유타의 정체 등 관객 입장에서 궁금한 게 한두 가지가 아니지만 영화는 그냥 담백하게 일하고 먹는데 집중한다. [리틀 포레스트: 여름과 가을]은 이가라시 다이스케의 동명 만화를 원작으로 만든 영화다. 후속편인 [리틀 포레스트: 겨울과 봄]도 5월 14일 개봉했는데, 5월 초 열린 제 16회 전주국제영화제에 초청돼 전회 매진을 기록했다. 전작이 잔잔한 반향을 일으키며 입소문이 퍼진 때문이다. 물론 상영관이 거의 없어 대단한 흥행을 기대하긴 어렵겠지만, 영웅 대여섯이 지구를 지키러 날고 뛰는 블록버스터 영화가 아니면 관객의 시선을 사로잡기 어려운 요즘, 오로지 농사 짓고 먹는 이 영화의 선전은 그 자체로 이색적이다.

비슷한 시기 우리나라에서도 한 예능프로그램이 수많은 시청자를 TV 앞으로 끌어 모았다. 바로 [삼시세끼]다. [1박2일]로 ‘국민 PD’란 칭호를 얻었던 나영석 PD의 작품이다. 플롯은 [리틀 포레스트]와 거의 같다. 일하고, 먹는 게 전부다. 출연자들은 현지에서 직접 텃밭을 가꾸고, 식재료를 구한다. 그리고 하루 종일 밥상을 차리는 데 열중한다. 카메라는 별 기교 없이 그 모습을 담는다. 음식을 만들어 주변 지인들과 나눠먹는 것도 닮았다. [리틀 포레스트]와 [삼시세끼]는 단순한 ‘먹방(먹는 방송)’이 아니다. 정말 그걸 원했다면 예쁘고 잘생긴 연예인을 등장시켜 맛집을 찾아다니면 그만이다. 그게 제작비도 덜 든다. 그러나 [리틀 포레스트]와 [삼시세끼]는 뭔가 달랐다. 관객이나 시청자에게 보여주기 위한 수단은 ‘먹는 행위’였지만 이들이 그릇에 담아낸 건 요리가 아닌 삶의 철학과 살아가는 방식, 그리고 아주 소소한 일상이었다. 근사한 결과물(요리)보다는 재료의 취득과 요리 과정에 초점을 맞췄고, 그 사이에서 출연자들이 얻는 깨달음을 조미료로 썼다. 당연히 지루해야 할 콘셉트에도 몰입할 수 있었던 건 연출의 힘이었겠지만, 기본적으로 그 ‘밥 한끼의 가치’가 보는 이의 가슴을 두드렸기 때문이다. 도시 삶에 지친 현대인이 갈구하는 ‘슬로 라이프(Slow Life)’를 제대로 담아냈다는 의미다.

어쩌면 이들에게 영감을 줬을 만한 또 하나의 파격적인 시도가 6년 전 있었다. 노르웨이 국영방송 NRK는 2009년 개통 100주년을 맞은 베르겐(Bergen) 철도를 기념하는 다큐멘터리를 제작한다. 그런데 이 다큐멘터리, 뭔가 달랐다. 줄거리도, 내레이션도, 스토리도 없었다. 열차 제일 앞 기관실에 고정한 카메라가 보여주는 바깥의 풍경이 전부다. 터널을 지나면 어둠 그대로 까만 화면을 채우고, 열차가 기차역에 정차하면 카메라도 따라 멈춘다. 이 말도 안 되는 다큐멘터리는 7시간(실제 열차가 동서를 횡단하는 시간) 내내 방송을 탔다. 누가 볼까 싶은데 노르웨이 인구 500만명 중 120만명이 이 다큐멘터리를 시청했다. 전 세계 방송 역사의 한 획을 그은 ‘슬로 TV’의 탄생이었다.

소비에서 생산으로의 재전환

그로부터 2년 뒤 NRK는 한걸음 더 나아가 3000㎞에 달하는 노르웨이 피요르드 해안을 항해하는 유람선에 카메라를 달았다. 이는 무려 134시간 동안 생방송으로 전파를 탔다. 320만명이 이 프로그램을 보고, 집에서 함께 여행했다. PD의 역할은 카메라에 풍경을 담는 것뿐 편집도, 상상도 모두 시청자의 몫이었다. 그 뒤로도 양의 털을 깎고, 실을 뽑아 뜨개질을 하는 8시간 생방송, 연어의 회귀 여정을 그대로 담은 18시간 생방송 등이 탄생했다. NRK의 무모하지만 의미 있는 도전은 여전히 진행형이다.

영어 사전에 없던 ‘슬로 라이프’라는 용어를 처음 세상에 알린 것은 일본의 문화인류학자 쓰지 신이치 메이지가쿠잉대 교수다. 그가 이른바 ‘슬로 라이프 운동’을 제창한 것이 1990년대 말이니 이 단어가 전 세계적으로 통용되기 시작한 건 대략 15년 정도라 볼 수 있다. 그의 저서 [슬로 라이프]가 국내에 번역된 건 2005년이다. 신이치 교수는 지난해 한국에서 가진 한 강연회에서 “오늘날의 경제 원리는 사람들 사이의 경쟁을 근간으로 해 점점 빨라지고 과속하고 있어 모든 본연의 의미를 잃어가고 있다”면서 “자연이 서로 성장 속도를 맞춰 조화를 이루듯이 인간도 각자의 속도에 맞는 경제와 시스템을 가지고 함께 가야한다”고 말했다.

그가 예견했듯, 슬로 라이프는 제법 빠른 속도로 우리의 생활에 스며들고 있다. 각국의 행복지수가 경제성장률만큼 중요한 지표로 떠올랐고, 가격이 더 비싸도 자연친화적이고, 건전한 유통 생태계를 갖춘 생필품을 찾는 이들이 늘고 있다. 앞서 살핀 슬로 TV의 인기와 느리지만 건강한 생활 공동체를 만들자는 슬로시티 운동의 확산도 같은 맥락이다. 귀농·귀촌 열기가 식지 않는 것 또한 그렇다. 삶을 옥죄는 성장 압박과 과도한 경쟁에 대한 일종의 반발 심리다.

사실 슬로 라이프에 담긴 ‘느림’은 속도의 개념만은 아니다. 이 속에는 소유보다는 공유, 복잡함보다는 단순함, 화려함보다는 소박함 등 여러 의미가 내재돼 있다. 더 큰 틀에서는 소비에서 생산으로의 재전환을 의미하는 것이기도 하다. 경제 성장에 따라 소득이 늘자 사람들이 재미를 느낀 건 바로 ‘돈 쓰기’였다. 대량 생산 체제는 이러한 소비욕구를 뒷받침했고, 점점 사람들은 ‘필요 이상의 것’을 사들이기 시작했다. 우리가 사는 집, 타는 차가 대부분 그렇고, 2년에 한 번씩 약속이나 한 듯 바꾸는 스마트폰이 그렇다. 이른바 ‘보이는 것의 시대’에 더 비싸고, 더 화려한 것에 지갑을 열었지만 이런 소비적 삶의 고단함이 점점 사람을 지치게 했다. 달리 보면 사람들은 [리틀 포레스트]와 [삼시세끼]가 보여준 생산의 즐거움에 반응한 것이다. 제 손으로 가꾼 텃밭과 거기서 난 식재료로 만든 요리는 비록 허술하지만, 진짜 농부와 요리사가 아니어도 일상에서 ‘만드는 기쁨’을 느낄 수 있음을 보여줬다.

국내의 이케아 열풍 또한 이런 각도에서 해석할 수 있다. 이케아 매장에서 판매하는 제품에는 가구의 크기와 재질, 창고 위치가 표기돼 있다. 쇼룸에서 살 물건을 고른 고객은 부속품을 따로 1층 창고에서 구입해 직접 조립해야 한다. 이미 글로벌화에 성공한 이케아의 진출 전략이나 마케팅 방식은 국가별로 차이가 있지만 ‘DIY(Do It Yourself) 가구’라는 기본 틀은 같다. 이케아 이전까지 가구는 ‘사는 것’이었지만 완성품이 아닌 재료를 파는 이케아는 가구의 이미지를 ‘만드는 것’으로 바꿔놓았다. 창고와 가드닝(정원 가꾸기) 문화가 거의 없는 한국에서도 이케아는 가구와 ‘조립의 즐거움’을 함께 팔아 성공을 거두고 있다.

‘조립의 즐거움’을 함께 파는 이케아의 성공


▎이케아는 창고와 가드닝(정원 가꾸기) 문화가 거의 없는 한국에서도 가구와 ‘조립의 즐거움’을 함께 팔아 성공을 거두고 있다 / 사진:이케아 제공
사실 중국 시장에 연착륙한 이케아가 한국 진출을 선언했을 때 ‘속도를 중시하고, 귀찮은 걸 싫어하는 우리나라 소비자를 만족시키기 쉽지 않을 것’이란 우려가 많았지만 결과는 달랐다. 지난해 12월 18일 한국에 상륙한 이케아는 오픈 100일 만에 방문객 200만명을 돌파했다. 단 하나(경기 광명점)의 매장만으로 거둔 성과다. 조만간 경기도 고양과 서울 강동구에 2·3호점이 들어서고, 4·5호점 설립 계획도 추진 중이다.

이처럼 ‘슬로푸드’에서 점화된 슬로 라이프의 열기는 유통 업계 전반으로 퍼져가고 있다. 많이 만들고, 많이 팔아, 많이 벌던 고전적 틀에서 벗어나려는 움직임도 감지된다. 저성장기의 도래와 맞물린 일종의 생존 전략이기도 하다. 건강한 식재료를 무기로 내세운 슬로푸드 콘셉트의 레스토랑은 갈수록 인기를 끄는데, 맥도날드 등 패스트푸드 업계는 수요 감소로 고전하고 있다. 대형마트도 변신 중이다. 얼마 전 문을 연 롯데마트 광교점은 입구부터 여느 대형마트와 다르다. 진열대를 작게 만들어 통로를 확장했다. 판에 박힌 진열 방식도 바꿨다. 이케아형 쇼룸 방식을 채택해 체험형 공간을 넓혔다. 자연히 쇼핑시간이 길어진다. 빽빽하게 쌓아놓고 고객 회전 수를 높이려던 예전의 판매 전략과 달라진 점이다. 현재까지 실험의 결과는 아주 긍정적이다. 판매 공간은 10% 줄었지만 다른 매장에 비해 방문자는 20~30%, 1인당 구매액은 20%가량 많다는 게 롯데마트의 설명이다. 가구 구성의 급격한 변화에 따라 부침을 겪고 있는 대형마트가 슬로 라이프에서 나름의 해답을 찾은 것으로 볼 수 있다.


▎얼마 전 문을 연 롯데마트 광교점은 진열대를 작게 만들고, 통로를 넓히면서 쇼룸 방식을 채택해 체험형 공간을 확장했다. 고객이 머무는 시간을 늘리려는 대형마트의 새로운 시도다. / 사진:롯데마트 제공
각박한 삶을 파고드는 슬로 라이프의 힘은 여행 트렌드도 바꾸고 있다. 단순히 ‘먹고 즐기는 여행’이 아닌 ‘삶을 돌아보는 여행’이다. 빡빡한 일정으로 유명 관광지를 순회하는 여행보단 일단 걷고, 쉬고 싶을 때 쉬는 ‘슬로투어’가 인기다. 걸으면 차를 탄 것보다 느리다. 그러나 빨리 갈 때 놓치는 것을 만나게 된다. 사람과 바람, 길가의 풀 한 포기도 허투루 보이지 않는다. 차에 타면 잠자게 된다. 그러나 걸으면 생각하게 된다. ‘뭐 볼 게 있나’ 싶지만 지방 소도시 골목 여행이 각광을 받고, 그저 걷기만 할 뿐인 산티아고 순례길(프랑스 생장에서 피레네산맥을 넘어 스페인 산티아고 데 콤포스텔라에 이르는 약 800㎞의 길)을 찾는 관광객 숫자가 해마다 신기록을 경신하는 것도 같은 이유인지 모른다. 최근 국내 여행사들은 앞다퉈 ‘슬로투어’를 콘셉트로 한 여행상품을 쏟아내는 중이다. 상품이라고 팔긴 하지만 오가는 교통비나 숙박비를 묶어 할인해주는 정도다. 나머지 일정은 그저 여행자의 몫이다.

공유경제의 확산 또한 이런 흐름의 연장선이다. 공유경제의 핵심은 ‘더 가지려는 경쟁’에서 ‘더 효율적인 활용’으로의 전환이다. 지난해 10월 [한계비용 제로 사회] 출판을 기념해 내한한 미래학자 제레미 리프킨은 “예전엔 아이들에게 생일이나 크리스마스 연휴 때 장난감을 사주면서 ‘네 것’이라는 소유 개념을 가르쳤지만 요즘 젊은 부모들은 장난감 공유 사이트를 통해 아이들에게 장난감을 빌려 준다”며 “이런 교육을 받는 세대의 성장은 협력적 공유사회(Collaborative Commons)라는 새로운 경제 시스템의 필연적 도래를 의미한다”고 말했다.

실제로 공유경제는 단순한 아이디어 차원에 머물지 않는다. 이미 비어있는 집을 함께 쓰고, 서 있는 차를 함께 타자는 생각은 기존 자본주의의 틀을 바꾸는 단계로 진입하고 있다. 여행객에게 빈집을 빌려주는 세계 최대 숙박 공유사이트 에어비앤비는 2008년 설립 이후 7년 만에 기업가치가 200억 달러(약 21조8000억원)에 달하는 글로벌 기업으로 성장했다. 세계적인 호텔 체인인 메리어트나 하얏트보다 몸값이 더 비싸다. 승용차를 통한 택시 서비스 우버 역시 전 세계로 영역을 확장하고 있다. 각국에서 현행법과 상충하는 문제로 어려움을 겪고 있지만 속도의 문제일 뿐 공유경제의 확산은 부정할 수 없는 흐름이다.

‘소길댁’ 이효리의 삶에서 배우는 것

가수 이효리가 화려한 삶을 뒤로 하고 제주도로 떠난다고 했을 때 ‘얼마나 가겠느냐’는 부정적인 견해가 많았다. 그러나 트렌드 메이커로서 각종 압박에 시달리고 매일매일 스케줄에 쫓기던 한 연예인의 극적인 변화는 놀라웠다. 그는 지금 아주 느리지만 의미 있는 시간을 보낸다. 여전히 대중과 소통하길 즐기지만 방식은 완전히 다르다. 어느새 텃밭을 가꾸고, 채식주의를 홍보하고, 나눔이 몸에 밴 ‘소길댁(이효리가 사는 곳을 딴 별명)’이 더 잘 어울리는 사람이 됐다. 이제는 많은 이가 그의 선택을 지지하고, 존경의 시선을 보낸다. 신이치 교수가 ‘슬로’ 뒤에 ‘라이프’를 붙인 건 그 느림이 잠시 즐기는 것이 아니라 살아가는 방식의 총체적 변화이길 원해서였을 거다. 인정하든 안 하든 느림이 시나브로 우리 삶의 테두리에 스며들고 있다. 이 참에 속도에 매몰 당한 우리의 기계적 삶을 내려놓는 건 어떨까? 적응을 위해서가 아니라, 행복을 위해서.

1286호 (2015.05.2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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