World News

[수입물품 관세·소비세 인하 추진하는 中 정부] 해외 원정 쇼핑족 발길 돌려라 

해외에서 쓰는 돈만 1년에 177조원 … 한국엔 단기 호재, 장기 악재 가능성 

홍창표 KOTRA 중국지역본부 부본부장

▎중국에 아이폰6가 출시되기 전인 지난해 9월 중국 베이징. 홍콩에서 구매한 아이폰을 중국 시민들에게 비싼 값에 되팔기 위해 호객행위를 하는 사람들의 모습이 보인다.
지난해 해외로 여행을 다녀온 중국인은 1억명이 훌쩍 넘는다. 여행의 주된 목적 중 하나는 쇼핑이었다. 이들이 여행지에서 쓴 돈만 1조 위안(약 177조5000억원)을 넘어선 것으로 추정한다. 중국인들이 쇼핑을 위해 홍콩이나 일본, 한국으로 나가는 가장 큰 이유는 저렴한 가격 때문이다. 중국의 소비재 수입관세율은 6.4~25%이고, 사치성 소비재는 이와 별도로 30%가 넘는 소비세를 물린다.

홍콩에서 사서 중국에서 되파는 보따리상 등장

멀리 떠날 형편이 안 되는 중국인들은 버스나 배로 갈 수 있고 물건 값도 저렴한 홍콩을 쇼핑지로 택했다. 위안화 가치가 높아진데다 대부분 매장에서 위안화를 받기 때문에 중국인들에게 홍콩은 쇼핑천국과 다름없었다. 최근 홍콩은 각종 상품을 사재기한 후 중국으로 들여가 높은 마진을 붙여 파는 보따리상으로 골머리를 앓고 있다. 하루에만 2만명 이상이 중국과 홍콩을 왕래하는데, 중국 선전 출신이 다수를 차지한다. 주요 구매 품목은 분유나 기저귀 등의 유아용품과 치약·비누·샴푸 등 생활용품, 그밖에 약품과 건강보조식품이다. 최신 휴대폰과 와인도 인기 품목에 속한다. 지난해 아이폰6가 중국보다 홍콩에서 먼저 출시되자 아이폰6를 수십 대 구매해 중국에서 비싼 값에 되파는 업자들이 극성을 부렸다. 이런 형태의 보따리 무역이 활성화되면서 불편을 토로하는 홍콩 시민이 많다. 정작 홍콩에 사는 사람들은 자신들이 원하는 제품을 사기가 힘들어진 것이다. 급기야는 반중 감정으로 비화되면서 홍콩과 중국 경계 지역에서는 여러 차례의 시위가 발생하기도 했다.

선전 지역의 중국인들은 홍콩을 자유롭게 방문할 수 있는 복수 방문 비자를 가지고 있다. 이 제도는 2009년 처음 시행됐고, 이 해에만 100만명의 중국인들이 복수 방문 비자로 홍콩을 방문했다. 이후 방문자 수는 폭발적으로 증가했다. 지난해 홍콩을 찾은 외국인 관광객 6084만명 중 복수비자를 소지한 중국인 입국자는 1490만명에 이른다.

해외 원정 구매가 과열 양상을 빚고 홍콩 시민의 시위까지 발생하자 중국 정부도 보따리상에 대한 규제책을 내놓았다. 4월 13일 중국 선전시 정부는 선전 주민의 홍콩 복수비자 발급을 중단하고, 주 1회 방문 가능 비자로 변경하는 조치를 발표했다. 현재 홍콩을 원하는 만큼 자유롭게 출입할 수 있는 중국인은 선전 시민이 유일하다. 기존 발급된 복수 방문 비자는 그대로 유지되지만, 홍콩 당국은 이번 조치로 올해 홍콩을 방문하는 선전 주민 수가 예년의 3분의1 수준으로 줄어들 것으로 전망했다. 홍콩과 선전시는 이에 그치지 않고 보따리상과 불법 창고에 대한 단속조치도 내놨다. 양측은 상호협력을 더욱 강화해 나갈 계획이다.

중국 정부의 선전 보따리상 제한 조치에 대한 홍콩 시민들의 시각은 엇갈린다. 일부 기대감을 드러내는 시민들도 있으나 많은 사람이 이번 조치가 충분하지 않다고 생각한다. 더구나 기존 복수비자를 가지고 있는 보따리상들은 이번 조치와 상관없이 계속 비자가 유효하다는 점도 문제로 꼽는다. 또한 신규 복수 방문 비자 발급은 없어졌지만, 여전히 주 1회 방문이 가능하기 때문에 한계가 있다는 지적이다.

한편 중국 정부는 보다 큰 틀에서 해외 소비를 국내 소비로 돌리기 위한 대대적인 개혁을 단행할 계획이다. 4월 28일 국무원 회의에서 리커창 총리는 ‘국내 소비자들의 소비에 있어 선택의 폭을 넓히겠다’고 밝혔다. 아직 구체적인 방안이 나오지는 않았다. 올 상반기 중으로 중국 소비자의 수요가 많은 일부 해외 제품에 대해 시범적으로 수입관세를 인하하고 뒤이어 관세인하 상품의 범위를 확대해 나갈 것으로 예상된다. 한 상무부 연구원은 “앞으로 각종 생활 소비재에 대한 수입관세가 5~10% 하향 조정될 것으로 예상한다”며 “중산층들이 즐겨 찾는 화장품·의류·신발·모자·가방 등 용품에 대해서 우선 시행하고 일부 사치품 또한 포함될 것”이라고 내다봤다.

의류와 화장품 같은 인기 소비재에 대한 소비세 역시 정비될 것으로 알려졌다. 화장품 소비세는 기존 30%에서 무관세로 조정될 것이라는 관측까지 나온다. 공항 면세점과 면세상품 종류를 늘리고 기존 면세품 구매 한도 역시 확대시켜 중국 소비자들이 중국에서 보다 쉽게 해외 상품을 살 수 있도록 한다는 이야기도 들린다. 이밖에 해외 관광객의 구입 물품 통관과 세금 환급 절차를 간소화하고 불법 모조품이나 품질이 낮은 상품에 대해서는 엄격히 단속하기로 했다. 국무원은 이번 조치로 수입관세 및 소비세가 크게 인하되면 국내외 시장 간의 가격차가 줄어들 것으로 예상하고 있다. 결국에는 쇼핑을 위해 해외로 향하는 중국 소비자들의 발걸음을 국내에 잡아두는 효과를 기대한다.

전문가들 역시 이번 정책의 목적이 중국 내 소비활성화 문제를 해결하는데 있다고 분석한다. 세제 개혁을 통해 국내외 가격 차이를 줄어야만 1조 위안에 달하는 중국인의 해외 소비를 중국 국내로 유턴시킬 수 있다고 강조한다. 대외경제무역대학 국제상무연구센터 왕 주임은 “향후 수입이 확대되고 가격이 떨어짐에 따라 중국 소비자가 해외에서 분유와 기저귀를 사는 일은 옛날 일이 될 것”이라며 “정부가 관세인하 등 정책을 시행함으로써 소비자들이 지금보다 훨씬 싼 값에 질 좋은 해외 상품을 구매할 수 있을 것”이라고 말했다. 베이징공상대학 쉬전위 교수 역시 “관세인하 정책과 함께 소비세율의 과감한 인하가 필요하다”며 “본격적 소비 확대책이 해외 소비를 국내로 돌리는 전기를 마련하게 될 것”이라고 전망했다.

5~10년간 中 면세점 지각변동

중국의 소비 진작 조치가 본격적으로 시행되면 단기적으로는 한국산 소비재의 대중국 수출에 호재로 작용할 전망이다. 중국은 한국의 최대 수출대상국이지만 대부분 품목이 원·부자재 위주로 구성되어 있고 소비재의 수출 비중은 5% 미만이다. 하지만 수입관세 및 소비세 인하가 시행되면, 중국인들에게 인기가 높은 한국 소비재가 중국 소비자들을 만나는 기회로 작용할 수 있다. 또 중국 내 면세점이 증가하면 우리 프리미엄 소비재의 입점 기회도 증가하고 유통채널이 보다 다양화되는 계기가 될 수 있다.

장기 효과에 대해서는 고민해볼 필요가 있다. 한국 내 면세점을 통한 상품 판매 감소와 유커 관련 부가 산업에 부정적 영향이 있을 수 있다. 국내외 시장의 가격 차이가 축소되면 쇼핑을 위해 한국을 찾는 유커가 줄어들 수밖에 없다. 이는 장기적으로 한국 상품에 대한 수요가 줄어드는 효과로 나타날 수 있다. 거기에 의료·웨딩·호텔·요식업 등 부가 산업이 동반 타격을 입을 것으로 보인다. 정책 시행에 따라 중국 내 면세점은 향후 5~10년간 지각변동을 겪을 가능성이 크다. 한국의 관련 기업은 중국의 정책 변화를 예의주시하면서 소비시장의 변화에 선제적으로 대응하는 노력이 필요하다.

1289호 (2015.06.15)
목차보기
  • 금주의 베스트 기사
이전 1 / 2 다음