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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미국 PGA투어의 세계 경영] 중국 시장 발판으로 지구촌 장악 노려 

아시아권 대회 주최 서서히 늘려 … 거액의 상금에 선수들도 몰려 

남화영 골프칼럼니스트

▎미 PGA투어 선수들의 출전이 늘어난 HSBC챔피언스 대회. / 사진:중앙포토
세계 골프 투어들의 아시아 패권 쟁탈전이 치열하다. 미국 PGA투어가 중국·말레이시아에 대회를 주최하면서 기존 시장을 공고히 지켜오던 유러피언투어가 대응책 마련에 고심하고 있다. 아시아의 각 투어는 거의 무방비 상태다. 미국 대 유럽 열강의 먹잇감이 되고 있다.

미국 자체 시장에만 몰두하던 PGA투어는 2년 전부터 아시아에 본격 발을 들여놓았다. 미국과 쌍벽을 이룰 G2 국가로 급성장한 중국의 영향이 컸다. 중화권의 정치·경제력이 눈에 띄게 커지는 만큼 골프 시장 역시 엄청나게 성장한 것이다. 올해 중국에서는 7개의 남자 대회가 치러지는 데 총 상금만 국내 투어의 3배에 육박한다. 물론, 중국 내부에서는 시진핑 정부가 부패 척결을 외치면서 기존의 골프장을 과감하게 없애는 등 대대적인 사정 칼바람이 불고 있다. 하지만 이는 중국에서 골프산업이 체계적으로 발전하기 위해 토대를 쌓는 과정이라는 시각이 우세하다.

중국에 3부 투어 설립한 미국


중국 골프의 이런 형질 변경의 과도기에 미국 PGA투어가 중국 시장을 키워가면서 영향력을 확대하겠다는 야심을 드러낸 것이다. 중국은 종전까지 유러피언투어가 꾸준히 공들여왔던 시장이었다. 그래서 미 PGA투어는 중국 진출 초기까지 발톱을 숨기는 저자세였다가 최근 야욕을 드러냈다.

상하이에서 열리는 WGC-HSBC챔피언스가 미국의 단계적인 진출 전략을 상징적으로 보여준다. 지난 2005년 유러피언투어로 시작한 HSBC챔피언스는 중국 경제 중심인 상하이에서 개최된다. 유럽과 아시아에 사업 무대를 가진 HSBC은행으로서는 어마어마한 초청료로 타이거 우즈를 출전시키는 등 대회 홍보에 투자를 아끼지 않았다. 투어 입장에선 이보다 좋을 수 없는 스폰서였다.

2009년에는 미국을 비롯해 세계 6대 투어 선수들이 출전하는 WGC(월드골프챔피언십) 규모로 확장됐다. 대회 일정은 미국 PGA투어 시즌이 끝나는 11월로 옮겨졌고, 미국 선수들에게도 제한적이나마 출전 자격을 부여했다. 하지만 여전히 유러피언투어가 주도권을 가졌고, 미 PGA투어도 2012년까지는 비공식 이벤트 대회로 간주하면서 거리를 유지했다. 하지만 2013년 대회를 준비하면서 미국이 본심을 드러냈다. 플레이오프인 페덱스컵에 포함시켰고, 상금을 700만 달러에서 850만 달러로 올렸다. 대회 우승자에게는 미국 투어 3년 출전권을 주겠다고까지 했다.

PGA투어는 2009년부터 퀄리파잉스쿨 시스템을 없애고 2부투어인 웹닷컴투어를 뛰어야만 PGA투어 출전 자격을 주는 시스템을 갖췄다. 이후 차례로 전 세계에 하위 투어인 3부 투어를 둬서 우등생에게는 웹닷컴투어 출전권을 주는 이른바 ‘투어의 수직계열화’를 진행했다. 지난 2011년 PGA라틴아메리카 투어를 시작으로, 2012년 캐나다투어를 인수했고, 지난해에는 차이나투어를 설립해 12개 대회 스케줄을 소화했다.

여기에 보너스로 진출하는 나라에는 유소년을 위한 퍼스트티 프로그램이나 TPC코스 설립 등 기타 부대 사업 지원을 적절하게 활용한다. 심지어 팀 핀쳄 커미셔너는 요즘 ‘2019년 프레지던츠컵이 중국에서 열릴 수 있다’는 가능성까지 공공연히 표출한다. 오는 10월 송도에서 4년 후의 개최지가 발표된다.

유러피언투어는 내우외환


▎미국 페덱스컵으로 치러진 2013년 HSBC챔피언스 대회에서 더스틴 존슨이 우승했다. / 사진:중앙포토
이와 달리 유러피언투어는 내우외환에 시달리고 있다. 몇 년 전부터 유로존의 경제 여건이 어려워지면서 유러피언투어의 대회 규모도 점차 줄어들었고, 급기야 ‘유러피언투어를 PGA가 인수한다’는 루머까지 나돌았다. 지난해 말 열린 CIMB클래식에서 그런 우려가 극단으로 치달았다. 이 대회는 2010년부터 아시안투어와 미 PGA투어가 말레이시아 쿠알라룸푸르에서 공동 개최했다. 여기서도 미국의 단계적 진출 전략이 돋보였다. 초기 3년은 아시안투어의 공식 대회로, 미 PGA투어는 비공식 대회로 치러졌다. 2013년부터는 정식 PGA투어에 들었고, 총상금도 610만 달러에서 700만 달러로 증액됐다. 첫 해 25명에 그치던 PGA투어 출전 쿼터도 이제는 78명으로 확대됐다.

특히 지난해는 공교롭게도 대회 일정이 상하이의 유러피언투어 BMW마스터스와 같은 주에 열렸다. 세계적인 유럽 선수들이 대거 CIMB클래식에 출전하는 아이러니컬한 일이 벌어졌다. 유러피언투어를 대표하는 리 웨스트우드, 세르히오 가르시아가 중국 대신 말레이시아를 찾은 것이다.

유러피언투어는 황당했지만, PGA투어로서는 일정상 어쩔 수 없다는 입장을 냈다. 소속 선수들이 HSBC챔피언스에 이어지는 아시아에서의 투어 스케줄을 편성해야 한다는 이유다. 미국과 유럽이 팀대항전으로 맞붙는 라이더컵을 보면 유럽팀이 매번 이기는데도 유럽의 톱 랭커들은 유러피언투어 대신 미 PGA투어를 활동 무대로 삼는다.

최근 영국의 월간지인 [골프월드]에서 실시한 설문 조사를 보면, 미 PGA투어를 자신의 투어로 여기는 유럽 선수 비중이 2006년에는 33%에 그쳤으나 지난해는 무려 67%로 늘었다. 유럽 톱 랭커들은 대부분 미국으로 거주지까지 옮긴 상태다. 사이가 좋았던 로리 매킬로이와 유럽 매니지먼트 업계 거물 처비 챈들러가 결별한 것도 결국 미 PGA투어로 향하는 선수와 그걸 잡아보려는 유럽 기반 에이전트의 입장차 때문이다.

설상가상으로 유러피언투어의 기존 스폰서들도 매년 떨어져나가는 추세다. 투어의 큰 축이던 스페인은 경기 악화로 인해 올해 스페인오픈 1개 대회만 열린다. 지난해는 한국에서 6년간 열렸던 발렌타인챔피언십도 사라졌다. 올해 아시아에서 개최하는 유러피언투어는 6개지만 홍콩오픈(130만 달러)·히로인디안(150만 달러)·트루타일랜드클래식(200만 달러) 등의 대회 상금액은 미 PGA투어 대회 상금의 3분의 1에도 못 미친다.

지난 2009년 야심차게 시작한 ‘레이스투두바이(Race to Dubai)’도 김이 빠졌다. 두바이의 선박회사인 DP월드가 타이틀 스폰서가 되어 시즌 마지막인 11월에 총상금 1000만 달러를 걸고 유러피언투어 상금 랭킹 60위까지만 출전하도록 했다. 상금이 막대하거니와 선수들에게 나눠주는 보너스도 무려 1000만 달러가 별도로 책정되었으니, 도합 2000만 달러의 빅 이벤트였다. 하지만 그해 9월에 두바이 경기가 휘청하면서, 상금액이 25% 삭감되었다가, 지난 2012년에야 800만 달러로 소폭 증액됐다. 보너스도 750만 달러로 줄어들었다가 2012년에는 그 절반으로 축소됐다.

선수들이 빠져나가고 투어 규모가 축소되는 내우외환에 시달리자 유러피언투어에서는 지도부 교체 카드를 꺼냈다. 38년간 회장을 지낸 닐 콜스가 사임하고, 휫브래드, 디아지오, 펩시코 등에서 다양한 마케팅 경력을 쌓은 데이비드 윌리엄스가 올 초에 회장으로 부임했다. 커미셔너 조지 오그래디도 지난해 말 사임 의사를 표명했으며, 51세의 젊은 키스펠리가 여름부터 그 후임으로 업무에 착수한다. 캐나다의 로저미디어 대표인 펠리는 골프 업계에서의 경력은 없지만, 지난 캐나다올림픽의 방송 컨소시엄 책임자를 지내면서 다양한 성과를 낸 것으로 평가받는다.

사분오열된 아시아 투어들

아시아 시장이 미국과 유럽 투어의 각축장이 된 데 가장 큰 역할을 한 건 어찌 보면 통일된 역량을 발휘하지도 못하고 사분오열된 아시아 투어들이다. 현재 아시아에는 2004년 투어 선수들이 중심이 되어 창설한 아시안투어와 2009년 한국과 중국, 호주의 3국 골프협회가 주축이 되어 조성한 원아시아투어가 경쟁하며, 일본 JGTO투어, 한국투어에 호주투어까지 모두 5개 투어가 독자적으로 운영된다. 아시아 지역을 포괄하는 원아시아투어와 아시안투어는 경쟁관계다. 아시아 시장을 외세로부터 지키기보다는 미국·유럽의 해외 투어와 공동 개최를 하면서 위세를 키우려는 데 공을 들이고 있다. 상대 투어에 출전하는 선수에게 벌금을 부과하는 정책으로 논란이 일기도 했다.

아시안투어는 올해 총 19개의 대회를 연다. 상금이 많은 대회는 전부 미국·유럽과의 공동 개최이고, 10개인 자체 대회 중에 총상금 30만 달러 대회 3개에 100만 달러를 넘지 않는 대회가 7개다. ‘상금 100만 달러를 넘는 대회로만 꾸린다’고 표방하는 원아시아투어는 올해 10개의 대회를 여는데, 대부분이 각국에서 기존에 진행하던 대회의 공동 개최다. 한국에서는 매경, SK텔레콤오픈, 한국오픈이 여기에 속한다. 지난해 창설된 피지인터내셔널과 일본JGTO투어와 공동으로 개최하는 대회 2개 정도가 그나마 ‘신설’이란 이름을 붙일 수 있다.

일본 남자투어는 갈라파고스 섬처럼 고립되어 있다. 올해 총 27개 대회를 치르지만, 일본여자투어에 비해 스폰서가 줄고 인기도 점차 떨어지고 있다. 급기야 원아시아투어와 아시안투어에 각각 2개씩 해외 공동 개최를 하면서 아시아와 교류를 통한 타개책을 모색하고 있다. 한국투어는 몇 년 째 15개 미만의 대회로 운영되고 있다. 호주투어는 올해 9개가 예정되어 있는데 그중에는 상금이 10만 달러(1억1000만원)인 대회도 있다. 시장이 작은 데다 세금이 상금의 40%이상이고 비싼 체류비와 먼 거리로 인해 해외 선수들에게 인기가 없다.

이처럼 아시아 역내의 각 투어들은 유러피언투어처럼 하나로 통일되지도 못했고, 미 PGA투어처럼 주도권을 쥔 투어도 없으니 미국·유럽의 좋은 먹잇감이 되는 것이다. 올해 중국에서 열리는 대회는 모두 7개이며 총 상금액은 2530만 달러(약 280억원)에 이른다. 한국에서 예정된 남자대회 상금을 모두 합쳐야 100억원에도 못 미치는데, 중국은 고작 7개의 상금이 국내 총액의 3배 수준이다.

미 PGA투어는 하나의 대회만을 열고 있지만, 중국에 만든 3부투어에 자신들의 DNA를 전수하고 있다. 이 대회가 커지면 미국 무대 진출을 꿈꾸는 한국 선수들은 아마 중국 투어를 바라봐야 할지도 모른다. 유러피언투어가 미 PGA투어에 흡수될까 두려워하는 것이 조금도 이상하지 않다. 아시아의 각 투어들은 모래알같이 흩어져 있다. 중국에서 자체적인 투어가 자리잡기엔 아직 시기상조다. 미 PGA투어의 세계 시장 공략은 조용하지만 가공할 위력으로 착착 진행 중이다.

1292호 (2015.07.06)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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