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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COLUMN] ELECTRIC VEHICLE - 디젤차 시대의 종말 

유럽연합이 앞당기는 전기차 시대 

글 박상원 모빌리스타 칼럼니스트
유럽연합의 디젤차 규제 강화로 디젤차 시장이 흔들리고 있다. ‘지구를 살리기 위한 이산화탄소 감소’의 해결책인 디젤 엔진이, 뒤늦게 보건 전문가들에 의해 ‘사람 잡는’ 기술로 밝혀지자, 디젤 기술에 많은 투자를 해온 유럽 완성차 업체들은 비상이 걸렸다. 디젤차의 시대는 가고 하이브리드·전기차·수소연료전지차의 개발 및 판매가 활발히 이루어질 전망이다.

“저는 2020년까지 파리에서 디젤차가 사라지는 것을 보고 싶습니다.” 2014년 12월 7일, 프랑스 파리의 시장인 앤 히달고는 한 언론과의 인터뷰에서 폭탄 발언을 했다. 유럽 국가들 중 디젤차 판매 비중이 가장 높은 프랑스 수도의 최고 행정 수반이 디젤차 시대의 종말을 예고한 것이다. 놀랍게도 2014년 첫 6개월 동안 프랑스에서 판매된 신차 65%가 디젤이었음에도, 파리 시민들은 시장의 주장에 대거 찬성했다. 시민들의 84%는 공해와 싸우는 것이 시정 최우선 목적이라고 생각했다. 54%는 2020년까지 시내에서 디젤 차의 전면적인 운행 금지에 찬성했다. 이러한 움직임은 파리 시에만 국한되지 않는다. 프랑스의 매뉴얼 발리스 총리도 바로 한달 전인 2014년 11월, 프랑스의 디젤차 보급 장려는 ‘실수’였다고 말했다.


▎2020년에는 프랑스 파리 시내에서 디젤차를 보지 못할 수도 있다.
디젤차를 향한 선전포고는 프랑스뿐만이 아니었다. 히달고 시장의 폭탄발언 4개월 후인 2015년 4월 29일, 영국 대법원의 대법관 5명 전원은 영국 정부가 유럽연합위원회에게 영국의 공기질 개선 계획을 제출해야 한다고 판결을 내렸다. 이에 따라, 영국은 앞으로 디젤차에 대한 징벌적인 과세조치가 내려질 가능성이 크다. 런던 또한 파리와 마찬가지로 오래된 디젤차에 대한 통행료 징수 등으로 디젤차의 운행을 엄격히 규제할 계획이다. 도대체 왜 디젤차 천국인 유럽에서 이러한 움직임이 일어날까? 3년 전, 세계보건기구(WHO)의 어느 발표가 단초가 됐다.


▎WHO는 디젤 매연이 치명적 유해물질이라고 발표했다.
2012년 6월 12일, 스위스 제네바에 위치한 WHO는 디젤 엔진의 매연이 폐암을 유발할 수 있기 때문에, 석면이나 머스터드 가스(군사용 독가스의 일종)와 동일한 치명적인 유해물질로 분류해야 한다고 발표했다. 이어서 프랑스에 위치한 WHO 산하 국제암연구국(IARC, International Agency for Research on Cancer)은 디젤 매연을 발암유발 가능물질군인 그룹 2A에서, 확실하게 암을 유발하는 물질인 그룹 1로 재분류했다. 각국 정부 및 시민들의 디젤차에 대한 우려가 커졌다. 디젤차에 큰 이해관계가 걸려있는 유럽 완성차 업체들의 반발은 즉각적이었다. 하지만 이후 3년 동안 디젤 엔진의 유해성에 대한 경각심은 계속 커졌다. 결국 파리와 런던시가 2020년까지 시내 주행을 엄격히 통제하겠다는 발표를 하기에 이르렀다.

완성차 업체들의 반발은 근거가 있다. 유럽 완성차 업체들이 디젤 엔진에 많은 투자를 한 것은 유럽연합의 정책 때문이었다. 유럽연합은 20세기 중후반, 지구 온난화에 대한 위험성을 인식하고 각국의 이산화탄소 배출 규제를 강화했다. 이산화탄소 배출량이 가솔린 엔진보다 적은 디젤 엔진이 대안으로 여겨졌다. 원래 디젤 엔진은 가솔린 엔진보다 토크가 높아 상용차에 많이 사용됐다. 유럽 완성차 업체들은 디젤 엔진을 승용차에도 얹었다. 연비가 가솔린 대비 약 20%가 높은 디젤차에 대한 소비자들의 선호도가 높아졌다. 유럽 여러 지역에서는 디젤 가격이 가솔린보다 낮아 디젤차가 더욱 인기를 끌었다. 2014년 기준 BMW와 다임러의 경우 유럽에서 판매한 차종의 디젤 엔진 비중이 각각 81% 및 71%였다. ‘지구를 살리기 위한 이산화탄소 감소’의 해결책인 디젤 엔진이, 뒤늦게 보건 전문가들에 의해 ‘사람 잡는’ 기술로 밝혀지자, 디젤 기술에 많은 투자를 해온 유럽 완성차 업체들은 비상이 걸렸다.

전기차의 위협으로 디젤의 몰락 가속화


▎BMW는 서브 브랜드 i로 전기차 시장을 적극 공략한다.
역사적으로 유럽은 내연기관의 탄생지이다. 세계 최고의 내연기관을 만들어내는 업체들은 독일을 위시한 유럽 완성차 업체들이다. 내연기관은 그들의 자랑스러운 자식이었고, 강력한 경쟁력이었다. 그런데 디젤 엔진에 대한 유럽연합 내의 분위기가 심상치 않게 돌아가면서 완성차 업체 내에서 분란에 가까운 움직임이 포착됐다. 가장 대표적인 업체는 아우디였다. 지난 2013년, 당시 아우디 R&D 수장이었던 볼프강 뒤르하이머는 취임한지 불과 10개월만에 폴크스바겐 그룹 R&D 수장인 울리히 해컨베르그로 교체됐다. 당시 루머에 따르면, 아우디 R8 전기차 개발을 두고 내부에서 격론이 벌어졌고, 전기차 개발에 회의적이던 뒤르하이머가 밀려났다는 것이다. 이처럼 독일 완성차 업체들의 내연기관에 대한 애착이 반강제적으로 사라지고 있는 상황에서, 지난 6월 15일 전기차 컨퍼런스가 열린 베를린에서 안젤라 메르켈 총리가 독일 완성차 업체들 경영진들에게 전기차 보급이 미진하다며 힐책했다는 소문이 전해졌다. 경영진들은 전기차 개발 및 보급에 있어 정부의 도움 및 협력이 필수적이라고 지적했다. 이에 메르켈 총리는 2020년까지 독일에 1백만 대의 전기차를 보급할 수 있도록 각종 지원을 고려 중이라고 화답했다.

돌이켜보면, 필자는 디젤차가 대변하는 내연기관의 종말은 실리콘 밸리의 이단아인 엘론 머스크의 테슬라 모델 S가 시작이었다고 판단한다. 미국의 빅3을 비롯한 전세계 완성차 업체들의 전기차 사업은 수익성이 없다는 주장이 ‘핑계’였다는 사실을 테슬라가 명확하게 보여줬다. 친환경 성향의 유럽 정치인들에게 스타트업에 가까운 테슬라의 전기차 보급 성공은 매우 자극적인 소재였다. 가장 앞선 자동차 기술을 보유했다고 생각하는 독일인들은, 새로운 자동차 패러다임을 열어가고 있는 미국의 움직임에 경각심을 가질 수밖에 없었다. 따라서, 독일 완성차 업체들은 최근들어 전기차 개발 소식을 활발히 알리고 있다. 아우디의 경우 신형 R8과 신형 SUV인 Q6에 전기차 버전을 만들 것으로 예상된다. BMW는 이미 i3와 i8이라는 전기차 출시로 체면을 살렸다. 메르세데스-벤츠 또한 경쟁사들의 움직임을 예의 주시하고 있다.


▎다임러가 닛산에 공급하는 2.2L 디젤 엔진.
유럽 완성차 업체들은 그들이 투자해 놓은 디젤 엔진 기술의 지속적 판매가 어려워지자, 디젤 기술을 경쟁사와 공유하는데 앞장서고 있다. BMW는 이미 도요타에 소형 디젤 엔진을 제공 중이다. 다임러는 닛산에 2.2 디젤 엔진을 공급한다. 아시아에서 유일하게 디젤 승용차 판매가 활발한 한국에서는 독일 완성차 업체들이 디젤 차에 대해 공격적으로 인센티브를 제공한다. 제품수명이 대략 5년 밖에 남지 않은 디젤차의 수익성을 극대화하려는 모양새다. 우리 정부는 유럽연합의 디젤 엔진 판매 억제 방침에 대해 무관심하다. 디젤 판매비중이 높은 자국 완성차 업체들에 대한 과도한 배려가 아닌가 싶다.

세계 최대 디젤차 시장인 유럽연합의 디젤차 주행 억제 정책은, 유럽 완성차 업체들이 하이브리드·전기차·수소연료전지차의 개발 및 판매를 적극 추진하는 계기가 될 것이다. 좋든 싫든 전기차 시대는 훌쩍 다가올 수밖에 없다. 디젤 엔진의 강력한 토크와 높은 연비를 선호하는 자동차 마니아들은 조용한 전기차 시대의 도래에 아쉬움을 토로할지도 모른다. 미국 코미디언 제리 사인펠드와 짐 캐리가 어느 대담회에서 나눈 이야기가 문득 떠오른다. 짐 캐리가 ‘나는 테슬라 모델 S를 타는데 정말 최고야! 조용하기도 하지’라고 말하자, 사인펠드는 ‘글쎄, 나는 여전히 뭔가 태우는 차가 더 좋아’라고 답한다. 화려했던 디젤의 시대가 추억이 될 날도 머지 않았다.

1296호 (2015.08.0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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