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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다시 농업이다] 지금 ‘내 일’이자 우리의 ‘내일’이다 

6차 산업 성공 모델 속속 등장... 젊은층 귀농·귀촌 늘고 정주 여건 개선 

낙후의 상징이었던 농촌이 달라지고 있다. 2차·3차 산업을 결합한 6차 산업 모델이 자리를 잡으면서 중소기업 못지 않은 매출을 올리는 농가가 늘고 있다. ‘스마트 팜’ 등 미래형 농업이 점차 확산되고, 높은 품질에 가격 경쟁력까지 갖춘 작물이 많아지면서 농식품 수출 역시 해마다 큰 폭의 성장세를 기록 중이다. ‘농업=사양산업’이란 등식이 깨지고 있다는 의미다. 경쟁력을 회복하자 농촌으로 되돌아오는 젊은 사람도 늘고 있다. 마을은 생기를 되찾고, 정주 여건 역시 빠르게 개선되고 있다. 농업이 ‘내 일(Job)’이 된 시대, 우리의 ‘내일(Tomorrow)’로 진화 중인 농업과 농촌의 오늘을 짚었다.

▎8월 29일 충남 예산 은성농원을 찾은 외국인 관광객이 사과를 따고 있다. 한때 폐업 위기에 몰렸던 이 작은 과수원은 불과 몇년 만에 1차(사과)·2차(와인)·3차(관광)이 결합된 6차 산업 성공 모델로 떠올랐다. / 사진:오상민 기자
충남 예산 은성농원은 평범한 사과 과수원이었다. 서정학(71) 대표가 1987년부터 약 9000평의 땅에서 연 40t 정도의 사과를 생산했다. 과수원 치고는 크지 않은 규모였다. 농장 운영비와 인건비를 빼면 손에 쥐는 돈은 많지 않았다. 2000년대에 접어들면서는 적자를 보는 해가 많았다. 문을 닫아야 하나 고민도 많이 했다. 그러나 지금의 은성농원은 다르다. 2000년대 중반과 비교해 매출이 3배 이상으로 뛰었다. 전국에서도 주목 받는 농장이 됐고, 지역민에게 소중한 일자리도 제공하고 있다.

평범했던 한 과수원의 이유 있는 변신


무슨 일이 있었던 걸까? 과수원에 변화의 바람이 불기 시작한 건 2004년이다. 캐나다로 이민을 갔던 서 대표의 딸 내외가 농장으로 돌아온 것. 이때 사위인 정제민(50) 부사장이 비장의 기술을 가져왔다. 캐나다 온타리오주 명물인 ‘아이스와인’ 제조 기술을 배워온 것이다. 아이스와인은 얼어있는 포도를 수확해 단 맛을 극대화한 와인으로 디저트용으로 유명하다. 정 부사장은 제조기술을 사과에 적용해 국내 최초로 아이스와인 스타일의 사과 와인을 만들었다. 물과 알코올을 첨가하지 않아 사과의 진한 단맛과 향이 고스란히 담긴 술이다. 물론 과정은 순탄치 않았다. 사과와 포도는 특성이 다른 과일이다. 수십 번의 시행착오 끝에 겨우 마음에 드는 와인을 손에 쥘 수 있었다. 5년이 넘게 걸렸다. 그렇게 빚어낸 작품은 여러 주류품평회에서 상을 휩쓸며 금세 그 가치를 인정받았다.

은성농원의 변신은 계속됐다. 2010년부터 사과 와이너리 투어 프로그램을 운영해 관광객을 끌어 모았다. 직접 사과를 따 애플파이와 사과잼을 만드는 체험형 프로그램이다. 지하 와이너리에서 어떻게 사과로 와인을 만드는지 눈으로 확인할 수 있다. 입소문이 퍼지자 외국인 관광객까지 찾아왔다. 전체 투어 참가자의 15%가 외국인이다. 시간이 흐르자 투어를 경험한 관광객이 다시 은성농원 사과와 와인을 찾는 선순환 구조가 만들어졌다. 폐업 위기에 몰렸던 작은 과수원이 1차(사과생산)·2차(와인제조)·3차(농장투어) 산업을 절묘하게 결합한 미래형 농원으로 변신한 것이다. 각 분야가 전체 매출에서 차지하는 비중도 1차 산업이 40%, 2차와 3차는 각 30%로 고르다.

기자가 직접 농장을 방문한 8월 29일에도 외국인 단체 관광객을 만날 수 있었다. 한국에 머물고 있는 미국인 여성들이 만든 ‘아메리카 워먼스 클럽’ 회원들이 남편·아이들과 농장투어에 참가한 것. 약 30여명이 참가해 5시간가량 진행된 투어는 처음부터 끝까지 웃음이 끊이질 않았다. 정 부사장의 재치 있는 설명에 어른들은 농담으로 받아 쳤고, 아이들의 엉뚱한 질문이 이어졌다. 행사가 끝난 뒤 만난 미국인 라제쉬씨는 “전통적인 한국 농업과 선진기술이 잘 결합되어 있는 것 같다”며 “앞으로 어떻게 발전해 나갈지 미래가 궁금하다”고 말했다.

전 세계적인 흥행에 성공한 영화 [인터스텔라]에선 환경 파괴와 식량 부족으로 지구가 멸망하는 모습을 그렸다. 환경 파괴로 참혹해진 지구엔 뿌연 먼지가 하늘을 채운다. 식량이라곤 옥수수뿐이다. [매드맥스] 역시 물과 식량 부족으로 암울해진 인류의 미래를 그렸다. 영화 속 상상이나 경고만은 아니다. 한동안 우리나라 농촌은 낙후의 상징이었다. 한국 경제의 고도 성장기, 그 열매는 주로 도시에 집중됐다. 국가의 자원과 인력이 산업 개발에 몰렸고, 농촌 인프라 개발은 더디기만 했다. 사람들은 농촌을 떠났다. 늙어가는 농촌엔 더 이상 아기 울음소리가 들리지 않았고, 학교는 문을 닫았다. 현재 우리나라 농가 인구 두 명 중 한 명은 60세 이상이다.

매년 10~20%씩 증가하는 농식품 수출


그래도 남은 이들은 도시에 사는 내 자식, 내 형제의 먹거리를 책임졌다. 변함없이 쌀을 생산하고, 과일과 채소를 길러 도시로 보냈다. 도시민은 먹거리의 안전성을 따지면서도 그들에 대한 고마움은 잊고 살았다. 먹고 살만해지자 반성이 시작됐다. 정신 없이 돌아가는 도시적 삶에 대한 회의, 성장 압박과 과도한 속도 경쟁에 반발 심리가 확산됐다. 소비보다는 생산, 소유보다는 공유, 복잡함보다는 단순함, 화려함보다는 소박함을 추구하는 슬로 라이프(Slow Life)가 생활에 스며들기 시작하자 사람들은 다시 농촌을 떠올렸다. 시들지 않는 귀농·귀촌 열풍에 젊은 사람들이 농촌으로 되돌아오자, 조용했던 마을엔 다시 생기가 돌기 시작했다.

여기에 자생력을 갖추려는 농업인 스스로의 노력이 결합됐다. 언제까지 불평만 하고 살 수 없다는 일종의 자기반성이었다. 은성농원과 같은 성공 사례가 알려지기 시작하면서 우리나라 농업이 가야 할 방향은 선명해졌다. 이른바 1차·2차·3차 산업을 결합한 6차 산업이다. 단순히 경작만 하는 게 아니라 유통·관광과 결합시켜 새로운 부가가치를 만들어내는 것이다. 학계에선 오래 전부터 사용해온 용어지만 그동안 성과는 미진했다. 농업인 스스로가 별 관심이 없었고, 숫자만 많은 정책 역시 별 효과를 내지 못했다.

그러나 ‘6차산업지원법(농촌융복합산업 육성 및 지원에 관한 법률)’이 제정되면서 분위기가 눈에 띄게 달라졌다. 농림축산식품부는 6차 산업 관련 컨설팅과 판로 개척 등을 지원하는 전문기관을 도별로 설치했고, 실제로 구현할 수 있는 아이디어에 집중적으로 투자했다. 전폭적인 지원에 6차 산업 창업자는 크게 늘었고, 관련 벤처 기업도 속속 등장했다. 쌀을 소재로 클레이아트용 점토를 만들고, 암소의 인공수정 시기를 탐지하는 영상기기를 개발하는 등 분야도 다양하다. 늘어나는 귀농·귀촌과 결합시키면 발전 가능성이 무궁무진하다는 평가다.

정보통신기술(ICT)을 결합한 ‘스마트 팜’에서도 조금씩 성과가 나오고 있다. 스마트 팜은 비닐하우스 등에 ICT를 접목한 미래형 농업 기술이다. 충남 부여에서 토마토를 재배하는 우듬지 영농조합법인은 스마트 팜으로 전환한 뒤 생산량이 75%나 늘었다. 생산 비용은 오히려 50% 감소했다. 여러 ICT를 활용한 이 토마토 농장의 온실 관리는 스마트폰으로 한다. 굳이 현장에 나가지 않아도 온실의 기온·습도·CO2·양분 등을 실시간으로 제어할 수 있다. 자연히 노동력을 줄일 수 있게 됐다. 농식품부가 스마트 팜으로 전환하는 농가에 정책 자금과 장비 설치까지 지원하고 나서자, 스마트 팜 재배 면적은 불과 2년 만에 345㏊에서 658㏊로 2배 수준으로 늘었다.

원래부터 우수했던 품질에 가격 경쟁력까지 갖추게 되자 농식품 수출도 해마다 늘고 있다. ‘농업=사양산업’이란 등식이 점점 깨지고 있다는 의미다. 우리나라 농수산식품 수출은 2005년 34억1580만 달러에서 지난해 82억4971만 달러로 크게 늘었다. 증가율이 매년 10%를 넘는다. 올해도 수입국의 비관세장벽 강화와 환율 장벽을 뚫고, 7월까지 46억5618만 달러의 수출 실적을 기록했다. 전체 산업 수출이 전년 대비 4.9% 감소(7월 말 기준)한 것과 비교하면 고무적인 성장세다. 여전히 일본 비중이 큰 게 문제점으로 지적되지만 최근 중국 온라인 쇼핑몰과 백화점을 중심으로 우리 농식품의 인기가 갈수록 높아지는 추세다.

통일 시대, 가장 먼저 나서야 할 농업

농업인의 생활 환경 개선을 위한 투자도 활발하다. 농식품부는 올해 쌀 고정직불금 지급단가를 인상하고, 밭 고정직불금은 품목과 대상면적을 확대했다. 덕분에 2013년 584만원 수준이던 우리나라 농가의 이전소득은 지난해 682만원으로 크게 증가했다. 재해보험 역시 대상품목을 늘리고, 보장성을 높이자 가입률이 13.6%(2012년)에서 31.3%(2015년)로 크게 늘었다. 농지 연금도 가입연령 조건을 부부 모두 65세 이상에서 농지소유자만 65세 이상으로 완화하고, 농지 면적 기준을 폐지하면서 가입자가 크게 늘었다. 고령 농업인을 위한 공동생활시설이 늘고, 행복택시와 같은 농업형 교통 모델이 정착된 것도 최근의 변화다.

한동안 침체를 겪었던 우리나라 농업의 놀라운 변신이라 할만하다. 농업에서 미래를 찾겠다는 젊은 세대의 귀환이 지속적으로 늘고 있다는 점을 감안하면 앞으로의 성장 가능성은 무궁무진하다. 땅은 인간의 토대다. 삶의 필수 요소인 먹거리가 바로 땅에서 나온다. 식량 주권과 농업 경쟁력 역시 새삼 강조할 필요가 없는 중요한 주제다. 곧 다가올 통일 시대에 가장 핵심적인 역할을 할 분야도 바로 농업이다. 농업은 나와 동떨어진 농업인 만의 일이 아니다. 이미 내 일(Job)이 된 시대가 왔고, 동시에 농업은 우리의 내일(Tomorrow)이다.

- 장원석·박성민 기자 jang.wonseok@joins.com

[박스기사] 임영진 나우올제 조직위원장 인터뷰 - 땅과 먹거리의 소중함 직접 느낄 기회


청소년·청년이 농업·환경·노동 등 다양한 분야의 정부 정책을 쉽게 이해하고, 이에 대한 아이디어를 제시해 정책 만들기에 직접 참여할 수 있는 교육 프로그램이 있다. 바로 ‘나우올제’다. 나우올제는 올해의 주제를 ‘농업과 내 일(Job)’로 잡았다. 임영진 나우올제 조직위원장을 만났다.

나우올제는 어떤 프로그램인가?

“나우올제는 순우리말로 ‘더 나은 내일’이란 뜻한다. 정부 정책은 국민의 삶과 밀접한 관계가 있지만 실제 체감도는 떨어진다. 내용을 더 자세히 알릴 필요가 있다고 생각했다. 특히 향후 우리 사회를 이끌 오피니언 리더, 윤리적 소비자로 성장할 청소년과 청년 대상의 교육 플랫폼이 필요하다고 느꼈다. 단순히 가르치는 교육이 아니라, 직접 체험하고 자신의 의견을 피력하는 능동적인 프로그램이다.”

주제를 ‘농업과 내 일’로 정한 이유는?

“나우올제 2015의 주제는 ‘내 일이 되는 농업, 우리의 내일이 될 농업’이다. 농부들만의 농업이 아닌 나의 일(Job)이 되는 농업이자 우리의 내일을 뒷받침하는 농업의 새로운 길을 모색해 보자는 의미다. 그러려면 청소년과 청년들의 창조적인 아이디어가 필요하다. 내가 자란 1970~80년대만 해도 농촌 출신이 많았다. 그러나 지금 대부분의 학생들은 도시에서 태어나 도시에서 자란다. 농촌에 살아본 적도, 심지어 가본 적도 없다는 이들도 있다. 그럴 수도 있는 것 아니냐고 할 수 있지만 그렇게 내버려둘 문제만은 아니라고 생각한다. 모두들 안전한 먹거리를 원하지만 그것이 어떻게 생산되는지에 대해선 별 관심이 없다. TV에도 ‘먹방’과 ‘쿡방’이 넘쳐나지만 먹거리의 소중함과 의미는 생략돼 있다. 그저 대량 소비되는 콘텐트 중 하나일 뿐이다. 우리가 먹는 농산물은 대형마트에서 오는 게 아니고 논에서, 밭에서, 목장에서, 과수원에서 농부가 땀을 흘려 키운 것이다. 미래의 소비자인 학생들이 농업과 농촌을 직접 느끼고 왜 우리 농산물이 좋은지, 어떻게 생산된 농산물이 좋은지, 이런 이야기를 나눌 수 있게 해주고 싶었다.”

어떤 프로그램이 있나?

“현장 체험 ‘놀라운 투어’, 스피치 콘테스트 ‘맛있는 토크’, 공모전 ‘기발한 UCC’ 등 세 가지 프로그램을 운영한다. 현장 체험은 농업 현장을 직접 돌아보면서 ‘먹을 것’의 중요성을 느낄 수 있게 해준다. 우리의 생명을 지키는 농업, 귀농·귀촌을 통해 지역을 살리는 농업, 예술과 접목한 농업, 관광을 결합해 6차 산업으로 융·복합을 시도하는 농업 등 다양한 교육의 장을 제공한다. ‘맛있는 토크’는 학생들이 농업에 관한 자신만의 아이디어나 경험을 발표하는 장이다. ‘기발한 UCC공모전’ 역시 우리 농업에 대한 참신하고 기발한 생각을 영상으로 찍어 제출하면 된다. 재미있고, 엉뚱한 발상으로 우리 농업을 다시 생각해보자는 취지다.”

세부 일정은?

“8월 29일 시작한 ‘놀라운 투어’는 10월 13일까지 진행된다. ‘맛있는 토크’는 9월 30일까지 예선 접수를 할 수 있다. 자세한 내용은 나우올제 홈페이지(www.bettertomorrow.or.kr)에서 확인할 수 있다.”

1303호 (2015.09.2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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