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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프로 골퍼에게 캐디란…] “내 영혼을 조금 더 열어준 사람” 

톰 왓슨, 루게릭병으로 세상 떠난 캐디 브루스 에드워즈 칭송 

남화영 골프칼럼니스트

▎지난 7월의 존 디어 클래식 2라운드에서 샷을 지켜보고 있는 조던 스피스와 캐디 마이클 그렐러. / 사진:중앙포토
올해 마스터스에 이어 US오픈까지 우승한 조던 스피스는 기자회견장에서 ‘우승은 팀으로 노력한 결과’라면서 ‘우리’라는 단어를 썼다. 자신과 캐디인 마이클 그렐러를 의미했다. “우리는 해냈다. 마이클이 그 누구보다 이 코스에 대해 잘 알고 있었던 덕분이었다.” 그렐러는 2012년에 스피스의 캐디가 되기 전까지 워싱턴주 유니버시티 플레이스의 고등학교 수학 교사였다. 그는 당시 여름 방학이면 올해 US 오픈을 개최한 체임버스베이 골프장에서 파트 타임 캐디로 일했고, 이곳에서 결혼식도 올렸다. 대회 중에 그의 지인과 친구도 많이 찾아 응원해주었다고 한다.

골프를 개인 종목이라고 하지만 대회에서 선수와 캐디의 호흡은 우승을 이루는 기본 조건 중 하나다. 선수들에 비해 관심을 덜 받지만 전문가들은 ‘명캐디가 우승을 견인한다’고도 한다. 실제로 전설적인 선수 옆에는 항상 최고의 캐디가 있었다. 그리고 캐디를 인정하고 그의 조언과 도움을 받아 우승의 길로 나가는 건 선수다. 스피스는 우승 기자회견에서 캐디를 띄워줘 자신의 인품까지 칭송받았다.

조던 스피스 우승 도운 마이클 그렐러


▎타이거 우즈와 캐디 스티브 윌리엄스(왼쪽)가 2011년 3월 캐딜락 챔피언십 최종 라운드 4번 홀에서 나란히 왼팔을 들고 퍼팅 라인을 읽고 있다. / 사진:중앙포토
선수와 캐디를 ‘파트너십’ 차원에서 접근해보자. 최고의 선수와 캐디 하면 어떤 조합이 먼저 떠오르는가? 타이거 우즈와 스티브 윌리엄스가 떠오른다. 윌리엄스는 우즈의 메이저 14승 중에 13승을 도왔다. 지난해 9월에 51세로 은퇴한 윌리엄스는 고향인 뉴질랜드에 돌아가 전원주택에 정착하고 장작을 패고 땔감을 마련하면서 한가로운 전원생활을 보내고 있다.

윌리엄스는 10살 때 캐디 일을 시작해 13세에 호주의 피터 톰슨을 시작으로 프로 캐디 경력을 쌓았다. 이후 그렉 노먼, 미국의 레이몬드 플로이드 등 스타들의 골프백을 멨다. 1999년부터 2011년 봄까지 타이거 우즈와 함께 최고의 세월을 보냈다. 우즈의 섹스 스캔들 이후에는 껄끄러운 기간을 거쳐 서운하게 해고됐다.

윌리엄스는 아담 스콧의 캐디가 되어 새로운 영웅을 만들어나갔다. 그해 8월에 월드골프챔피언십(WGC) 브리지스톤 인비테이셔널 우승을 도우며 출중한 솜씨를 확인시켰다. 스콧은 지난 2013년 마스터스에서는 호주인으로는 최초로 우승했고, 세계랭킹 1위에도 올랐다. 윌리엄스의 주가는 더 올랐다. 하지만 그 뒤로 윌리엄스의 고민이 깊어졌다. 최고의 선수들과 40여년을 지냈지만 나이 오십이 넘으면서 가정을 챙기기로 결심하고는 결국 지난해 9월 헤어졌다.

윌리엄스를 보내고 새 캐디 마이크 커와 호흡을 맞춘 스콧의 성적은 점차 하락세였다. 스윙이 변한 것도 없지만 이렇다 할 성적을 내지 못했다. 그러다 지난 6월 US오픈에서 은퇴한 윌리엄스가 잠시 아담 스콧의 긴급 도움 요청을 받고서 등장하자 갤러리들의 박수와 함성이 이어졌다. 스콧은 오랜만에 실력을 발휘해 4위로 대회를 마쳤다. 그걸 보면 대회 현장에서 캐디는 단순히 선수를 돕는 존재가 아니라 함께 뭔가를 헤쳐 나가는 동반자에 가깝다. 영화 [반지의 제왕]에서 기진맥진한 주인공 프로도를 업고 운명의 산을 기어오르는 건 캐디의 역할에 가까운 샘이었다.

뛰어난 캐디는 선수와 생사고락을 공유하고 함께 늙어간다. 올해 마스터스에서 은퇴한 벤 크렌쇼는 캐디 칼 잭슨과 무려 38년간 함께 오거스타내셔널의 초록 필드를 누볐다. 그 사이에 1984, 1995년 마스터스 2승을 거뒀다. 두 사람의 관계가 가장 인상적이었던 장면은 1995년 마스터스에서 크렌쇼가 우승 퍼트를 성공시킨 후 대회 직전에 세상을 떠난 스승 하비 페닉을 떠올리며 그린에서 목놓아 울 때였다. 덩치 큰 잭슨이 벤 크렌쇼와 얼싸안은 채 위로하는 장면은 마스터스 역사에서 진한 감동과 여운을 안긴 순간으로 기억되고 있다. 벤은 “칼이 없었으면 우승할 수 없었다”고 소감을 전했다.

칼 잭슨은 11살이던 1958년 오거스타내셔널의 캐디 생활을 시작한 뒤 3년 만인 1961년부터 단 한 번을 제외하고 매년 마스터스 기간 선수들의 백을 멨다. 그중에서도 크렌쇼의 백을 38년간 전담했다. 잭슨이 처음 마스터스에서 캐디로 나갔을 때는 빌리 버크의 캐디였고 3년 뒤엔 부르스 데블린의 백을 멨으며 1970년부터는 개리 플레이어의 캐디를 했다. 크렌쇼와 호흡을 맞춘 건 1976년이다. 그해 크렌쇼는 2위로 대회를 마쳤고 이듬해부터 크렌쇼가 마스터스에 출전할 때는 늘 잭슨이 그의 백을 멨다. 오거스타내셔널 회장인 클리포드 로버츠가 전권을 휘두르던 시절 ‘내 생전에 모든 선수는 백인이고 모든 캐디는 흑인이어야 한다’는 원칙을 고수했다. 하지만 1984년부터는 오거스타내셔널이 대회 운영 정책을 바꿔 선수의 개인 캐디를 허용했지만 크렌쇼 옆에는 변함없이 잭슨이 자리를 지켰다. 크렌쇼에겐 별도의 전담 캐디가 있어도 마스터스에 출전할 때는 잭슨이었다. 크렌쇼가 44년째 출전하고 은퇴하는 올해 마스터스에서 잭슨은 갈비뼈 부상으로 출전하지 못했으나 동생 버드가 대신 크렌쇼의 백을 멨다. 그리고 금요일 라운드를 마친 크렌쇼를 18번 그린 옆에서 기다리던 잭슨이 맞으며 우정의 포옹을 길게 나누었다.

오랜 인생의 동반자라면 톰 왓슨과 그의 캐디 브루스 에드워즈도 있다. 에드워즈가 1973년 데뷔 3년 차인 왓슨에게 자신을 캐디로 써달라고 요청하면서 둘의 파트너십이 시작됐다. 무려 27년(1973~89년, 1992~2003년)을 동고동락하면서 PGA투어 32승을 쌓았다. 1982년 US오픈이 열린 페블비치의 마지막 날 17번 홀에서 왓슨의 볼은 무성한 그린 옆 러프에 빠졌다. 최대의 위기 상황. 한참이나 오가며 라인을 보던 에드워즈가 조언을 한 끝에 ‘홀컵에 붙이자’고 격려했다. 왓슨은 아무렇지 않은 듯 답했다. “제기랄, 넣어버리지 뭐.” 그러고는 칩인 버디를 기록했다. 왓슨이 가장 드라마틱하게 잭 니클라우스를 제친 대회였다.

사이가 좋은 두 사람도 3년간의 별거 기간이 있었다. 이유인즉, 톰 왓슨이 나이를 먹어가면서 기량이 쳐지자 에드워즈의 형편도 어려워진 것이다. 에드워즈는 당시 최고의 주가를 구가하던 그렉 노먼의 캐디 생활을 하다가 다시 돌아왔다. 물론 그렇다고 왓슨이 엄청나게 잘하지는 않았으나 에드워즈는 나중에 복귀한 이유를 털어놨다. “그렉 노먼은 샷을 놓치거나 어려운 상황에 빠지면 나를 탓했다. 하지만 왓슨은 어려운 상황에 처하면 ‘자내가 이 상황을 어떻게 빠져나가는지 보여주지’라고 말했다.”

2003년 에드워즈가 루게릭병에 걸리면서 더는 일을 할 수 없게 되자 왓슨은 루게릭병 재단에 수백만 달러를 기부하는 등 시한부 생명의 친구를 위해 모든 노력을 다했다. 이듬해 마스터스 기간에 에드워즈가 세상을 떠나자 왓슨은 ‘내 영혼을 조금 더 열어준 사람’이라며 칭송했다.

캐디도 선수 못지 않은 돈과 명성 얻어

뛰어난 캐디가 남자만 있는 게 아니다. 스웨덴 출신의 패니 수네슨은 1989년부터 10년간 닉 팔도의 캐디로 있으면서 통산 메이저 6승 중에 4번의 영광을 함께 했다. 수네슨은 퍼팅 라인을 읽는 것도 뛰어났지만, 그보다는 선수의 마음을 잘 읽는 캐디였다. 팔도는 “수네슨은 조용히 내 곁을 지켜줬는데 등 뒤에 그가 있다는 것만으로도 안정감이 들었다”고 극찬했다.

필 미켈슨과 그의 캐디 짐 매케이를 보면 서로 성격이 완전히 달라서 오히려 최고의 궁합이다. 메케이는 어이없는 상황이나 슬픔을 꾹 참는 스타일이다. 이와 달리 필은 조금 적극적으로 의견을 표시하고 나서는 편이다. 23년을 함께 하면서 메이저 5승에 PGA 41승을 일궜다. 2005년 라스베이거스에서 지진으로 호텔이 흔들렸을 때 메케이는 만사 제치고 미켈슨의 백을 챙기러 내려왔을 정도였다.

물론 반대의 사례도 무수하게 많다. 비제이 싱의 캐디였던 폴 테소리는 2000년부터 4년간 6승을 도왔고 싱은 세계랭킹 1위에 올랐다. 우승할 때 캐디는 상금의 10%를 받으니 돈과 명성도 따랐지만 테소리는 단 한 가지 이유로 싱과 헤어졌다. 테소리는 2001~2002년 사이의 730일 중에 706일을 일했다고 털어놨다. 연습벌레인 싱이 부활절에 교회를 가려는 테소리를 연습장으로 데려간 것이 결정타였다고 한다. 두 사람은 2005년에 다시 결합했다. 싱은 ‘다시는 예전처럼 마구 부리지 않겠다’고 다짐했다. 테소리는 그로부터 1년 반을 버티고 6승을 추가했으나 결국 그만뒀다. 테소리의 말이다. “돈 때문에 다시 합쳤지만 이젠 아무 의미 없다.” 사람은 쉽게 습관을 버리지 못하는 법이다.

지난 7월 말 캐나다오픈 1라운드에서 호주의 로버트 앨런비는 파5 13번 홀에서 트리플보기를 한 뒤 캐디 믹 미들레모를 해고했다. 캐디가 없는 황당한 상황에서 자원봉사자가 백을 멨었다. 클럽 선택에 관한 의견 다툼이 이유였다고 한다. 앨런비는 올해 초 하와이에서 대회 도중에 강도를 만나 폭행을 당했다는 해프닝을 일으켜 구설수에 올랐던 선수이기도 하다. 당연한 말이지만 선수뿐 아니라 캐디도 결국 좋은 파트너를 만나야 한다.

- 남화영 골프칼럼니스트

1303호 (2015.09.2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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