Column

모두가 체인지메이커 

 

권혁일 해피빈재단 이사장

최근 페이스북 최고경영자인 마크 저커버그가 딸을 위해 그가 보유한 페이스북 주식의 99%인 450억 달러(약 53조원)를 기부하겠다고 나서 세계를 놀라게 했다. 하지만 기부된 돈의 운용 방식을 두고 논란이 일었다. 저커버그가 재단이 아닌 자신이 설립한 유한책임회사(LLC)에 재산을 기부하겠다고 했기 때문이다. 이를 두고 일부에선 기부를 명목으로 다른 수익사업을 하는 것이라며 기부에 진정성이 없다고 폄하했다. 사람의 마음이야 속을 들여다보지 않고선 알 길 없지만 필자는 저커버그가 딸에게 쓴 편지를 읽고 그의 생각에 공감했다.

저커버그는 딸에게 A4지 6장 분량의 편지를 썼다. 그 내용을 보면 의약, 경제, 과학 등 다양한 분야에 걸쳐 그가 어떤 세상을 만들고 싶은지가 세세하게 적혀있다. 그는 이미 자신의 자산을 갖고 해야 할 일과 방법을 머릿속에 그려놓은 듯하다. 아마도 저커버그가 이런 생각을 한 데는 몇 년 전 공립학교의 교육여건 개선에 1100여 억원을 기부했지만 자금이 제대로 쓰이지 못하고 아무것도 바꾸지 못한 씁쓸한 경험에서 나온 것으로 보인다. 페이스북으로 이미 세상의 변화를 만들어낸 그의 역량과 경험에 비추어보았을 때, 기존의 전통적인 기부방식으로는 세상의 근본적인 변화를 이끌어내기 어렵다고 판단했을 것이다.

얼마 전 국내 유명 IT 사업가가 자신이 번 재산을 어떻게 효율적으로 사회에 환원할 수 있는지 자문을 구했다. 그때 필자는 “다른 곳에 기부하기보다 지금 운영하는 사업이 세상을 긍정적으로 바꾸는 데 그 돈을 쓰시면 된다”고 권했다. 이제는 ‘기부금을 모으는 것보다 모아진 기부금을 어떻게 효율적으로 쓰느냐’가 더 중요하다.

그렇다면 공익을 위해 돈을 가장 쓸 수 있는 방법은 뭘까. 비정부기구(NGO) 업계에서 인정받고 존경받는 곳이 있다. 바로 세계적인 사회적기업인 아쇼카재단이다. 흥미로운 점은 이 재단은 돈을 써서 남을 돕는 것을 모토로 삼지 않는다. 아쇼카재단은 세상을 긍정적으로 바꾸는 힘이 사람에게 있다고 본다. 그래서 이 재단은 ‘사회적기업가(Social Entrepreneur)’인 아쇼카펠로우를 키워내는 데 30년의 시간을 쏟아왔다. 그 결과 7명의 한국펠로우을 포함해 전 세계에 3000여 명을 키웠다. 이들은 독자적으로, 때로는 이들간의 네트워크를 통해 협업을 하면서 세상을 조금씩 바꾸고 있다. 이들 중엔 방글라데시 그라민은행의 무하마드 유누스 박사, 노벨평화상 수상자인 카일라시 사티야티도 포함돼 있다.

이 재단의 지난 10년 동안의 모토가 ‘모두가 체인지메이커’다. 이 세상에 사는 모든 사람이 공익의 주체라는 의미다. 자본주의 사회에서 공익을 하는 데 돈은 중요한 자산 중 하나다. 그러나 이보다 더 중요한 게 자신의 경험과 역량을 바탕으로 돈을 제대로 쓸 줄 아는 사람이다.

이런 사람이 늘고, 이들 간의 공감을 바탕으로 연대가 이뤄질 때 세상에 긍정적인 변화가 생길 것이다. 이 가능성을 현실로 만드는 과정에 쓰이는 돈이 가장 큰 가치를 갖는다. 저커버그의 기부가 더 큰 가치를 얻는 것도 그래서다. 그가 페이스북을 통해 세상을 바꾼 경험과 그의 자산을 함께 공익에 쓴다는 점이다. 한 사람, 한 사람이 체인지메이커가 되는 게 진정한 공익의 시작이고 미래라고 본다.

- 권혁일 해피빈재단 이사장

1318호 (2016.01.18)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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