Column

다시 신발끈을 고쳐 매자 

 

김경준 딜로이트 컨설팅 대표

2015년 우리나라 경제와 기업환경을 되돌아보면 사면초가였다. 예기치 않은 돌발변수의 발생으로 여건이 어려워지는 것은 외생변수라고 치부하더라도 행정과 정치의 대응방식이 구태의연하고 지리멸렬하기 때문이다. 규모를 막론하고 기업의 성장성과 수익성이 전반적으로 정체되는 장기 불황의 징후가 두드러졌다. 이런 가운데 기업의 사업 재편을 지원하고 신규 사업 진출을 활성화하기 위한 규제완화, 노동시장 유연화 등의 제도개혁도 정치권의 포퓰리즘에 가로막혀 지지부진했다. 밖으로 눈을 돌리면 더 암담하다. 중국에 가격은 물론 기술력까지 뒤지기 시작했다. 일본은 엔저를 배경으로 가격경쟁력도 회복하고 있다. 일각에서 1997년 외환위기 때와 유사한 경제위기에 대한 경고음까지 나오고 있다.

20년 전의 해프닝이 떠오른다. 1995년 4월 삼성그룹 이건희 회장은 중국 베이징에서 기자들에게 “우리나라 기업은 2류, 행정은 3류, 정치는 4류”라고 언급했다. 당시 관련 보고를 접한 김영삼 대통령이 격노했다는 소식에 뒤이어 삼성이 국내외 투자사업을 비롯해서 이런저런 불이익을 받기 시작했다는 뉴스가 이어졌다. 하지만 경제발전을 따라가지 못하는 낙후된 정치와 행정의 폐해는 불과 2년 뒤 국가부도로 현실화됐다. YS는 취임 초 90% 이상의 지지를 받다가 8%로 추락한 상태에서 물러났다. 당시 야당이 극력 반대해 무산된 노동개혁에 대한 아쉬움을 YS는 두고두고 곱씹었다는 후문이지만, 결국 여야를 막론한 저급한 정치가 경제를 망친 사례로 역사에 기록됐다.

위기를 통해 교훈을 얻고 좋은 방향의 변화가 있으면 좋으련만 20년이 지난 지금의 현실은 정반대다. ‘행정은 3류, 정치는 4류’도 못 미치는 가운데 그나마 정치는 등급을 매기기조차 불가능한 불량품으로 전락했다. 정치집단은 글로벌 경제의 현실을 이해하고 국가제도를 설계하는 본연의 역할을 기대하기도 어려운 수준으로 전락했다. 이제는 정상적 기업활동을 방해만 하지 않아도 다행이라는 생각이 들 정도다.

그렇다고 낙후된 행정이나 정치만 탓할 수 없는 것이 제약조건에도 새로운 가능성을 찾아가야 하는 것이 기업인의 숙명이다. 실제로 외환위기의 어려움을 겪으면서 심기일전한 우리 기업은 글로벌 기업으로 본격적으로 변모했다. 삼성, 현대, LG, SK 등 간판기업을 비롯해 프랑스까지 진출한 파리바게뜨, 글로벌 화장품 기업으로 도약한 아모레, 일본과 동남아 SNS시장을 석권한 네이버…. 여기에 심지어 치킨체인까지 대열에 동참했다.

“내가 한국서 50년 살았지만 여태까지 경제가 좋아졌다는 말 들어 본 적이 없어요. ‘처녀가 시집 안 간다’ ‘노인이 그만 살아야겠다’ ‘장사꾼이 밑지고 판다’와 함께 ‘한국인이 경제가 어렵다’고 말하는 것은 4대 거짓말이야. 우리가 행복한지를 알고 한강의 기적을 못사는 나라에 가르쳐줄 여유와 자긍심을 가져야 해요.” 연세대 외국인진료센터 인요한 소장의 풍자성 지적처럼 언제나 경제는 어렵다고 했지만 결과적으로는 좋은 방향으로 흘러왔다.

2016년의 경제환경도 역시 쉽지 않아 보인다. 하지만 언제나 그래왔듯이 기업은 어려움을 이겨내고 새로운 가능성을 찾아갈 것이다. 먼 길 떠나는 여행자들이 신발끈을 고쳐 매듯이, 희망을 품고 단단한 각오로 2016년을 시작하자.

- 김경준 딜로이트 컨설팅 대표

1317호 (2016.01.04)
목차보기
  • 금주의 베스트 기사
이전 1 / 2 다음