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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박태균의 ‘푸드백신’① 보온식품] 김장김치도 몸 따뜻하게 만들어 

주요 재료인 고추·파·마늘·갓·미나리 등이 따뜻한 성질 지녀 

박태균 식품의약칼럼니스트, 중앙대 의약식품대학원 겸임교수

50대 초반인 K 여사는 지난해 폐경을 맞았다. 매사가 무의미해지고 남편은 물론 다 큰 자식도 남처럼 느껴져 사는 게 시큰둥하다. 수은주가 영하로 내려간 최근 K 여사는 가출(?)을 감행했다. 꿀꿀해진 기분도 달랠 겸 설악산 등산에 나선 것이다. 찬바람이 얼굴을 마구 때리더니 1시간도 안돼 온 몸이 얼어 붙었다. 남편을 휴대폰으로 찾았다. “빨리 올라 오라”고 채근하던 남편은 그래도 걱정이 됐던지 K 여사의 숙소로 찾아왔다. 남편의 등장에 기분이 풀리려던 순간 다시 부아가 치민 K 여사. 땀이 송송 맺힌 남편 얼굴을 보곤 ‘뭘 숨겨 놓고 먹기에 한 겨울에도 땀 범벅이야’란 생각이 들어서다.

K 여사도 몸이 따뜻해지는 음식을 경험한 적이 있었다. 첫 아이 출산 뒤 산후조리할 때였다. “산모에겐 보온(保溫)이 제일 중요하다”면서 미역국·호박국·시래깃국·누룽지 등을 끼니마다 끓여 날랐던 친정 엄마가 불현듯 떠올랐다. “여름엔 하늘이 몸조리를 시켜준다”던 친정 엄마는 K 여사가 둘째 애를 낳은 해 여름에도 불을 땠다.

몸이 따뜻해지면 다이어트에도 도움

몸이 따뜻해지는 보온 음식이 있긴 하다. 이런 음식은 추위 탈출뿐 아니라 겨울철 부상과 낙상 예방에도 이롭다. 몸이 데워지면 신체 마디마디가 유연해지기 때문이다. 다이어트에도 도움을 준다. 몸이 따뜻해지면 신진대사가 활발해진다.

의학·영양학에선 뜨겁고 차가운 성질의 식품이란 개념 자체가 없다. 한의학에서만 거의 모든 식품을 온열성(溫熱性)·평성(平性)·한량성(寒凉性)으로 나눈다. 온열성은 몸을 따뜻하게 해서 신진대사를 활발하게 하고 자양강장을 돕는다. 한량성은 몸을 차게 한다. 평성은 따뜻하지도 차갑지도 않다. 한방에서 식품의 온냉 성질 구분은 해당 음식을 주로 섭취하는 온도와는 관계가 없다. 귤은 냉장고에 넣어 둬도 온열성이다. 녹차는 뜨거워도 한량성이다.

‘추위를 유난히 잘 탄다’고 불평하는 사람에게 한방에서 흔히 권하는 식품은 생강·계피·고추·마늘이다. 대부분 매운맛으로 소문 난 향신료들이다. 우리 전통요리의 향신채(香辛菜) ‘삼총사’로 통하는 파·마늘·생강이 모두 따뜻한 성질을 지녔다. 공자가 즐긴 향신료로 유명한 생강은 한의사가 편애하는 약선(藥膳) 식품이다. 한방에서 생강은 발산풍한약(發散風寒藥)이다. 열을 내려주고 기침을 멎게 하며 가래를 삭혀주는 등 감기 치료에 유익한 약재로 치는 것이다. 추위를 잘 타고 찬 데서 음식을 먹으면 잘 체하는 사람에게도 추천한다. 위를 따뜻하게 한다고 봐서다. 정약용은 [다산방]에서 ‘생강을 달여 먹고 땀을 내면 감기가 낫는다’고 했다. 감기 기운이 있는 사람에게 생강차(설탕·꿀에 재웠다가 얇게 저민 생강에 뜨거운 물에 부어 만든 차)를 추천하는 것은 그래서다. 민간에선 편강(설탕·꿀에 재인 생강을 썬 뒤 고온에서 말린 것)을 기침·가래약으로 흔히 썼다. 또 감기로 기침을 하는 사람에게 생강즙 반 홉에 꿀 한 숟갈을 넣은 액을 데워서 매일 5회 먹으라고 권했다. 매운 생강을 먹으면 몸에서 땀이 나고 서너 시간은 따뜻한 기운이 느껴진다. 생강이 겨울에 언 몸을 녹여주는 것은 진저롤·쇼가올 등 매운 맛 성분이 신진대사를 촉진시킨 덕분이다. 진저롤·쇼가올은 노화의 주범인 활성산소를 없애는 항(抗)산화 성분이기도 하다.

생강과 찰떡궁합인 계피도 성질이 따뜻하다. 생강과 계피는 겨울 음료인 수정과에도 함께 들어간다. 한방에선 계피를 체열(體熱)을 보전하고 혈액순환을 도우며 어혈(瘀血, 나쁜 피)을 풀어주는 약재로 쓴다. 아랫배가 찬 여성에게 추천한다. 계피는 감초 다음으로 많이 사용하는 한약재다. 서양에선 계피가 과거에 ‘사랑의 징표’로 쓰였다. 사랑은 본질이 따뜻하지 않은가.

한방명이 육계(肉桂)인 계피는 겨울에 몸을 따뜻하게 할 뿐 아니라 감기 치료에도 효과적이다. 한방에선 감기로 열이 나고 코가 막히거나 콧물·재채기를 하는 사람에게 계피 우린 물을 서너 시간마다 반 컵씩 마실 것을 권장한다. 계피가 몸을 따뜻하게 하고 혈액 순환을 돕는다는 이유에서다. 뜨거운 물에 2∼3g의 계핏가루를 탄 계피차를 마시면 추위로 잔뜩 움츠린 어깨가 절로 펴진다. 생강·계피를 함께 물에 넣고 끓인 뒤 꿀·설탕을 탄 생강·계피차도 몸을 훈훈하게 효과가 뛰어나다. 평소 몸에 열이 많은 사람과 열성 식품인 계피는 궁합이 맞지 않는다.

매운 맛 채소의 대표 격인 고추·마늘도 몸을 따뜻하게 데워준다. 고추를 먹으면 강추위에도 땀이 난다. 매운 맛 성분인 캡사이신 덕분이다. 고춧가루를 탄 소주·콩나물국을 먹으면 눈물이 쏙 나올 만큼 맵다. 소주에 고춧가루를 타 마시면 몸에서 땀이 나면서 감기가 ‘뚝’ 떨어진다는 속설이 있지만 의료계에선 효과에 대해 대체로 부정적이다. 고추가 방한(防寒) 용도로 쓰인 지는 꽤 오래 됐다. 우리 선조는 겨울에 먼 길을 떠나는 사람의 복대(腹帶) 안과 겹버선 사이에 고추를 넣었다. 그래야 피가 잘 통해 동상에 걸리지 않는다고 여겨서다.

파·마늘·부추도 따뜻한 성질을 지녔다. 매운맛 성분인 알리신이 혈액 순환을 원활하게 해서 몸을 따뜻하게 한 결과다. 과일은 대부분 성질이 차다. 대추·유자·사과·귤 정도가 예외적으로 성질이 따뜻한 과일에 속한다. 생대추를 여러 개 먹어도 몸에서 열이 난다. 두세 토막으로 썬 대추를 씨와 함께 물에 넣고 은근한 불에 우려낸 대추차를 즐겨 마셔도 겨울나기가 한결 수월해진다. 대추차엔 꿀·설탕을 대개 넣지 않는다. 대추의 자체 당도가 높기 때문이다. 귤은 차게 보이는 외양과는 달리 온기를 품고 있다.

겨울철 감기 예방에 이로운 당근도 온열성이다. 평소 몸에 열이 많은 사람은 당근을 너무 많이 먹지 말라고 하는 것은 그래서다. 일본인이 겨울철에 당근 술이나 당근 양파 수프를 즐겨 먹는 것도 보온 효과를 기대해서다. 호박도 성질이 따뜻하다. 선조들이 겨울 별미로 호박죽을 즐긴 것은 오랜 경험에서 우러나온 생활의 지혜다.

당근·호박도 온열성 식품

김장김치도 보온 음식이다. 성질이 따뜻한 고추·파·마늘·갓·미나리 등이 주재료여서 김장김치의 성질은 온(溫)할 수밖에 없다. 동지 절식(節食)인 팥죽도 몸을 따뜻하게 한다. 쌀밥만 먹으면 부족해지기 쉬운 비타민 B1이 팥에 풍부한데 비타민 B1이 신체의 에너지 대사를 증진시켜 몸을 데워준다. 예부터 겨울 간식 거리였던 호박시루떡도 따뜻한 성질의 간식거리다. 주재료인 호박·팥 모두 성질이 따뜻하다.

K 여사는 언 몸을 녹일 겸 근처 척산 온천에 가서 몸을 담가야지, 마음 먹었다. 남편이 또 아는 척을 했다. [동의보감]에 “온천물로 목욕하면 허(虛)해지고 피곤해지므로 약·음식으로 보(補)해야 한다”고 쓰여 있다고. 겨울엔 온천욕이 몸을 따뜻하게 해주지만 자주 하는 건 바람직하지 않다고. “나도 알아, 오랜만에 즐기는 것까지 방해해….” 평소 남편의 ‘활화산’ 체질을 부러움 반, 걱정(?) 반으로 대하던 K 여사의 째려보는 눈길엔 ‘따뜻함’이 묻어 있었다.

박태균 - 식품의약칼럼니스트이자 중앙대 의약식품대학원 겸임교수다. 한국 식품커뮤니케이션포럼 회장으로도 활동하고 있다. 서울대에서 박사학위(공중보건학)를 받고 중앙일보에서 식품의약전문기자로 일했다. [먹으면 좋은 식품, 먹어야 사는 식품] [내 몸을 살리는 곡물, 과일 채소] [우리 고기 좀 먹어볼까?] 등 9권의 저서를 저술했다.

1321호 (2016.02.08)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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