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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국의 미래 신산업⑤ 사물인터넷] 기업에서 국가간 전쟁으로 확전 

2020년대 명실상부한 IoT 시대 전망... 생태계 조성에 정부·기업·연구소 머리 맞대야 

전영선·박수련 기자 azul@joongang.co.kr

▎1월 15일 서울 삼성동 코엑스 럭키 슈에트 매장에서 스마트 미러가 모델이 입어본 4가지 종류의 코트를 보여주고 있다. 사물인터넷(IoT)의 일종인 이 스마트 거울은 손님이 고른 옷의 가격 정보와, 유사한 제품 그리고 그 옷과 어울리는 액세서리까지 추천해준다. / 사진:중앙포토
지난 1월 15일 오후 서울 삼성동 코엑스몰의 여성 의류 브랜드 ‘럭키 슈에트’ 매장. 빨간색 줄무늬 티셔츠를 들고 스마트 거울 앞에 서니 가격, 사이즈, 재고 수량 같은 정보가 거울에 떴다. 같은 제품을 다른 색상으로 보여주고, 옷에 어울릴 만한 모자·클러치백을 제안한다. 제품 옷걸이에 부착된 500원짜리 동전 크기 비콘(Beacon, 근거리 무선통신장치)이 거울과 정보를 주고 받아 가능한 서비스다. 또 거울 옆 행거에서 옷을 꺼내니 그걸 꺼내본 고객의 수가 디스플레이에 비춰졌다. 스마트거울은 한국의 사물인터넷(IoT) 생태계가 긴밀히 움직여 탄생한 제품이다. 아이디어를 갖고 있던 SQI소프트와 스마트 매장이 필요했던 코오롱FnC가 머리를 맞댔다. 디스플레이는 LG전자, 네트워크 설계는 LG CNS가 맡았다. 진열대·행거 등도 IoT 기술로 정보교환이 가능하다.

아직은 무주공산이지만…


‘기원전 4500년 바퀴의 탄생, 1450년 금속활자의 등장에 비견될 기술 혁명이 다음 모퉁이에 와 있다.’ 컨설팅 업체인 ‘IoT 애널리틱스’는 IoT의 도래를 이렇게 설명한다. IoT의 가능성은 응용되지 않는 분야가 없다는 데 있다. 몸 상태에 따라 하루 필요한 물의 양을 알려주는 컵, 집안 온도를 감지해 냉난방 시설에 정보를 보내는 벽지도 가능하다. 이런 ‘생활의 편리함’은 물론 에너지 고갈과 같은 인류 난제를 푸는 데도 IoT가 쓰인다. IoT 기술을 가로등에 적용해 전력을 아끼고, 도시의 쓰레기통을 연결해 배출량을 통제할 수도 있다. 사물(Things)이 인터넷으로 연결돼 정보를 주고 받으면서 단독으로 있을 때 제공하지 못했던 힘과 효용을 제공하는 것이다. 이정훈 연세대 정보대학원 교수는 “정보기술(IT)은 10년 주기로 모멘텀을 제공하는데, 2020년대는 명실상부한 IoT 시대가 될 것”이라고 내다봤다.

시장조사기관인 IDC와 가트너에 따르면 세계 IoT 시장은 지난해 기준 2920억 달러(약 355조원)에서 2020년엔 최대 7조 달러(8500조원)로 급팽창할 것으로 전망된다. 한국이 꿈틀대는 ‘IoT 신대륙’을 차지할 수 있을까. 한국은 IoT를 꽃 피울 가능성이 큰 나라로 꼽힌다. IDC에 따르면 인터넷이나 스마트폰 보급률 등으로 따지는 ‘IoT 준비도’ 점수가 미국에 이어 세계 두 번째다. 하지만 IoT의 핵심 기술 중 하나인 센서 기술은 미국과의 격차가 3년이나 된다. 홍현숙 인터넷진흥원 IoT 혁신센터장은 “올해 CES 2016에서 구글이나 포드가 IoT 신기술을 발표했지만 그 또한 청사진일 뿐”이라며 “절대강자가 없는 무주공산이라 어떻게 하느냐에 따라 우리가 IoT를 선도할 수 있다”고 말했다.

방심은 금물이다. 사물인터넷(IoT) 패권을 놓고 벌이는 기업 간 전쟁이, 국가 간 전쟁으로 확산하고 있다. 미국은 국가경쟁력에 영향을 미칠 기술로 IoT를 선정해 로드맵을 이어가고 있다. 구글·애플 등 자국 글로벌 플레이어를 앞세워 IoT를 통한 제조업 부활을 꿈꾼다. 독일은 ‘인더스트리 4.0’이란 프로젝트를 통해 산업 IoT로 생산성을 30% 향상하겠다는 전략이다. 무서운 기세로 ICT 국가로 성장한 중국은 ‘인터넷 플러스’를 통해 중국 전역에 193개의 시범단지를 세우겠다고 발표했다. 한국도 이 대열에 합류했다. 미래창조과학부는 풍족한 ICT 기반기술, IT 친화적 국민 특성이 IoT 산업에 장점이 될 수 있다며 2020년까지의 개발계획을 수립했다.

가트너는 애플이 iOS 기반의 스마트폰을 선보여 충격을 주었을 때처럼 혁신적인 IoT 기술의 등장 시점을 5년 이내로 전망하고 있다. 그러나 국내 IoT 산업 확산에 필수인 상생과 협업의 경험이 짧아 건전한 IoT 생태계를 위협할 수 있다는 분석도 나온다. 미국의 경우 기업체 간 대등한 네트워크와 협업의 역사가 이미 오래됐다. 스타트업이 개발한 아이디어가 필요할 때 프리미엄을 얹어 인수합병(M&A) 하는 것이 당연하다. 한국에선 여전히 이런 풍토가 낯설다. 애완동물 IoT 스타트업 펫핏의 김용현 대표는 “스타트업이 멋모르고 대기업과 협력했다가 아이디어만 뺏길 수 있다는 불안감이 많다”고 털어놓았다. KT 경제연구소 김희수 상무는 “수직적이고 폐쇄적인 기업 문화가 상당기간 지속돼 왔다는 점이 IoT 산업의 필수인 자유로운 토론과 도전을 방해할 수 있다”고 말했다.

IoT 특별법 제정 속도 내야

홍현숙 인터넷진흥원 IoT 혁신센터장은 “IoT는 여러 기업이 연합해야 제대로 된 기술이나 서비스가 나올 수 있다”며 “초기 시장을 견인할 프로젝트 고속도로를 만드는 방안도 있다”고 제안했다. 정부가 창의적인 협업을 통해 프로젝트를 수행하는 기업에 현실적인 인센티브를 줄 수도 있다. 기업이 공동으로 IoT플랫폼, 산업 IoT, 홈 IoT 등의 프로젝트를 수행하거나, 프로젝트별로 관련 대기업·중소기업·연구기관을 매칭할 수도 있다. 미국 GE의 경우 자사의 생산시설에 IoT 기술로 연결해 ‘생각하는 공장(Brillant Factories)’ 개념을 완성하고 이 경험을 바탕으로 IoT를 각 산업에 맞춤 제공하는 산업 특화 서비스 ‘프레딕스’를 발표했다. GE는 이 플랫폼을 볼보와 P&G에 파는 등 새 영역을 개척하고 있다. 전성태 사물인터넷협회 본부장은 “이런 저런 IoT 청사진이 나오지만 대기업 스스로 작업 환경을 IoT 바꾸려는 시도도 많지 않다”고 지적했다. 지난해 전체 제조업에서 IoT 기술 활용 비율은 5.6%에 그쳤다.

좀 더 과감한 도전을 지적하는 전문가도 있었다. 핵심 센서 부문의 국제 경쟁력을 키워야 하는 것도 과제다. IoT의 핵심 기술인 이미지 센싱 기술, 통신 센싱·액추에이션 기술은 선진국과 3년 정도 격차가 있다. 또 IoT 관련 보안 기술을 끌어올리는 것도 숙제다. 법과 제도의 경직성, 도전을 가로막는 규제는 IoT 산업에서도 걸림돌이다. 주차 공유 서비스 ‘모두의 주차장’의 강수남 대표는 “현장에선 주무 부처, 지자체의 시각이 달라 진행이 막힐 때가 있다”며 “논의되고 있는 IoT 특별법 제정에 속도를 내야 한다”고 말했다.

- 전영선·박수련 기자 azul@joongang.co.kr

사물인터넷(Internet of things): 1999년 매사추세츠 공대(MIT)의 케빈 애시턴이 처음 사용한 용어. 사물(Things)이 인터넷으로 연결돼, 서로의 존재를 파악하고 정보를 주고받는 기술을 지칭한다. 모든 것이 연결 가능하다는 의미에서 IoE(Internet of Everything), 즉 ‘만물인터넷’으로 부르기도 한다.

1322호 (2016.02.2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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