Column

21세기형 新글로벌거버넌스 

 

현동욱 한국MSD 대표

고대 그리스의 극작가 호메로스는 ‘단결이야 말로 힘이다’라는 말을 남겼다. 이는 그리스 역사상 최초로 기록된 협력의 가치다. 호메로스가 살았던 기원전 8세기와 오늘날의 협력의 가치는 비단 다르지 않다. 1990년대 초, 전 서독 총리 빌리 브란트는 ‘글로벌거버넌스’라는 이름으로 협력의 중요성을 강조했다. 글로벌거버넌스란 세계적 문제에 당면한 국가가 이를 충분히 해결하지 못할 경우, 국제 사회의 협력으로 이겨내는 것을 뜻한다.

최근 잇따라 번진 신생 바이러스의 파괴력을 보며 필자는 21세기형 글로벌거버넌스의 필요성을 절실히 느낀다. 오늘날 바이러스 질환은 교통·통신 수단의 발달로 과거 한 지역에서 유행하던 수준을 뛰어넘어 세계적으로 창궐하고 있다. 한국에서도 예외는 아니다. 지난해 메르스라는 신종 전염병의 등장으로 많은 어려움을 겪었다. 바이러스 질환으로 인해 인류가 느끼는 공포감은 더욱 커졌고, 예측 불가능한 범위의 피해를 낳고 있다. 21세기의 신(新)글로벌거버넌스는 보건 현안을 대하는 한 국가의 자세나 상태가 원인이라기보다는, 근본적으로 전 세계가 함께 협력하는 것이 필요하다는 의미에서 새롭게 정의될 수 있다.

신글로벌거버넌스의 역사는 이미 쓰여지고 있다. 대표적인 것은 우리나라와 다른 국가들이 국경이라는 물리적 제약을 넘어 힘을 합쳐 신생 바이러스 질환에 대비하는 움직임이다. 미래 창조과학부는 해외 기관과의 협력을 통해 뎅기열·웨스트나일·에볼라 바이러스 등 고위험 바이러스 감염병 진단기술 개발에 60억원을 지원할 계획을 발표했다. 이러한 접근은 역사 속에서 그 효과를 입증해왔다. 과거에도 인류가 직면한 속수무책의 질환을 여러 차례 퇴치한 적이 있다. 정부, 민간기업, 국경을 초월한 세계 기구가 힘을 합쳐 의약품을 개발하거나 의약품의 빠른 공급에 협조한 사례들을 쉽게 찾아볼 수 있다.

대표적인 것이 결핵이다. 1940년대에 결핵은 오늘날의 지카, 에볼라 바이러스 못지 않게 해결하기 어려운 난제였다. 최초의 결핵 치료제 ‘스트렙토마이신’은 1944년, 필자가 몸담고 있는 MSD가 처음 개발했다. 공중보건상 가치를 고려한 MSD는 전 세계에서 여러 제조사가 치료제를 만들어 공급할 수 있도록 특허권을 연구 재단에 양도했다. 또한 MSD는 오늘날에도 아프리카의 시에라리온 공화국 정부 및 교육연구기관과 공조해 에볼라 바이러스 백신 개발 등 국경을 초월한 협력을 실천하고 있다.

민관협력의 핵심은 공공영역의 법률적·행정적 서비스와 민간 영역의 기술력과 자본이 만나 긍정적인 성과를 창출하는 데 있다. 오늘날 제약사, 정부 기관의 협력사례가 늘어나는 추세이나, 그 열매를 맺는 과정에서 현실적인 어려움에 많이 직면하곤 한다.

신글로벌거버넌스는 생명을 구하는, 가치 있는 행보를 이어나가는 주춧돌이 돼야 한다. 이익관계와 각 기관의 존립의 이유를 떠나 생각해보자. 현실적인 난관이 있을 때마다, 민관협력이 갖는 의미가 소중한 ‘생명’에서 출발했음을 기억해야 한다. 그리고 이를 통해 기원전 8세기 호메로스의 격언을 다시 돌아보자. 협력을 통해 질병으로 고통 받는 사람들에게 도움을 줄 수 있다. 함께 마음을 모아 해결책을 찾는 데 집중해야 할 때다.

- 현동욱 한국MSD 대표

1328호 (2016.04.0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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