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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창조가&혁신가 | 최신규 손오공 회장] 창의성의 원천은 ‘뜬금없는 상상’ 

연구개발 몰두하려 개인회사 따로 세워 ... 터닝메카드로 日 완구업체 물리쳐 

유부혁 기자 yoo.boohyeok@joongang.co.kr

▎최신규 손오공 회장. / 사진:김현동 기자
“몇 번째입니까?” 대답을 듣기까지 자세를 몇 번 고쳐 앉았다. “터닝메카드가 1000번 째 작품일 겁니다.” 1986년 만든 끈끈이를 시작으로 30년 동안 장난감을 만들어온 최신규(60) 손오공 회장이 한참을 생각하고 나서야 답했다. 터닝메카드는 손오공이 만든 애니메이션 제목이자 거기에 등장하는 로봇 변신 자동차 이름이기도 하다.

터닝메카드 장난감은 지난해 2월 출시 후 지금까지 41종의 제품이 발매됐다. 신제품이 출시될 때마다 줄서기와 함께 매진 행렬을 기록하며 ‘완구계 허니버터칩’으로 불린다. 롯데마트에 따르면 지난해 매출 상위 20개 제품 중 13개가 터닝메카드 시리즈 제품이고, 2개는 헬로 카봇이 차지했다. 두 제품 모두 완구기업 손오공이 만들었다. 올해도 롯데마트 토이저러스 상위 매출 10개 중 8개가 손오공 제품이다. 이병우 완구협회장은 “터닝메카드의 성공은 일본이 점령해온 국내 완구 시장을 토종 기업 손오공이 선도하게 됐다는 점에서 더욱 값지다”고 말했다.

제품 가격은 저렴하지 않다. 어른 손바닥 만한 제품 1개 가격이 1만원 중후반대이다. 그보다 큰 제품은 4만~5만원 선이다. 41개에 달하는 제품 중 몇 개만 구매하더라도 부모 입장에선 상당한 부담이 될 수 있다. 더구나 인기 제품은 줄을 서야 구매할 수 있다. 최 회장은 “원하는 제품을 사주기 위해 줄 서있는 부모의 모습은 아이들에겐 좋은 추억거리”라 말했다. 가격에 대해서도 “적정하다고 생각한다”고 자신 있게 말했다. 하지만 공급 차질에 대해선 “미안한 마음이 크다”고 말했다.

인기작 터닝메카드는 ‘완구계 허니버터칩’

최신규 손오공 회장은 요즘 대부분의 시간을 손오공 본사 근처 초이락컨텐츠팩토리(이하 초이락)에서 보낸다. 초이락은 최신규 회장이 완구 개발에 전념하고 싶어 만든 개인 회사다. “상장기업에선 투자수익률을 따지는데, 계속 개발에 투자만 하려니 눈치가 보이더라고요. 제품 개발에 대한 보안도 제겐 어려운 문제였습니다.” 손오공은 2001년 출시해 인기를 끈 신개념 팽이 ‘탑블레이드’ 이후 히트 상품을 만들어 내지 못했다. 2010년 이후부턴 매출은 줄고 적자는 늘어났다. “그 당시 헬로 카봇, 터닝메카드를 생각했어요.” 하지만 당시 주변에선 헬로 카봇과 터닝메카드의 탄생을 바라지 않았다. 오랜 기간 좋은 관계를 유지했던 일본의 완구기업 타카라토미에 우선 투자제의를 했지만 “성공 가능성이 작다”며 거절했다. “투자자, 심지어 손오공 이사회에서도 반응은 나빴어요. 직원들 반응도 시큰둥했고요. 그냥 ‘해외 인기 제품을 수입해 팔자’는 생각이더라고요.”

그의 말대로 한국 완구산업은 시장성이 검증된 제품의 판권을 구매해 제품을 유통시키는 데 익숙하다. 최 회장이 고개를 가로 저으며 잠시 한국 완구 기업들에 쓴소리를 했다. “시장 규모가 작다고 안정만 추구하고 연구개발이나 혁신을 주저합니다. 그러니 큰 규모의 기업이 나올 수 없고 자기만의 콘텐트가 없으니 트렌드를 주도하기보단 쉽게 휩쓸리는 악순환이 생겼습니다.” 한국 완구 시장 규모는 대략 1조원으로 추정된다. 최 회장이 다시 터닝메카드 개발 이야기를 이어갔다. “손맛이 너무 좋더라고요. 손맛을 요즘 말로 하면 데이터 아닙니까. 30년 간 쌓은 데이터를 믿었어요.” 결국 최회장은 2014년 경영에서 물러나고 손오공은 전문경영인 체제로 전환해 완구 유통을 전문으로 하게 됐다.

최 회장은 초이락에서 계획했던 완구와 애니메이션을 완성하기 위해 개인 소유 건물과 집을 담보로 약 200억원을 대출 받았다. 터닝메카드 애니메이션 제작에 80억원, 완구 개발에 30억원을 투자했다. 헬로 카봇은 이보다 적은 규모라 답했다. 애니메이션 제작을 전담하기 위한 초이랩이라는 별도의 회사도 만들었다. “가족이 지지해준 덕분에 견뎠어요. 빚은 책임감을 키웠고요.”

그렇게 탄생한 헬로 카봇은 2014년 8월, 터닝메카드는 2014년 12월 시장에 나왔다. 당시엔 일본 완구 업계를 3년 간 평정했던 요괴워치가 한국 완구시장을 역시 휩쓸고 있을 때였다. 하지만 지난해 4월, 터닝메카드는 요괴워치를 눌렀다. 덕분에 제품 유통을 담당한 손오공은 지난해 사상 최대 실적을 냈다. 매출은 1250억원을 기록해 설립 후 처음으로 1000억원을 넘었고 영업이익은 104억원으로 흑자 전환했다. 최 회장은 “터닝메카드 매출은 대략 손오공 전체 매출의 절반 이상”이라며 뿌듯해했다.

최 회장의 자식(?) 자랑이 이어졌다. “레고가 교육적이라는 말을 많이 하던데 터닝메카드는 교육적이면서 창의적이다.” 터닝메카드는 로봇으로 변신하는 미니카, 게임을 즐길 수 있는 카드, 여럿이 게임을 할 수 있는 보드와 같은 여러 흥미 요소가 결합되어 있다. “종이 접기, 숫자 놀이, 부모와의 대화를 제품에 담았습니다.” 터닝메카드는 변신한 로봇을 다시 자동차로 만들기 위해선 종이 접기와 비슷한 과정을 거쳐야 하기 때문에 처음엔 부모의 도움이 필요하다. 또 카드 게임은 숫자를 더하고 빼면서 진행된다. 구매한 완구에 부여된 시리얼 넘버로 전용 모바일 게임에서 구매한 완구와 동일한 캐릭터로 게임을 즐길 수도 있다. 자동 변신 로봇, 모바일 연동 완구는 세계 최초다. 최 회장은 터닝메카드가 이런 다양한 시도의 결과물임을 강조하고 동시에 아이들을 위한 종합 콘텐트임을 인정받고 싶어했다. “최근 인공지능(AI)이 관심을 받고 있는데 어릴 적 로봇 완구나 자동차 완구와 대화하고 놀면서 인공지능에 대한 상상력, 창의성도 키워왔다고 생각해요.”

“빚이 책임감 키워”

최신규 회장 본인의 창의성 개발법도 소개했다. “아이들의 행동과 표정 그리고 아이들이 무엇을 가지고 노는지, 어디에 흥미를 보이는지 몇 번이고 계속 관찰합니다. 그리고 더 재미있어할 장난감을 상상해 봐요. 터닝메카드도 엄마와 종이 접기를 하면서 좋아하는 아이들을 보며 참고했어요.” 그는 자신의 이런 습성을 ‘뜬금없는 상상’이라 표현했다. 그리고 초이락 대표를 맡고 있는 아들 최종일 대표가 이 ‘뜬금없는 상상’을 물려받 았으면 좋겠다고 했다. 최 회장은 마지막으로 터닝메카드를 좋아하는 자녀를 둔 부모들이 긴장할 만한 소식을 전했다. 터닝메카드의 새로운 애니메이션 ‘터닝메카드W’가 5월부터 방영되고 이어 새로운 완구 제품 20종이 출시된다는 것이다.

- 유부혁 기자 yoo.boohyeok@joongang.co.kr

손오공: 최신규 회장이 1986년 설립한 서울화학이 전신이다. 손오공의 여의봉처럼 재미난 장난감을 만들겠다는 목표를 가지고 1996년 사명을 손오공으로 변경했다. 2005년 코스닥에 상장했으며 지금까지 국내 완구 업계에선 유일한 상장회사다.

1329호 (2016.04.1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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