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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FTA로 활로 찾아라] 알면 힘이고 모르면 독이다 

FTA로 세계 52개국의 수출 길 열려 … 중소기업 지원제도 많아 

박성민 기자 sampark27@joongang.co.kr

▎지난 2월 서울 코엑스에서 개막한 ‘한중 FTA 종합대전’에서 국내 한 기업이 중국으로의 수출을 타진하고 있다.
한국 제조업이 오랜 기간 침체를 겪고 있다. 자유무역협정(FTA)을 적극적으로 활용하는 게 하나의 해법이 될 수 있다. FTA를 계기로 타국의 경쟁 기업과 원가 경쟁에서 앞서거나, 기존에 진출하지 않았던 새로운 시장을 개척한 사례가 많다. FTA를 맺은 국가를 발판 삼아 제3국으로 진출을 꾀하기도 한다. 한국은행이 최근 발표한 ‘FTA가 한국 기업의 기업 내 무역에 미친 효과’라는 보고서에 따르면, 많은 한국 기업이 FTA를 체결한 국가에 있는 현지법인을 제3국 수출을 위한 플랫폼, 원자재와 중간재를 수입하는 통로로 활용하고 있다. 보고서는 ‘특히 제조업 분야에서 이런 효과가 눈에 띄게 나타나고 있다’고 강조했다.

한국은 2004년 칠레를 시작으로 많은 FTA를 맺었다. 지금까지 16건(52개국)을 타결했고, 이 중 14건이 발효됐다. 협상이 진행 중인 FTA도 4건이 있다. 미국·유럽(EU)·중국·인도 등 거대 시장을 보유한 대부분 국가와 FTA를 맺었다. 시장 규모는 크지 않지만 전략적 요충지로 활용도가 높은 국가도 있다. 2006년 발효된 EFTA(유럽자유무역협정, 스위스·노르웨이·아이슬란드·리히텐슈타인)로 유럽 시장 진출의 교두보를 마련했고, 같은 해 발효한 싱가포르는 아시아 시장 공략의 허브 역할을 했다. 2011년 페루 FTA는 국내 기업의 중남미 진출에 도움을 주고 있다. 국내 기업의 입장에서는 세계 어느 곳이든 진출할 수 있는 기반이 탄탄하다는 얘기다.

물론 모든 FTA가 제조 업체에 도움을 주지는 않는다. 매번 FTA가 발효될 때마다 특정 업종이 수혜를 받거나, 피해를 볼 수 있다는 전망이 쏟아진다. 같은 제조업 안에서도 분야에 따라 유불리가 나뉘기도 한다. 하지만 분명한 것은 FTA로 인해 기존에 없던 기회가 생겼다는 점이다. 한국무역협회 백지민 과장은 “FTA는 아는 만큼 기업에 힘이 되고, 모르면 독일 될 수 있다”고 강조했다. 그는 “FTA조항을 꼼꼼히 살피다 뜻밖의 기회가 생기기도 한다”며 “기업이 FTA에 대응하는 과정에서 과거에 없던 새로운 기술이나 제품을 개발한 사례도 있다”고 말했다.

일부 기업은 FTA 규정을 잘못 숙지해 위기에 처하기도 한다. 체코와 슬로바키아에 현지법인을 두고 있는 한 기업은 HS 코드를 잘못 기입한 사실이 슬로바키아 세관의 사후 검증에서 밝혀졌다. 다행히 고의성이 없다는 것이 인정돼 약간의 벌금만 내고 위기를 벗어났지만, FTA가 오히려 기업의 발목을 잡을 뻔했던 사례다. 제조기업이 참고할 만한 성공 사례를 모아봤다.

FTA 대응 위해 순수 국산 기술 개발


경북 경산시 소재의 자동차부품 업체 A사는 2014년 기준 연 매출 3000억원, 수출 7400만 달러(약 875억원)를 기록했다. 한·미 FTA가 발효되기 1년 전인 2011년, 미리 ‘해외지원 TF팀’을 만들어 FTA에 대응했다. 2012년 이 회사가 해외로 수출하는 자동차부품의 80% 정도만 FTA의 혜택을 받았는데, 이 수치가 지난해 말에는 95%로 올라갔다. TF팀이 원산지 관리를 철저하게 하면서 연 100억원의 넘는 관세 절감효과를 누리게 된 것이다. 이 회사는 해외에 생산공장도 별도로 두고 있었다. 문제는 해외 공장에 보내는 생산설비가 수출로 잡히는데, 일본 제품을 쓰고 있어 관세 혜택을 전혀 받을 수 없었다. TF팀과 대구세관이 머리를 맞대고 고민한 끝에 새로운 방법을 찾아냈다. 국내에 있는 공장 2곳의 제품을 결합해 일본 제품과 비슷한 성능의 생산설비를 만들 수 있게 된 것이다. 설비 자체가 한국산이기 때문에 추가적인 관세 혜택을 받을 수 있음은 물론이고, 해외 제품을 국산으로 대체해 미래의 경쟁력까지 확보했다.

인력 부족한 중소기업, FTA 컨설팅으로 시장 개척

서울 강서구에서 블랙박스를 생산하는 B사는 높은 기술력을 인정받아 해외 시장에 진출했다. 미국을 시작으로 동남아시아 국가연합(ASEAN)·유럽연합(EU)·호주 등으로 수출 지역을 늘려갔다. 때마침 이 회사의 수출 대상국과 한국이 연이어 FTA를 맺으면서 많은 수혜를 입을 수 있을 것으로 기대를 모았다. 문제는 이 회사의 규모가 영세했다는 점이다. FTA에 경험이 있는 전문 직원도 없었고, 전문 인력을 고용할 여력도 부족했다. 제도가 있어도 활용하지 못하는 상황에 처한 것이다. 고민 끝에 B사가 찾은 것이 중소기업진흥공단이 운영하는 ‘FTA 대행 컨설팅’이었다. 무료에 가까운 적은 돈만 내면, 중진공이 파견한 FTA 전문가가 수시(월 2회 이상)로 기업을 방문해 FTA와 관련한 모든 업무를 도와주는 제도다. 단순히 FTA 인증 업무를 대행해주는 게 아니라, 직원들의 교육과 전반적인 FTA 전략을 만드는 과정까지 도와준다. B사는 이 제도를 통해 5개 국가, 7개 품목의 원산지 인증을 받아 FTA 수혜 기업이 됐다.

관세청과 협업으로, 3D업종에 새 생명

많은 제조업 분야 중에서도 특히 육성이 필요한 분야가 뿌리산업이다. 주조·금형·소성가공·용접·열처리 등 작업으로 소재를 부품으로, 부품을 완제품으로 만드는 기초 공정을 말한다. 모든 제조업의 근간이 된다는 점에서 중요하지만, 지금은 ‘3D 업종’의 취급을 받고 있다. 산업통상자원부가 지난해 10월 발표한 보고서에 따르면 2013년 기준 한국의 뿌리산업 업체 수는 2만6013개. 이들이 42만 명을 고용하고 있다. FTA는 뿌리산업 기업에도 기회지만 문제는 산업 특성상 FTA 수혜를 받기가 쉽지 않다는 점이다. 주로 주문자가 요구하는 형태로 제작하기 때문에 매번 생산되는 제품이 달라, 품목 분류가 어렵고 서류를 만들기가 사실상 불가능에 가깝다. 인천광역시에 위치한 히터용 내열 주조품 생산업체 C사는 불가능해 보이는 일에 도전해 품목 분류에 성공했다. 인천세관 수출기업지원센터와 협업해 가장 기본이 되는 품목을 중심으로 분석에 들어간 것이 주효했다. 개별 제품은 기본 품목을 약간씩 변형하는 방법으로 시장에 대응할 수 있었다. 그동안 뿌리산업은 FTA 수혜의 사각지대로만 여겨졌는데, C사의 도전으로 새로운 가능성이 생긴 것이다. C사의 사례를 보고 많은 뿌리산업 업체들도 비슷한 도전을 이어가고 있다.

- 박성민 기자 sampark27@joongang.co.kr

HS코드 : 통일상품명 및 부호체계. 국제 통일상품 분류 체계에 따라 대외 무역거래 상품을 총괄적으로 분류하는 품목코드를 말한다.

1337호 (2016.06.06)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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